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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161화 (160/1,590)

# 161

회귀자 사용설명서 161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2)

마차 안에서 가면을 쓴 채 조용히 앉아 있는 조혜진이 시야에 비쳤다.

표정을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대충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것은 당연.

갑작스러운 내 제안에 조금은 초조해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정말로 그런 장소가 있는 겁니까.”

“수요가 있어야 공급이 있는 겁니다. 필요로 하는 이들이 있어야 파는 사람도 생기는 법이죠.”

“제가 캐슬락에 있었던 삼 년간 그런 장소가 있다는 건 들어보지도 못했습니다.”

“몇몇 도시에서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 블랙마켓이 아닙니다. 조금 더 고급스럽고 VIP만을 위한 장소로 운영되고 있는 곳이지요. 그저 그런 블랙마켓은 린델 내에서도 충분히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마약 거래가 가장 활발히 일어나는 곳은 보통 국경입니다. 지구에서도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에 근접한 도시들이 상대적으로 많이 노출되어 있어요. 제가 생각해도 캐슬락의 지리적 요건은 나쁘지 않습니다. 공화국과 근접해 있으니까요.”

“공화국과는….”

“냉전 상태이기는 합니다만… 그 와중에도 팔릴 수 있는 물건은 신나게 팔려나가고 있습니다. 인간이라는 건 언제 어디서든, 어떤 상황에서든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동물이니까요. 조금 과장해서 말한다면 전쟁 상태로 돌입해 있는 와중에도 마켓은 운영될 겁니다.”

“당신은 어떻게?”

“이 사실을 알고 있냐고요? 구매력이 있으니까요. 이 세상에 돈으로 불가능한 건 없습니다.”

사실 돈만으로 되는 건 아니다.

루트를 발견하기 위해서 개고생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분명히 캐슬락 도시 내에 시장이나 경매장이 있다고 확신하고는 있었지만 내가 모르는 수년 동안 형성된 루트를 발견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송정욱의 도움을 받으면 간단하긴 하지만 녀석에게는 나와 조혜진이 지하 경매장에 출입한다는 사실을 숨기기 싶었다.

이곳저곳 열심히 알아보던 가운데 이쪽에 도움을 준 것은 카스가노 유노.

편지 한 통에 모든 게 해결될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

덕분에 일이 끝난 이후 실리아에 들린다는 약속을 했지만 정확히 언제 실현될지 모르는 약속이다.

“캐슬락 백작이나 마를린 영애도 아마 모르고 있을 겁니다. 현성 씨도 마찬가지고요.”

“길드 마스터도….”

1회 차의 녀석도 알고 있지 못했으리라.

시기상으로 생각해 본다면 지금 이 시기 즈음에 김현성은 린델 내에서 무력을 높이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을 타이밍이었으니까.

일이 끝난 이후에는 접했을 수도 있겠지만 불법 경매장 같은 것은 조혜진 같은 종류의 사람들에게는 조금 먼 이야기다.

“현성 씨에게는 제법 확고한 목표가 있는 것처럼 보여서 말입니다. 이런 세세한 것은 놓치고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좋게 말하면 나무가 아닌 숲을 바라보고 있는 거겠죠.”

“숲 말입니까?”

“네. 이를 테면 전쟁이나 몬스터 웨이브 같은 대륙에 직접적인 영향일 끼칠 수 있는 사건들 말입니다. 캐슬락의 지하 경매장보다는 캐슬락의 안위 자체에 신경 쓰고 계신 거겠죠. 지금 열심히 숲을 뒤지고 있는 것 역시 그것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숲을 보는 사람이 있으면 나무를 보는 사람도 필요하다는 겁니다.”

“…….”

“그 역할은 저나 혜진 씨 같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고요.”

“그렇지만….”

“물론 보고는 드릴 겁니다만 저는 우리 길드 마스터에게 굳이 썩은 나무를 보여드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안 그래도 머리가 아픈 사람이니까요.”

“무슨 말씀인지… 이해할 수 있겠네요. 그럼 굳이 저에게 같이 가자고 한 이유는….”

“저번에도 말씀드렸지만 저는 혜진 씨가 마음에 듭니다. 현성 씨가 혜진 씨를 길드의 간부로 들이려는 이유도 공감할 수 있고요. 서로에 대해서 잘 이해할 수 있어야 앞으로가 편해지지 않겠습니까. 아. 도착한 것 같군요. 내리시죠. 지하 경매장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말을 아끼시는 게 좋을 겁니다.”

“네….”

“아! 이곳에서의 제 이름은 카스가노 하루카입니다. 저는 혜진 씨를 유카라고 부를 거고요.”

