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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180화 (179/1,590)

# 180

회귀자 사용설명서 180화

수성전의 끝(1)

‘아빠가 잘해 줄게!’

원치 않은 자식이기는 했지만 이제는 뭐 상관없는 이야기다.

오히려 노후를 책임져 줄 든든한 보험이 나타났으니 소리라도 지르는 것이 맞다.

앞을 보니 아직까지 입을 벌린 채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있는 디아루기아가 시야에 비쳤다. 오만가지 복잡한 생각이 들어와 있는 얼굴은 어떻게 이 상황을 해결해야 할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표정.

그렇지만 이미 답은 정해져 있다.

“뭐 원치 않은 상황이기는 했지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거… 참….”

“아으….”

“아! 일단은 들어가 계시죠. 일을 마무리하고 곧바로 따라 들어가겠습니다. 푸흡. 잠시 후에 봅시다. 우리 아가도 엄마 말 잘 듣고 있어야 한다.”

“누… 누가! 아, 아가라는….”

“누구긴 누구겠습니까. 아무튼 관련된 이야기는 일이 끝난 이후에 합시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괜한 소란을 일으키시면 안 됩니다. 저도 거친 방법을 이용하기는 싫으니까요. 제 자식이 다치길 바라는 부모가 어디 있겠습니까. 푸흐헤핫.”

“…….”

멍한 표정을 뒤로하고 빠르게 발걸음을 옮긴 것은 당연지사.

수성전이 슬슬 마무리되는 상황이라고 한다면 굳이 내가 함께할 필요는 없었지만 이쪽은 이번 수성전에 책임을 지고 있는 총지휘관이다. 승리를 축하하는 현장에 함께 있어야 되는 것이 맞다.

그다지 많은 것을 하지는 않았지만 일단 생색은 내야했기 때문이다.

디아루기아와 함께 하고 싶기는 했지만 그녀와 아기의 신병을 확보하는 것은 붉은용병으로도 충분.

허드렛일을 해준 단원들에게 감사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이니 녀석들 역시 걱정하지 말라는 듯 고개를 끄덕여 오는 것이 시야에 비쳤다.

‘흐음….’

천천히 성벽 위로 발걸음을 옮기자 몬스터들의 시체가 밑에 깔려 있는 것이 보였다.

피 냄새에 취해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성벽 위로 올라오는 녀석들도 눈에 띄었고 상황을 파악하긴 했는지 성벽 반대쪽으로 도망치는 녀석들도 보인다.

더 이상 웨이브는 오지 않는 것 같은 느낌. 아니, 그녀의 신병을 이쪽에서 꽉 잡고 있는 이상 더 이상의 웨이브는 없다. 성벽 위에 있는 인간들은 대부분이 탈진상태였지만 눈에 띄게 줄어든 몬스터를 보고서는 마지막 힘을 쥐어 짜내고 있었다.

“밀리지 마!”

“끝까지 긴장을 놓치지 마라!”

콰아아아아아앙!

저마다 소리를 지르며 열심히 몬스터들을 막아내고 있는 모습이 멋지기는 하다.

조금 멀리 떨어진 곳을 보니 우리 파티 역시 성벽을 종횡무진 뛰어다니며 몬스터를 막아내고 있는 듯한 느낌.

정하얀은 여전히 입술을 꽉 깨문 채로 마법을 뿌리고 있었고 김현성 역시 검을 휘둘러 올라오려고 하는 녀석들의 목을 베어 넘기고 있었다.

상대적으로 많은 경험치를 먹지 못한 이쪽으로서도 급해진 것은 당연지사.

별것 아닌 마법이지만 계속해서 수인을 맺으며 아래쪽에 있는 녀석들을 공격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끊임없이 이빨을 터는 것은 덤이다.

“탱커들은 무너진 서쪽 성벽 쪽으로 남은 몬스터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길을 막겠습니다!”

나도 뭔가 했다는 티를 내야 했으니까.

마무리가 중요하다는 거다.

콰직!

콰득!

“크어어어어어어어!”

피슉.

“아아아아악!”

“막아!”

이쪽이 소환한 거대한 손이 떨어져 내리고 몬스터들이 비명을 내질렀다.

체력적으로는 여유가 없지만 마력은 조금 여유가 있다. 총지휘관이 숨을 헐떡거리며 마법을 캐스팅하는 것은 모두에게도 귀감이 되는 것이 당연.

그동안 구르고 구른 덕분에 겉모습도 나쁘지 않다. 흙먼지로 뒤덮인 온 몸, 도망치는 와중에 생긴 상처, 물론 긁힌 상처이기는 하지만 열심히 수성전을 임한 사람들과 겉모습에 별 차이는 없다.

총지휘관이 직접 전장에 나가 솔선수범했다는 걸 보여준 것이다.

물론 진실은 저 멀리에 있기는 하지만 누가 진실에 관심이 있겠는가.

상대적으로 깨끗해 보이는 지휘부와는 다르게 내 모습은 무척이나 더럽다.

