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5
회귀자 사용설명서 185화
제국 8좌(2)
대충 이해가 가기는 간다.
‘제국 8좌?’
어떤 의도로 신성제국이 이런 자리를 만들려고 하는지 말이다.
신성제국은 플레이어들에게 감투를 씌워주지 않는다. 내가 교황청의 명예주교로 발탁된 것은 그만큼 이례적인 일이었고 제국의 커다란 파란을 몰고왔다. 간단하게 말하면 나 이외에는 플레이어 들은 제국의 공직과는 무관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거다.
대형길드의 길드 마스터들의 대한 대우나 강자들의 대한 대우는 기본적으로 원수급이라고 해도 될 정도였지만 제국의 정치에 개입하지는 말라고 선을 그어놓은 것이다.
제국의 입장도 이해는 간다.
플레이어들이 제국의 일에 너무 깊게 관여하는 것은 황제파에게는 반가운 일이 아닐 테니까.
‘지금 와서….’
어쩌면 자신들의 목숨을 던지면서 까지 캐슬락을 지키려고 했던 플레이어들 때문에 생각을 고쳐먹었을 확률도 있기는 하지만 그렇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대외적인 이유가 될 수는 있어도 고작 몬스터 웨이브 하나 막았다는 걸로는 수지가 맞지 않는 장사.
‘공화국을 의식했나?’
나쁘지 않은 추측이다. 공화국과 신성제국은 예전부터 묘한 라이벌관계에 있었으니까. 신성제국이 높은 건축물을 올리면 공화국 역시 높은 건축물을 올린다. 공화국이 새로운 마법이나 던전에 대한 연구를 발표하면 제국 역시 얼마 지나지 않아 비슷한 종류의 연구를 대외적으로 발표한다.
국제적인 관계에서 항상 이런 기싸움을 하고 있었다는 거다. 공화국의 오호대장군이라는 감투를 쓰고 있는 샤오린을 생각해보면 신성제국도 뭔가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했을 확률이 높다.
공화국 대장군들에 대한 공식적인 발표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아직 내 귀에 들어오지 않았지만 몇몇의 세작을 공화국 내에 집어넣었을 테니 그런 움직임이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공화국은 다섯이니 이쪽은 여덟명으로! 그 외에도 황제파와 교황청 사이의 묘한 줄다리기와 이권싸움, 그리고 내가 알지 못하는 정치적인 요소가 얽혀 있는 것이 틀림없으리라. 당장 떠올릴 수 있는 것만도 해도 플레이어이면서도 명예주교인 나를 황제파가 견제하려고 만들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니까. 파란에서 2명이 들어갈 지도 모른다는 걸 생각해 보면….
‘제국민은 제국8좌에 포함시키지 않은 건가.’
내 예상들이 맞는지 맞지 않는지는 김현성과 대화를 해봐야 알 수 있으리라. 몇 가지 오해가 있는 것 같아 지금은 김현성을 만나기 껄끄럽기는 했지만 모두가 함께 모이는 자리이니 그다지 상관없을 것이다.
“헤헤헤헤….”
“왜?”
“오랜만에 같이 있으니까 좋아서요.”
“그렇네.”
복잡한 내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정하얀은 싱글방글 웃고 있었다.
‘정하얀은 아니겠지.’
아닐 확률이 높다. 아니 사실상 우리 파란에서 8좌에 해당되는 인물을 찾기가 어렵다. 엄연히 우리 파티는 성장 중인 루키라는 인식이 있었고 정하얀이나 김예리, 선희영, 조혜진. 모두가 강자라고 하기에는 힘들었으니까.
‘아마 우리 회귀자겠지.’
한 명만 꼽는다면 무조건 김현성이다. 물론 아직까지 크게 보여준 게 없기는 하지만 몬스터 웨이브에서 차희라의 빈자리를 혼자 메운 것을 생각해 보면 나름대로 납득이 가기는 하니까.
여기저기 싸돌아다니기 바빴던 나는 김현성의 활약을 제대로 보지는 못했지만 미담만 퍼뜨리고 다닌 나와는 다르게 김현성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힘이 얼마나 강한지 제국민과 자유민들에게 각인시켰다.
‘희라 누나가 참가를 안 해서 다행이라고 해야 되나.’
