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5
회귀자 사용설명서 195화
용의 둥지, 실험, 전직, 강화 (3)
“야, 이 미! 미친 여편네야!”
조금만 생각해도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겠지만 이 대륙은 그다지 여성들에게 친절하지 않다.
차희라나 정하얀, 조혜진같이 일부 재능을 가지고 있거나 이지혜처럼 독한 경우에는 이야기가 달랐지만 튜토리얼 던전에서 무임승차한 대부분의 여성들은 이 사회의 약자다.
몬스터와 마주해서 싸워야 되는 상황은 남자들도 부담을 느낀다. 신체적 약자에 있는 여자가 부담을 느낀다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라는 거다.
마법사 적성이나 사제 적성이 없는 이들은 시작하기도 전부터 싸우는 것을 포기하는 것은 물론 적성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재능이 없는 이들은 별 다른 성과를 얻지 못하는 것이 현실.
용기를 낸 이들이라고 하더라도 일부 정신 나간 미친놈들 때문에 파티 사냥에 들어갔다가 험한 꼴을 당하기 십상이었고, 노숙이나 함께 오랜 시간을 가져야 하는 공략이나 사냥의 특수성에 노출된 여성 플레이어들은 자연스럽게 사냥과 동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길드에 들어가 있지 않은 여성 플레이어들은 고정 파티가 아니면 잘 들어가지 않는다.
몇 박 며칠을 함께해야 되는 상황에서 처음 본 남자를 믿기가 쉽지 않을 테니까.
그래서 만들어진 게 대부분의 길드원들이 여성으로만 이루어진 검은백조라는 걸 생각해 보면 우리가 들어오기 전에는 이 문제가 조금 더 심각했었다는 거다.
결국 플레이어로서 살아가기를 포기한 여성들이 발길을 돌린 것은 사무직으로서 길드에 취직하거나 노동자로 살아가는 것.
그렇지만 길드나 클랜, 심지어는 자영업자들도 이들에게 제대로 된 임금을 지불하지 않는다.
최저임금제도는 암묵적으로 정해져 있지만 말 그래도 암묵적.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더 많았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플레이어 전문여성대출.’
미주사랑이나 가로쉬 앤 캐쉬 같은 합법적인 대부업체였다.
린델에도 은행이 있다.
조금 원시적인 형태이기는 하지만 신성제국에서도 제국은행을 운영하고 있고 대출 상품과 보험 상품도 분명히 존재한다.
당연하지만 아무 기반이 없는 이들이 이런 시설에 돈을 빌릴 수 있을 리가 만무.
제1금융권, 제2금융권에 승인이 나지 않자 제3금융권으로 몰려드는 이들이 많은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제길.’
대출을 대출로 막고 그 대출을 대출로 막는다.
결국에는 눈덩이처럼 불어난 이자를 감당하지 못하고 궁지에 몰리는 흔한 클리셰.
물론 나 같은 경우도 있다. 모험가 남편을 둔 부인들이 자신들의 소비벽을 감당하지 못하는 경우.
인간도 아닌 용에게 이런 뒤통수를 맞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갑작스레 소리를 지르는 내 모습을 본 디아루기아의 표정은 멍하다.
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 되는 모양.
오히려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냐는 듯이 인상을 쓰는 그녀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온다.
“뭐, 뭐라고 했습니까? 무례합니다. 어디까지나 당신을 위해서! 이건 선물이란 말입니다!”
“나를 위하긴 개뿔!”
“정… 말로 무례한 사람이었군요! 이런 사람이 디아루리아의 아버지라니! 인간은 감사의 마음을 담은 선물이라는 것도 이해하지 못하는 겁니까?”
“지금 진짜 무례한 게 누군지 알고나 하는 소리야?! 당장 계약서나 가져 와!”
“네?”
“빨리 계약서나 가져오라고 이 여편네야!”
황당해하는 내 모습을 본 이후에는 디아루기아도 뭔가 잘못됐다는 걸 깨달은 모양.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한 뭉텅이의 서류를 들고 이쪽으로 천천히 다가오고 있는 얼굴이 보였다.