슬그머니 성벽의 앞 쪽으로 자리를 잡으며 율리에나를 손에 쥔 채로 칼질을 하는 모습도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율리에나를 얻었을 당시 김현성에게 배우기는 했지만 여전히 칼을 쥐는 방법은 어색하다.

정확히 말하면 율리에나가 움직이는 방향으로 내 몸이 따라 움직인다고 보는 게 맞으리라.

올라오는 소형 몬스터 한 녀석의 목을 깔끔하게 날려 버린 이후에 다시 한번 음성 증폭 마법을 날려 크게 소리쳤다.

“마지막까지 방심하면 안 됩니다! 마력이 떨어진 마법사들은 검과 창을 들어올리고! 신성력이 떨어진 사제들도 성벽의 밑으로 돌이라도 집어 던집시다. 우리의 고향입니다!”

물론 내 고향은 아니다.

“승리가 눈앞에 있습니다!”

이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

정말로 승리가 눈앞에 있다. 옆쪽에 일반 병사들 역시 창을 잡고 열심히 아래로 찌르는 모습.

일단 병사에 섞여 있는 분투하는 내 모습은 내가 생각해도 조금 멋져 보일 것 같은 느낌이다.

‘좋아.’

“힘을 내자! 전우들아!”

“총지휘관님.”

물론 녀석들을 격려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어깨를 두드려 주기도 하고 응원을 보내주기도 한다.

“작은바위의 희생을 헛되게 하지 마라!”

이제는 잊혀 가는 송정욱 녀석을 한 번 언급해 주는 것도 당연.

소형 몬스터 한 마리가 바로 옆에 있는 병사에게 달려든 것은 바로 그 때였다.

잠깐 고민하기는 했지만 물려도 별로 아플 것 같지 않은 것 같은 녀석.

병사 녀석을 밀치니 자연스럽게 녀석이 공격한 것은 이쪽이 된다.

팔을 들어 올리니 날카로운 이빨이 팔로 들어오는 상처가 느껴지기는 했지만 뭔가 해냈다는 뿌듯함은 있다.

‘더럽게 아프네!’

이번 수성전에서 처음 얻은 상처.

잡고 있던 율리에나를 손에서 놓아버리는 순간 검이 날아가 내 팔을 물고 있는 녀석을 꿰뚫어 버렸다.

목숨을 구해진 녀석이 당황하는 게 눈에 보인다.

“이기영 님! 상처를 치료……!”

“별것 아닌 상처입니다. 신성력은 거두시지요.”

“포… 포션은….”

그건 내 품에도 있지만 그걸 곧바로 사용할 정도로 멍청하지 않다.

“괜찮습니다. 신성력이나 남은 보급물자는 중상자를 위해서 사용되어야 합니다. 이 정도 상처는 견딜 수 있습니다.”

“이… 이기영 님….”

“살아서 소중한 가족들을 다시 만나야 하지 않겠습니까.”

“네….”

내 내구 능력치가 조금만 높았어도 피가 흘러내리는 연출은 할 수 없었을 지도 모른다.

이것으로 일단 겉모습은 완성.

한쪽 팔을 부여잡은 채로 열심히 검을 휘두르는 모습은 누가 봐도 처절해 보일 것이다.

‘좋아.’

더럽게 아프기는 하지만 그만큼 아름다운 모습이다.

아직까지도 팔이 움직이기는 하지만 추욱 늘어뜨린 모습을 보여주는 게 더욱더 효과적인 것은 당연.

굳이 나를 봐달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대신 그나마 안전해 보이는 지역에서 가장 처절하고 열심히 싸운다.

사랑스러운 회귀자 정도는 아니지만 나름대로 종횡무진하고 있는 모습.

중간 중간 치료해 주겠다고 말하는 사제의 말에는 고개를 젓는다.

“이 정도 상처는 괜찮습니다.”

“총지휘관님….”

오히려 품안에 있는 포션을 꺼내 다른 사람들을 먼저 치료하기도 한다. 별것 아니지만 이런 미담들이 모여 나중에 힘이 되어준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어우 꽤 많네.’

그렇지만 그 많던 몬스터들도 정리가 되고 있기는 하는 모양. 어느 순간부터는 몬스터들의 괴성보다는 인간들의 함성이 조금 더 커진다.

승리에 다다르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내가 합류할 때부터 어느 정도 승패가 결정되어 있다고 말할 만했다. 눈앞에 있는 적들을 정신없이 처리하고 있었던 사람들과는 다르게 전체적인 전황은 인간 쪽이 몬스터를 밀고 있었다는 걸 이미 눈으로 확인하고 있었다.

“와아아아아아아아!”

“긴장을 늦추지 마라!”

화살이 떨어진 궁수들도 검을 꺼내서 몬스터들을 찌르고 있었고 전사들도 이제는 완전히 날이 나가서 둔기가 되어버린 도끼로 올라온 중형 몬스터를 두드리고 있다.

“우와아아아아아아아아!!”

대부분의 병사들이 승리를 확신하고 있다.