차희라가 있었다면 상대적으로 활약이 묻힐 수도 있었겠지만 김현성을 확실히 캐슬락 성벽 수성전의 중심에 있었다는 거다.
내 복잡한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정하얀은 여전히 싱글벙글 웃음을 보내며 이쪽의 옆에 꼭 달라붙어 나에게 기대듯 발걸음을 옮기는 중, 조금 귀찮기는 했지만 오랜만에 정하얀과 함께 걷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평소의 정하얀은 제법 귀여웠으니까.
이윽고 식당의 문을 여니 파티원들이 시야에 비치기 시작. 박덕구와 딱 달라 붙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황정연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그 옆에 앉아있는 것은 조용히 차를 마시고 있는 선희영과 조혜진.
‘은근히 닮았네.’
그리고 꼬맹이 김예리를 챙겨주고 있는 김현성이 눈에 띄었다. 이쪽을 가장 먼저 발견한 것은 역시나 김현성. 조용히 손을 들어 올리는 표정은 나쁘지 않은 듯한 느낌이었다. 일이 끝나자마자 이 것 저 것 물어올 것이라고 예상했던 내 생각과는 반대로 천천히 이쪽을 두고 보면서 적당한 타이밍을 노리는 모양이다.
‘녀석 답기는 했지만….’
계속해서 김현성의 마음속에 찝찝한 감정이 남아있는 건 이쪽의 손해인 만큼 둘이 될 수 있는 상황을 노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김현성이 손을 드는 것을 확인했는지 박덕구가 뒤를 돌아본 것은 당연지사. 곧바로 녀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이고 형님!”
“그래.”
“크으… 거 용의 선택을 받은 사람은 뭐가 달라도 다른 모양이오. 왜 이렇게 얼굴보기가 힘드오?”
“호들갑 떨지 마. 그다지 대단한 일은 아니니까.”
“아뇨. 충분히 대단한 일이지요. 평소 신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시는 이기영신도이기 때문에 이런….”
“정말로 그렇게 대단한 일이 아닙니다. 선희영 님.”
나의 품성을 칭찬하는 선희영의 목소리를 듣고 묘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조혜진의 표정이 괜스레 신경 쓰인다. 그렇지만 곧 이쪽의 시선을 피하는 걸 보니 그다지 연관되고 싶지는 않은 모양. 엉거주춤하게 서 있는 우리를 향해 입을 연 것은 황정연이었다.
“두 분은 오늘도 딱 달라붙어있으시네요. 로맨틱해라.”
“아… 감, 감사합니다.”
“여기 앉으세요. 하얀 씨. 기영 씨.”
“네. 정연 씨.”
파티원들은 보는 건 오랜만이지만 그다지 어색하지는 않다. 김예리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고 그게 인사라는 것을 알고 있는 나 역시 꼬맹이를 향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대충 자리를 잡고 한 번 둘러본 파티원들은 전체적으로 크게 성장해 있는 모습.
‘당연한 건가.’
나도 직업을 정하지 않았지만 일단은 전직을 앞두고 있는 상태다. 김예리와 김현성, 정하얀은 이미 전직을 마친 모습. 시간이 나면 조금 자세히 들여 보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모든 파티원들이 전직을 했을 거라는 내 생각과는 다르게 선희영과 황정연, 조혜진은 능력치만 올랐을 뿐 아직까지 새로운 직업을 얻지는 못한 것 같았다.
‘애네들은… 이미 성장치가 높았으니까.’
문제가 되는 것은 박덕구다.
‘자꾸 아쉽네. 얘는….’
나처럼 전직을 미루고 있는지 아니면 직업을 얻지 못하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직도 희귀등급의 직업을 유지하고 있는 상태였다. 내구 능력치와 체력 능력치가 오르긴 올랐지만 성장치가 그다지 크지 않았다. 물론 다른 일반인들에 비하면 능력치가 좋다고 할 수 있는 수준이기는 했지만 규격외 괴물들이 드글드글 거리고 있는 김현성 파티에서 박덕구가 일반인이다.
‘언제 한 번 충격요법이라도 써야 될 것 같은데….’
