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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181화 (180/1,5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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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 181화

수성전의 끝(2)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리자 밝은 천장이 시야에 비쳤다. 조금 정신이 멍하기는 했지만 시간은 별로 지나지 않은 것 같았다.

막 자고 일어난 것 같은 기분에 몸이 조금 상쾌해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은 것은 당연지사.

오른팔에 나 있었던 상처도 치료되어 있었고 샤워라도 한 것처럼 온 몸이 보송보송한 느낌이었다.

‘누가 씻겨준 모양이네.’

아마 마법으로 몸을 씻어냈을 것이다. 조금 눈앞이 조금 어지럽기는 했지만 문제는 없다. 시간이 조금씩 지날수록 괜찮아 지는 것 같은 느낌이었으니까.

커다란 방 안에 혼자 남겨진 것을 보니 아마도 병실인 모양. 물론 병실치고는 지나치게 고급스러운 듯한 느낌이었지만 그만큼 내가 대우받고 있다는 반증이니 기분 좋게 주변을 살펴볼 수 있었다.

문이 천천히 열린 것은 바로 그 때였다. 당연히 정하얀일 거라는 생각에 고개를 돌렸지만 눈에 보이는 것은 의외의 마를린 영애.

곧바로 커다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기영 님!”

눈물을 흩뿌리며 이쪽으로 달려와 나를 한 번 안는 모습은 가관.

이후에는 깜짝 놀라서 떨어지기는 했지만 조금은 당황스러웠다.

본인도 깜짝 놀랐는지 가슴을 부여잡고 있었는데 아마도 귀족 영애가 해야 할 행동이 아니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분명하리라.

눈에 띄게 부끄러워하는 모습에는 호감이 들어가 있었지만 아쉽게도 이쪽은 마를린에게 전혀 관심이 없다.

‘귀엽기야 하지만….’

별 다른 이득도 없고 얘까지 신경 쓰기에는 여러 가지로 머리가 아프다.

“아, 마를린 영애.”

그렇지만 영업용 미소까지는 잃어버리면 안 되는 것이 당연.

미소를 머금은 채로 입을 열자 곧바로 대답이 들려왔다.

“오늘이 며칠입니까?”

“기절하신 이후로 정확히 삼 일이 흘렀습니다. 혹시나 깨어나시지 않으시는 건 아니신지 걱정이 돼서….”

“삼 일 말입니까?”

“예, 이기영 님.”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시간이 조금 더 흘렀다. 잠깐 동안 여러 가지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오히려 기분이 좋다.

‘뒷정리는 거의 다 끝났겠네….’

아니, 몬스터 사체의 정리만 해도 하루아침에 끝날 일이 아니니 아마 지금도 작업이 계속되고 있을 것이다.

우리 쪽 파티원들이 어째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지에 대해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이쪽의 몸에 이상이 없는 걸 보면 디아루기아도 무사히 잘 지내고 있는 모양. 어디에 있는지 궁금하기는 했지만 그것 말고도 궁금한 것이 많다.

“그렇군요….”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이기영 님.”

“마를린 영애?”

“이렇게 몸이 망가질 때까지 캐슬락을 위해서 힘써주실 줄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제가 얼마나 원망스러웠는지 모릅니다. 히끄윽….”

“하하하. 괜찮습니다. 고생은 다른 분들이 하셨지요. 제가 한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이기영 님이 하신 일이 없으시다니요! 캐슬락 자유민들을 지휘해 주신 것으로 모자라 지하수로에서 넘어오는 몬스터들을 막아주시고… 몸을 아끼지 않고 직접 전장에서 힘써주신 것을 캐슬락 내에 있는 모든 제국민이 지켜봤습니다! 끄윽….”

“그건… 큼. 캐슬락을 위해 희생한 작은바위 길드와 송정욱 님이야 말로 진정한 영웅이시지요. 저는 그냥….”

“물, 물론 그런 분들도 계시지만… 그보다 몸은… 몸은 조금 괜찮으십니까?”

“네. 달리 다친 곳은 없는 것 같습니다.”

몬스터에 깔리고 처참하게 죽어갔던 송정욱은 어찌되든 상관없는 모양이다.

일단은 성공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마를린 영애의 말처럼 지하수로에서 넘어오는 몬스터 같은 것은 없었다.

차희라에게서 도망치기 위해 조혜진이 만들어낸 거짓말이었지만 거짓말을 사실로 만들기 위해 붉은용병이 그쪽에 몬스터 시체라도 몇 마리 던져놓은 것이리라.

차희라가 폭주해서 수성전 계획이 박살 났다는 건 녀석들로서도 외부로 알리면 안 되는 이야기였을 테니까.

