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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189화 (188/1,590)

# 189

회귀자 사용설명서 189화

미련한 놈 (3)

“저는….”

“…….”

“조금 더 지켜봐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거짓말이었다.

별로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물론 녀석은 노력하고 있고 열심히 하고 있다는 건 내가 가장 잘 알고 있지만 김현성을 따라올 수 있을 거라고 묻는다면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다는 게 냉정한 현실이라는 거다.

아니, 김현성은 고사하고 조혜진도 따라잡을 수 없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어떻게 생각해도 쳐내는 것이 당연.

‘정이라도 들은 건가.’

어쩌면 정말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슬슬 나 스스로가 나를 합리화하는 게 느껴졌으니까.

어찌됐든 박덕구는 이쪽에 많은 부분을 의지하고 있고 나를 믿을 만한 사람으로 규정하고 따르고 있다. 언젠가는 쳐내야 될지도 모르겠지만 지금 당장은 아니다.

새로운 탱커가 들어와 내가 가지고 있는 파티에 대한 영향력이 줄어드는 것도 싫고 새로 들어올 녀석을 이쪽의 입맛에 맞게 길들이는 데 시간을 쓰는 것도 싫다.

박덕구는 최소한 이쪽을 위해서 목숨을 던질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런 상황이 온다면 겁 많은 녀석이 어떻게 행동할지는 미지수지만 최소한 등을 돌려 도망치지는 않을 것이다.

‘노력하고 있으니까.’

녀석을 아주 조금만 더 믿어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군요.”

내 말에 김현성은 짧게 한숨을 쉬는 듯한 느낌. 이쪽은 다시 한번 급하게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물론 전위가 무너지면 파티 전체가 위험해진다는 사실은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아직 메울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니까요. 아이템이라든지…. 뭐 방법은 많을 겁니다. 무엇보다 덕구 본인이 가장 노력하고 있으니 아주 작은 성과일지라도 얻는 게 있을 겁니다.”

‘그 성과가 엄청 작을지도 모르지만…. 솔직히 나도 별로 기대는 안 돼.’

“다른 파티원의 눈이 닿지 않는 곳에서 매일 훈련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최근에 예리와 함께 대련하는 모습을 본 적도 있습니다. 물론 제 눈으로는 둘을 제대로 평가할 수는 없지만 상당히 선전하고 있는 것 같더군요.”

‘떡이 될 때까지 두들겨 맞았지.’

“본인이 의지가 있습니다.”

‘별로 필요도 없는 쓸모없는 의지.’

“조금씩 조금씩이지만 성장하고 있을 겁니다.”

‘너무 조금씩이라서 문제.’

“아마 다음 원정에서는 조금 달라진 모습을 보여줄 거라고 생각합니다. 분명히요.”

‘솔직히 단언할 수는 없다. 현성아… 슈바….’

거짓말에 익숙하기는 하지만 이번 거짓말은 조금 어설픈 것 같은 느낌이었다.

별 논리도 없이 의지 드립이나 치며 녀석을 실드 쳐주기에 바빴으니까.

나와 어울리는 행동은 확실히 아니다. 그렇지만 김현성이 이쪽을 바라보며 슬그머니 미소를 보내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잘 알겠습니다.”

무척이나 기분 좋아 보이는 표정.

뭐라고 읽을 수 없는 표정이었지만 역시나 자신이 생각했던 게 맞았다고 기뻐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뭔가 마음의 짐을 덜은 것 같다고 하는 게 맞는 표현이리라.

‘이 자식… 설마….’

나를 시험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당연하다.

사랑스러운 회귀자는 최근까지 이쪽을 조금은 경계하면서 의구심을 품고 있었으니까.

은근히 여우같다고 생각은 했지만 정말로 이 문제로 나를 시험한 게 맞다면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조금 더 여우라고 생각하는 게 맞다.

어쩌면 내가 가지고 있는 비인간적인 부분에 의구심을 느껴 이런 작은 이벤트를 벌였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간에 김현성의 얼굴이 좋아진 것을 보니 뭔가 성공했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혹시나 이것도 박덕구의 설계가 아닐까 하는 의심이 살짝 들기는 했지만….

‘설계는 아니겠지.’

그건 아닐 거라고 굳게 믿고 있다.

아무튼 간에 내 말을 들은 김현성은 여전히 고개를 끄덕이며 기분 좋은 미소를 보내오는 중.

여러 가지로 생각이 복잡한 내가 어색한 미소로 화답하기도 전에 다시 한번 김현성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기영 씨가 어떤 생각을 하시고 있는지는 잘 알겠습니다. 사실 아까 전에는 기영 씨의 판단을 믿는다고 말씀 드렸지만 파티원뿐만이 아니라 덕구 씨 본인이 위험해질 날이 분명히 올 겁니다.”

