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5
회귀자 사용설명서 165화
몬스터 웨이브(1)
“일단은 자유도시 린델로 향하시게 될 겁니다. 저희 길드에서 지내시다 보면 이후에 꼭 고향으로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정, 정말인가요? 혹시라도….”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애초에 제가 여러분들을 해하거나 더럽힐 생각이었다면 이렇게 복잡한 방법을 사용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아….”
“큰 피해를 입으면서까지 몬스터에게서 당신들을 구해내진 않았을 거고요. 린델에 가시면 곧바로 새 신분증을 받으시고 일단은 파란의 손님으로 행동하시게 될 겁니다. 도시 밖으로 가지 않으시는 한도 내에서 외출은 자유롭게 할 수 있으시고 여러분께 피해를 끼치는 인간도 없을 겁니다. 물론 밖으로 나가기 무서우시면 길드 하우스 내에서만 활동하셔도 상관없고요.”
“감사합니다.”
“감사는 저보다는 저기 있는 조혜진 씨에게 하시는 게… 당신들을 구하고 싶어 한 건 그녀였으니까요.”
“아! 정말로 감사합니다. 짧은 시간이지만 저희를 돌봐주셔서 정말로 감사합니다.”
“꼭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겁니다. 약속드리겠습니다.”
“흐으으윽….”
똘똘 뭉쳐서 울고 있는 엘프들이 시야에 비쳤다.
조혜진은 그런 그녀들을 함께 위로해 주고 있는 중.
조금은 아름다운 장면이었다.
12만 골드짜리 엘프들을 무료로 고향에 돌려보내야 한다는 현실이 가슴 아프기는 했지만 지금 당장은 저게 맞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쓸 데도 없다.
능력치가 나쁘지 않기는 하지만 모험가로 키우기에는 잠재 능력이 조금 애매하다.
굳이 설명하자면 그냥 촌부나 다를 바 없는 수준.
평범한 생활을 영위하는 가운데 사냥꾼에게 운 없게 붙잡힌 케이스이리라.
사실 하루 빨리 돌려보내는 게 맞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이쪽이 엘프 노예를 5명이나 얻어왔다는 소식이 카스가노 유노에게 전해졌기 때문이다.
아직도 이쪽을 주인님이라고 부르는 그녀에게는 거의 경기를 불러일으킬 만한 상황.
갑작스레 캐슬락으로 오겠다고 난리를 치는 편지를 보내올 정도였으니 하루 빨리 내보내야 한다.
조용히 마차 안으로 들어가는 와중에도 계속해서 이쪽을 바라보는 꼴은 가관.
혹시나 자신들이 다른 곳으로 팔려 들어가는 건 아닌지 걱정하는 것이겠지만 아마 제대로 도착하면 모든 상황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혹시나 해서 말씀 드리지만 도착하기 전까지는 마차 안에서 나오지 않으시는 게 좋을 겁니다. 길드 휘장이 박혀 있는 마차 안은 위험하지 않지만 밖은 그렇지 않으니까요.”
“네. 명심하겠습니다. 은인이시여.”
“뭐, 은인이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합니다. 당연한 일을 했을 뿐입니다. 오히려 여러분들밖에 구할 수 없어서 죄송할 따름이지요. 모든 인간을 대표해 사과드리겠습니다.”
“혹, 혹시라도!”
“네. 다른 엘프가 보이면 제가 할 수 있는 내에서 도와드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이만 들어가 보시지요.”
마차 안에 엘프들을 태우자 이쪽을 향해 다시 한번 인사를 하고 있는 이들이 시야에 비쳤다. 조혜진 역시 조용히 인사를 보내오는 중. 아주 조금은 속이 후련해 보였다.
“후련하십니까?”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 동안 정이라도 드신 겁니까?”
“네. 짧은 시간이었지만… 조금은 정이 든 것 같군요.”
“인간으로서의 도리는 전부 하신 겁니다. 구해준 것도 모자라 고급 여관에 숨겨주기까지 하고 파란에서도 그녀들을 책임지기로 했으니 오히려 그 이상을 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맞죠.”
“호의에는 감사합니다. 부길드 마스터.”
“그들을 위한 호의는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정확히 이야기하면 호의를 베푼 건 혜진 씨였고요. 뭐, 엘프들을 구해주다 보면 나중에 돌아오는 게 있겠죠.”
“…….”
조금 질렸다는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굳이 노린 행동은 아니었지만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종족에 대한 애착이 강한 엘프들에게 빚을 만들어 놓아서 나쁠 건 없으니까.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오늘의 선행은 돌려받을 날이 있으리라.
“그럼 식사라도 하러 가시죠.”
“네. 부길드 마스터.”
