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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173화 (172/1,590)

# 173

회귀자 사용설명서 173화

믿음에는 배신으로(5)

눈에 잔뜩 눈물을 머금은 채였다.

“작은바위의 희생을 헛되게 해서는 안됩니다!”

음성 증폭 마법으로 인해 커다랗게 퍼져나간 내 목소리에 병력들은 동요하기보다는 마음을 다잡을 거라고 생각했다.

자신들 역시 작은바위처럼 죽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보이기는 했지만 작은바위의 마지막은 공포에 질려 도망치는 얼굴이 아니었다.

아마 흐릿하게 들렸던 녀석의 마지막 절규도 듣지 못했을 것이다.

마법의 도움을 받아 전황을 파악하고 있는 이쪽과는 다르게 일반 병사들은 당장 눈앞에 있는 몬스터 들을 처리하기에도 바빴으니까.

‘이기영 개자식’이라고 외치며 검을 들어 올려 저항하던 놈의 모습은 몬스터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마지막까지 저항하던 모습으로 보였을 거라는 거다.

멀찍이서 바라본 송정욱의 모습은 영화 속에서나 나올 것 같았던 아름다운 최후.

최전선에서 마지막까지 캐슬락을 위해 싸우다가 사라진 작은바위와 송정욱.

그야말로 이 수성전이 낳은 최고의 영웅이었다.

‘너나 영웅 많이 해라, 정욱아.’

기왕 이렇게 된 거 사실 작은바위의 제1성벽 행은 녀석들의 지원이라는 설정도 우겨 넣으면 괜찮아 질 것 같았다.

물론 나는 저딴 영웅이 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차라리 구질구질하게 살아남는 게 낫지.’

캐슬락을 대표하는 길드 중에 하나인 작은바위의 모습에 많은 병력이 감명을 받은 것도 어찌 보면 당연지사.

하나 둘 이쪽의 목소리에 동조하는 이들도 나타나는 것이 눈에 보였다.

“작은바위의 희생을 헛되게 하지 마라!”

“더러운 괴물 새끼들! 네놈들이!”

“고향을 지키자!”

녀석의 최후로 수성병력은 다시 한번 활기를 얻는다.

마치 버프라도 받은 것처럼 눈에 불을 켜고 시위를 당기는 궁수부터 몸을 사리지 않는 전사들과 끊임없이 신성력을 내뿜는 사제들까지.

모범을 보여야 하는 건 나 역시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이쪽 역시 천천히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제1성벽을 꽉 채운 더러운 몬스터들에게 캐슬락의 단결된 힘이 얼마나 커다란지 본때를 보여줘야 될 타이밍이다.

“캐슬락을 지킵시다!”

‘푸히하히히헷.’

내 마력을 느낀 모양인지 정하얀 역시 멀찍이서 주문을 외우기 시작.

나 혼자라면 녀석들에게 큰 대미지를 주기는 힘들겠지만 정하얀의 마력을 품은 채라면 상상하는 것 이상의 대미지를 줄 수 있다.

‘경험치 먹어야지.’

주문이 완성된 순간 입 밖으로 주문을 외웠고 기다렸다는 듯이 제1성벽의 하늘 위에서 커다란 손이 내려오는 것이 보인다.

순식간에 재구성된 촉매의 거대한 손이 계속해서 팽창하는 것은 물론, 정하얀에게서 공급된 마력이 끊임없이 손에 힘을 불어넣는 중.

콰앙! 하는 소리와 함께 1성벽에 있는 몬스터들이 짓이겨진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작은바위도 있는 것 같기는 했지만 대의를 위해서는 작은 희생 역시 필요한 법.

이윽고 거대한 손이 팽창하며 터져나가 폭발을 일으켰다.

내 작품은 아니지만 저 마법을 건 사람이 누구인지는 뻔할 뻔자.

‘하얀아!’

콰아아아아아아아앙!

콰드드드드득!

“쿠워어어어어어어어어어!”

‘나이스!’

경험치 바가 오르는 소리가 들리지는 않지만 방금 전의 마법으로 몬스터 수백 마리가 휩쓸려간 느낌.

성벽의 일부가 무너져 내리며 그 밑에 깔려버린 몬스터의 숫자도 제법 된다.

[몇 가지 직업이 개방되었습니다.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직업을 선택해주세요.]

‘벌써?’

상위로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성장이 어렵다는 걸 생각해 보면 무척 커다란 성과.

꽤나 많은 몬스터를 죽인 것 같기는 했지만 이 정도로 새로운 직업을 받을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입꼬리가 절로 올라가는 것이 당연하리라.

내 표정을 본 모양인지 차희라가 조용히 입을 열어오는 것이 시야에 비쳤다.

“새로운 직업?”

“응. 이렇게 빨리 오를 거라고는 생각 못 했는데.”

“이번이 몇 번째였지, 자기?”

“네 번째.”

