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0
회귀자 사용설명서 160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1)
조혜진과 대화를 나눈 날로부터 시간이 좀 더 흘렀다.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고 이쪽도 나름대로 주변을 잡아 뒤지기는 했지만 나보다 더욱 열심히 움직여준 것은 작은바위의 송정욱.
계약은 놀라울 정도로 쉽고 빠르게 진행됐다.
녀석은 마치 이쪽에 충성이라도 맹세한 것처럼 타 길드와 클랜에 내가 만든 포션을 홍보하기 시작했고 내가 먼저 계약서를 내밀기 전에 직인이 찍힌 계약서를 이쪽으로 가져왔다.
영주성에 들려 마를린 영애를 비롯한 다른 귀족들과 친분을 만들려는 속셈 같기는 했지만 남는 시간을 어떻게 활용할지는 녀석의 자유.
오히려 콩고물이라도 먹으라는 기분으로 하위 귀족을 소개시켜 준 적도 있으니 놈의 입장에서는 수지맞았다고 느낄 것이다.
충신으로 변모한 듯한 모습은 확실히 당황스럽기는 했다.
물론 송정욱이 지속적으로 영주성에 찾아오는 이유는 겨우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마를린 영애.’
마치 발등에 불똥이 떨어진 것처럼 움직이고 있었던 것.
녀석이 영애를 이용하려는 사실은 이미 옛날 옛적에 눈치챈 사안이었지만 대놓고 영애를 노리는 모습이 보이니 내 입장에서는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열심히 해봐라.’
확실히 송정욱이 마를린 영애와 이어진다면 녀석의 입장에서는 얻는 것이 많을 것이다.
귀족이 될 수 있고 토지를 매입할 수 있게 되고 세금 문제에 대해서 조금 더 자유로워질 수 있다.
진심으로 그녀를 사랑하는지 사랑하지 않는지는 내 알 바 아니지만 마를린 영애와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녀석은 이전에 내가 말했던 거대 자본 측에 들어갈 수 있다는 거다.
딱히 이쪽에 반기를 드는 것은 아니니 뭐라고 할 필요는 없었지만 의도가 좋지 않다는 것은 대충 알 수 있는 부분.
송정욱은 나와 가까워지는 걸 원하면서도 작은바위가 파란의 영향력을 지나치게 받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겉으로는 이쪽에 충성을 맹세하는 척, 안으로는 어떻게든 상황을 뒤집기 위해 아등바등 움직이는 꼴은 양면이 다른 나뭇잎이라고 할 만했다.
‘졸렬한 놈.’
이쪽도 끝까지 저쪽을 케어해 줄 생각은 없다.
적당한 선을 유지하면서 꼬리를 자를 때를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물론 그전에 뜯어먹을 수 있는 건 전부 뜯어 먹어야 되지만 말이다.
당연하지만 바쁜 것은 송정욱뿐만이 아니었다.
계속해서 밖으로 나가는 김현성 파티 역시 마찬가지였다. 나 같은 경우에는 업무 차 왔기 때문에 격일에 한 번씩 나가고 있었지만 김현성은 박덕구와 김예리 키우기에 여념이 없었다.
아마 몬스터 웨이브의 징후를 가져와 사람들을 설득하는 것 역시 녀석이 해야 할 일 중에 하나이리라.
“그럼 오늘도 다녀오겠습니다. 기영 씨.”
“네. 현성 씨. 덕구도 몸 조심히 잘 다녀와라.”
“아, 거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니까. 어차피 밖에만 살짝 돌아다니다 오는 거고 조사 차 다녀오는 거니 괜찮소.”
“그렇다면 걱정 없고. 희영 씨도 몸 조심히….”
“네. 걱정하지 마세요.”
“하얀이도.”
“네… 히끅.”
“울지 말고 뚝.”
굳이 내가 손을 쓰지 않아도 이 건은 김현성이 알아서 처리해 줄 테니 믿고 맡길 수 있는 부분이라는 것.
의지할 수 있는 동료가 있다는 건 상당히 즐거운 일이었다.
미래에 일어날 일을 바탕으로 김현성은 차근차근 정보를 모을 테고 그 정보를 캐슬락 내에 정식으로 공지할 것이다.
전시체제에 들어간 캐슬락은 이전 회 차와는 다르게 몬스터 웨이브나 네임드 몬스터의 습격을 막아내고 우리 회귀자는 캐슬락을 구한 영웅으로 일어서게 될지도 모른다.
계획대로 될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지만 그걸 실현시키는 것이 나 같은 놈이 해야 할 일.
나 역시 여러모로 바쁘기는 했지만 그 정도는 처리해 줄 수 있었다.
“저 잠깐, 기영 씨.”
“네. 현성 씨.”
“그… 혹시 혜진 씨랑 무슨 일 있으셨습니까?”
“네?”