“아. 네.”

마차에서 내리자 제법 조용한 연회장이 시야에 비쳤다. 왠지 모르게 조금 긴장한 표정의 조혜진이 시야에 비쳤다. 갑작스러운 일탈에 사춘기 소녀처럼 두근거리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지만 그런 것은 아니다.

가면을 썼지만 혹시 들키지는 않을지 따위의 생각을 하고 있으리라.

“다른 사람들은….”

“입구는 이곳뿐만이 아닙니다, 유카.”

“네?”

“조금 더 이쪽으로 붙어.”

“아… 네.”

‘현성아, 미안.’

슬그머니 허리를 붙잡자 잔뜩 긴장한 몸이 느껴졌다.

물론 다른 의미는 없다. 어디까지나 오늘의 컨셉은 사이좋고 돈 많은 일본인 커플이니까.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이쪽으로 다가오는 안내인이 보였다. 대충 봐도 강하다는 게 느껴지지만 적의가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우리는 돈을 펑펑 써줄 손님이니 적의를 보이는 게 이상할 것이다.

“초대장을.”

대충 입을 열며 준비한 것을 꺼내자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보였다.

“마차에 올라타시면 됩니다, 고객님.”

“오늘은 조금 어떤가.”

“아마 만족하실 수 있을 겁니다.”

“그거 좋군.”

다시 한번 암막 천으로 가려진 마차에 올라타고 마차는 천천히 출발한다.

“안전한 게 맞습니까? 부길드 마스터.”

“하루카라니까. 유카.”

“안전한 게 맞습니까? 하루카?”

“물론. 생각보다 가슴이 콩알만 하네. 우리 유카는.”

“하루카 님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안전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으니까요.”

“안전한 게 맞으니까 안심해도 돼, 유카. 이건 신뢰의 문제거든. 장담컨대 이곳에 경비들이 하루카보다 내 안전에 대해 걱정하고 있을걸. 소중한 고객을 잃으면 안 되니까.”

“출발하기 전에는 위험하다고….”

“거짓말이었어.”

“당신이라는 사람은….”

“너무 벌벌 떨지 말고 기왕 이렇게 된 거 즐기는 거 어때? 마차 안에서 와인 마셔본 적 있어?”

“…….”

조용히 입술을 깨물고 있는 조혜진이 보였지만 긴장을 풀고 있지는 않은 것 같았다.

암막 천에 휩싸인 채 알 수 없는 장소로 향하다 보니 긴장하는 것이 당연. 범의 아가리로 들어가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보안을 철저히 해야 하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지만 뭐 저런 모습을 보이는 것 자체는 나쁘지 않다.

그럴 일이야 없겠지만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야 하니까.

마차에서 내린 이후에는 다시 한번 마차를 갈아탄다.

마차가 조금 기울어져 아래로 내려간다는 느낌을 받았을 때는 목적지에 거의 다다랐다는 느낌.

잔에 담긴 와인을 마지막으로 홀짝이자 기다렸다는 듯이 밖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착했습니다.”

“나가지.”

“네. 하루카 님.”

“혹시나 해서 말하는 데 시골에서 갓 상경한 사람처럼 괜히 두리번거리지 마.”

“알고 있습니다.”

마차의 문을 열자 눈앞에 보이는 광경이 내 눈을 사로잡았다.

주황색 조명이 환하게 안을 비추고 있었고 온갖 사치품이 늘어져 있는 광경은 마치 베니고어 신성 제국의 수도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조혜진 역시 신기해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이전에 내 경고를 떠올린 모양인지 괜스레 기웃거리지 않는 느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동자가 돌아가고 있는 것이 보인다.

슬그머니 그녀의 손을 붙잡자 다시 한번 몸을 움찔거리기는 했지만 제법 훌륭하게 적응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 정하얀과 스킨십을 할 때와는 또 다른 재미가 있다.

“들어가지.”

“네.”

가면을 쓰고 있는 사람은 우리뿐만이 아니다.

누가 봐도 고급스러워 보이는 복장을 하고 있는 사람들. 대부분 형형색색의 가면을 착용하고 있다.

이쪽이 포션 사업으로 제법 수익을 올리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은 사업 초창기 단계.

희라 누나에게 받은 용돈과 카스가노 유노라는 통장이 없었다면 이쪽은 저쪽에 제대로 비빌 수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여기저기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곳을 그 사람이 관리하고 있다는 건가요?”

“말도 안 되지. 송 씨는 그냥 이곳에 있는 수많은 상인 중 하나일 뿐이야. 그 머저리가 정말로 이런 곳을 전부 관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유카?”

