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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188화 (187/1,590)

# 188

회귀자 사용설명서 188화

미련한 놈(2)

처음 봤을 때는 제법 대단하게 느껴졌던 수도도 역시나 두 번째로 보면 별 감흥이 없다. 여전히 수도는 반짝 거리고 있었고 그리폰 위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장관이라고 할 수 있는 장면이었다. 사실 제대로 저것들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왠지 모르게 계속해서 혼자 뛰어가던 미련한 녀석이 계속해서 머릿속에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 새끼는 괜히 사람 심란하게 만들어서….’

그렇지만 잠깐이나마 녀석의 생각을 접어 주머니 속에 넣어버릴 수 있었다. 물론 계속해서 이쪽을 짜증나게 만들기는 했지만 이곳에 도착한 이상 일이 먼저라는 걸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있었으니까.

영주성을 떠나 왕성에 도착한 다음에 무엇을 가장 처음에 했는지에 대한 것은 뻔할 뻔자. 그동안 소홀했던 인맥에 대한 관리였다. 두 번째지만 제법 익숙해진 그리폰 착륙장에서 내리자 곧바로 이쪽을 부르는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인지는 뻔 할 것이다. 왕성에서 나를 제일 좋아하는 인물이 누구인지는 이미 정해져있으니까.

“바젤 추기경님!”

“이기영 명예주교! 이거 안 본 사이에 얼굴이 반쪽이 되셨습니다. 그래. 캐슬락이야기는 잘 들었습니다.”

“하하하. 전부 베니고어 여신님 덕분이 아니겠습니까. 제이나 주교! 그리고 헬레나 이단 심문관도 오랜만이군요.”

“이기영 명예주교님. 정말 오랜만입니다.”

“아. 인사하시지요. 이쪽은 이번에 함께 제국 8좌로 추천을 받은 파란의 길드마스터 김현성님입니다.”

“아아아아.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김현성 신도님.”

“네. 저도 이야기 많이 전해 들었습니다. 바젤 추기경님. 김현성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 드립니다.”

굳이 내가 찾을 필요도 없이 그리폰 착륙장에서 미리 대기하고 있던 바젤 추기경과 제이나 주교, 헬레나 이단심문관들이 나와 김현성을 맞이했고 곧바로 잠깐의 티타임을 가졌다.

차희라는 아직 도착하지 않은 것 같은 느낌. 애초에 제국 8좌에 대한 공식적인 발표는 나중에 따로 일정이 잡혀 있으니 오지 않아도 별로 상관없는 것 같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던 것은 조금은 차희라 답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직도 민망한가.’

그렇게 생각하니 이미 왕성에 도착했다가 빠르게 서임을 받고 도망갔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 우리 말고도 몇몇은 다녀왔다 갔다는 말을 전해 들었으니까. 붉은용병은 현재 신입들을 맞을 준비에 제법 바쁘기도 하고 왕성에서 여유롭게 시간을 보낼 시간따위는 없을 것이다.

교황청의 일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와중에 조금 재미있었던 것은 나를 제국 8좌로 밀어 준 게 바젤 추기경이라는 사실이었는데 혹시라도 교황청이 내가 제국 8좌로 들어가기 싫어하지는 않을까 생각했던 내 예상과는 조금 달랐던 것이 의외였다.

내가 왕성 쪽 보다는 교황청과 조금 더 가까우리라는 확신이 있었던 모양. 만약 바젤 추기경이 그렇게 생각했다면 나를 억지로 8좌로 밀어 넣는 것도 이해는 간다. 교황청의 명예주교가 제국에서 가장 강한 8명으로 뽑혔다는 건 나름대로 홍보거리가 될 수도 있었으니 말이다.

제이나 주교와 헬레나 이단심문관과는 함께 세 명만의 짧고 흥미로운 기도회를 가졌고 그 외에도 오랜만에 보는 귀족들과도 계속해서 만남을 가졌다. 빅터하르트 영감과는 인사를 주고받은 것이 전부지만 카트린 공작부인 마를린 공작부인 그리고 미리 왕성으로 와 있었던 마를린 영애와도 쓸데없는 수다를 떨었다.

마지막 작별 인사 때 나오지 않은 것을 생각하면 뭔가 다른 꿍꿍이가 있는 것 같기는 했지만 미리 자리를 깔고 있었을 줄은 상상도하지 못했던 부분. 대화는 주로 마를린 영애가 캐슬락 공성전에 대한 내 무용담을 다른 귀족부인들에게 설명해 주는 쪽으로 흘러갔다. 그 중에서는 당연히 파란의 파티의 이야기도 끼어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잊혀졌던 미련한 녀석에 대해서도 다시금 떠올려 버려 짜증이 났던 순간이었다.

당연하지만 디아루기아의 대한 세간의 관심이 얼마나 어마어마한지에 대해서도 깨달을 수 있었던 부분.

‘안 데려오길 잘했지.’

용에 대한 홍보는 공식 발표 때 해도 그다지 상관이 없다. 지금은 디아루기아가 제법 바쁜 시기이기도 하고 만약 이곳에 똘똘이를 데려온다면 괜히 이상한 사건에 휘말릴 확률도 있었으니까.