“방금 것도 괜찮은 것 같기는 했지만 상당히 빠른데… 아마 이토 소우타 때 있었던 경험치도 함께 정산 받았을 거야. 기본적으로 전투가 가장 커다란 경험치를 주기는 하지만 보통 모든 행동에 대해 경험치를 부여하니까. 직업 선택은 웨이브가 끝난 이후에 조금 더 신중하게 해도 돼. 경험치는 어차피 축적되니까.”

“팁 고마워.”

“전부 다 알고 있는 사실인데, 뭐. 그보다 표정 관리 해야지.”

“물론. 몬스터들이 밀집해 있는 제1성벽에 화력을 집중합니다! 송정욱 길드 마스터의 마지막 전언입니다!”

당연히 저런 말은 한 적도 없다.

“캐슬락을 지켜달라는 송정욱 길드 마스터의 뜻을 헛되이 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부운! 조금만 더 힘을 냅시다. 희생 없이는 아무것도 지켜낼 수 없습니다. 그게 송정욱 길드 마스터가 제1성벽에서 최후의 최후까지 싸우다 희생된 이유입니다. 캐슬락을 지키다 목숨을 잃은 영웅을 위해 모두 함께 싸웁시다! 전군 발사!”

혹시라도 1성벽 쪽에 생존자가 있을지 모른다.

희생이라는 숭고한 이름으로 포장된 마법과 화살들이 순식간에 몬스터들이 밀집되어 있는 곳으로 떨어져 내렸다.

내 계산보다는 많이 버텨준 것은 물론 많은 몬스터들의 어그로를 끌어준 셈.

여러 가지 계산을 하기가 무섭게 많은 마법이 내리 꽂혔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콰지지지지지지직!

귀를 울리는 굉음은 덤.

화력에 집중해야 하는 만큼 화염계 마법을 뿌린 보람이 있다.

불에 완전히 새까맣게 타버린 녀석들은 오히려 양반.

폭발의 압력을 버티지 못하고 터져나가는 소형 몬스터들의 모습은 어떻게 본다면 장관이다.

‘히야….’

“키에에에에에엑!”

“쿠워어어어어어어어어!”

서로 발버둥 치며 성벽 위에서 떨어져 나간 녀석들은 올라오려는 몬스터들을 깔아뭉개고 순간적이지만 끊임없이 몰려들어오던 몬스터들의 바다에 커다란 구멍이 생긴다.

물론 그 공간을 메우는 녀석들이 여전히 달려오고는 있었지만 눈대중으로 보기에도 엄청난 피해를 입혔다.

‘이 모든 게 송정욱 덕분이다!’

이제는 고인이 되어버린 녀석에게 감사의 기도를 올리는 것은 당연지사.

자꾸만 입가에 미소가 터져 나온다.

“생각보다 쉽게 끝날 수도 있겠는데….”

차희라의 말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

성벽에 의지한 아군은 완벽하게 몬스터들을 몰아내고 있다. 물론 영웅 등급의 몬스터들이 계속해서 꾸역꾸역 올라오고 있는 것은 사실.

성벽 위로 올라온 녀석들도 일부 보이기는 했지만 그런 녀석들 경우에는 각 길드의 간부나 클랜의 마스터들이 확실하게 마크해 주고 있는 것이 보였다.

김현성과 우리 파란의 파티 같은 경우에도 이와 비슷한 일을 하는 집단 중에 하나였다.

이 성벽 저 성벽을 날아다니며 착실하게 몬스터들을 정리하고 있는 김현성의 모습은 마치 전신.

어떻게 검 한 자루로 커다란 몬스터의 목을 잘라내는지는 알 수 없지만 눈에 불을 키고 돌아다니고 있는 우리 회귀자는 혼자서 많은 부분을 감당해 내고 있다.

‘김예리도….’

말도 안 되는 재능을 가지고 있는 꼬맹이 역시 마찬가지.

적재적소에 떨어지는 정하얀의 마법이나 그런 정하얀을 보조하는 황정연, 신성력을 사방에 뿌리고 다니는 선희영.

우리 파티에 일반인은 박덕구밖에 없다. 심지어 녀석 역시 충분히 1인분을 해주고 있으니 잘 훈련되고 능력 있는 하나의 파티가 전황에 끼치는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지에 대해 실감할 수 있었다.

‘많이 성장했어.’

나 역시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지만 우리 파티는 확실히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졌다.

붉은용병의 휘장을 달고 있는 한 명이 빠르게 이쪽으로 다가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차희라 님.”

“응? 아. 처리했어?”

“예. 말씀하신 대로 지하 경매장에 남아 있던 모든 상품을 확보했습니다. 추가로 아까 전에 들렸던 몬스터의 울음소리 역시 확인했습니다.”

“보고.”

“작은바위의 길드창고에서 몬스터의 알에서 태어난 새끼를 확인했습니다. 지금까지 본 적이 없었던 형태로….”

“뭐?”

“지금까지 봤던 적이 없는 형태의 몬스터였습니다. 일단은 저희 쪽에서 작은바위 길드 하우스를 점거한 이후 신병을 확보하고 있는 상황입니다만… 한번 직접 오셔서 확인을 해주셔야 될 것 같습니다. 어쩌면….”

