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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157화 (156/1,590)

# 157

회귀자 사용설명서 157화

위선자(1)

“하하하하. 이거 참 제가 생각하는 것보다 대화가 더 잘 통하시는 분 같군요.”

“저도 그렇게 느끼고 있습니다. 파란 부길드 마스터.”

“앞으로도 사업차 만나는 일이 많아질 겁니다. 물론 이번보다는 조금 더 작은바위에게 유리한 일일 수도 있겠군요. 서로에게 이득이 가는 일 말입니다.”

“네.”

“이야… 그리고 오늘 들었던 이야기는 참 재미있었습니다. 특히나 혜진 씨에 관련된 이야기라던가.”

“네. 사실 파란에 있다는 사실에 조금 놀랐습니다. 오늘 말씀드린 대로지만 들으신 것처럼 그다지 질이 좋은 사람은 아닙니다. 일부는 그녀가 정의의 사도라도 된 것처럼 떠들어대지만… 쯧.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원한 때문이었을 겁니다. 실제로도 저희 길드는 무혐의를 받았고요.”

“아! 그렇군요.”

“사실 저랑 개인적으로 사사건건 부딪칠 일이 많았습니다. 처음에는 조금 고분고분 한 듯싶었지만 간부직에 오르자마자 하나부터 열까지 간섭해 오기 시작해서 말입니다. 연봉을 올려달라는 건지 아니면 다른 뭔가를 해달라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지속적으로 이런 일이 생기는 바람에 무척 힘들었습니다.”

“혹시 무슨 혐의를 받으셨는지….”

“그건….”

“말씀하시기 힘드시면 개인적으로 찾아보는 방법도 있습니다. 송정욱 씨.”

“하… 하하. 당연히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 뭐 무혐의니까요. 몬스터 거래였습니다.”

“아.”

“그 외에도 세금 문제라든가… 길드 직원에 대한 처우 문제가 있기야 있었지만 사실 가장 중점적인 것은 몬스터 불법 거래 혐의였죠.”

“그렇군요.”

“별것 아닌 문제를 크게 만들기도 하고 사람이 영 융통성이 없어서 말입니다. 던전에서나 다른 곳에서도 문제가 많았습니다. 타 길드와 여러 가지 말썽을 일으키기도 했고요.”

“아. 조금 그래 보이기는 했습니다. 확실히 고집스러워 보인다는 느낌이 강했죠.”

“여러 가지로 문제가 많은 사람입니다. 아! 하얀 씨도 한 잔 드시죠.”

“아, 아뇨… 저는 괜찮아요. 송정욱 님.”

“하얀 씨께서는 술을 별로 안 좋아하시는 모양입니다.”

‘이놈, 생각보다 더 잘 엎드리는 데?’

나름대로 건방진 짓을 했던 이전이 거짓말 같을 정도였다.

적당히 이쪽의 비위를 맞춰주는 것은 물론 꼬리를 살랑살랑 흔드는 모습은 마치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을 정도.

가려운 곳을 살살 긁어주는 아부 실력은 확실히 이쪽의 우월감을 자극하고 있었다.

‘뭐, 그게 진짜인지 아닌지 알 수 없지만.’

녀석의 고유 기벽을 생각해 보면 아마 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을 확률이 높다.

모르긴 몰라도 속으로는 이쪽의 뒤통수를 칠 생각이나 나를 적당히 이용하자고 생각할 것이 틀림없으리라.

‘그래서 더 재미있는 거지만.’

특히나 이쪽에 조혜진에 대해서 안 좋은 말을 뿌리는 것은 가관.

반쯤은 걸러 들어야겠지만 그래도 그녀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었는지는 대충 알 수 있었다. 아마 다른 이들에게 이따위 여론 플레이를 펼쳤을 것이다.

‘그 사람 별로더라.’라거나 ‘조금 이상한 사람 같다.’ 따위의 말로 조혜진을 고립시켰을 거라고 생각했다.

권력자의 말은 신뢰를 얻는다.

조혜진 같은 여자를 고립시키는 데는 채 몇 달도 걸리지 않았을 것이다.

슬그머니 말이 없어지자 다시금 급하게 이쪽을 찾는 녀석의 얼굴이 시야에 비쳤다.

“시간도 시간인데 오늘은 아예 이쪽에서 푹 주무시고 가시는 게 어떻습니까? 이기영 님.”

“아!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군요. 호의는 감사하지만 이만 돌아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마를린 영애가 걱정할 겁니다. 하핫.”

“…….”

역시나 표정이 별로 좋지 않다. 순식간이기는 하지만 조금 찌푸린 얼굴.

반응이 너무 예상대로다.

“그럼 저희는 이만 일어나겠습니다. 많이 마시기도 했고… 못 다한 이야기는 나중에 하도록 하죠. 아 그리고… 부탁한 일은 맡겨도 되겠습니까?”

