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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156화 (155/1,590)

# 156

회귀자 사용설명서 156화

작은바위(3)

“말이… 왜 안 돼.”

직접적으로 마력을 내뿜어 위협하는 것은 아니지만 정확히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공포감을 느끼게 하는 얼굴.

마력을 억누르고 있는 영향인지 머리카락이 천천히 떠오르고 있었다.

한 번도 깜빡이지 않은 채로 전방을 응시하고 있는 표정이 마치 감정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마음의 눈의 효과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눈동자의 가장 깊은 곳에서는 광기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어우야….’

전체적으로 위험한 느낌.

살기나 마력을 방출하지 않고 저런 표정으로만 사람들에게 공포감을 심어줄 수 있다는 것도 어떻게 보면 재능이다.

마치 어두운 그림자가 나를 제외한 모든 이를 짓누르고 있는 것 같은 분위기였다.

“말… 돼.”

‘결혼 생각은 취소다.’

틀림없이 제 명에 못 살고 죽으리라.

사실 정하얀이 강해졌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차희라나 카스가노 유노 같은 규격 외로 강한 이들을 옆에서 계속해서 보다 보니 능력 부족에 대해 스트레스를 느끼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어쩌면 큰일을 터뜨리지 않은 것은 정하얀 본인이 바빠서였을지도 모른다.

나와 함께 있는 시간 외에 그녀는 미친 듯이 마법에 몰두했으니까.

조금 더 강해져야 돼. 조금 더 힘내야 돼.

어제보다 오늘 더 성장하고 오늘 보다 내일 더 성장한다.

본래 천재란 이런 족속들이다.

[플레이어 정하얀의 상태창과 잠재능력을 확인합니다.]

[이름 - 정하얀]

[칭호 - 없습니다. 조금 더 노력하셔야겠네요.]

[나이 - 21]

[성향 - 사랑에 빠진 옹호자]

[직업 - 대마법사 - 영웅 등급]

[능력치]

[근력 - 18/성장한계치 희귀 이하]

[민첩 - 17/성장한계치 희귀 이하]

[체력 - 30/성장한계치 영웅 이하]

[지력 - 71/성장한계치 영웅 이상]

[내구 - 25/성장한계치 희귀 이하]

[행운 - 63/성장한계치 영웅 이상]

[마력 - 81/성장한계치 전설 이상]

[장비]

[빛을 잃어버린 생명수의 지팡이 - 영웅 등급]

[마력을 담은 그림자의 로브 - 영웅 등급]

[신성한 보호 - 희귀 등급]

[특성 - 마법사가 되는 방법 - 영웅 등급]

[총평 - 마력 능력치가 80을 넘었습니다. 아이템 효과까지 고려한 능력치이지만 1년도 되지 않은 플레이어가 보여준다고 하기에는 다분히 비상식적입니다. 물론 상대적으로 다른 능력치는 형편없기 때문에 밸런스 있는 성장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그녀가 보여주는 모습은 다분히 비상식적입니다. 성장 속도가 빠른 것은 좋지만 몸에 무리가 올 수도 있으니 균형 있는 성장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겠군요. 물론 그녀의 정신 건강을 챙기는 것이 먼저입니다. 노력하세요. 플레이어 이기영.]

현재 정하얀의 마력 능력치는 황정연보다 높다. 총평의 말대로 고작 1년도 지나지 않은 플레이어가 이렇게까지 성장했다는 건 믿기 힘든 일.

물론 한 가지에 몰두한 덕분에 타 능력치의 상승률은 형편없지만 그래도 이게 어디인가.

정하얀은 이미 이 대륙에서 상위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

아니 본래 마법에 천재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었던 그녀의 가치는 보여 지는 것 이상이다.

생각을 마친 뒤 다시 한번 슬그머니 정하얀을 바라보니 여전히 아까와 같은 모습이 시야에 비쳤다.

‘어우….’

나름대로 그 수준이 높다고 할 수 있는 우리 작은바위의 마스터는 그 영향을 떨쳐내고 있는 것 같기는 했지만 그 뒤에 있는 쩌리들은 어찌할 바를 모르는 느낌.

녀석이 마력을 일으키자 그제야 뒤에 있는 녀석들이 한숨을 몰아쉬었다.

“허억… 허억….”

“하얀아, 표정 풀어야지.”

“네….”

“이거 죄송합니다. 제 여자친구가 오늘 별로 기분이 좋지 않은 모양입니다. 여러분이 아니었다면 지금까지 데이트를 즐기고 있었을 터라. 큼. 뭐, 계속 말씀 드리자면 저에게는 당신들이 불가능하다고 하는 일을 실현시키는 힘이 있다는 겁니다.”