“아뇨.”

“아마 볼 만한 것이 꽤나 많을 거야. 기왕 견학 온 거 제대로 즐기자고.”

“하루카 씨가 말하던 분위기는 아니네요. 마치 가면무도회라도 온 것 같아요.”

“어떤 장소든 이면이 있는 법이니까. 아무튼 조금만 들어가 보면 볼 수 있을 거야. 굳이 말하면 이곳은 로비니까. 방 안쪽으로 들어 가보면 보이는 게 있겠지.”

살짝 손을 들어 올리니 칵테일이 든 잔을 옮기고 있는 안내인이 다가오는 것이 시야에 비쳤다.

“한 잔 받아. 유카.”

“…….”

“싫으면 혼자 먹지 뭐.”

조혜진의 말 그대로다. 이곳은 블랙마켓보다는 사교회장에 가깝다.

단순히 겉으로 보기에는 말이다.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음료와 디저트들을 들고 다니며 귀부인이나 귀족들에게 건네는 웨이터들이나.

부채로 입가를 가리며 웃음 섞인 대화를 하고 있는 이들은 정말로 어딘가 정신 한구석이 망가진 사람들처럼은 보이지 않았다.

물론 마음의 눈으로 봤을 때는 조금 다르지만. 대충 봐도 성향이나 고유기벽이 정상이 아니다.

‘남자고 여자고….’

이상성욕자나 단순히 자신의 힘을 과시하고 싶어 하는 야망가, 이토 소우타나 나와 같은 성향을 가지고 있는 이들도 보인다.

‘심지어는….’

정진호랑 똑같은 살인자도 보이고… 저들이 어째서 이곳을 방문했는지는 뻔할 뻔자.

아무래도 이곳에서는 살인도 할 수 있는 모양. 감히 숫자를 셀 수가 없을 정도로 많은 공간이 어떤 용도로 사용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방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의 성향을 보면 뻔하니까.

‘뭐부터 보여주는 게 좋을까.’

약한 것부터 차근차근 보여주는 것이 정신 건강에 좋을 것이다. 처음부터 너무 센 걸 보면 지나치게 당황할 수도 있으니까.

물론 송정욱이 관리하는 시장을 보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

발걸음을 옮기려고 했던 바로 그 때 옆쪽에서 알 수 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기.”

“네?”

“잠깐 시간 좀 괜찮을까요? 옆에 부인 분만 괜찮으시다면 잠깐 시간을 함께하고 싶은데….”

“부, 부인이라니….”

“아. 여자 친구 분이신가 보네요. 뭐 어찌되든 상관없지만….”

가면을 쓰고 있기 때문에 얼굴을 확인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대충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의 능력치를 가지고 있는지 보인다.

‘강하네.’

조금 특이하게 차이나 드레스를 입고 있는 모습.

아마 공화국민에서 넘어온 중국인이 아니면 신성 제국에 체류하고 있는 대만인일 것이다. 시간만 된다면 조금 상대해 주고 싶을 정도로 훌륭해 보이기는 했지만 지금은 괜한 잡담을 할 때가 아니다.

“아뇨. 괜찮습니다.”

“에이… 그러지 말고요. 저는 셋이서도 괜찮은데.”

“일이 바빠서.”

조금 신경 쓰였던 것은 가면 뒤로 비치는 눈동자. 정확히 뭐라고 표현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순간적으로 온몸에 소름이 돋아날 정도.

[플레이어 샤오린의 고유 기벽을 확인합니다.]

[목 조르는 로맨티스트]

‘시바.’

“그러지 말고요.”

“아뇨. 괜찮습니다.”

잠깐이지만 내 고유 기벽을 떠올린 것은 바로 그때.

[플레이어 이기영의 고유 기벽을 확인합니다.]

[거짓말쟁이의 유혹]

[상대방을 유혹해 자신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만듭니다. 위험한 이성에게 사랑 받을 확률이 증가합니다.]

‘위험한 이성에게 사랑 받을 확률이 증가합니다.’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이곳저곳에서 시선이 쏟아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말을 걸어온 것은 눈앞에 있는 미친 여자 한 명뿐이지만 부채로 얼굴을 가린 채로 여기를 빤히 바라보는 여성이 많다.

‘지금… 위험한 건가….’

정신이상자 같은 여자나 시스템이 위험하다고 판단하는 여자는 전부 다 이곳에 모여 있는 것 같은 느낌.

‘이런 개….’

범의 아가리에 머리를 들이밀고 있는 것 같은 기분에 옆에 있는 조혜진의 손을 꽉 잡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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