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4
회귀자 사용설명서 164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5)
“정답이야.”
생각보다 학습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뭐, 이곳을 대충 돌아다니다 보면 당연히 느끼는 바가 있겠지만 예상했던 것보다 수긍하는 것이 빠르다.
손을 들어 올리자 경기장 안으로 다른 용병들이 들이닥치는 것은 순식간.
방패를 든 몇몇 인간이 아직 살아남은 생존자들에게 다가가는 동시에 괴물을 향해 마법들이 쏟아져 내린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경기장 안에 있는 사람들의 표정이 구겨지기는 했지만 전황이 변한 것에 흥미로워 하는 이들도 있다.
화살과 마법이 몬스터의 몸에 차근차근 박힌다. 물론 그 와중에도 부상자가 생기는 것은 당연한 부분.
이쪽이 살 물건들을 일단 구해내야 했기 때문에 무리해야 되는 부분이 많은 것 같았다.
그렇지만 결국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인간들을 찢어 죽였던 녀석은 완전히 행동을 멈춰버렸다.
기절시키는 정도로 마무리 지을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흥분한 녀석을 막기 위해서는 죽이는 것밖에는 방도가 없었던 모양이다.
투입된 용병단의 수준이 조금만 더 높았으면 하는 생각을 해봤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저것도 물어줘야겠네.’
뿐만이 아니라 부상자들의 치료비용까지 대줘야 할 것 같은 느낌.
쓸데없는 부분에서 아쉬워하는 나와는 다르게 조혜진 같은 경우에는 눈앞에 보이는 광경을 바라보며 조용히 중얼거리고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대충 눈에 보인다.
“이렇게….”
간단하게 해결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렇게….”
쉽게 일이 끝마치게 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녀가 중얼거리는 와중에도 관중석에서는 여러 가지 목소리들이 터져 나오는 중.
“죽여!”
“뭣 하는 거야! 죽이라고!”
“이딴 거 보려고 여기에 돈 내고 들어온 줄 알아?!”
“죽여라! 죽여라!”
‘돈 좀 깨지겠네.’
그렇지만 나쁘지 않은 마무리였다.
“간단하지?”
“…….”
“본래 그렇다는 거야. 우리가 지금 있는 장소가 이곳이기 때문에 이렇게 간단하게 해결된 게 아니야. 유카. 내가 구매력이 있기 때문에 문제가 쉽게 풀린 거지. 이곳뿐만이 아니라 바깥 역시 똑같아. 우리를 둘러싼 대부분의 문제는 이 반짝이는 물건으로 해결 가능하다는 거지.”
“그런….”
“아마 유카는 값을 치를 수가 없을 테니 대금은 내 쪽에서 빌려 줄게. 생각보다 더 비쌀 것 같거든.”
“…….”
“친구가 된 선물이라는 걸로.”
조혜진은 굳이 입을 열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나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당연하지만 안내인 한 명이 이쪽으로 다가오기 시작. 아마 방금 일어난 일의 계산을 하고 있는 것이리라.
“페이는 어떤 식으로 지불하시겠습니까.”
“정확한 금액이 얼마나 됩니까?”
“살아남은 노예의 가격은 4인으로 각각 50골드. 한 명은 이종족 엘프로 500골드까지….”
“문제없군요.”
“죽은 몬스터의 비용은 1만 골드입니다.”
“좋습니다.”
죽은 노예보다 몬스터의 값어치가 훨씬 많이 나간다.
나로서는 예상하고 있었던 이야기였지만 조혜진의 입장에서는 납득이 가지 않는지 전표를 가지고 온 안내인을 멍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것이 보였다.
“그밖에도 구출을 위해 투입한 용병들의 비용이 600골드. 아, 부상자에 대한 치료도 포함되어 있는 가격입니다.”
“알겠습니다.”
“경기장 내에 있는 관객들의 입장료 총액이 4만 골드. 그 외 여러 가지 피해 보상 금액이 2만 골드, 기본 비용이 5만 골드가 발생합니다. 합계 121,250골드 되겠습니다, 고객님.”
‘생각보다 비싸네.’
지불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나로서도 살 떨리는 가격이기는 하지만 비용 처리 정도는 자유 도시 실리아에 카스가노 유노가 전부 해줄 테니 별문제 없다.
‘미안해, 유노야.’
대형 길드의 입장에서도 이 정도의 돈이 한꺼번에 빠져나간다는 건 기분이 좋지 않은 일.
통장에 빨대를 제대로 꽂은 셈이었으니 언젠가 보답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다.
편지라도 한 통 써주는 것이 맞으리라.
“전표로 처리하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고객님.”
“갑작스럽게 이런 일을 일으켜 이거 죄송하군요.”
“아닙니다.”