박덕구는 노력하고 있다. 그 사실을 가장 잘 알고 있는게 나다. 그렇지만 통 진전을 보이지 않는 모습을 보면 뭔가 막혀있는 벽이 꽉 녀석을 막고있는 모양. 지금 당장 녀석의 문제를 해결해주고 싶기는 했지만 일단은 녀석보다 더 급한 일이 있는 만큼 시선을 돌려 김현성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모두의 시선이 녀석에게 쏠린 것은 당연지사. 길드의 리더가 첫말을 떼 주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기대에 부응하듯 녀석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 것은 당연지사. 확실히 사람을 잡아 끌어당기는 것 같은 목소리였다.
“이렇게 다들 모인 것은 조금 오랜만인 것 같군요. 전투가 있을 때보다 후에 일 처리를 하는 게 더 바쁜 것 같습니다. 하하하….”
“…….”
농담이라고 던진 것 같은 느낌이었지만 분위기는 웃을 분위기가 아니다. 김현성은 확실히 이런 쪽으로는 재능이 없다. 녀석 역시 그걸 느끼고 있는지 다시 한 번 목소리를 가다듬고는 입을 열었다.
“큼. 아, 아무튼 모두들 무사해서 다행입니다. 그리고… 저를 믿고 따라와 주셔서 정말로 감사합니다.”
“따라오고 말고가 뭐가 있겠습니까. 길드 마스터의 명이었고….”
“아니요. 혜진씨. 그런 이야기가 아닙니다. 아마 여러분들에게는 이번이 첫 대규모 전투였을 겁니다. 특히나 하얀 씨나 덕구씨… 그리고 예리와 기영 씨까지 말입니다. 이제 들어 온지 1년 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잠자코 전선에 선다는 것은 힘든 일이라는 걸 그 누구보다 제가 제일 잘 알고 있습니다.”
“아… 그랬었군요. 그러고 보니 네 분은 대규모 전투가 처음이었군요.”
“네.”
‘그렇네.’
보통의 상식이라면 그렇다. 아마 부들부들 떨면서 도망이라도 치는 게 좋은 것은 아닌가 고민하는 게 정상적인 반응일터. 박덕구가 쑥스럽다는 듯이 머리를 긁적이는 것이 보였다.
‘무서웠구나.’
회귀자와 희라누나를 철썩 같이 믿고 있었던 나 역시 무서웠으니 박덕구도 두려웠을 것이다. 김예리는 여전히 무표정이었기 때문에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정하얀은 지금 김현성이 뭔 말을 하는지 이해조차 하지 않는 것 같은 느낌. 얘는 안 무서워했을 거라고 확신할 수 있다.
“아닙니다. 기본적으로 현성 씨가 저희를 그냥 내버려 두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성벽 위에 설 수 있었던 것 뿐입니다. 실제로도 현성 씨가 여러번 목숨을 구해주시기도 했고요.”
“기영이 형님 말이 맞소. 사실 우리 형씨 아니었으면 벌써 몇 번은 죽었겠지. 안 무서웠냐고 묻는다면 아니라고 대답할 수는 없지만 뭐… 나름대로 좋은 경험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감사를 전해야 하는 건 이쪽이 맞지.”
“네. 맞, 오빠 말이 맞아요.”
“응. 기영이 아저씨 말이 맞아.”
파티원들이 고개를 젓자 나름 감동한 듯한 표정. 감성 하나는 풍부하다. 고개를 숙이면서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 것을 보니 확실히 됨됨이가 되기는 됐다는 걸 다시 한 번 깨달을 수 있었다. 부끄럽다는 듯이 괜스레 헛기침을 하는 꼴은 가관. 우리 회귀자가 이렇게 귀여울 리 없다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방금 보여준 모습은 조금 재미있었다.
“아무튼 감사합니다. 여러분. 아! 그리고 오늘 이렇게 다른 분들을 호출한 이유는 이번에 제국에서 발표할 제국 8좌에 대한 이야기를 드리기 위해섭니다. 기영 씨는 들으셨는지 모르겠지만….”
“이쪽으로 오기 전에 하얀이에게 전해 들었습니다. 너무 의외라….”
“네. 확실히 저도 조금 갑작스럽기는 하더군요. 그런 움직임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타이밍이 조금 이른 감이 있어서….”
“형씨는 혹시 관련해서 들은 게 있는 거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기영 씨도 마찬가지로 사전에 이런 이야기는 공지 받지 못한 걸로 보이고요. 제가 전해 듣지 못했다는 건 부자연스러운 이야기가 아니지만 기영 씨가 이 일을 미리 듣지 못했다는 건….”