직접 전장에 나서 힘써줬다는 부분도 마찬가지. 몸을 아끼지 않은 적은 없지만 그렇게 보였다고 하니 성공이라고 생각하는 게 당연하다.

‘좋은데?’

영애가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제국민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는 뻔할 뻔자.

파란과 내가 얻어갈 이권에 적신호가 켜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다시 한번 입꼬리를 올리며 마를린 영애에게 입을 열자 곧바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른 사람들은 혹시 어디에….”

“어떤?”

“저희 파티원과 차희라 님 말입니다. 그리고 혹시 디아루기아는? 뒷정리는 혹시 전부다 끝났습니까? 그 외에 다른 것들의 처리는 어떻게 됐는지….”

“아! 정말 죄송합니다. 이기영 님. 쓰러져 계신 동안 일이 어떻게 됐는지 설명 드리는 게 먼저였는데….”

“괜찮습니다, 마를린 영애. 죄송해할 일도 아니고요. 그저 제대로 수성전이 마무리됐는지 궁금했을 뿐입니다.”

“그, 그렇게 캐슬락을 신경 써주실 줄은 몰랐었는데….”

“하하하….”

“죄송합니다. 제가 또다시 말을….”

“아뇨. 정말로 괜찮습니다.”

조금은 흥분한 것 같은 표정이었다.

아마 내가 캐슬락을 위해 목숨을 걸었다는 게 자신을 위해 목숨을 건 것으로 동일시하고 있는 듯한 느낌. 단순히 내 추측에 불과하기는 했지만 만약에 내 생각이 맞다면 이런 오해는 사전에 차단하는 게 맞으리라.

조금은 불편하다는 듯이 어색한 미소를 짓자 초조한 목소리로 입을 여는 그녀가 시야에 비쳤다.

“이기영 님이 기절하고 난 이후라고 한다면… 아! 일단 몬스터들의 사체 처리를 곧바로 시작했고 그건 지금도 하고 있는 도중입니다.”

“그렇군요.”

“혹시 살아남은 몬스터도 있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일단 자유민 분들이 먼저 정리를 해주시는 터라… 시간이 조금 오래 걸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아마 파란의 파티원 분들도….”

“열심히겠군요.”

“네. 붉은용병 길드와 함께 최전방에서 작업원들이 다치지 않게 보호해주고 계십니다.”

“차희라 님도 혹시 함께하시고 계십니까?”

“차희라 님은 급하게 린델로 돌아가셨습니다. 무슨 일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상당히 바쁘신 듯 보여서 미처 감사의 인사를 할 틈도 없었습니다. 캐슬락을 위해주신 영웅이신데… 제대로 대접도 해드리지 못한 것 같아 가슴이 아프기만 합니다.”

‘도망친 건가.’

“바쁜 일 말입니까?”

“네. 급하게 처리해야 될 사안이 있으시다고… 아. 그리고 이건 차희라 님께서 전해주시라고 했던 편지입니다.”

“감사합니다, 영애.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네. 물론 바로 읽으셔도 됩니다. 이기영 님.”

편지에 걸려 있는 암호 마법을 해체한 이후 슬그머니 아래를 내려다보자 보고 싶은 모양인지 마를린 영애가 이쪽으로 얼굴을 내미는 것이 보였다.

당연하지만 보여줄 생각은 없다.

뭔가 사과의 말이라도 적혀 있을 것 같았지만 내 생각과는 조금 다른 결과.

[잊지도 말고 무시하지도 마세요. 린델에 사시는 파란 길드의 부길드 마스터 이기영 님. 약속은 꼭 지키리라고 믿습니다. 좋은 타이밍에 좋은 초대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 신성제국의 명예주교 이기영 님께 공화국의 오호대장군 사좌 샤오린 드림]

‘샤오린?’

아마 차희라와의 드잡이질이 끝나고 나서 그녀에게 편지를 전해준 모양이다.

마음 같아서는 무시하고 싶기는 하지만 이렇게 자기 신분까지 밝힐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오호대장군….’

뭐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공화국은 자유민에게 공직을 뿌리는 것을 나쁘게 생각하지 않은 것 같았다.

꽤나 걸출해 보이는 직함에서 알 수 있는 것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그녀의 위치가 조금 높다는 것.

그리고 그녀와 비슷한 강자들이 최소 다섯은 더 있다는 것.

이후에 신성제국과 공화국의 관계가 어떻게 흘러갈 줄은 알 수 없지만 조금 좋은 정보를 얻었다.

‘이건 이용할 수 있을 것 같고….’