“네… 그것도 인지하고 있습니다.”

“일단은 두고 보겠습니다만 성장 정도나 훈련의 성과가 나타나지 않을 시에는 제가 제안한 대로… 두 번째 파티를 신설하는 게 좋을 것 같군요. 물론 시기는 기영 씨가 결정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굳이 제가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시는 게 있을 테니까요.”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는 게 좋겠군요.”

‘기회를 몇 번 더 준다는 건가.’

김현성도 박덕구를 더 지켜본다는 거다.

이유야 어찌됐든 간에 이쪽은 원하는 걸 얻었다.

물론 앞으로 있을 몇 번의 던전행이나 사냥에서 녀석이 낙제점을 받는다면 쫓겨나듯이 두 번째 파티로 가게 되겠지만, 그나마 곧바로 사형선고가 떨어지지 않다는 건 충분히 축하할 만한 일.

여기서 내가 취해야 할 입장은 하나밖에 없을 것이다.

‘강화시켜야지.’

박덕구를 강화기에 넣고 돌린다.

물론 아직까지는 뾰족한 수를 찾기 힘든 게 당연.

그렇지만 강해질 수 있는 방법은 많다. 앞서 말했던 대로 아이템을 구해다 줄 수도 있고 연금술을 사용해서 녀석의 신체를 조금 강화시키는 방법도 있을 수도 있다.

물론 내가 그걸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은 있지만 말이다. 그것 외에도 전설 등급의 직업을 얻는 걸로도 잠깐이나마 비벼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세계에서 강해지는 첫 번째 조건은 뭐가 됐든 전설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걸 얻는 거니까.

그게 첫 번째 발걸음이다.

정말로 재능이 없는 나 역시 성장할 수 있는 길을 찾았다는 걸 생각해 보면 나보다 더 뛰어난 박덕구는 해낼 것이다.

물론 내가 녀석의 일을 이렇게 신경 쓴다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기는 하지만, 만약 이게 김현성이 내게 내리는 시험의 연장선이라고 예상해 본다면 전력으로 부딪치지 않을 이유가 하나도 없다.

‘신경 써주는 건 이번이 마지막이다, 덕구야.’

절대로 놈의 모습이 눈에 밟혀서 이러는 건 아니다.

나도 할 일 많은 사람이고 신경 쓸 게 많다. 단순히 계속해서 미련한 놈의 뒷모습을 떠올리느니 차라리 단기간에 빡 하고 시간을 쓰는 게 좋을 거라고 생각한 것뿐이다.

“그럼 저는 먼저 일어나 보겠습니다, 현성 씨.”

“네.”

“혹시 아까 하시려던 말씀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다음에 술이나 한잔하면서 이야기 나누도록 하지요.”

“아… 네.”

“기영 씨, 믿고 있겠습니다.”

‘여우같은 놈… 시험한 거 맞구만.’

“하하….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네.”

아직도 꾸벅꾸벅 졸고 있는 정하얀을 살짝 들어 올린 이후에 김현성의 방에서 나간 것은 당연.

정하얀이 제법 무겁게 느껴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일반인보다는 근력이 뛰어난 만큼 무리 없이 그녀를 방으로 안고 갈 수 있었다.

오늘 하루 종일 함께 돌아다니다 보니 이미 잠에 빠져 정신을 차릴 수 없는 모양. 조금 더 움직이기 편해졌다.

지금부터 내가 어딘가로 향한다는 걸 알게 된다면 정하얀이 싫어할 거라는 건 너무나도 당연했으니까.

방문을 다시 닫은 이후에는 빠르게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

안 그래도 찾아가려고 했었는데 마침 좋은 타이밍이라고 생각했다. 귀찮고 바빴기 때문에 미루고 미뤘던 상황에서 좋은 핑계가 생긴 셈이니까.

박덕구를 위해서 손을 써줘야겠다고 이미 결정을 내리기는 했지만 솔직히 녀석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줘야 할지에 대해서는 조금도 감이 잡히지 않았다. 지금 녀석의 성장을 방해하는 벽이 뭔지 잘 알지도 못하겠고 진단을 내릴 수조차 없다.

나는 개인 카운슬러가 아니고 그저 상태창과 성향을 읽을 줄 아는 것뿐이다.

녀석의 마력 성장치는 터무니없이 낮지만 체력과 내구력의 잠재 능력은 영웅 이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장하는 속도가 느린 것이 문제.

물론 문제는 그것뿐만이 아니다.

가슴 아프지만 개인이 가지고 있는 전투 센스는 김현성 주변에 있는 괴물들에 비하면 기대 이하.

‘솔직히 말하면….’

김예리가 박덕구보다 능력치가 낮다고 해도 박덕구는 김예리를 이길 수 없을 거다.