“제가 이종족 애호가라 그런지 아무래도 엘프가 죽는 걸 보는 건 가슴이 아프더군요. 엘프는 죽기 위해 태어난 이들이 아니지 않습니까. 먹이 쪽에 엘프가 있다는 사실을 사전에 듣지 못했는데… 본래 업체 측에서는 쇼에 대한 사전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 겁니까?”
“아, 죄송합니다.”
“팜플렛을 하나 만들어도 괜찮을 것 같군요. 쯧.”
“저, 사과의 말이라고 하기에는 뭣 하지만 남는 엘프 노예 몇 마리를 함께 제공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살짝 조혜진을 바라보자 그녀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보였다.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는 엘프들을 공짜로 주겠다는데 거절하는 것이 이상할 것이다.
“흠. 알겠습니다. 기왕이면 전투능력을 조금이라도 보유한 이들이었으면 좋겠군요. 아, 너무 교육을 받은 엘프는 원하지 않습니다. 아까 사과하신 게 진심이라면 제대로 성의를 보여주시는 게 좋을 겁니다. 이쪽도 이곳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으니까요.”
“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희 업체는 항상 고객님의 만족을 위해서만 행동합니다. 혹시 언제쯤 돌아가시는지….”
“적당히 둘러보다 나가겠습니다.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아서.”
“저희 업체의 미숙한 운영에 대해서는 다시 한번 사과드리겠습니다.”
“괜찮습니다. 뭐, 이해는 하고 있으니까요. 그럼 저희는 이만 일어나겠습니다.”
“혹시 오늘 중앙 경매장에도 좋은 엘프들이 많이 나올 예정인데… 관심이 있으시다면….”
지금 이 타이밍에서 영업이라니 이 곳도 참 대단한 장소라는 생각이 든다.
“이외에 나오는 특별한 물건은 없습니까?”
“몬스터의 알과 질 좋은 영웅 등급의 아이템을 비롯해 다양한 물건이 경매될 예정입니다. 이제는 구할 수 없는 각종 예술품도….”
“예술품은 별로 관심이 없지만… 흠 몬스터의 알이 나온다고 하셨습니까?”
“네. 아주 어렵게 구한 특별한 물건이라 하더군요.”
“흥미가 생기기는 하지만… 아쉽지만 중앙 경매장에는 다음에 들리도록 하지요.”
무슨 알이기에 중앙 경매장에서 매물이 풀릴 정도인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 당장은 이곳을 빠져나가는 게 맞다.
이곳에서 더 시간을 보내다가는 먹이들이 나오는 족족 사줘야 될 것 같은 느낌.
뭐, 조혜진도 빨리 나가고 싶어 하는 눈치니 괜찮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그녀의 입장에서는 이런 공간에 단 1초도 있고 싶지 않을 것이다.
의자에서 몸을 일으켜 원형 경기장 밖으로 나가는 순간까지 아무 말을 하지 않는 것을 보니 확실히 충격을 받긴 받은 모양. 순진한 사람에게는 자극이 너무 강했다.
“50골드로군요.”
“뭐가?”
“방금 죽어간 사람들의 가치가 고작 50골드로군요. 고작… 고작… 50골드….”
“뭐 그렇다는 거지. 나는 생각보다 비싸다고 생각했는데. 유카는 그게 아닌가 봐.”
“그 빌어먹을 몬스터의 가격이 1만 골드였습니다.”
“합리적인 가격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저런 종류의 몬스터는 생포하기어렵다고 들었는데… 물론 관리하기는 더 어렵겠지. 먹이 쪽으로 배정된 인간보다 가치가 높은 건, 저들의 입장에서는 무척 당연한 거야. 당장 그 몬스터의 사체만 분해해도 촉매로 쓸 수 있는 가격이 몇 백 골드는 넘을걸.”
“그렇지만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그 누구도 우리 유카가 납득하냐 하지 않느냐는 관심 없어. 중요한 건 몬스터가 더 비싸다는 사실 하나지.”
“당신은….”
“나는 내 생각을 이야기한 게 아니라 있는 사실 그대로를 이야기한 거야. 값을 책정한 건 내가 아니라 그들이고. 멋대로 감상에 젖는 건 자유지만 이제 현실을 깨달을 때도 되지 않았나 싶은데…. 아니면 내 생각보다 조금 더 순진한 건가. 유카도 직접 눈으로 확인했잖아. 네가 불의라고 불렀던 것과 타협한 것이 아니었나?”
“저도… 이해하고 있지만… 분명히 이해하고 있지만….”
“납득이 되지 않는 건가?”
“그렇다고… 해두지요.”
입을 닫고 있는 것을 보니 꽤나 깊은 생각에 빠진 모양.
굳이 말을 걸 필요는 없어보였다.