물론 엘프만 잘 대해준 것이 아니다. 조혜진과는 수차례나 대화를 나눴고 어느 정도 가까워지는 것에 성공했다.
선희영이나 정하얀처럼 극단적으로 변화하지는 않았지만 서서히 이쪽을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나 역시 그녀를 이해해야 되는 상황에 놓이기는 했다.
조금 더 가까워지는 것은 어떤지 하고 생각은 해봤지만 조혜진은 이쪽에 선을 그어 놓고 있는 것 같은 느낌.
시스템이 말하는 위험한 여자나 정신 나간 여자의 범주에 포함되어 있지 않으니 나에게 일정 이상의 호감을 느끼게 하기는 조금 힘들 것 같았다.
내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조혜진과 가까워지는 것.
아직 갈 길이 멀기야 하겠지만 일단 급한 불은 끈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렇게 계속 함께 다니고 있음에도 그녀가 별 다른 위화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그 증거.
‘친구로 충분하지.’
나 역시 이런 여자는 친구 정도의 포지션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조금 답답한 건 사실이니까.’
겉모습은 어떨지 몰라도 안쪽은 이쪽의 이상향과 거리가 멀다.
“그래서… 생각은 많이 해보셨습니까?”
“어떤….”
“제가 뭘 말하고 있는지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새로운 피해자가 나오기 전에 빨리 빨리 정리해야지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네?”
“아. 물론 그들을 처벌하는 것을 피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법대로 처리하는 게 맞습니다. 저는 그렇게 믿어왔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만….”
“제대로 일이 처리될지는 모르겠다. 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부끄럽지만 그렇습니다. 알린다고 하더라도 이전과 똑같은 상황이 오지 않을 거라는 보장은 없으니까요.”
“아마 혜진 씨 생각이 맞을 겁니다. 제대로 된 증거를 가지고 있지 않은 채로 무턱대고 움직이면 분명히 그때와 같을 겁니다.”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서로의 고민을 물을 수 있을 정도는 됐다는 거.
작지만 커다란 변화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계속해서 걸어가는 와중에도 조혜진은 자아를 찾아 헤매는 청년 마냥 이쪽에 입을 열어오기 시작.
내 입장에서는 정말로 기분 좋은 일이었다. 삶의 방식은 다양하다는 걸 그녀에게 알려줄 수 있는 기회였으니까.
“튜토리얼을 함께한 소중한 동료들에 대한 동정심은 버린 겁니까?”
“지금은 그들을 용서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건 당연한 반응이다. 그 꼴을 보고 온 지 채 며칠이 지나지 않았으니까.
“그런 일까지 손을 뻗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제가 상상하던 그들의 모습과는 많이 달라서 조금 혼란스럽더군요. 아니, 정말로 제가 알던 이들이 그 일에 연류되어 있는지조차 의심스럽습니다.”
“원래 환경은 인간을 바꿉니다. 지구에 있는 제 친인들이나 혜진 씨의 친인들도 저희가 살인을 저질렀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을 겁니다. 뭐, 정당방위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손을 더럽힌 건 사실이니까요. 그들은 위로 올라가기 위해 가지고 있는 것 하나를 버린 것뿐입니다. 정녕 자신들이 잡아온 엘프나 몬스터들이 어떤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는 걸 모르고 있다고 한들, 지은 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죠.”
“부길드 마스터의 말이 맞습니다. 옳은 일은 아니고 벌을 받아야 하는 일이 맞습니다. 저는 그 방식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고 있는 겁니다. 아마 부길드 마스터는… 본인이 직접 해결하는 그림을 그리고 있으신 것 같지만….”
“네. 일은 개인적으로 직접 해결합니다.”
“저 역시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개인이 개인을 벌하는 게 맞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생각하게 되더군요. 아울러 저에게 그들을 벌할 자격이 있는지도 말입니다. 정말 저에게 그들을 벌할 자격이 있는 겁니까?”
“없을 건 또 뭐가 있겠습니까. 작은바위를 비롯한 그들은 자신들의 힘을 휘둘렀고 그의 상응하는 결과를 얻었습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말은 아직도 제가 가장 좋아하는 격언입니다.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는다. 그게 전부입니다. 생각이 많은 것은 좋지만 매몰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세요. 혜진 씨는 어떻게 하고 싶으십니까.”
조용히 나를 바라보고 있는 조혜진이 시야에 비쳤다. 대답은 하지 않았지만 답은 정해져 있다.
‘그렇지… 너도 그렇게 생각하는 게 당연하지.’
기분 같아서는 그 역겨운 곳에 있는 놈들을 전부 죽여 버리고 싶을 것이다.
이런 대화들은 짜증나기는 하지만 충분히 도움이 된다.
