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8
회귀자 사용설명서 178화
인질극의 결과(1)
“노려보면 어쩔 건데 이 자식아! 푸흐하하핫!”
이쪽의 예상이 완벽하게 들어맞았다. 기세등등하게 등장한 것치고는 이쪽을 바라보는 눈빛에는 당혹스러움이 감돌고 있었다.
자신의 새끼를 인질로 잡고 있는 상황은 예상하지 못했던 모양인지 조용히 나를 노려보고 있는 모습은 가관.
새끼를 인질로 잡고 있는 내 모습이 조금 쓰레기 같기는 했지만 상황은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다.
“그워어어어어어….”
슬쩍 움직이려고 하는 모습이 눈에 보인다.
율리에나를 천천히 이동시켜 태어 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이 불쌍한 새끼 쪽으로 검을 옮기니 속박 마법이라도 맞은 듯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하게 된 녀석이 시야에 비쳤다.
녀석뿐만이 아니다.
녀석이 이쪽으로 보낸 다른 몬스터들 역시 마법이라도 맞은 것처럼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
‘억제하고 있는 건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말이 조금 더 통하는 상대다.
덕분에 녀석을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볼 수 있게 된 것은 당연지사.
크기가 이쪽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커다란 느낌.
멀리서 바라봤음에도 불구하고 녀석의 모습이 정확히 들어왔다.
머리에 거대한 두 뿔을 가지고 있는 외관.
당연하지만 저 뿔이 단순한 장식용은 아닐 것이다. 방금 전 서쪽 성벽을 순식간에 박살 낸 것은 저 뿔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리라.
‘비싸게 팔리겠는데.’
값비싸 보이는 것은 녀석의 뿔뿐만이 아니다.
검정색으로 뒤덮인 피부는 누가 봐도 위협적인 모습이었다. 멀리서 봐도 광택이 느껴지는 가죽은 희귀 등급 이하의 주문은 튕겨낼 것처럼 보인다.
모르긴 몰라도 저 가죽으로 방어구를 만들면 웬만한 몬스터의 공격은 씹어 먹을 수 있으리라.
드래곤의 한 종류인지 확실히 용의 형태였고 기다란 꼬리 역시 인상적이다.
‘저건 무기로도 만들 수도 있을 것 같고….’
물론 이곳에서 소설 속에서나 나오는 용이 있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 없다.
마법을 펑펑 써대며 인류 위에 자리 잡고 있는 종류의 몬스터는 아닌 모양.
그렇지만 대충 보기에도 어마어마한 마력이 느껴지기는 한다. 전설 등급의 몬스터들이 다 저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눈에 어느 정도 감정이 깃들어져 있는 것 같았고 지성체로 분류할 수 있을 정도의 높은 지능을 가지고 있는 걸로 보였다.
다른 건 몰라도 모성애를 가지고 있는 것만은 확실.
마음의 눈으로 바라보니 곧바로 녀석에 대한 정보가 쏟아져 내려왔다.
[흑암룡 디아루기아 - 전설 등급]
[락레블 산맥의 깊은 곳에서 서식하고 있는 전설 등급의 몬스터입니다. 드래곤 타입의 몬스터로서 어느 정도의 지성을 가지고 있으며 거대한 뿔과 기다란 꼬리를 이용해 중형급 이상의 몬스터를 사냥하며 살아갑니다.]
[전설 등급의 네임드 몬스터 흑암룡 디아루기아의 상태창을 확인합니다.]
[이름 - 디아루기아]
[칭호 - 락레블 산맥의 지배자]
[나이 - 4,036]
[성향 - 온순한 어머니]
[분류 - 드래곤]
[능력치]
[근력 - 105/성장한계치 전설 이상]
[민첩 - 101/성장한계치 전설 이상]
[체력 - 123/성장한계치 전설 이상]
[지력 - 100/성장한계치 전설 이상]
[내구 - 132/성장한계치 전설 이상]
[행운 - 101/성장한계치 전설 이하]
[마력 - 125/성장한계치 전설 이상]
[총평 - 아이를 빼앗겨 무척이나 화가 난 상태입니다. 맹렬한 분노를 보내고 있으니 조심하는 게 좋을 것 같군요.]