“네. 말씀하신 대로 캐슬락 내에 있는 다른 길드에게는 모두 연락해 계약을 진행시키도록 하겠습니다.”

“이거 감사합니다. 제 생각보다 조금 더 유능하군요…. 작은바위 마스터는….”

“감사합니다. 큼… 그보다 시간도 늦었는데 호위라도 붙여 드리….”

“아. 호위라면 괜찮습니다. 하하하. 걱정하시는 것은 이해하지만 저는 안전합니다.”

“네?”

“미리 말씀은 안 드렸었군요. 지난번에 린델 테러 사건 말입니다.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그때 이후로 안전에 조금 민감해져서 말입니다. 저도 민감하긴 하지만 저희 희라 누나도 많이 신경을 써주는 지라… 붉은용병의 그림자 분들이 호위를 서주고 계십니다.”

“네?”

“물론 캐슬락에 온 이후로는 영주성의 기사 분들과 교황청의 이단심문관 분들도 힘써주고 있지요. 제가 뭐 중요한 사람은 아니지만 이곳저곳에서 많은 분께 사랑 받고 있는 모양입니다. 하하하. 농담으로 하는 소리지만 만약 작은바위 마스터께서 저에게 해를 끼치기라도 했다면 입장이 아주 곤란해졌을 겁니다.”

“그, 그렇군요.”

식은땀을 흘리고 있는 것을 보니 뭔가 다른 생각을 하긴 했던 모양이다.

“물론, 그럴 일은 없을 테지만 말입니다. 그럼 이만 일어나겠습니다. 하얀아, 가자.”

“네, 오빠!”

곧바로 밖으로 나가자 조금 어둑해진 캐슬락이 시야에 비쳤다.

낮에도 본 풍경이지만 이렇게 봐도 나쁘지는 않다. 조금은 덜 다듬어 진 듯한 중세 도시는 확실히 내게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 것을 보니 내가 느끼는 것보다 술을 조금 많이 먹은 모양.

아니 작은바위에서 준비해 준 게 생각보다 도수가 있었던 모양이다.

슬그머니 정하얀의 팔을 잡고 이동하자 괜스레 이쪽을 부축해 주려는 정하얀이 보였다.

“조, 조금 기대셔도 되요.”

“그럼 부탁할게. 일어서니까 갑자기 취기가 올라오네.”

“역시 걷기 힘드세요?”

“그렇지는 않아. 내 몸 정도는 간수할 수 있어. 그보다 오늘 수고 많았어. 하얀아.”

“아니에요. 제가 하는 일은 이런 것밖에 없으니까. 헤헤헤. 그보다 조금 의외네요.”

“뭐가?”

“혜진 씨 말이에요.”

“아아아아.”

그러고 보니 정하얀은 조혜진에 대해서 듣는 것이 처음이다. 대충 사정을 알고 있는 이쪽과는 다르게 그녀에 대해서 들을 수 있었으니 나름대로 재미있었으리라.

“그런 사람인지는 몰랐는데….”

“아아. 나쁜 건 아니지. 그리고 정확히 이야기하면 작은바위의 입장에서의 이야기를 들어본 것뿐이니까. 조혜진 씨의 말도 한 번쯤은 들어봐야 되지 않겠어?”

“네! 그렇죠. 들어봐야 되겠죠!”

“그렇지만 그 사실 하나만으로는 우리한테 조금 껄끄럽게 느껴지는 게 사실이기는 하고. 이런 생각은 하기 싫지만 아무래도 내부 고발자라는 건 조금 꺼림칙하게 들리니까.”

“네! 역시 조금 그래요. 껄끄럽긴 껄끄럽죠. 오빠.”

“그래도 자기 양심에 따라 행동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

“그렇죠! 그, 그래도 자기 양심은 꼭 챙겨야죠!”

뭘 해도 이쪽에 긍정하고 있는 앵무새가 된 정하얀을 바라보니 괜스레 웃음이 나왔다.

실제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기는 했지만 아마 그다지 신경 쓰지는 않을 것이다. 타인에 대해 깊게 생각하는 건 그다지 정하얀답지 않다. 지금 당장은 내 의견에 필사적으로 긍정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고 있으리라.

송정욱한테 들은 조혜진의 이야기는 간단. 내 생각보다 더 별것 아닌 일이었다. 만약 송정욱이 말하는 동안 조미료를 뿌리지 않았더라면 이야기가 더 밋밋해 졌으리라.

‘물론 전부 다 이야기해 줬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아무튼 그중에서도 흥미로웠던 것은 작은바위에 입단한 이들 중 대다수가 조혜진과 튜토리얼 던전을 마친 동기라는 것이었다.

말 그대로 친인과 지인들로 구성된 길드나 다음이 없었을 것이다.