차라리 가로쉬 앤 캐쉬에서 돈을 빌렸다면 조금 더 나을 뻔했다.
거기는 규모가 조금 작은 클랜이었고 클랜 마스터 갈오식의 무력도 그다지 강하다고 할 수 없었으니까.
그렇지만 미주사랑에 김미주는 조금 이야기가 다르다.
대형 길드라고 하기에는 조금 모자란 규모이기는 했지만 최소한 자기 몸은 지킬 수 있을 만한 무력과 인맥을 가지고 있다.
물론 덩치 자체로 비교해 보자면 붉은용병과 검은백조, 요조라 길드와 함께 있는 파란과 비교가 안 되겠지만 어디까지나 합법적으로 돈을 빌린 것은 물론 이미 전부 사용해 버리기까지 했다.
이것 때문에 또 협상 테이블에 앉아 시간을 버릴 걸 생각하면 짜증이 샘솟는다.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 거기까지 신경을 쓸 시간이 없다.
애초에 돈을 먼저 빌려달라고 한 쪽도 이쪽. 사용하고 배 째라는 것은 다른 길드나 클랜들이 보기에도 좋은 그림은 아니라는 거다.
“여, 여기 있습니다.”
갑자기 짜증이 샘솟는다.
“필요 없어!”
서류 뭉치를 들자마자 올라오는 화를 참지 못하고 계약서를 집어 던진 것은 당연지사.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는 잘 모르는 것 같았지만 분위기상 엄청난 실수를 한 것 같다는 느낌을 받고 있는지 잔뜩 주눅 든 얼굴이 보였다.
나를 한 번에 밟아 죽일 수 있는 용의 얼굴로는 보이지 않지만 그래도 화가 풀리는 건 아니다.
대충 봐도 어마어마한 액수.
미주사랑 쪽에서 이쪽에 먼저 접선한 것도 아니라 디아루기아가 먼저 미주사랑을 찾아간 상황이다.
이건 변명의 여지가 없다.
‘지하투기장 때 안 그래도 돈 많이 썼는데….’
요조라 길드의 도움을 받기는 힘들다. 아무래도 검은백조나 붉은용병에게 돈을 빌려 메우는 게 가장 좋은 선택지인 것 같았다.
계속해서 이자가 불어나는 걸 두고 볼 수는 없으니까.
‘밥상이라도 있었으면 뒤집어버리고 싶다.’
정말로 강렬한 충동을 느끼고 있다.
그렇지만 일단은 입술을 꽉 깨물고 신사적으로 대해줘야 한다. 사이가 틀어져 봤자 좋을 건 없으니까.
“제가… 함부로… 인간들과 접촉하지 말라고 말씀 드리지 않았습니까, 디아루기아.”
“아직 뭐가 뭔지….”
“골드는 함부로 빌리는 게 아니에요. 당신이 지성체라는 건 알고 있지만 인간 사회를 기준으로 하면 사회성이 어린아이 수준이나 마찬가지에요. 마음은 이해가 가지만 배우는 건 차근차근히 합시다. 아니 애초에!”
“키에에엑!”
“…….”
“키에에에에에엑!”
“오이구! 우리 똘똘이 일어났쪄?”
“헥헥! 헥!”
막 성질을 내려고 했을 때 어머니를 구원하러 등장해 준 똘똘이.
이쪽의 커다란 목소리가 녀석을 깨웠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디아루기아로서는 적절한 타이밍에 녀석이 등장했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녀석 앞에서는 사이좋은 부부의 모습을 연출해야 하는 만큼 이쪽이 신경질을 낼 수도 없었으니까.
사실 정신없이 내가 있는 쪽으로 뛰어오는 똘똘이의 모습이 귀여워 잠깐이지만 화가 풀린다.
자식 보고 산다는 게 무슨 느낌인지 제대로 알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볼 정도니 다른 말은 필요 없으리라.
