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
회귀자 사용설명서 196화
용의 둥지, 실험, 전직, 강화 (4)
성과가 있을 거라는 건 이미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던 일이었다.
그야 디아루기아는 용족으로 분류되는 전설 등급의 몬스터였고 그녀의 몸은 아직 미지에 둘러 쌓여 있었으니까.
그렇지만 이 정도로까지 내게 커다란 선물을 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드래곤 알케미스트 - 고유 전설 등급]
‘고유 전설!’
무려 고유 전설 등급이다. 영웅 등급의 직업을 얻을 때도 기쁘기는 했지만 보라색으로 몸이 반짝이던 예전과는 이펙트 자체가 다르다.
“와….”
온몸에서 황금색 빛이 터져 나오는 효과는 말로만 듣던 전설 등급으로의 전직을 알리는 이펙트.
내가 대단한 사람이라도 된 기분이다.
계속해서 몸 안에서 터져 나온 황금빛은 꺼질 생각을 하지 않고 한껏 올라간 입가에 미소도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전설 등급!’
결국에는 눈이 조금 아프다는 생각이 들 때 즈음에야 빛이 사그라들기 시작. 그렇지만 여운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푸흣… 푸흐흐흐흐흐.”
칠칠맞지만 계속 웃음이 나온다.
기쁘지 않은 것이 이상하리라.
이 대륙에서 뭐라도 하나 전설이라는 걸 가지고 있다 게 의미하는 바가 크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미각성 상태로도 충분히 제 효율을 발휘하는 율리에나. 전설 등급의 특성 마음의 눈. 그리고 이번에는 전설 등급의 직업까지.
지금까지 나를 개무시했던 총평에게 이제는 누가 장님인지에 대해 물어보고 싶을 정도.
보통 다섯 번째나 여섯 번째에 전설 등급의 직업이 열린다는 게 대륙의 상식이라는 걸 생각해 보면 재능이 없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내 성장 속도는 빠르다.
‘물론 능력치는 형편없지만….’
일반 전설이 아니다. 무려 고유 전설 등급이다. 이 직업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은 이제는 대륙에서 내가 유일하다는 것만으로도 이번 성과는 가치가 있다.
[드래곤 알케미스트 - 고유 전설 등급]
[지금까지 발견되지 않은 새로운 종류의 직업입니다. 무구한 세월을 자랑하는 대륙의 역사에도 살아 있는 용을 촉매로 한 연금술은 시도해 보지도 실행되지도 못했습니다. 그 업적을 높이 평가해 드래곤 알케미스트를 고유 전설 등급으로 판정합니다. 모든 연금술사가 당신의 위대한 업적에 놀라움을 표시합니다. 드래곤 알케미스트는 용을 촉매로 연금술을 사용할 수 있는 유일의 연금술사입니다. 어떤 것을 가능하게 할지는 당신의 연구와 연금기술에 달려 있습니다. 지력이 +6 올라갑니다. 마력이 +7 올라갑니다. 용에 대한 이해도가 올라갑니다. 전 직업 생체연금소환사의 직업 효과는 그대로 유지됩니다. 고유 전설 등급 드래곤 알케미스트의 직업 효과로 만들어낸 일부의 결과물을 소환수로 판정합니다.]
‘이야!!!’
[플레이어 이기영의 상태창과 재능수치를 확인합니다.]
[이름 - 이기영]
[칭호 - 용병여왕의 정부, 베니고어 신성 제국의 명예 주교, 용의 배우자, 최초 발견자, 용을 실험한 연금술사]
[나이 - 25]
[성향 - 용의주도한 전략가]
[직업 - 드래곤 알케미스트 - 고유 전설 등급]
[직업 효과 - 기초마법지식 습득]
[직업 효과 - 기초연금지식 습득]
[직업 효과 - 중급연금지식 습득]
[직업 효과 - 특수소환지식 습득]
[직업 효과 - 고급연금지식 습득]
[직업 효과 - 용전문연금지식 습득]
[능력치]
[근력 - 21/성장한계치 일반 이하]
[민첩 - 22/성장한계치 일반 이하]
[체력 - 30/성장한계치 일반 이하]
[지력 - 87/성장한계치 영웅 이상]
[내구 - 22/성장한계치 일반 이하]
[행운 - 65/성장한계치 영웅 이상]
[마력 - 45/성장한계치 일반 이하]
[장비]
[저주를 내리는 검 율리에나 - 전설 등급 - 주인 의식]
[라무스 터커의 연금학개론 - 영웅 등급 - 연금술사 전용]
[마력 방패의 반지 - 희귀 등급]
[특성 - 마음의 눈 - 전설 등급]
[총평 - 더 이상 자력으로 성장하지 않는 마력 능력치를 꾸역꾸역 올리기 위해 열심히 하는 모습이 측은하기도 합니다. 45의 마력 능력치를 가지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지만 일단은 박수라도 드리고 싶군요. 여전히 다른 능력치는 형편없지만 곧 90을 돌파할 지력 능력치와 고유 전설 등급의 직업을 얻은 것은 칭찬해드리고 싶은 부분이네요. 앞으로는 조금 기대해 보겠습니다만… 너무 자만하지 말도록 하세요. 지력과 마력과 행운을 제외한 능력치들은 단 1도 올라가지 않았으니까요.]
