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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159화 (158/1,590)

# 159

회귀자 사용설명서 159화

위선자(3)

“없… 습니다.”

있을 리가 없다. 만약에 한 번이라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면 일을 이따위로 처리하지는 않았을 테니까.

여러 가지 사안을 놓고 고민하면서 선택한 행동이 아니다.

“모든 일은 생각한 이후에 행동해야 된다는 겁니다. 장난으로 던진 돌에 개구리들은 맞아 죽어요. 막말로 제가 기침만 해도 목이 달아날 인간들이 수두룩합니다.”

“…….”

“자기가 서 있는 위치가 어느 정도인지, 하는 말이 어느 정도의 파장을 불러일으키는지에 대해 항상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 같은 사람은요. 아. 한잔 받으시죠.”

“아뇨… 저는 마시지 않겠습니다. 부길드 마스터.”

“저 혼자만 취한 것 같아 민망해서 하는 소리입니다. 정식으로 영주성에 호위를 요청할 테니 그냥 함께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조금만….”

“어울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뭐, 아무튼 간에 그렇다는 겁니다. 만약에 제가 혜진 씨였다면 조금 더 화끈하게 저질렀을 겁니다. 아마 당신 정도 되는 사람이면 저처럼 생각해 본 적도 있었을 거예요.”

“무슨 말씀을….”

“단순히 내부 고발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건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안쪽에서부터 차근차근 문제를 해결하고 송정욱을 비롯한 당신의 동료들의 목을 날려 버리면 됩니다. 길드는 정상적으로 돌아갈 테고 길드 직원에게도 피해가 없을 테니 문제는 없었겠죠.”

“…….”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저는 당신이 이 방안에 대해서 한 번쯤은 생각해 봤을 거라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넌 멍청하지 않으니까.’

“아마 그렇게까지 하지 않은 것은 당신의 옛 동료들과 갈등을 만들기 싫어서였겠죠. 그들의 목을 치기는 싫고 자신의 양심은 지키고 싶은 상황. 적당한 선에서 타협을 보고 싶어서 선택한 것이 내부 고발이라는 거. 어떻습니까? 제 망상이? 여러 가지로 설득을 해봤지만 통하지 않았고 결국에는 최후의 수단을 실행하신 것 아닙니까.”

묘한 침묵이 장내에 가라앉았다.

지금까지도 조용했었지만 조금 더 조용해진 것 같은 느낌.

정하얀은 아무 생각 없이 조혜진을 바라보며 야금야금 음식을 넘기고 있었지만 당사자인 그녀는 그저 말없이 술을 홀짝이고 있을 뿐이었다.

침묵은 긍정이다.

다시 한번 입을 열자 곧바로 대답이 들려왔다.

“결과적으로는 당신이 그들에게 버림받았고요.”

“그런 표현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아뇨. 제 말이 맞습니다. 작은바위의 송정욱이라는 사람을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지만 어떻게 했을지 감이 옵니다. 아, 당신과 튜토리얼을 함께한 친구 분들도 말입니다.”

“어떤….”

“그들은 욕심이 많은 사람들입니다. 끊임없이 위로 올라가고 싶어 하는 종류의 인간들이죠. 양심이나 도덕 같은 것은 별로 신경 쓰지 않을 겁니다. 더 많은 재화, 더 많은 돈, 더 많은 권력. 그런 종류의 사람들이 원하는 것들이죠.”

“단정 지을 정도는 아닙니다.”

“당신과는 많이 다르죠. 아마 그들은 당신을 쳐내기 위해 뒷공작을 벌였을 겁니다. 캐슬락에 안 좋은 소문을 퍼뜨리는 것은 첫 번째. 타 길드와 클랜에게 당신을 받아주지 말라고 청탁을 넣는 것이 두 번째. 자신들의 행사를 방해한 게 별로 유쾌하게 비치지 않았을 테니까요.”

“그런 것쯤은… 알고 있습니다.”

“여기저기에서 이야기가 많이 들려오더군요. 조혜진은 자신의 몸을 이용해서 지금의 권력을 잡은 사람이라든가, 타 길드원과 자주 마찰을 일으켰다든가 하는 이야기 말입니다. 정말 우습죠. 학생 때 하던 짓들을 지금에 와서도 하고 있으니까요. 왕따 놀이라도 하자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애나 어른이나 유치하기는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단순한 헛소문입니다. 저는 신경 쓰지도 않는 소문들이요.”