그녀가 고민하고 있다는 사실 하나가 이쪽에는 중요했으니까.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나가기도 민망한 것이 당연지사. 다시 안쪽으로 들어가 천천히 둘러봤지만 다른 모습들은 그녀에게 별다른 자극을 주지 못하는 것 같았다.
물론 치가 떨린다는 듯한 반응을 보여주기는 했지만 그게 전부.
원형 경기장에서 봤던 장면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있는 것 같았다.
결국에는 이렇다 할 성과 없이 밖으로 나가자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마차 한 대가 시야에 비쳤다.
여러 명의 엘프가 오들오들 떨며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딱히 관심을 둘 리가 없다.
‘다섯 명.’
낭낭하게 챙겨준다고 말한 것치고는 숫자가 적기는 하지만 상태가 나빠 보이지는 않는다.
구속구에 완전히 구속된 채 이쪽을 바라보는 눈빛에는 적의보다는 공포감이 서려 있다.
“괜찮군요.”
“고객님의 만족을 위한 성의입니다.”
“확실히 만족스럽군요. 다음에 한 번 더 들리도록 하겠습니다.”
“네. 그럼 편안한 여행 되십시오.”
“아. 저 엘프들은 마차에 실어 주시면 됩니다.”
“네.”
조혜진과 함께 마차에 올라탄 이후에는 귀가 파르르 떨리고 있는 엘프들도 마차 내부로 진입하기 시작.
마차의 문이 닫히자 조혜진이 조심스레 엘프를 향해 손을 뻗는 것이 보였다.
“꺄악!”
깜짝 놀라 몸을 움츠리는 것이 보인 것은 당연지사.
저들의 입장에서 조혜진은 자신을 구해준 용감한 기사가 아니라 미친 인간으로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다섯 명이서 똘똘 뭉쳐 부들부들 떨고 있는 광경을 바라보며 조혜진이 슬그머니 입을 열었다.
그들이 아닌 나를 향해서였다.
“이들은…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이십니까.”
“글쎄… 사실상 한 명은 네 소유라고 할 수 있으니까… 고민을 좀 해보기는 해야겠네. 영주성에 들이기도 그렇고 적당한 곳에서 풀어주는 것도 조금 그렇고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는 장소를 찾아야겠지. 아마 파란으로 보내는 게 가장 합리적일 거다.”
“풀어주지 않으시는 겁니까.”
“지금 당장 풀어준다고 하더라도 별로 달라지는 건 없어.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붙잡힐 테고 다시 한번 아까 같은 꼴이 될걸.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는 엘프들이 그들의 숲을 찾아갈 수 있을 것 같아?”
“…….”
“일단은 이쪽도 중요한 일이 있으니까 지금 당장은 불가능해. 엘프 왕국에 갈 일이 있을 때 데려다 줄 거야. 이쪽이 직접. 이번 일이 마무리되면 한 번 들리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그건… 다행이로군요.”
“생각보다 나쁘지는 않은 사람이지 않아?”
“별로 대답하고 싶지 않습니다.”
“침묵은 긍정이라고 생각할게.”
“저를 어째서 이곳으로 데려온 겁니까.”
“이유야 네가 찾게 마련이지. 내가 보여주고 싶은 건 결과였어.”
“결과… 말입니까?”
“그래. 결과. 당신이 내린 판단의 결과. 그리고 지금 당신이 보고 있는 결과. 당신이 이전에 캐슬락에 서 벌였던 일과 오늘 한 일의 차이. 어떤 것이 옳은 해결 방법인가에 대해서는 스스로 생각해 봐. 아니, 생각해 보셔도 됩니다, 혜진 씨.”
“그건….”
“이들을 구한 건 저이기도 하지만 당신이기도 합니다. 당신의 올바른 선택이 이들을 구한 거예요.”
“꼭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보이는 결과는 다르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하시면 존중해 드리도록 하지요.”
입을 꾹 닫고 있는 조혜진이 시야에 비쳤다.
인정하기 싫은 느낌이기는 하지만 그녀가 인정하고 하지 않고는 중요한 게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녀의 마음속에 이쪽이 가지고 있는 사상을 박아 넣었다는 것. 그게 가장 중요했다.
본래 유대감이라는 것은 단기간에 형성되는 것이 아니다.
서로가 가진 가치와 사상을 오랜 시간에 걸쳐 교환하며 쌓아가고 서로가 서로를 이해할 수 있어야 비로소 유대감이라는 게 형성된다.
개인적으로 내가 그녀의 멍청한 사상에 영향을 받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최소한 그녀를 이해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거다.
뭔가 극적인 효과를 바라는 것은 아니다. 나는 그녀를 이해하고, 그녀는 나를 이해한다.
지금 당장은 이걸로도 충분하다.
“꼭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렇지만… 오늘 일은… 감사합니다. 부길드 마스터.”
‘역시 내 생각이 맞네.’
돈으로 살 수 없는 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