‘능력치가….’
능력치가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높다. 몬스터와 인간의 스탯 계산법이 다르다는 것을 가정하면 이쪽의 예상을 훨씬 웃도는 능력치.
근력 포인트가 폭주 이후의 차희라보다 낮기는 하지만 애초에 둘은 체급이 다르다. 저런 덩치에서 뿜어져 나오는 근력이라면 적어도 몇 배의 효율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터.
내구 능력치 132 그리고 마력 능력치가 125. 아직까지 전설급의 몬스터를 레이드한 적은 없지만 한 도시가 가지고 있는 전력으로 가능한 건지 의심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가능하겠지….’
아마 가능할 것이다. 물론 정면으로 부딪친다면 캐슬락 쪽이 조금… 아니, 많이 불리한 것처럼 보이기는 했지만….
이쪽은 저쪽의 소중한 아이를 인질로 붙잡고 있으니까.
잠자코 있던 전설 등급의 몬스터의 목소리와 녀석이 주는 압박감에 잠깐 동안이나마 캐슬락이 침묵에 휩싸이기는 했지만 문제는 없다.
지성체라는 건 오히려 이쪽에 도움이 된다.
애초에 녀석이 왜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않았는지를 생각해 보면 답이 나온다.
커다란 꼬리로 건물도 밀어버릴 수도 있고 브레스로 성벽 쪽에 구멍도 뚫을 수 있는 능력 좋은 양반이 어째서 조용히 대기하고 있는지는 뻔할 뻔자.
‘위치가 확인이 안 됐으니까.’
누가 보기에도 내 옆에서 구슬픈 울음소리를 흘리고 있는 녀석의 새끼의 신체는 유약하다.
혹시라도 사랑하는 자식에게 무슨 일이 생기지는 않을까 전전긍긍했던 것이 분명.
성벽을 뚫어내려고 브레스를 내뿜으려다가 자식이 휩쓸리는 상황까지 생각한 것이다.
저 정도로 똑똑한 녀석과 굳이 정면으로 부딪쳐 줄 이유는 없다.
흥분하며 서쪽 성벽을 뚫어낸 어미가 갑작스럽게 이쪽을 바라보고 침묵을 유지하자 잠깐 혼란에 빠진 병력 역시 당황스러워하는 것은 마찬가지.
지금까지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규격 외의 몬스터가 어째서 그 행동을 멈추고 있는 건지, 혹시나 다른 일이 생기지는 않을지에 대해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대처를 아예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병력을 지휘해야 하는 것은 당연히 이쪽의 임무.
곧바로 입을 열자 곧바로 반응을 보이는 인간들의 모습이 재미있다.
“캐슬락을 지킵시다! 여러분!”
음성 증폭 마법으로 뻗어져 나간 내 목소리는 분명히 성벽까지 닿는다.
어리둥절하고 있던 일부 병력이 함성을 내지르는 것은 순식간.
“고작 몬스터에 불과합니다. 캐슬락을 침략하려고 한 더러운 몬스터에게 우리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 보여주어야 합니다! 방어조는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실드 주문을 외우고 그 외 전 병력은 눈앞에 보이는 몬스터를 공략합니다. 오른팔에 마법과 화살을 집중! 근접 직군은 원거리 직군들을 보호하며 아직 성벽 바깥에 있는 몬스터를 처리합니다!”
“와아아아아아아아!!”
“승리가 눈앞에 있습니다! 여러분! 전군 발사!”
성벽에서 화려한 색깔의 마법들이 날아가 녀석에게 떨어지는 것은 순식간.
능력치가 높기는 하지만 이 정도의 인원이 한꺼번에 쏘아 보낸 마법은 녀석의 가죽도 뚫을 수 있는 모양이다.
잠깐 동안 휘청거리는 녀석의 모습을 보니 이쪽은 웃음이 다 나올 정도.