“잘 포장된 소문은 진실이 되기도 합니다. 결과적으로 그 소문 때문에 당신의 입지와 명성은 엉망이 됐고요. 어떻습니까. 호의를 배신으로 돌려받은 기분은.”

“별로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각오했던 일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자신의 선택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고 계십니까. 마찰이 싫어 피한 결과.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 이 상황에 대해서는 말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걸 보고 위선이라고 합니다.”

“위선이 아닙니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테이블에 있는 것들이 사방으로 쏟아졌다.

흥분했는지 숨을 몰아쉬고 있는 모습. 조금 갑작스러운 상황이지만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것을 보면 이쪽에서 정곡을 찌른 모양인 것 같았다.

나보다 당황한 것은 정하얀.

곧바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는 것이 보였지만 슬그머니 손을 잡자 털썩 자리에 앉는 것이 보였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당신이 그런 말을 할 자격은 없습니다, 이기영 부길드 마스터님. 위선자는 당신이니까요.”

“아.”

“저는 바보가 아닙니다. 세간에 들려오는 당신에 대한 이야기와 당신의 진짜 모습이 다르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예리하시군요.”

‘알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 못 했는데….’

“그래서요?”

“그래서라는 말이!”

“우리 혜진 씨가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겠어요. 확실히 저는 깨끗하기만 한 사람은 아닙니다. 제가 벌린 사업이나 실제로 하는 일들은 교묘하게 법의 테두리에 걸쳐 있으니까요. 그래서 뭐 어쩌란 말입니까.”

“그게 진짜 위선이라는 겁니다. 이기영 부길드 마스터.”

“저는 한 달에 한 번 교황청에 수 만 골드를 기부하고 있습니다.”

“…….”

“그 기부금은 신성 제국의 각지로 쏟아져 어려운 제국민 신도들과 정착에 어려움을 겪는 자유민을 돕는 기금이 되지요.”

“겨우!”

“겨우가 아닙니다. 또 저는 린델 내에 있는 빈민촌의 무료 급식소도 운영하고 있지요. 길드 내에 있는 김미영 팀장님을 기억하고 계실 겁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녀는 빈민촌에서 하루하루를 구걸하며 살아가던 빈민이었습니다. 아이 둘을 키우며 가난에 허덕이고 있는 사람이었죠. 그녀를 구제해 준 게 누구 일 것 같습니까.”

“그건….”

“그녀뿐만이 아닙니다. 파란은 인재를 가리지 않습니다. 장애인이나 미혼모, 전투에서 큰 상처를 입어 후유증을 앓고 있는 전사. 입단에 차별을 두지 말라고 하는 것 역시 제 지시였습니다. 물론 파란에 이득이 되는 행위이기는 하지만 이것 자체가 커다란 사회활동인 셈이죠.”

“당신이, 당신이 대형 길드와 협연해 언론을 조종하고 있다는 건 어떻게 설명하실 겁니까.”

“제 생각보다 더 많이 알고 계시는 군요.”

“자연스럽게 알게 됐을 뿐입니다. 길드에서 일하다 보면 보기 싫은 것도 보이게 되는 법이니까요.”

“혹시 신성 제국의 법에 개인이 언론을 컨트롤하면 안 된다는 법이 있습니까?”

“신성 제국에서는 이기영 씨가 만든 언론이라는 개념 자체를 아직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언론은 소식지에 불과해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금 이기영 씨가 벌이고 있는 일의 심각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법 날카롭다. 확실히 날카롭다.

“부길드 마스터님, 이건 기본적인 상식의 문제입니다. 당신이 지금 하고 있는 행동은 잘못된 행동입니다.”

“글쎄요. 그렇다면 어째서 우리 혜진 씨께서는 현 신성 제국이 가지고 있는 문제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 겁니까.”

“무슨 소리를….”

“태어날 때부터 운명이 정해져 있다고 믿는 귀족주의나 왕권체제에 대해서는 어째서 눈을 감고 있는 겁니까? 이것도 생각해 보면 혜진 씨의 말처럼 지구의 상식으로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 아닙니까.”

“그건 그들의 삶….”

“정말로 도의를 지키고 싶으신 거라면 일단은 이곳에 프랑스 혁명이라도 일으켜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마를린 영애도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잖아? 같은 소리를 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캐슬락에 있는 빈민에 대해서는 쥐뿔도 신경 쓰지 않고 있을 가능성도 있어요. 지금 당장 민중을 이끌고 단두대를 만드시는 건 어떻겠습니까.”

“궤… 변입니다.”