“오이구! 그래 아빠 왔다. 보고 싶었어?”
“키에에에에에엑! 키에에에엑! 헥! 헥!”
꼬리를 미친 듯이 흔들고 있는 똘똘이의 상태는 광란 마법이라도 걸어 놓은 것 같았다.
정신없이 얼굴을 핥는 것을 보니 정말로 내가 그리웠던 모양.
그야 조금 오랜 시간 동안 얼굴을 보지 못했으니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당연하리라.
“그래, 그래, 아빠 일하고 왔다!”
“키에에에엑!”
아마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를 것이다.
그저 신나서 방방 뛰면서 어떻게든 안기려고 하고 있었으니까.
녀석을 품에 꼭 안은 채로 디아루기아를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이 바라보자 괜스레 내 시선을 피하는 디아루기아가 보인다.
“제가… 갚으면 되는 거 아닙니까.”
“무슨 수로? 참고로 당신 신체의 일부를 판매한다는 선택지는 없습니다. 당신 몸은 온전히 제 소유예요. 그게 거래였습니다.”
“키에에엑! 헥헥!”
“그, 그럼 사냥이라도 나가서 몬스터들을 잡아오면 됩니다.”
“몬스터 한두 마리 잡아서 충당할 수 있는 금액이 아닙니다. 그리고 잡아와봤자 어차피 이자를 막는 용도로밖에 사용할 수 없을 거고요. 골드 쪽은 제가 알아서 해결하겠습니다. 후우. 교육이 필요한 건 똘똘이뿐만이 아니군요. 당신도 교육을 좀 받아야 될 것 같습니다. 다음에도 이런 일이 벌어지면 안 되니까요.”
“…….”
“일단 곧바로 당신의 몸에 대해서 확인할 게 있으니 준비해 주세요.”
조금 여유롭게 할 생각이었지만 최대한 빨리 들어가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마침 그림으로 그린 것처럼 실험실도 이미 완성되어 있는 상황.
고마운 마음도 조금은 들었지만 순간적으로 짜증이 올라와 표현도 하지 못했다.
나한테 말은 안 했지만 디아루기아도 조금은 섭섭한 표정이었다. 결국에는 슬그머니 감사의 인사를 날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선물은 일단 고맙습니다. 마음은 감사히 받겠습니다.”
그제야 얼굴이 조금 풀어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똘똘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난 뒤에는 곧바로 그녀에 대해서 알아봐야 되는 게 마땅하다는 생각이 든 것은 당연지사. 이것저것 할 일이 많아 이쪽의 일에는 조금 소홀했다.
‘사실 며칠 정도 쉬려고 했지만….’
비어버린 통장이 나를 채찍질한다.
‘어차피 돈은 생기게 되어 있어.’
지금부터 벌어드릴 돈에 비하면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돈은 어차피 푼돈.
누구보다 그걸 잘 인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속이 쓰리는 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똘똘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도 디아루기아에 대해 어떤 식으로 접근해야 할지 고민해보는 것이 당연.
디아루기아는 여전히 죄인의 표정으로 몇 발자국 떨어져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어떻게 해야 되는 겁니까?”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일단은 본신의 모습으로 변해주시면 됩니다. 아직 저도 감이 안 잡혀서 말입니다.”
“네.”
말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그녀의 몸에 이상이 생기는 것이 보였다. 입고 있던 옷이 찢어졌지만 그녀의 몸을 대놓고 감상할 시간은 없었다. 여기저기에서 그녀가 용족화하고 있는 게 보였으니까.
팔에는 점점 특유의 비늘이 돋아나고 있었고 인간의 피부가 용의 피부로 탈피하고 있는 모습은 정말로 신기해 보인다.
뼈와 근육이 뒤틀리는 소리가 들려오지만 괴로워 보이지는 않는다. 마치 걷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워어어어어어….”
순식간에 덩치를 키워나간 커다란 용의 위용은 여전히 압도적이라고 할 수 있는 모습.