정리가 끝난 제3성벽에 있는 병사들은 무기를 떨어뜨리고 환호성을 내질렀고 제4성벽과 제2성벽에 있는 인원들도 무기를 떨어뜨리고 얼싸 안고 있는 상황.

나도 승리를 자축하고 싶기는 했지만 아직 정리가 덜 끝난 지역에 돌아가서 조금이라도 처절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옳다.

아마 곧 정리가 끝날 것 같기는 했지만 그래도 마지막까지 자리에 같이 있어야 했으니까.

조금 무리한 모양인지 숨이 차기는 했지만 그게 다 뭔 상관이란 말인가.

나와는 다르게 순수한 목적을 가지고 있는 우리 파티원들 역시 열심히 달려오는 도중.

율리에나를 먼저 날리자 검이 날아가 병사와 싸우고 있었던 몬스터의 목을 꿰뚫는다.

‘히야!’

병사가 시선을 돌린 곳에 위치한 것은 한쪽 팔을 늘어뜨리며 자신을 위기에서 구한 내 모습일 터.

굳이 숨을 몰아쉬지 않아도 내 숨이 저절로 거칠어진다.

정말로 피곤한 모양인지 나도 모르게 숨을 헐떡이게 되지만 이것도 연출이며 미담이다.

‘미담 적립!’

이후에 평가를 위해서도 아름다운 이야기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거다.

“감, 감사합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김현성 역시 열심히 돌아다니고 있을 터.

하나둘 몬스터가 쓰러지고 거의 모든 성벽에서 함성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뚫려 버린 서쪽 성벽에 있었던 몬스터도 대부분 거의 마무리 된 상황.

‘이겼다.’

이제는 정말로 확신할 수 있을 정도로 기울었다. 아니 기울었다는 말도 어색하게 느껴진다. 서 있는 몬스터는 거의 없다시피 했으니까.

‘아주 좋아.’

물론 나 같은 경우에는 이후가 더 문제. 해결해야 할 일이 꽤나 많다.

희라 누나의 일도 해결해야 되고 한 번 이쪽을 도와준 샤오린과의 일도 마무리 지어야 한다.

김현성에게 설명할 것도 많고 무엇보다 디아루기아와 사랑스러운 자식을 꺼내 와야 되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캐슬락에 있는 타 길드들이 그녀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할 수는 없겠지만 그렇기 때문에 어떤 걸 챙겨줘야 할지에 대해 생각해야 된다는 거다.

‘직업도… 정해야지.’

전후처리도 문제.

저 많은 몬스터들의 사체를 정산해야 되고 피해 상황과 어떤 이권을 가져올 수 있는지에 대해서 회의를 해야 한다는 거다.

본래 나 같은 놈들은 전쟁 중보다는 전이나 후가 더 바쁘다.

“우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살았다! 살았다고!”

“시발! 해냈어!!”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

그 와중에도 함성소리는 점점 더 커져가는 도중.

사람들의 모습은 제각각이다.

동료를 잃어 눈물을 흘리는 놈들도 있었고 기쁨의 함성을 지르는 녀석도 있다.

물론 대부분은 후자.

이럴 때 마지막으로 한마디 거드는 것 역시 내 역할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종전을 선언해야 했으니까.

“우리는!”

이라고 입을 열자 시선이 집중되는 것이 당연지사. 조금 머리가 어지럽다고 느껴진 것은 바로 그때였다.

‘어?’

팽글팽글 머리가 도는 것 같은 느낌. 입을 열려고 했지만 입이 떨어지지는 않는다.

‘슈바….’

혹시라도 누군가 디아루기아를 죽인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에 덜컥 겁이 나기는 했지만 그런 문제는 아니다.

‘피를 너무 많이 흘렸나.’

그렇게 많이 흘리지도 않았다. 이전에 디아루기아가 상처투성이였다는 걸 깨달은 것은 그때다.

이미 이쪽으로 일부의 대미지가 전달이 됐던 모양. 그 와중에 피를 흘리고 개처럼 뛰어다니는 것으로 모자라 마력까지 펑펑 썼으니 어쩌면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아….’

그래도 종전 선언은 하고 쓰러져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눈앞이 점점 흐릿해지고 깜깜해진다.

자꾸만 비틀비틀거리게 된다는 거다. 애써 정신을 부여잡아봤지만 무리다.

‘아니… 그림이 좋은 건가.’

이미 모두가 나를 바라보고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탈진으로 쓰러지는 그림도… 나쁘지… 않을지도.

“오빠아아아아아!”

“형님!!!”

“기영 씨!”

이쪽을 바라보며 소리를 지르는 파티원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제법 기분 좋게 눈을 감았다.

‘좋은 그림이다.’

기왕이면 일어났을 때 전후처리에 대한 문제는 해결됐으면 좋겠다는 쓸데없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어마어마한 숫자의 사망자와 중상자를 낸 캐슬락 수성전.

탈진으로 기절해 모두의 귀감이 된 총지휘관에 몸에 생긴 상처는 고작 소형 몬스터에게 물린 상처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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