개인이 가지고 있는 센스 자체가 다르다.

마력과 지력 능력치가 전설 이상인 다른 이들이 정하얀만큼 마법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는 것과 일맥상통.

안 그래도 스탯 자체도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경험도 부족하고 센스도 부족하다.

직업도 아직 희귀 등급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고 특성조차 열리지 않았다.

‘총체적 난국인데….’

물론 아직 특성이 열리지 않았다는 점에서는 조금의 희망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개인이 가지고 있는 센스가 어디 가는 게 아니다.

그 와중에 체크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 것은 미래의 박덕구.

지금보다 조금 더 성장했을 녀석의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녀석을 어떤 식으로 성장시킬지에 대해서 조금 가닥을 잡을 수 있으리라.

김현성은 나와 박덕구를 알지 못했지만 미래의 나를 알고 있는 무녀는 어쩌면 녀석에 대해서도 알고 있을지 모른다.

방에 다다르기도 전에 요조라 길드의 길드원들이 이쪽에 인사를 건네기 시작.

적당히 손을 흔들어 주니 저절로 방문이 열렸고 저번에 봤던 모습과 똑같이 부복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카스가노 유노.’

여전히 긴 머리를 풀어헤치고 떠지지 않는 눈을 감고 있는 모습. 우연히 연을 맺게 된 무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기다렸사옵니다, 주인님.”

“늦게 찾아와서 미안하군.”

“아닙니다. 찾아주신 것만으로도 무한한 영광이옵니다. 주인님께서 바쁘게 생활하고 계신다는 건 그 누구보다도 제가 제일 잘 알고 있으니까요. 그보다. 어서 방으로 들어오시지요.”

“내가 오늘 올 거라는 걸 알고 있었나?”

“그, 그건 아니옵니다.”

“그럼….”

“찾아오실 때까지 기다렸사옵니다. 분명히 찾아주실 거라고 생각해서….”

딱히 할 말이 없다.

“힘들었겠군.”

“그렇지는 않습니다. 주인님을 기다린다고 생각하니 조금 기분이 좋아져서… 오히려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얘는… 이래서 안 돼.’

“큼.”

“뭔가 용무가 있어서 찾아와 주신 것이겠지요.”

당연히 그럴 것 같다는 카스가노 유노의 표정에는 조금의 섭섭함이 담겨져 있었다.

조금이지만 양심이 찔렸다.

그렇지만 너를 보러 왔다고 말할 수는 없다. 실제로 나는 용건이 있어서 찾아왔고 조금은 시간이 빠듯하게 느껴지기도 했으니까.

대신이라고 하기에는 뭣 하지만 조용히 자리에 앉아 슬그머니 옆을 두드리자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켜 이쪽으로 가까이 다가오는 것이 시야에 비쳤다.

예상대로 기뻐 보이는 표정이다.

물론 정하얀같이 대놓고 입꼬리를 올리지는 않았지만 뭔가 계속해서 풀어져가는 얼굴을 필사적으로 막고 있는 것 같은 느낌.

표정 관리를 하려고 하기는 하지만 삐질 삐질 튀어나오려는 웃음을 참기 힘들어 하는 것 같았다.

“뭐. 겸사 겸사 왔다고 하는 게 맞겠지.”

“제 마음을 헤아려 주시는 것만으로도 이미 기뻐 몸이 날아갈 것 같사옵니다. 주인님, 원하시는 걸 말씀해 주시옵소서.”

이렇게까지 말하면 당장 본론으로 들어간다 해도 별로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그저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좋다고 생각하는 것 같으니까.

안 그래도 관련해서 궁금한 게 조금 많아진 상태였다.

“검은색 세계에 대해서다.”

“예.”

“너는 나를 분명히 폐허에서 발견했다고 했었지.”

“예. 제가 먼저 죽어가는 주인님을 찾아갔사옵니다.”

“그러니까… 지금부터 2년 후에 일어날 일인가?”

“네. 정확한 날짜는 알 수 없지만 아마 2년 후나 3년 후 정도로 사료되옵니다.”

일단은 여기서 궁금한 게 하나.

“그 폐허에서 발견한 건 나 하나였나? 혹시 다른 이들은… 예를 들면….”

말을 채 잇기도 전에 카스가노 유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주인님께서는 덩치가 커다란 분에 대해 물어봐 주시는 거군요.”

“알고 있나?”

카스가노 유노의 닫혀 있던 눈꺼풀이 열려 나를 바라보았다.

눈동자가 보여야 할 곳에 자리한 곳은 검은색 어둠. 공포 영화에서나 보던 장면에 등 뒤로 소름이 돋아날 수밖에 없었다.

‘여기는 쳐다보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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