내 쪽에서도 위험을 감수해야 되기는 했지만 그녀 같은 경우에는 이후에 요긴하게 따로 쓸 데가 있을 것이다. 어차피 공화국과는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한 번은 부딪치게 되어 있으니까.

‘요즘 하는 걸 보면 그다지 긍정적이 될 것 같지는 않지만….’

지금 당장은 공화국까지 생각할 여력이 없다. 당장 내 앞가림도 하기 힘든 상황이었으니까.

신성제국의 일 만으로도 이미 머리가 깨질 것처럼 아프다.

당장 걱정이 되는 건 차희라.

얼굴 한 번 비치지 않고 순식간에 캐슬락을 빠져나간 것을 보면 제대로 얼굴을 마주치기 힘들다고 생각한 것이 분명하다.

‘그야 쪽팔리긴 쪽팔리겠지….’

20년 정도가 지난 이후에도 갑자기 생각이 난다면 이불을 걷어 차 버릴 정도의 흑역사.

왠지 모르게 예상이 가는 이유로 전선을 이탈한 이후에 개판을 쳐놨으니 부끄러운 것이 당연하리라.

시간이 조금 지난 이후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등장하겠지만 의외로 소녀 같은 부분도 있었기 때문에 차희라가 어떤 식으로 반응할지 기대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네?”

“그… 논공행상은 아직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이기영 님과 김현성 님 그리고 파란의 길드원분들에게는 저희 캐슬락 영주성에서 직접 보상을 드릴 것 같습니다.”

‘오!’

“보상을 바라고 한 일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입꼬리가 올라가기는 한다.

나도 모르게 조금 더 친절해지는 것은 당연지사. 지금까지 조금 차가운 모습을 보였던 게 거짓말이라도 되는 것처럼 눈에는 호의가 깃들자 마를린 영애도 급하게 입을 열기 시작했다. 이쪽이 뭘 원하는지 제대로 깨달은 것이다.

“그렇지만 캐슬락은 이기영 님과 파란 길드 때문에 이 위기를 넘길 수 있었습니다. 분명히 아버님께서도 여러 가지를 생각하시고 있는 게 보여서….”

“하하하….”

“만약에 부족하시다고 생각하신다면 제가 꼭….”

“아닙니다. 마를린 영애의 마음만으로도 정말 충분합니다. 정말로 보상을 바라고 한 일이 아니기도 하고요. 신성제국의 일원으로서 힘을 보탠 것에 불과합니다.”

“아니요. 꼭 보답하게 해주세요.”

“마를린 영애의 마음이 그런 것이라면… 어쩔 수 없군요.”

“감,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오히려 제가 더 감사하지요. 당연한 일에 보상을 해주신 거니까요.”

마를린도 조금 호구 기질이 있는 것 같은 느낌.

이쪽이 상상했던 것보다 더 괜찮은 걸 받을 수 있을 거라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슬그머니 몸을 일으키자 붉어진 얼굴로 이쪽을 바라보는 마를린 영애가 보인 것은 당연.

고마움에 표시로 뭔가 할 생각은 없다. 깨어난 김에 밀린 숙제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것뿐이었으니까.

“혹시 잡아온 몬스터는….”

“네?”

“머리에 뿔이 달려 있는 여성을 보지 못하셨습니까?”

“아… 그 여자라면….”

“무슨 일이라도?”

“아마 캐슬락 지하 감옥에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실 저희 쪽에서도 처우를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던 터라… 그리고….”

“네. 말씀하셔도 됩니다.”

“그 몬스터가 이기영 님과 생명을 공유하고 있다는 얼토당토하지 않는 소리를 해서….”

‘거기까지 말했나….’

합리적인 판단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의 배우자라고 말하지는 않은 것 같았지만 일단은 자신과 새끼의 목숨은 부지했어야 했었으니까.

얌전히 이쪽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도 마음에 든다.

아마 몸을 제대로 회복하지 못한 것이 분명.

새끼와 함께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것 이전에 확인은 해봐야 된다고 생각했다.

“그쪽으로 가봐야 될 것 같군요.”

“네?”

“디아루기아의 말은 사실입니다. 사실 저도 뭐가 어떻게 된 건지는 자세히 알 수가 없었던 터라…. 지금으로선 그녀와 제가 목숨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밖에는 아는 것이 없습니다.”

“아!”

“알려주신 건 감사합니다, 영애. 캐슬락 영주님과 함께 식사라도 하도록 하지요.”

“네. 이기영 님! 물론입니다.”

곧바로 몸을 옮기는 것이 당연하다.

‘내 자식 잘 있나 볼까.’

지금 내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것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그녀의 일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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