‘허….’

“어쩌면 몬스터 웨이브의 원인일 수도 있겠군요.”

붉은용병의 단원에게 말을 건네자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보였다.

‘생각이 맞았어.’

원인이 없는 결과는 없다.

단순히 추측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확신이 되자 조금은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

만약에 정말로 몬스터의 알 때문에 웨이브가 시작됐다고 가정한다면 이쪽은 녀석의 부모를 상대해야 될지도 모른다.

차희라 역시 같은 생각을 하는 모양인지 조용히 벽 쪽을 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어디에서 발견된 알인지는 확인했어?”

“작은바위의 창고 관리인을 심문했지만 깊은 숲에서 발견했다는 것 외에는 단서가 없었습니다.”

“허… 정신 나간 놈들이네. 몬스터의 알을 함부로 들여오는 건 불법이 아니라 금기야. 애초에 불법적인 일을 하고 있는 놈들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멍청한 놈들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이쯤 되니까 그 망할 놈들이 너무 편하게 죽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네….”

“그럼 몬스터 웨이브는….”

“그 새끼 때문에 일어났을 확률이 높아. 이제야 좀 설명이 되네. 자기네 길드 마스터가 찾은 정황들이 이제야 이해가 가. 몬스터 웨이브의 시작도 분명히 그 하울링이었고….”

“위험한 상환인거야?”

내가 입으로 내뱉고도 바보 같은 질문이었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위험한 게 당연하다.

“아냐. 큰 문제는 생기지 않을 거야. 아마도… 일단은 자기는 도시 안으로 들어가서 확인해 보는 게 좋을 것 같네. 나는 메인 디시가 오기 전에 에피타이저들을 조금 정리하고 있어야 할 것 같거든. 너무 걱정하지는 말고. 처리해야 될 놈이 하나 더 늘은 것뿐이니까.”

굳이 차희라가 지금부터 움직이겠다는 소리는 이쪽에게 조금 당황스럽게 들려올 지경.

물론 타이밍 상 나쁜 것은 아니지만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증거였다.

“다녀온다.”

“아… 응.”

별 것 아니라는 듯 손을 한 번 흔들고 성벽 아래로 뛰어내리는 모습은 가관.

혹시나 위험하지 않은지 슬쩍 붉은용병의 단원을 바라보자 녀석이 곧바로 입을 여는 것이 보였다.

“혼자 싸우시는 게 편할 겁니다.”

“그렇군요.”

“마스터께서는 집중하시면 자주 흥분하는 모습을 보이시는 터라… 이성을 잃는다고 말하는 편이 좋겠군요.”

그 정도는 알고 있다. 차희라의 특성을 생각해 보면 금방 답이 나온다.

[특성 - 피에 미친 광녀 - 영웅 등급]

[지력 스탯을 일시적으로 깎아 공격력을 상향시킵니다.]

지력 스탯이 떨어지는 건지 지능 자체가 떨어지는 건지 알 수는 없지만 아마 둘 다일 것이다.

사실상 지금의 차희라를 있게 만든 특성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

본래 그녀의 근력이 97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공격력이 상향된 상태에서의 그녀의 모습은 전신이라고 하기에도 부족하다.

콰드드드드득!

콰아아아아아아앙!

슬쩍 성벽의 아래쪽을 내려다보니 이쪽의 예상대로 몬스터들을 찢어 죽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직까지는 제정신을 유지하고 있는지 피에 젖지 않은 채 놈들을 저승길로 보내고는 있었지만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조금씩 짐승처럼 변하는 그녀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누가 몬스터고 누가 인간인지를 잊게 만드는 움직임.

영웅 등급의 몬스터의 위로 올라가 그대로 턱을 손으로 찢어버리고 머리통을 날려버리는 모습은 정말로 인간의 탈을 짐승이다.

‘강해….’

이토 소우타 정도 되는 녀석들이 얼마나 강한지에 대해서는 대충 알고 있었지만 차희라의 경우에는 내가 상상하는 것 이상.

솔직히 말하면….

조금 질릴 정도였다.

내장을 흠뻑 뒤집어 쓴 채로 웃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확실히 제정신처럼 보이지는 않았으니까.

‘어우 무서워….’

이성을 잃은 것 같은 눈을 하고 있었던 차희라의 시선이 성벽 위로 옮겨진 것은 바로 그때.

“어?”

착각이 아니다.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쪽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

한쪽 손에 몬스터의 머리통을 들고 있는 채 정확히 이쪽을 응시하고 있었다.

이미 이성이 날아가 버린 것 같은 눈, 히죽히죽 웃고 있는 표정. 묘하게 흥분한 것 같은 얼굴.

‘설마….’

[플레이어 차희라의 고유 기벽을 확인합니다.]

[본능에 충실한 암사자.]

‘설마….’

혹시나 했던 것이 역시나 사실.

갑작스레 나를 보고 달려오는 차희라를 보며 뭔가 일이 꼬여도 단단히 꼬였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개… 씨!! 튀어!”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차희라는 분명히 나를 쫒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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