교황파가 아니라 황제파에서 주최한 거라고 생각 하는 게 맞다. 물론 교황파에서도 움직임이 아예 없었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아무튼 간에 이 일의 주체는 황제파라는 거다.
“일단 제국 8좌에 대해서 먼저 설명을 드려야겠군요. 간단하게 설명해 드리면 제국 8좌는 제국에서 가장 강하다고 생각하는 8명의 인물을 뽑아 직위와 권한을 주는 시스템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자세한 건 조금 더 알아봐야 될 것 같지만 사실상 귀족의 작위를 주는 것이나 다름없겠죠.”
“그럼 무조건 받아들여야 하는 거 아니요? 아니 그것보다 우리 길드에 제국에서 가장 강하다고 생각하는 인물 중 2명이 있다는 거요?”
“무력의 수치도 수치겠지만 아마 여러 가지 정치적인 이유가 얽혀 있을 겁니다.”
“그야 형씨가 강하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기는 하지만….”
박덕구의 말은 일부 동감이 가기는 간다. 김현성이 강한 건 맞지만 제국에서 가장 강한 8명에 들어갈 거라는 건 아직 무리가 있다. 설명을 위해 내가 막 입을 열려고 했을 때 나 대신 입을 연 것은 조혜진. 곧바로 그녀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아마 제국민들은 제외했을 겁니다. 제국민까지 포함해야 된다면 8명이라는 숫자는 너무 적으니까요. 왕성의 빅터하르트님. 그리고 교황청이 보유하고 있는 3명의 템플러들은 차희라님보다 조금 더 강하거나 비슷하다고 들었습니다. 이 분들만 다 합쳐도 4명이니….”
“그… 빨갱이 아줌마 보다 말이요? 빅터하르트 영감님은 들어본 적이 있기는 한데… 템, 템플러는 또 뭐요?”
“교황청이 보유하고 있는 가장 강한 3명의 기사를 칭하는 말 입니다. 추기경급이상의 사제의 신변에 위험이 생겼을 때만 움직이는 무력집단으로 개개인의 무력은 전술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들은 적이 있습니다. 사제인 희영씨가 잘 알고 계시겠군요.”
“네. 조혜진님이 말씀하신 게 맞습니다. 추기경급의 사제님들은 교황청에서 큰 축을 담당하시고 계시니까요. 아마 이기영님도 추기경급으로 올라가신다면….”
만약에라도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꽤나 행복한 일이 일어나리라. 아직은 먼 이야기인 만큼 나는 굳이 대답하지 않았고 조혜진이 다시 한 번 말을 이었다.
“제국민들을 빼고 생각해보면 얼추 맞을 수도 있습니다. 일단 붉은용병의 차희라님. 그리고 검은백조의 박연주님. 요조라 길드의 카스가노 유노님. 죽은 이토 소우타를 대신할 강자가 실리아에서 한 분 나올 거고… 마찬가지로 대만인들이 사는 자유도시 다완에서도 거대길드의 두 분이 선택받으시겠죠.”
“아….”
“물론 제국 내에 있는 플레이어들 중에 강자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이 많기는 하지만 은거하는 이들이나 세력을 일구지 않은 이들은 어느 정도 배제했을 확률이 큽니다. 어쩌면 제국 8좌의 자리를 거절한 몇몇 이들 때문에 저희 파란에게 기회가 왔을 수도 있고요.”
“거절할 이유가 있소?”
“권한과 직위가 있는 만큼 책임도 딸려 들어올 겁니다. 그런 족쇄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은 이들은 대부분 받아들이지 않을 거고요. 마침 제국 8좌를 발표하려고 했던 타이밍에 캐슬락에서 몬스터 웨이브가 일어났으니 이쪽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들에 주목했을 겁니다. 아마 대상은….”
말을 해도 되냐는 듯 뜸을 들이고 있는 듯한 느낌.
여기서 부터는 김현성이 말을 이어받아도 상관없으리라.
“네. 저와 기영 씨 둘이 함께 8좌의 일원으로 들어오지 않겠냐는 제의를 받았습니다.”
“형님 말이요?!”
나를 빤히 바라보는 박덕구의 얼굴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