이미 레이드라고 부를 수도 없다. 저건 샌드백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으리라.
방어 본능 때문인지 저도 모르게 꼬리를 휘두르려는 모습이 보였지만 율리에라가 사랑스러운 새끼의 주변을 둥둥 떠다니는 것이 어떤 걸 의미한다는 것 정도는 아는 모양인지 반항하지 않고 얌전히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키에에에에에엑….”
다시 한번 새끼의 구슬픈 울음소리가 들려오기 시작.
이 조그만 녀석이 자신의 어미를 구별하고 있는지는 이쪽이 알 수 없지만 왠지 모르게 목소리가 구슬프게 들려오는 것은 사실이다.
만약 자식이고 나발이고 미친 듯이 돌진하는 멍청한 몬스터였다면 조금 애를 먹었을 수도 있었겠지만 새끼의 구슬픈 목소리 한 방 한 방을 묵직한 정신 공격으로 느끼고 있는 바보 같은 몬스터에게는 참교육이 답.
끊임없이 떨어지는 마법과 화살이 계속해서 축적되고 있는 것을 보면 상황이 정말 재미있다.
“조금만 더 힘을 냅시다! 여러분! 적은 지금 저항할 수 없는 상태에 있습니다. 승리가 코앞에 있습니다!”
‘저항할 수 없는 상태!’
“오늘의 승리는 캐슬락에 영원히 기억될 겁니다! 여러분! 희생으로 일구어낸 승리입니다! 조금만 더 박차를 가합시다!”
‘이게 바로 만물의 영장의 힘이다! 이 미개한 몬스터야!’
“고향을 지킵시다!”
저게 다 얼마인지 생각해 보면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물론 조금 양심이 찔리기야 한다.
계속해서 쏟아지고 있는 마법과 공격에 조금씩 불쌍한 모습으로 변모하는 우리 디아루기아 양의 모습은 처참 그 자체.
움직이려고 움찔거릴 때마다 이쪽이 계속해서 사랑스러운 새끼를 위협하니 저항하는 것 자체가 무리라고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다.
자신이 죽으면 그 다음은 이 새끼의 차례라는 걸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모양.
물론 인지하고 있다고 해도 당장 뭘 어떻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본래 모성애라는 게 그런 거니까.
지금 당장 자신의 눈앞에 있는 자식이 상처 입는 것을 보고 싶은 부모는 없다.
‘어우… 조금 불쌍하기는 한데….’
콩알만 한 동정심이 계속해서 양심을 콕콕 찌르기는 했지만 하지만 멈출 생각이 없는 것은 당연.
애초에 이렇게까지 하지 않으면 저 몬스터를 잡는데 커다란 애로 사항이 꽃 필 것이다.
쉽게 이길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정정당당하게 치고받을 이유가 없다.
캐슬락 인구의 절반이 죽을지도 모르고 우리가 밀릴 가능성이 없는 것도 아니다.
난데없이 알을 도둑맞은 것은 물론, 갑작스럽게 신변의 위협을 받게 된 온순한 어머니에게는 제법 미안한 상황이기는 하지만 이쪽도 딱히 선택지가 없다는 거다.
‘어쩔 수 없는 거야.’
본격적으로 녀석을 처리해야겠다고 생각하는지 근접 직군들 역시 달라붙어 칼침을 박아놓고 있는 모습은 가관.
전설 등급의 몬스터로는 믿겨지지가 않을 정도로 무기력하다.
녀석이 이쪽을 바라보며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이 보인 것은 바로 그때였다.
‘뭐….’
눈을 깜빡 하기도 전에 마력과는 다른 이상한 기운이 이쪽으로 향해 흘러들어오고 있는 듯한 느낌.
‘이게 뭐야….’
몸에 이상은 없다.
그렇지만 갑작스럽게 기운이 빠지는 듯한 탈력감은 어처구니없을 정도.
혹시나 녀석이 무슨 개수작을 벌인 것은 아닌지 걱정되는 것이 당연하다.