‘나 어차피 연금술사다, 이놈아. 그게 뭔 상관이야.’
사실 상관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근력과 민첩, 내구야 그렇다고 쳐도 체력은 상당히 중요한 요소니까.
렇지만 후회될 정도는 아니다.
내가 45 스탯의 마력을 가지게 될 줄은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이게… 45스탯의 마력이다!’
다른 마법사들에 비하면 여전히 절망적인 수치지만 내 안에 들어 있는 어마어마한 마력에는 웃음이 나왔다.
물론 내 기준에서나 어마어마한 마력. 살짝 손에 마력을 밀어 넣고 품 안에 제법 단단해 보이는 촉매를 잡고 힘을 주자….
‘제길.’
부셔지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그 촉매를 내려놓고 다른 촉매를 집어 들자 또각 하는 소리와 함께 녀석이 부셔져 나갔다.
‘헐크!’
마치 헐크라도 된 듯한 기분이었다. 30대의 마력 능력치로 할 수 없는 일들이 40대에서는 가능해진다.
마력 운용을 통한 일시적인 신체의 강화.
기분이 좋은 것은 그것뿐만이 아니다. 최근 잘 오르지 않는 지력 능력치도 폭발적인 성장을 이뤘다.
지력 스탯이 90이 되면 특성 하나가 더 열린다는 것은 이미 황정연을 통해 들었던 적이 있다.
연구하는 동안 지력 스탯 3을 올리는 건 아마 일도 아니리라.
물론 89에서 90으로 넘어갈 때 뭔가 제한이 걸려 있을 수도 있기야 하겠지만 당장은 성장하는 데 문제가 없다.
어차피 나는 이제 겨우 4차 전직을 이뤄냈을 뿐이고 아직 5차가 남아 있으니까.
이제 들어온 지 1년 밖에 되지 않은 인간의 성장 속도로는 이해하기 힘들다.
나와 함께 들어온 녀석들은 고작해야 3차 직업이나 2차 직업에서 빌빌 거리는 것이 태반.
김현성 파티를 꽉 잡아야 한다는 내 선택은 완벽하게 들어맞았다.
나는 그 덕을 톡톡히 봤고 덕분에 매우 기분 좋아지는 상황을 함께할 수 있었다.
계속해서 정신없이 얻은 것들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던 중에 말을 걸어온 것은 나를 한심하게 바라보고 있었던 디아루기아다.
-뭔가 얻은 게 있는 겁니까?
“덕분에 아주 좋은 걸 얻었다니까. 사랑해, 여보. 아이구! 아이구!”
디아루기아의 신분은 미친 여편네에서 사랑스러운 임자로 승급.
그림으로 그린 듯한 태세전환.
이 기쁨을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어 그녀의 커다란 얼굴로 달려가 가죽에 찰싹 달라붙어 정신없이 뽀뽀세례를 퍼부었다.
-징그럽습니다. 이러지 말아 주시겠습니까?
“아니 우리 사이에 뽀뽀 정도는 할 수 있지!”
-아무튼 간에 이러지 말라고 말 했습니다. 이런 애정 표현은 불편하고 불쾌합니다. 이럴 시간이 있다면 빨리 실험을 끝내고 우리 디아루리아에게 조금 더 신경써 주도록 하세요. 역시 인간들이란….
“우리 이쁜이! 어째서 이 매력을 그동안 몰라봤을까. 반들반들한 광택하며 쭉 뻗은 뿔하며! 안 예쁜 곳이 없네.”
-왠지 모르겠지만 칭찬인데도 불구하고 굉장히 불쾌합니다.
“흐흐흐!”
-징그럽게 달라붙지 말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달라붙지 마세요. 움직일 겁니다.
“아이고 사랑스러워라… 움직이면 나는 깔려 죽습니다, 임자.”
-이, 이런 인간이….
솔직히 조금 흥분한 상태다. 아니, 조금이 아니라 많이 흥분한 상태라고 하는 게 맞다.
고유 영웅 등급 생체연금소환사를 얻었을 때도 기쁘기는 했지만 그때와 지금은 와닿는 느낌 자체가 다르다.
어차피 이곳에서는 나를 보는 사람도 없으니 혼자 기분 내는 것 정도야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디아루기아도 처음에는 질색하는 표정이기는 했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자 포기한 건지 조용히 한숨을 쉬는 것이 보인다.
그녀의 한숨에 밀려드는 바람에 살짝 휘청거리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기쁜 마음을 숨길 수 없는 것이 당연.
디아루기아가 다시 한번 말을 걸어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그래서… 뭘 얻으신 겁니까.
“큼큼….”
-빨리 말씀해 주시죠. 감추려고 하시는 거라도 있는 겁니까?