“…….”

“믿지 못하시는 것 같아 아주 간단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마를린 영애에게 부탁하는 방법도 있고, 조금 거칠겠지만 종교적인 이유를 물고 늘어지는 방법도 있습니다. 초저가 포션과 상품을 무더기로 캐슬락에 뿌려 시장 경제를 완전히 파괴시키는 것도 가능하고, 린델의 우수한 자유민을 캐슬락으로 옮기는 방법도 있습니다. 아! 붉은용병이 캐슬락에 분점이라도 낸다면 좋을 것 같지 않습니까? 희라 누나에게 한 번 사업을 해보는 건 어떻겠냐고 물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군요.”

“…….”

“저와 카스가노 유노가 운영하고 있는 일본의 요소가노소라 길드를 이쪽으로 불러오면 어떻게 될까요. 초기 투자비용이야 조금 들겠지만 거대한 포션 공장을 캐슬락에 차려버리는 겁니다. 작은바위도 포션사업에 발을 들이고 있지요? 지금 얼마에 판매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여러분이 파는 가격의 1/2도 충분히 감내할 수 있습니다.”

“…….”

“여러분들의 수입원인 몬스터 부산물도 조금 고생해서 캐슬락에 팔아버리면 어떨 것 같습니까? 더 싸게 말입니다. 아니면 여러분들이 밟고 있는 이 토지를 매입하는 방법도 있겠군요. 하하하. 여러분은 자유민이기 때문에 캐슬락에 땅을 임대해서 쓰고 있는 입장이지만 명예주교라는 직함을 걸치고 있는 저는 토지의 매입이 가능합니다.”

“…….”

“물론 더러우시면 다른 도시로 이주하시면 됩니다. 여러분은 타 도시에서 다시 한번 젊은 예술가의 정신으로 지역을 발전시켜 주도록 하세요. 무르익을 쯤 다시 한번 찾아가 여러분이 열심히 키운 달콤한 과실들을 따먹을 테니까요. 신성 제국 베니고어 어디라도 상관없습니다.”

“미… 미친….”

“당신들이 다시 린델로 돌아가도… 계속해서 캐슬락에 남아 있어도… 완전히 타 도시로 이주해도 저는 계속 당신들을 주시하고 있을 겁니다. 저를 피하고 싶으면 공화국이나 왕국 연합으로 들어가거나 아니면 산속에 틀어박혀서 범죄나 저지르며 삶을 연명해야 하겠죠.”

“…….”

“내 말이 거짓말 같으면 한번 시험해 봐.”

조용한 정적이 가라앉았다.

방금 정하얀 때보다 장내가 좀 더 조용해진 것 같은 느낌.

내 말이 단순 농담처럼은 들리지 않을 것이다. 그 증거로 지금 송정욱의 안색은 꽤나 창백해져 있다.

물론 나로서도 저런 귀찮은 일을 전부 다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몬스터의 부산물들을 굳이 린델에서 판매하는 것도 그렇고, 이곳에 포션 공장을 세운다는 것도 틀림없이 이쪽의 손해다.

똑똑한 녀석 한두 명은 ‘그게 가능하겠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건 실현 가능성과는 조금 다른 이야기.

만약 눈앞에 있는 자식이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더 미친놈이라면?

정말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이득을 전부 버리고서라도 순수한 악의로 이쪽을 괴롭힐 수 있는 녀석이라면?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부터 이미 게임은 끝난 거나 다름없다.

결정타를 날려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은 당연지사.

슬그머니 입을 여니 곧바로 반응이 오는 게 재미있었다.

“금력과 권력이라는 건 말입니다. 무력이 우선시되는 이 세상에서도 여전히 나 같은 놈들을 갑으로 있을 수 있게 만드는 장치야. 상태창에서 보이는 능력치나 개인의 강함으로 인해 자리 잡은 사람들이라 제법 자존심이 높으신 건 알겠는데… 너희들이 가지고 있는 알량한 무력으로 나한테 부딪치는 건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는 거야.”

“…….”

“사회의 틀을 깨부술 수 있을 정도로 강하지 않으면 조용히 납작 엎드리는 게 너희의 역할이라는 거지. 그걸 하지 않은 사람을 내가 여태 어떻게 했을 것 같아? 이곳에 온 지 1년도 되지 않은 내가 어떻게 이 자리에 있을 것 같아? 응? 내 말 이해할 수 있지? 선택지는 두 가지. 젊은 예술가가 될래? 아니면 거대 자본에서 떨어지는 꿀을 빨아먹는 기생충이 될래?”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답은 뻔할 것이다.

“뭘, 뭘 하면 됩니까. 파란 부길드 마스터.”