본보기로 지금 구슬프게 울고 있는 녀석의 다리라도 잘라야 되는 것은 아닌가에 대해 생각했을 때 상태창이 떠오르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칭호가 생성되었습니다.]
[용의 배우자]
‘뭔… 개소리야.’
[한날한시에 함께 죽고 함께 살아가는 용의 배우자로 선택받은 사람만이 받을 수 있는 칭호입니다. 디아루기아의 배우자로 선택 받으셨습니다. 현 시간부터 디아루기아의 배우자로서 삶과 죽음을 함께 하게 됩니다. 마력이 5올라갑니다.]
‘미… 친….’
갑작스럽게 이쪽에 찾아온 탈력감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뻔할 뻔자.
‘제기랄.’
마력 스탯이 5가 오른 것은 기쁘다고 할 수 있었지만 지금 당장 뒈지게 생겼다는 걸 깨닫는 것은 순식간이다.
재빨리 디아루기아 쪽을 바라보니 승리에 취한 플레이어들이 캐슬락의 숭고한 마지막 일격을 날리려고 기를 모으는 도중.
저 공격에 이쪽도 함께 죽어버리게 생겼다.
“공, 공격 중지! 공격 중지!! 공격 중지!!”
일단은 저 최후의 일격을 막아내는 것이 가장 중요한 상황.
물론 저 몬스터의 내구력을 생각하면 끈질기게 살아남기야 하겠지만 그래도 이쪽의 목숨이 걸린 일인 만큼 불안한 것이 사실이다.
이쪽의 명령을 알아들은 모양인지 당장 떨어지는 마법은 멈췄지만 디아루기아는 휘청거리는 것으로도 모자라 당장에라도 죽을 것처럼 비틀대고 있었다.
기절이라도 했는지 미동도 없는 모습은 가관.
이제는 건물에 가려서 잘 보이지도 않는다.
경험치 욕심에 어떤 미친놈이 막타라도 넣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급해지는 것은 당연지사.
‘안, 안 돼….’
“몬스터가 있는 쪽으로!”
“네?”
“지금 당장 몬스터가 있는 쪽으로 향하겠습니다.”
“아… 네. 알겠습니다.”
‘도대체 몇 번을 왔다갔다거리는 거야.’
새끼를 품은 채 붉은용병의 단원의 품에 몸을 맡기니 풍경이 뒤바뀌었다.
이제는 무척이나 익숙한 일이라서 편하게 느껴질 정도.
그렇지만 공성전의 전황은 다시 한번 바뀐다.
디아루기아가 정신을 잃은 영향인지 잠자코 샌드백이 되어주고 있던 몬스터들이 날뛰기 시작한 것.
“네임드 몬스터는 생포합니다! 성벽 바깥쪽에 있는 몬스터를 정리하는 것에 주력합니다!!”
‘제발 죽이지 마라….’
“다시 한번 말합니다! 네임드 몬스터는 생포합니다! 성벽 바깥쪽에 있는 몬스터를 정리하는 데 주력합니다!!! 실드 마법으로 무너진 성벽을 틀어막은 이후에 다시 한번 수성 체제에 돌입합니다! 네임드 몬스터는 생포합니다!”
‘왜 안 보이는 거야?’
서쪽 지역에 거의 다 도달했음에도 불구하고 디아루기아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 상황.
답답한 마음에 붉은용병의 품에서 내려 달려갔지만 보이는 것은 없다.
아니, 눈에 띄는 것은 머리에 커다란 뿔을 달고 있는 인간. 몇몇 병력에게 제압당한 채 애처롭게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조금 당황하기는 했지만 커다란 뿔을 달고 있는 여자가 아까의 디아루기아라는 것을 깨닫는 것은 순식간.
“아… 아가!”
누가 봐도 이쪽이 악당이고 저쪽이 피해자인 것 같은 느낌.
“무사했구나… 아가… 무사했구나… 무사했어….”
울컥 피를 토하는 모습을 보고는 급하게 외칠 수밖에 없었다.
“손… 손 떼! 이 자식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