나도 모르게 입이 떡 벌어질 정도였다. 아니, 솔직히 이야기하면 조금은 무섭다.
괜스레 서류뭉치를 집어 던진 기억이 떠오른다.
지금 그녀의 시선에 내가 어떻게 비칠지는 모르겠지만 가까이에서 본 디아루기아의 모습은 정말로 압도적.
그녀의 커다란 눈동자가 나를 향해 있는 것이 보인다.
“와….”
두 개의 커다란 뿔, 나 같은 건 한 입에 씹어 삼킬 수 있을 것 같은 이빨.
무엇보다 하위종으로서 상위종에게 느끼는 경외감이 느껴진다.
광택이 도는 가죽과 비늘을 보고 있자니 정말로 내 앞에 있는 게 용이 맞다는 생각이 든다.
-이상한 겁니까.
“아?”
-배우자에게만 마음을 전달할 수 있습니다. 아무래도 용의 신체기관은 인간의 언어를 내뱉는 게 불가능한 터라….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알겠군요. 이상하게 보이지는 않습니다. 단지 정말로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을 뿐입니다. 그때는 단순히 무섭게만 보였을 뿐이었는데 이렇게 차분하게 당신을 살펴보니 정말로 놀랍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니가 네 돈은 날려버렸지만….’
“일단은 간단하게 혈액부터 분석해 볼 겁니다. 그 뒤로 수치를 재고 여러 가지로 알아볼 거고요. 혹시 아프시면 말씀하셔야 됩니다.”
특수 제작된 주사기로 그녀의 팔 안에 꼽아 천천히 혈액을 뽑아내자. 곧바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간지럽습니다. 히… 히힛. 히히힛.
내 생각보다는 웃음소리가 경박하다.
“조금만 참아주세요.”
-히… 히히하힛!
“저 깔려 죽는 거 보기 싫으면 움직이시면 안 됩니다!”
-그렇지만….
“이제 다 끝났습니다. 조금 조심 좀 해주세요. 제 몸은 정말로 연약하단 말입니다.”
-조심하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이 연구가 하루아침에 끝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조금 서두른 것도 도대체 어느 정도의 시간을 쏟아 부어야 할지에 대해 감이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곧바로 마음의 눈을 켜고 그녀의 혈액을 연금 키트에 옮기기 시작.
그녀의 혈액은 조금씩 분리되서 각각의 플라스크에 옮겨졌고 곧바로 이쪽이 상정하고 있던 촉매들과 반응을 일으켰다.
그다지 결과를 바라고 한 일은 아니다. 준비해 놓은 설비에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에 대해 확인하는 게 먼저다.
세포를 추출하고 유전자 검색을 하는 것도 당연한 부분.
내가 가지고 있는 장비와 마력으로는 연산하는 시간이 조금 걸릴 수도 있기 때문에 이 장비로 먼저 돌려놓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어디서부터 파고들어야 돼?’
[전설 등급의 촉매 -----를 최초로 발견합니다.]
[지력 1이 올라갑니다.]
[전설 등급의 촉매 -----를 최초로 발견합니다.]
[지력 1이 올라갑니다.]
[전설 등급의 촉매 -----를 최초로 발견합니다.]
[지력 1이 올라갑니다.]
[촉매의 이름을 직접 입력해 주세요.]
[새로운 칭호를 얻었습니다.]
[최초 발견자]
[대륙에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물질을 발견한 플레이어를 위한 칭호입니다. 지력이 1올라갑니다.]
[용을 실험한 연금술사]
[대륙 최초로 살아있는 용에 대해서 탐구한 플레이어를 위한 칭호입니다. 지력이 1 올라갑니다.]
[연금술과 진리에 대한 당신의 끝없는 탐구심과 모험심에 경외를 표합니다.]
[전설 등급의 새로운 직업을 발견합니다.]
[드래곤 알케미스트-고유 전설 등급]
“사랑해 임자!!”
그녀가 내 전 재산을 까먹었다는 사실은 이미 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