악으로 떼를 쓰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가지고 있는 가치관을 계속해서 교환하는 과정이니까.
그녀는 돈으로 대부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내 가치관의 일부를 알게 모르게 받아 들였고 그 이후에도 조금씩, 조금씩 영향을 받고 있다.
물론 나 역시 그녀의 말에 생각이 많아지는 것은 마찬가지. 조혜진과 나의 관계는 이지혜와 나의 관계와는 조금 다르다.
검은백조와 이지혜와 나를 시스템에서 영혼의 단짝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행동방식이나 가치관이 거의 같다는 것에 있다.
당연히 그로 인해 튀어나오는 시너지 효과라는 것이 있다. 능률이 2배 이상이 올라가는 것은 거의 확실.
조혜진은 이지혜와는 완전 딴판이다. 오히려 일의 능률을 떨어뜨릴 수도 있는 사람이지만 그녀는 나를 계속해서 고민하게 한다.
의견과 가치관이 서로 다를 때 나올 수 있는 시너지라는 건 확실하게 존재한다.
‘이런 게 조화라는 거지.’
물론 이쪽에 조금 더 유리하다.
나는 조혜진이 내 앞을 막아서는 벽이 되는 걸 원하는 것이 아니다.
자동차에 비유하자면 그녀는 브레이크이며 블랙박스다. 사고를 사전에 차단하기도 하고 사고가 난 이후에도 이쪽의 뒤를 봐 줄 수 있는 기능을 가지고 있는 인간이다.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인간.
그녀는 내 편이 아니라 내 반대편에 서게 될 거다.
김현성 왕국이 팽창해 거대해진 이후에도 그녀는 내 친우로서 이쪽의 반대편에서 이쪽이 원할 때마다 작동하는 브레이크가 될 거다.
진짜로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기 위해서는 내 반대편에 설 사람 역시 이쪽에서 결정해야 한다.
‘앞으로 잘 부탁해, 혜진아.’
그녀와 난 오래 갈 거다.
“저도 부길드 마스터와 같은… 생각일 겁니다.”
“사회가 해결해 주지 않으니 개인이 움직이는 겁니다. 그게 바로 혁명의 첫 번째 발걸음이고요.”
“무슨 뜻으로 말씀하시는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단순히 그들을 밀어버리는 정도로 끝내지는 않을 거라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범죄라는 건 어차피 사라지지 않습니다.”
“무슨….”
“완벽한 사회를 만드는 건 불가능 하다 이 말입니다. 제가 오랜 세월을 살아온 건 아니지만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인간이 살아가는 곳에는 언제나 죄가 따라오게 되어 있어요. 작은바위와 그 장소가 사라져도 결국에는 제2의 작은바위와 원형경기장이 생겨날 겁니다. 그들을 갈아치우면 제3의 작은 바위와 원형경기장이 생겨나겠죠. 수요가 있으니 공급이 있는 겁니다.”
“말씀을….”
“저는 사회의 병폐들을 컨트롤할 겁니다.”
“위험한 생각이군요….”
“가만히 보고 있는 것보다는 낫습니다. 기존에 있던 걸 밀어버린 이후 그 위에 다시 한번 탑을 쌓아올릴 겁니다. 린델에서도 마찬가지고 캐슬락에서도 마찬가지고요.”
“어떻게….”
“글쎄요? 어떻게일까요?”
“그곳 전체를 구매하실 생각인 겁니까?”
구매할 거라는 소리가 나올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조금이지만 피식 하고 웃음이 튀어나왔다.
“아뇨. 한꺼번에 밀어버릴 생각입니다. 잡초하나 남김없이 전부 다 밀어버릴 거예요.”
물론 내 이득을 위해서.
말을 마친 이후에 슬그머니 조혜진을 바라보자 뭔가 복잡한 표정이 시야에 비쳤다.
내 말과 행동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아마 그녀는 날 막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단순히 인류애로 이쪽을 막기에는 그녀가 본 광경이 무척이나 충격적이었으니까.
오히려 내 쪽에서 행동해 주길 바랄지도 모른다.
문제는 힘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이쪽이 어떻게 그곳을 밀어버릴 수 있는가.
조혜진도 의문을 느끼고 있는 것 같기는 하지만 상황이 받쳐 준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몬스터 웨이브도 곧 일어날 거고….’
공교롭게도 이쪽은 그곳의 위치도 아주 자세하게 알고 있다.
물론 시야가 완전히 차단된 나와 조혜진은 그곳이 어디에 있는지는 모르지만….
내 위치를 처음부터 끝까지 추적하고 있었던 누군가의 뇌 속에는 틀림없이 들어가 있을 것이다.
‘하얀아, 체크하고 있는 거 맞지?’
대마법사의 스토킹을 받고 있다는 것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도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