무척이나 바빴던 나와 마찬가지로 김현성 역시 바쁜 시간을 보낸 것은 당연지사. 이번이 왕성이 처음이었던 만큼 녀석은 나와 정하얀과 함께 인맥을 다지는 데 시간을 보냈고 귀부인들과 교황청을 대상으로 시간을 보낸 나와는 다르게 주고 왕성의 권력자들과 함께 술을 마시거나 무용을 겨뤘다.

용의 선택을 받고 교황청이 밀어주고 있는 나와는 반대로 아직까지는 김현성에 대한 의문이 도처에 깔려있는 상태. 빅터하르트 같은 왕성의 인물들과 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게 녀석의 평가를 올리는 데 커다란 도움이 된 모양이다.

왕성에 오면 당연히 바쁠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내 생각보다 조금 더 바쁜 상태. 이런 일에는 나보다 더 피곤함을 느끼던 김현성의 얼굴이 하얗게 질린 것도 무리는 아니리라. 수도에 온지 이제 겨우 이틀이 조금이 지난 상황. 계속해서 에너지 충전을 하고 있는 정하얀과는 다르게 녀석은 극도의 피곤함을 느끼고 있었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지만….’

여러 가지 신경 쓸 게 많았으니 말이다. 앞으로의 파란이라든가. 내 전직에 대해서라든가. 김현성과의 일이라든가. 생각할게 너무 많은 것도 일이었다. 물론 그 중에서도 제일 신경 쓰였던 것은 굳이 말 하지 않아도 되리라.

나와는 생각하는 게 조금 다르기야 하겠지만 같은 상황에 처 한 것은 김현성 역시 마찬가지. 이제 곧 튜토리얼 던전이 열리는 타이밍이니 김현성이 알고 있는 인재들이 대거 등장할지도 모르는 만큼 생각이 많아졌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미래에 활약할 인물들을 선별해야 했고 대외적으로 달라지게 될 자신의 위치에 대해서도 신경 쓸 게 많으리라. 앞으로 어떤 일이 닥쳐올지는 나는 알 수 없지만 녀석은 알고 있었으니까. 서로가 합의해야 될 상황도 많고 이해관계도 일치하는 상황. 지친 몸을 이끌고 야밤에도 녀석과 머리를 맞대야 하는 데는 이런 배경이 깔려있었다.

물론 나눠야만 하는 진지한 이야기들에 대해서는 서로가 조금씩 피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기는 했지만 이런 이야기를 나누는 데는 지장이 없다. 녀석과 나는 여전히 서로가 서로를 신뢰하며 믿는 친구이자 동료였으니까.

“후우… 하루가 길군요.”

“아마 내일은 조금 더 바빠질 겁니다. 서임식 준비도 해야 하고… 아마 저희가 제일 마지막인 거 같더군요. 큼 아무튼 간에 현성 씨가 만나야 될 사람이 조금 더 있습니다.”

“…….”

“안두린 대주교도 한 번 보셔야 하고… 유력영지 영애들과의 만남도….”

“아….”

대놓고 이러지 말아달라는 표정이었다. 안두린 대주교를 만나는 쪽은 상관없지만 유력영지의 영애들과의 만남은 대놓고 불편한 모양.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갈 정도의 표정이었다.

“큼. 현성 씨가 불편하시다면 영애들과의 만남은 제가 맡도록 하겠습니다.”

“그러지 않으셔도 되는데….”

“아니요. 마침 시간이 남아서 말입니다.”

“감, 감사합니다.”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받는 것도 꽤나 오랜만이다. 옆에서 꾸벅 꾸벅 졸고 있는 정하얀을 한 번 바라본 뒤에 김현성은 다시 한 번 말을 이었다.

“벌써 1년이 다 되가는 군요.”

“네. 생각보다 시간이 빠르게 흘러지나가는 것 같습니다. 정신없이 지내다 보니 벌써 1년이 지났으니까요. 사실 현성 씨 한테 벌써 다음 기수들을 받을 준비를 해야 한다고 들었을 때 얼마나 깜짝 놀랐는지 모릅니다.”

“하하하. 기영 씨도 놓치는 게 있군요.”

“저도 평범한 사람이니까요. 당장 일어난 일 만 처리하는 것도 솔직히 버겁습니다.”

“아뇨. 저는… 기영 씨가 그다지 평범하다고는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애초에 현성 씨와 만나지 않았더라면 튜토리얼 던전도 빠져나오지 못했겠죠. 그리고 그건 현성 씨도 마찬가지니까요.”

“조금 진지하게 말씀드리는 거지만 지금은 오히려 기영 씨가 큰 힘이 되주고 있습니다.”

대놓고 이런 소리를 들으니 대놓고 뿌듯하다. 당연하지만 분위기가 나쁘지는 않다. 그 전에 있었던 식사초대 때문에 적당히 술을 마시기도 했으니까. 뭔가 서로 할 말이 있는 것 같기는 한데 쉽사리 말을 꺼내지 못하는 게 조금 답답하기는 했지만 적어도 평화롭게 보이기는 한다는 거다.