“최근에 사이가 좋지 않은 것 같아서….”
“아. 일적인 부분에서 잠시 마찰이 있었을 뿐입니다. 아주 사소한 부분이라…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렇군요.”
“현성 씨가 뭘 걱정하고 계시는지 알 것 같지만 걱정하시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아. 네… 그… 저는 두 분이서 친하게….”
“네. 혜진 씨와 친해지고 싶은 건, 저도 마찬가지니까요. 마침 이번에는 혜진 씨도 원정에 나가지 않는다고 하니 제 쪽에서 조심스레 다가갈 예정입니다. 하핫.”
“하하. 그거 다행이로군요.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니 한시름 놨습니다. 그럼 다녀오도록 하겠습니다.”
“네. 오늘도 조심히….”
“예.”
‘걱정되나 보네.’
물론 나도 걱정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저번 사건 이후로 조혜진이 이쪽에 조금 냉랭한 태도를 취하고 있었으니까.
그렇지만 대화 창구가 아예 끊긴 것은 아니었다.
본래 사소한 말다툼보다 더 무서운 것이 말없는 냉전.
아직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일단 청신호라고 할 수 있으리라.
잘 다녀오라는 뜻으로 파티원들에게 손을 흔들자 마찬가지로 이쪽에 인사를 해오는 모습이 시야에 비쳤다.
캐슬락에서 도착한 이후에 시간이 흐르고 있는 시점. 내가 해결해야 될 일들의 윤곽이 어느 정도 잡히는 것 같았다.
‘첫 번째는 앞으로 도시에 닥칠 위기를 막아내는 것.’
사실 이번 원정에 가장 큰 목적이다. 우리 사랑스러운 회귀자의 목표이기도 하고 우리 파티가 캐슬락에 온 이유이기도 하다.
부가적으로는 위험을 알리고 캐슬락에서 우리 길드의 입지를 다져놓는다.
지금 당장은 김현성이 힘써주고 있는 부분이니 내 쪽에서 움직일 일은 없지만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상황에 대한 대비는 철저히 마쳐놔야 한다.
‘두 번째는 작은바위의 송정욱.’
계속 품고 갈 것인지 아니면 적당한 선에서 쳐낼 것인지도 고민해야 할 부분.
사실 이 부분은 조혜진이 어떤 식으로 행동할지에 대해 파악하는 것이 먼저겠지만 지금으로서는 현 상황을 유지하며 써먹을 수 있는 패들을 준비 하는 게 옳다. 그리고…
‘세 번째는 조혜진 양과의 관계 개선.’
그녀와 내 사이에 우정이라는 끈을 만들어 놓는 것. 첫 번째와는 다르게 두 번째와 세 번째는 파티가 아닌 나 개인이 움직여야 할 일이다.
앞으로도 조혜진과 함께 움직일 것을 생각하면 최소한 그녀를 컨트롤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키워드는 신뢰할 수 있는 친우이다.
물론 이미 나에 대해서 어느 정도 잘 알고 있는 그녀와 가까워지는 것은 힘든 일이기는 하지만 절대로 어려운 일은 아니다. 이미 어느 정도 가닥이 잡히고 있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다른 파티원들이 자리를 비운 지금은 기회라고 말할 수 있는 시기.
조금이라도 말을 붙이며 가까워지도록 노력하는 것이 옳다. 굳이 친구가 아니더라도 그녀에게 빚을 만들어 놓는다거나 나를 다시 보게 만드는 계기가 중요하다.
송정욱이 나를 위해 일하고 있는 동안, 나 역시 가만히 있었던 건 아니다.
앞을 바라보니 나가는 파티원들을 배웅하고 있는 조혜진이 시야에 비쳤다.
“현성 씨가 걱정하고 계신 것 같더군요.”
“…….”
“혹시나 저와 혜진 씨가 서로 으르렁거리지는 않았을까에 대해서 말입니다.”
“공적인 일을 제외한 대화는 그다지 하고 싶지 않습니다. 부길드 마스터.”
“이것 역시 공적인 대화란 테두리 안에 들어가 있는 일입니다. 혜진 씨. 길드원 간의 친목 도모는 아주 중요하니까요.”
“또 이상한 이야기를 하시겠다는 거라면….”
“아뇨. 그런 것이 아닙니다. 서로 약간의 오해가 있기는 하지만 이런 오해는 사전에 푸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조금 반응이 차갑기는 했지만 최근에는 쭉 이래왔다.
아마 본인 역시 생각이 많을 것이다. 이전에 내가 한 말은 아마 그녀의 심장 속에 꽤나 깊숙하게 틀어 박혔을 테니까.
“복수에 대해서 말씀 드린 건 혜진 씨를 위함이기도 했지만 어디까지나 일적인 부분이기도 합니다. 개인적인 원한에는 관계없이 만약 그들이 아직까지 불법적인 일에 손을 걸치고 있다면 제 입장에서는 어디까지나 손을 써둬야 하니까요.”