이를 테면 지금의 파란처럼 말이다. 굳이 우리 길드를 예로 들자면 정하얀이 갑작스레 이쪽의 비리를 모두 폭로해 버린 셈. 동료들이 배신자라고 생각하는 것도 이해가 가기야 간다.

‘몬스터 불법 거래.’

무혐의로 밝혀지기는 했지만 아마 조혜진의 말이 맞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틀림없겠지.’

작은바위는 숨기는 게 많다. 물론 증거는 없지만 성향과 기벽을 보면 누가 악당이고 누가 정의의 편인지는 금방 답이 나온다.

작은바위는 이쪽이 모르는 경로로 몬스터를 불법적으로 거래하고 있다. 영주성의 몇몇도 연관되어 있을지도 모르고, 작은바위뿐만이 아니라 다른 길드와 클랜도 한 발 걸쳐 있을지도 모른다.

‘꾼이네 꾼이야.’

가능하다면 조혜진 측의 진술도 들어보고 싶은 심정.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면서 걷다 보니 어느새 광장을 지나치고 있다.

“많이 취하셨어요?”

“조금 어지럽기는 해도 괜찮아.”

“많이 피곤하신 것 같은데.”

“아냐. 하얀아.”

“역시 쉬었다 가는 게 좋지 않을까요?”

“괜찮다니까. 바로 앞인데 뭐.”

“저, 저도 조금 힘들어서.”

슬쩍 정하얀의 시선을 따라가니 눈에 보이는 것은 고급 여관이다.

별 뜻 없이 말을 주고받았지만 정하얀이 말한 것이 무슨 뜻인지를 깨달은 것은 순식간.

눈에는 뭐라고 형용하기 힘든 필사의 각오가 들어가 있었다.

‘나… 참.’

“조, 조금만 쉬었다 가요.”

본인 나름대로는 설계인 모양.

은근슬쩍 먼 길로 돌아갈 때는 조금 더 같이 있고 싶은 모양이겠거니 생각했었지만 아무래도 진짜 목적은 이거인 것 같았다. 은근슬쩍 이쪽을 잡아당기려고 하는 것 같은 느낌.

“피곤하신 것 같아요. 아니 피곤하신 게 분명해요.”

심지어 억지로 이쪽을 피곤한 사람으로 만들고 있었다.

당황스러웠던 것은 이쪽도 왠지 모르게 마음이 동한다는 것.

낮에 즐거웠던 만큼 조금 더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은 어떨까, 한 번쯤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흠….”

“…….”

뭔가 결정을 내리려고 하던 그때였다.

“여기 계셨군요.”

“아….”

옆에서 들려온 목소리.

반갑지 않은 손님에 정하얀은 볼을 부풀렸고 이쪽은 머쓱한 표정으로 저쪽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나와 정하얀이 서 있는 위치가 왠지 애매한 위치였으니까.

“혜진 씨. 이곳에는 무슨 일로.”

“기영 씨와 하얀 씨를 데리러 왔습니다.”

“네?”

“정확히 말씀드리면 호위 차 찾아왔다고 하는 게 맞겠군요. 어둑한 밤이니까요. 캐슬락은 린델보다 위험합니다. 좁은 골목에서는 질이 좋지 않은 제국민도 있으니까요. 물론 하얀 씨를 생각하면 무슨 일이 일어나기에는 힘들겠지만 아무래도 후위인 만큼 제가 이렇게 하는 게 안심이 될 것 같습니다.”

“영주성의 기사도 있을 텐데.”

“아. 들으셨을지는 모르겠지만 길드 마스터는 이런 경우, 저에게 이기영 님의 호위를 맡기셨습니다. 아무래도 린델 테러 사건이 신경 쓰여 하시는 터라.”

“아아아아아….”

역시나 우리 회귀자는 나를 아낀다는 사실을 한 번 더 깨달을 수 있었다.

“시간이 시간인 만큼 제가 직접 나와 보는 게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무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 그럼 함께 가시죠.”

“네. 이렇게 마중 나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흠… 한데 생각해 보니 혜진 씨와는 길게 대화를 나눈 적이 없는 것 같군요.”

“아….”

“어떻습니까.”

“네?”

“어디서 잠깐 시간 좀 보내는 게.”

마침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조혜진과는 한 번쯤 진솔하게 이야기를 나눠봐야 하는 것이 당연.

마침 작은바위와 이야기를 하고 나온 지금이 타이밍이라면 타이밍이다.

정하얀은 입술이 삐죽 튀어나왔지만 잠깐 근처 주점에서 함께 술을 마시는 것도 나쁘진 않으리라.

아마 그녀 역시 받아들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보여주는 반응은 내가 생각하는 것과는 딴판.

이쪽을 노려보는 것은 물론 부들부들 떨고 있는 것이 보였다.

“무, 무례하군요.”

“네?”

“그렇게 보지 않았는데. 이렇게 까지 무례한 사람이었습니까?!”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갈이 터져 나왔다.

‘무슨 개소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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