갑작스레 정중해진 송정욱이 시야에 비쳤다.

“정답을 골랐네. 귀찮은 일을 피하게 되어 정말로 다행입니다. 작은바위 마스터. 하하하. 이제야 좀 제대로 된 회의를 할 수 있을 것 같군요. 아주 좋습니다. 아주 좋아요.”

속으로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겉으로는 납작 엎드렸다. 진심인지 아닌지는 별로 상관 없다. 어차피 내게 중요한 건 녀석들을 얻는 게 아니었으니까.

“하하하하. 딱딱한 집무실이 아니라 조금 편한 자리는 없습니까? 아, 거기 뒤에 있는 친구. 좋은 날인데 술이라도 내와 봐. 이 정도는 괜찮지요? 작은바위 마스터.”

“네… 물론입니다. 영철아… 말씀하신 대로… 마실 것을 가져와 드리는 게 좋겠다.”

“네. 마스터.”

“하하하. 혼자만 마시면 좋지 않지 않습니까. 작은바위 마스터도 함께 드시죠. 하얀이도 조금 편하게 있어도 돼. 뭐 마실래?”

“네… 네! 오빠. 저는 우유로 충분해요.”

“들으셨지요. 영철 씨. 간단히 과자라도 조금 가져와 주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아! 그리고 계약서는 미리 가져왔습니다.”

“예.”

“여기 한번 천천히 읽어보시면 됩니다. 뭐 큰 걸 원하는 건 아닙니다. 제가 포션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는 건 알고 계실 겁니다. 질 좋은 포션을 혼자만 사용하는 게 너무 아까워서 말입니다. 마침 캐슬락에 사제가 부족하다는 소식을 들고 이렇게 달려왔다는 거 아닙니까. 하하하. 모두 다 캐슬락을 위한 일입니다.”

“그… 생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파란 부길드 마스터.”

“캐슬락에 있는 대형 길드들에게 정기적으로 포션을 공급해 주는 게 어떨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공짜는 아니고 무척이나 싸게 말입니다. 아아아. 일단은 상품부터 보셔야겠지요?”

“네.”

별로 기대하는 표정은 아니지만 상품 자체는 확실하다. 메이드 바이 이기영의 포션이 싸구려라는 건 말도 안 되는 이야기. 브랜드 가치는 올라가는 편이 좋다.

“한번 보시죠.”

[붉은 체력 회복 포션 - 희귀 등급]

[상처를 치료해 주는 회복 효과가 훌륭한 포션입니다. 중상급 치유효과를 가지고 있습니다. 중독이나 출혈을 막아줍니다. 복용을 마친 이후에는 대상의 내구도가 일정시간 동안 소폭 증가합니다. 제작자 - 이기영]

가방에서 뒤적거리며 포션을 꺼내 놓으니 눈이 커지는 녀석들이 시야에 비친다.

물론 이런 물건을 판매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지 이쪽을 의아하게 바라보는 송정욱의 얼굴도 보였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다.

아까의 대화는 갑을 관계를 정립하는 동시에 비싼 만큼 값을 받아내기 위한 설계였다는 거다.

“가격은 저렴하게 40골드입니다.”

“아….”

“한 병에 40골드.”

“너, 너무 비싼 것이 아닌지….”

“하하하. 비싸다니요. 작은바위 마스터. 지금 아이템의 효과를 읽고 계시지 않습니까. 딱 적당한 가격입니다. 여러분께서 매입할 능력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고요. 사냥의 효율도 올라갈 테니 별문제는 없을 겁니다.”

“저… 저희 길드에서는 이 포션을 40골드에 매입할 능력이 없습니다. 대량으로 판매하시려고 한다면 더욱더… 어떻게 생각해 봐도 20골드가 마지노선입니다. 계약서에 적혀 있는 물량을 생각해 보면 연간 빠져나가는 가격이 무려 몇 만….”

“40골드입니다.”

“30골드는… 안, 안되겠습니까.”

“하하하. 이거 섭섭해지려고 합니다. 작은바위 마스터. 이런 물건을 30골드에 받아가겠다는 건 너무 날강도 같은 심보 아닙니까. 40골드입니다.”

“그런….”

“40골드입니다.”

“알, 알겠습니다.”

“계약서에 사인해 주시면 됩니다.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작은바위 마스터. 이쪽에서도 따로 챙겨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제 손 안에 들어온 사람에게는 아주 너그러운 사람입니다. 하하.”

“네….”

“자자자. 이 자리에서 사인해 주시고! 물약은 바로 받아보실 수 있으실 겁니다.”

나만 만족하는 아름다운 상황. 이런 게 진짜 거래라는 거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