“…….”
“만약 바쁘지 않으시다면 함께 가주셨으면 하는 곳이 있습니다. 아 물론 혜진 씨가 거절한다고 하신다면 저 혼자라도 찾아갈 예정입니다. 제법 위험한 곳이지만 어떻게든 살아서 돌아올 수 있을 겁니다. 운이 나빠서 납치라도 당한다면 팔이나 다리 하나 정도는 잘리겠죠. 현성 씨가 아주 기뻐하실 겁니다.”
“당신이라는 사람은….”
“저는 나쁜 사람이 아닙니다. 혜진 씨. 이것도 전부 일입니다. 다른 파티원들이 모두 밖에 나가 열심히 일 해주고 계시고 있는데 저희도 할 일은 해야 되지 않습니까. 큼. 함께 가주실 겁니까?”
“선택지를 주고 말씀하시는 게 아닌 것 같네요. 함께 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김현성이 이쪽의 호위를 맡긴 것은 어떻게 보면 행운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그녀와 함께 움직일 수 있는 범위가 넓어진다는 거니까.
“아. 지금 입고 계신 복장으로는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니 옷을 갈아입어 주시면 좋겠습니다.”
“네?”
“이쪽이 미리 준비해 놨으니 다른 걱정은 하시지 않아도 됩니다.”
“목적지를 물어도 괜찮을까요?”
“아마 천천히 알게 될 겁니다. 미리 말씀 드리면 재미없으니까요. 한 시간 이후에 바로 출발이니 빨리 준비해 주시죠.”
“이미 결정해 두신 거군요. 정말로 제멋대로네요.”
“제가 추진력이 좋아서 말입니다. 칭찬 감사합니다.”
여전히 표정은 별로 좋지 않지만 안쪽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면 순순히 이쪽의 제안을 따라주기는 할 모양.
인상을 찡그리기는 했지만 나름대로 미인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과의 데이트니 뭐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준비하는 동안 나 역시 채비를 시작한다. 미리 준비한 옷으로 갈아입고 적당히 머리를 손질하는 것으로 마무리.
왕성에서 파티할 때의 복장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제법 사람다워진 모습을 보니 입꼬리가 올라갔다.
로비에서 그녀가 나오길 기다리니 한 쪽에서 슬그머니 익숙한 얼굴이 보이기 시작.
제법 얼굴이 붉어진 것을 보니 내가 준비한 옷이 마음에 들었던 것 같았다.
“이거 정말로 입어야 하는 겁니까?”
“이미 갈아입고 나오신 것 아닙니까. 굳이 부끄러워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혜진 씨.”
“그, 그렇지만… 노출이 너무….”
“아름다워 보이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푸른색 드레스가 잘 받을 거라고 생각했었던 내 예상이 맞았다.
영주성의 안내인에게 적당히 꾸며 달라고 말한 것이 유효한 것 같은 느낌. 화장은 하든 안 하든 별 상관 없지만 곱게 묶은 머리카락이 드레스와 굉장히 잘 어울렸다.
다리 한 쪽과 등이 훤히 보이도록 파인 드레스에는 적응을 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기는 했지만 전체적으로 섹시한 느낌이다.
‘색기와는 거리가 먼 여자라 생각했는데….’
나름대로 매력적이기는 하다.
“파티라도 가시는 겁니까? 파트너가 필요한 거라면 굳이 제가 아니더라도….”
“단순한 파티가 아니니 믿고 가주시면 됩니다. 밖에 마차를 대기시켜 놓았으니 어서 가시죠.”
“네.”
“아 그전에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만.”
“네.”
“작은바위에 대해서 말입니다만… 혹시 그들이 불법적으로 몬스터 거래나 이종간 노예 거래를 하는 장면을 본 적이 있습니까?”
“네. 마차 안에 갇혀 있는 이들을 봤습니다.”
“실제로 어떻게 거래가 이루어지지에 대해서는 본 적이 없다는 거군요. 아마 세금 문제나 몬스터 거래도 장부를 들춰보면서 알게 된 것 아닙니까?”
“그걸 어떻게….”
“증거 불충분으로 무혐의 판정을 받은 데는 이유가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
“아까 목적지를 물으셨지요?”
“네.”
“저희는 지금부터 그 현장을 견학하러 갈 겁니다.”
“무슨….”
“실제로 불법적인 일이 어떻게 벌어지고 있는지 알아보려 한다. 이 말입니다.”
말문이 막혔는지 멍한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보는 조혜진이 시야에 비쳤다.
굳이 이해시킬 필요는 없다. 그녀가 가서 느끼게 될 테니까.
나는 품 안에 있는 가면 두 개 중 하나를 착용하며 입을 열었다.
“가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