“저도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습니다. 궤변이지요. 그렇지만 이런 상황에서 궤변을 외치는 건 당연하다는 겁니다. 애초의 법의 경계가 무척이나 모호하지요. 지구에 있는 상식을 따를 것인지 아니면 이 대륙의 상식을 따를 것인지에 대해서는 모든 자유민이 혼란스러워하는 부분입니다.”

“그것도 궤변입니다.”

“개인의 양심에 따라 행동하기에는 맞물리는 가치관이 무척 많다는 겁니다. 당장 사형 제도만 생각해 봐도 그래요.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을 화형시키는 것은 비윤리적이지 않습니까? 이토 소우타라는 일본인은 악마 숭배 혐의로 성수를 넣은 석상 안에 들어가 익사 당했습니다. 이건 비윤리적이지 않습니까?”

“…….”

“사형 제도 자체가 비윤리적이지요. 그렇지만 이곳에서는 그런 일이 무척 당연하게 일어납니다. 여기서 다시 한번 생각해 봅시다. 누가 더 위선적인 걸까요?”

“궤변… 입니다.”

“법에 테두리 안에 걸쳐 있는 채로 이 사회에 기여하고 있는 나. 아니면 동료들과의 마찰이 무서워 내부 고발이라는 형태로 도망친 혜진 씨. 누가 더 위선자입니까?”

“…….”

“저는 지금 말싸움을 하자는 게 아닙니다, 혜진 씨.”

“그런 걸로는 보이지 않으신 것 같습니다. 누가 봐도 부길드 마스터님이 제게 시비 걸고 있는 걸로 비춰집니다.”

“술자리에서 흔히 나올 수 있는 이야기이고 논쟁입니다. 그저 의견 교환이라고 생각해 봅시다. 병 주고 약 주는 것이 아닙니다만 사실 저는 혜진 씨가 썩 나쁘게 보이지는 않습니다. 개인의 신념을 지킨다는 건 멋진 일이니까요.”

“놀리시는 거라면….”

“아뇨. 놀리는 게 아닙니다. 당신은 저보다는 현성 씨에게 가까운 인간입니다만 저는 그런 방식을 고수하는 인간을 동경합니다. 올곧은 사람들 말입니다.”

“잘도 그런 소리를 하시는군요.”

“올곧은 이들이 부러지지 않게 도와주는 게 제 역할이라는 겁니다.”

“이기영 부길드 마스터….”

“저는 도움이 되는 인간입니다. 아, 다시 한번 주제를 돌려서 송정욱 씨에 대해서 이야기해 봅시다. 만약 그들이 아직까지 몬스터 불법 거래와 이종족 노예 거래를 해오고 있다고 가정했을 때, 저에게 그들의 목을 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제법 진지한 얼굴이 보였다.

“제가 당신의 복수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정말로 진지한 얼굴.

원래 항상 표정이 굳어 있는 조혜진이었지만 지금은 정말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녀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뻔할 뻔자.

나는 이미 그녀가 어떤 선택을 할지 알고 있다. 지금에 와서 복수를 부르짖는 것은 조혜진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

“도움은 필요 없습니다. 부길드 마스터는… 부 길드 마스터의 일을 하시면 됩니다.”

“아. 그렇군요.”

“죄송합니다만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영주성에 있는 기사들에게 따로 호위를 요청하도록 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벌떡 일어나는 조혜진이 시야에 비쳤다.

아무래도 기분이 많이 상한 모양.

딱히 기분을 나쁘게 할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여러 가지로 가슴에 꽂히는 게 많을 거라 생각했다.

‘위선자.’

그녀한테 조금 잘 어울리는 단어다. 본인도 아마 그걸 자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표정이 구겨져 있는 것은 아마 그런 이유에서 이리라.

‘정의는 구현하고 싶고 동료들이 잘못되는 것은 원하지 않고.’

저런 호구 같은 사람은 또 없을 것이다. 조혜진이 발걸음을 옮기자 정하얀이 은근슬쩍 입을 열었다.

“제멋대로인 사람이네요. 호위해 주겠다고 하면서 먼저 가버리고….”

“응?”

“혜진 씨요!”

“아아아. 너무 미워하지 마. 전부 다 착해서 그런 거니까.”

“그렇지만.”

“지금은 저렇게 해도 나중에는 아주 절친한 친구가 될 예정이거든.”

“네?”

“본래 친구는 싸우면서 친해지는 거니까.”

[플레이어 조혜진의 고유 기벽을 확인합니다.]

[우정 속에서 피는 꽃]

본래 친구는 싸우면서 친해지는 게 맞다.

‘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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