“저기….”

힘들게 녀석이 입을 열었던 그 때였다.

“저도 잘한다. 잘한다. 잘한다. 해주세요….”

정하얀의 잠꼬대가 들려온 것. 피식 하고 녀석이 웃음을 터뜨린 것은 당연지사. 다시 한 번 녀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원래 하던 말과는 조금 차이가 있을 지도 모르겠지만 제법 진지한 목소리였다.

“그러고 보니 생각했던 게 있습니다.”

“네?”

“현재의 파란에 대해서입니다.”

“아. 그렇겠군요. 혹시 길드원 확충에 관련된 문제가….”

“네. 맞습니다. 아직은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한 일이겠지만 파란의 시스템과 지금의 파티를 조금 개편해야 될 필요성을 느끼고 있어서 말입니다.”

“음….”

“아무래도 새로운 파티원들이 들어오면 파란의 파티를 하나로 굴린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비효율적으로 느껴져서… 아직은 머릿속으로 구상하고 있을 뿐이기는 하지만 두 번째 파티를 신설해 덕구씨와 정연 씨에게 파티를 맡기는 게 좋지 않을지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아아아….”

조금은 입을 꽉 다물 수밖에 없었다. 딱히 뭐라고 할 말도 없다. 김현성도 나와 같은 걸 생각하고 있었다는 게 드러난 셈이니까. 김현성은 대놓고 말은 하지 않았지만 박덕구가 더 이상 자신의 파티를 따라오는 게 힘든 것은 아닌지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새로 올 놈 들 중에 괜찮은 탱커가 있나.’

어쩌면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미래에 활약하게 될 괜찮은 전위가 있으면 녀석을 파티원으로 받아들이는 게 더 효율적일 테니까. 조금 갑작스럽기는 했지만 김현성이 박덕구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 자식! 너무 약하니까 이제 버리고 가자!’

라고 활기차게 외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녀석의 한계를 이해한 결정이기도 했고 클랜의 간부격으로 키우기 위한 합리적인 선택이기도 했다. 새로 만들어질 파티의 파티장이 돼서 조금 경험을 쌓고 경과를 지켜봐도 된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클랜 내의 박덕구의 위신과 위치는 올라가겠지만 결과적으로는 녀석은 김현성 파티에서 멀어지게 되는 셈. 사실 당장 이상희가 전선에서 복귀만 해도 그녀가 김현성 파티의 주축이 될 수 있다는 걸 생각해 보면 김현성이 박덕구를 고집할 이유는 없다.

‘녀석의 안전을 생각하고 있다면 더욱더.’

성장에 탄력을 받은 김현성 파티는 계속해서 새로운 곳에 발을 디딜 것이고 박덕구는 계속해서 새로운 위험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객관적인 녀석의 스펙을 생각해 보면 공격을 한 두 번 버티는 게 전부일 수도 있고 최악의 경우에는 죽어버릴 수도 있다.

‘후위인 나와는 다르니까.’

그렇다고 박덕구를 김현성 파티로 끌어 당겨가 후위에 배치시키는 것은 오히려 녀석의 성장에 방해가 되는 것이 당연. 아마 김현성은 이 모든 것을 고려한 것이 분명. 굳이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꺼낸 것은 아마도 덕구와 가장 친근한 나에게 먼저 어떻냐고 의향을 물어보려는 의도가 숨겨져 있다고 생각했다.

‘박덕구의 성장이나 안전 그리고 앞으로의 클랜에서의 간부로 키우려는 사실 등등 모든 것을 종합해 보면 확실히 김현성의 제안이 더 좋을 지도 모르지만….’

왠지 모르게 녀석을 두고 가는 건 조금 잔인하게 느껴졌다.

‘시바….’

녀석의 한계를 알고 있는 건 상태창을 볼 수 있는 나 뿐 만이 아니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박덕구를 바라보고 함께 싸워왔던 김현성이 녀석의 한계에 대해서 나보다 더 잘 실감하고 있었다.

“무슨 말씀을 하시려고 하는지는 알겠습니다. 현성 씨.”

“네.”

“제가 착각한 게 아니라면 아마… 덕구에 대해서 말씀 하시는 것 같은데… 제 생각이 맞습니까?”

“네. 기영 씨는 어떻게 생각하시는 지 궁금하군요. 아무래도… 이번 일 같은 경우에는 기영 씨의 판단이 제 판단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먼저 말씀 드린 겁니다. 기영 씨가 저보다 더 잘 알고 계실거라고…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앞으로는 조금 더 위험해 질 수도 있는 걸 생각해 보면….”

“글쎄요….”

머리로는 이미 답을 알고 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는 것 같은 느낌.

‘짜증나는데… 시바….’

내 심정을 물어보는 건 물론 기분 좋지만 김현성이 왠지 잔인한 결정을 내게 선택하라고 말하는 것 같아 괜스레 미워졌다. 그렇지만 답을 내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결국에는 적당한 대답을 입으로 내 뱉을 수밖에 없었다.

“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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