“아닙니다. 조금 흥분을 가라앉힌 것뿐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것보다 당신의 몸이 가치가 나간다는 걸 알았거든요.”
-결국 욕심 때문이었군요.
“딱히 그런 건 아닙니다. 뭐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만….”
-…….
“…….”
-빨리 말씀이나 해주시죠.
“물론입니다. 이 대륙에서 살아가는 인간은 당신과는 다르게 직업을 부여받습니다. 인간 형태의 당신도 직업을 부여받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인간들은 그래요. 아! 이 이야기는 너무 복잡하니 일단은 넘어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니까요. 저번에 제 직업이 연금술사라는 건 이미 말씀드렸을 겁니다.”
-기억하고 있습니다.
“연금술사는 진리를 탐구하는 이들이 부여받는 직군입니다. 마법사에서 파생된 직군이기는 하지만 그들과 추구하는 게 다르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죠.”
-당신과는 별로 어울리지 않군요.
“일부 인정합니다. 아무튼 간에 조금 거창하게 말씀드린다면 당신의 몸에서 나온 유전자와 혈액 같은 것들은 대륙에서 발견되지 않았던 재료입니다. 물론 곧바로 촉매로 활용하기에는 무리가 있기 때문에 정제과정을 거쳐야 하지만… 그래도 최초로 발견되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죠. 다시 말해 이 세 가지 물질은 원래는 이 세상에 없었던 물건이라는 겁니다.”
-그건 제 혈액이 아닙니까? 이 세상에 없었던 물질이 아니라 기존부터 엄연히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정제 과정을 거치고 촉매화에 성공했으니 온전히 당신의 혈액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지요. 엄연히 말하면 원활한 활동을 돕는 몇 가지 촉매와 함께 이루어진 합성촉매입니다. 주재료가 당신의 것이라는 것에는 변함이 없지만요. 단순히 화학 반응을 보려고 일으킨 실험이 대박을 터뜨린 겁니다. 물론 사전에 계산을 조금 해놓기는 했지만… 이렇게 잘될 줄이야 솔직히 저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수백 개의 플라스크 중에 살아남은 것은 딱 세 가지다.
얼핏 보면 그다지 커다란 성과를 내지 못한 것 같기는 하지만 첫 실험부터 잭팟을 터뜨렸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는 거다.
영롱하게 빛나고 있는 전설 등급의 촉매들은 보기만 해도 짜릿해질 정도.
커다란 눈으로 그것들을 조용히 바라보는 디아루기아의 표정에 언뜻 흥미가 스쳐지나갔다.
-이름이 뭡니까?
“미정입니다.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이건 처음으로 발견된 촉매라고요. 마침 딱 세 가지이니 이름도 당신과 저 그리고 우리 똘똘이가 하나씩 정해도 될 것 같군요.”
-아….
뭔가 조금은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커다란 눈이 한 번 크게 꿈뻑였다.
“정확한 계산 없이 질러놓은 것들이라 아직까지 어떤 효과를 일으키는지, 어째서 이런 결과물이 나왔는지 정의하고 증명하는 시간이 남기야 했지만 정리하는 과정은 그다지 어려운 것도 아닙니다.”
-도움이 된 거군요.
“물론입니다. 그리고 얻은 것은 이것뿐만이 아니에요. 아까 말씀드렸지요. 인간들은 특정 행동을 통해 직업을 부여받는다는 것 말입니다.”
-네.
“이 세 가지 촉매의 발견 그리고 당신의 몸에 대해 자세히 들여다보기도 전에 직업을 부여받았습니다. 최상위 등급의 직업이고 용족을 전문으로 연구하는 직업이라고 하는 게 맞겠군요. 당신에 대해서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이 말입니다.”
-특별한 힘을 부여받았다는 말씀이십니까?
“네. 그렇게 생각해도 될 겁니다. 물론 아직은 초기 단계이기 때문에 조금 더 연구가 필요합니다만….”
-아…
“연구가 완료된다면 여러 가지 일을 할 수 있을 겁니다. 이를 테면 당신의 숨결을 이 조그만 플라스크에 담아 넣는다든가.”
-브레스?
“같은 화력을 기대하기는 힘들겠지만 아마 그렇게 될 겁니다.”
-불가능합니다. 저 작은 유리병에 제 브레스를 담아 놓을 수 있다는 건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듭니다.
“불가능하고 말고는 연구에 들어가 봐야 알 수 있는 일입니다. 저는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고 있어요.”
-아마도 불가능할 겁니다.
“가능할 겁니다. 이런 것도 가능해졌으니까요. 제가 세 번째로 얻은 직업이 생체연금소환사라는 직업입니다. 이 직업의 효과와 지금 얻은 드래곤 알케미스트라는 직업의 효과를 생각해 보면….”
디아루기아의 세포로 만든 촉매를 손에 쥔 순간 촉매가 마력으로 변한 뒤 주변에 맴도는 것이 느껴졌다.
본래 스위치와 리모컨이 있어야 했던 예전과는 반대로 용의 촉매는 그런 복잡한 과정이 완전히 삭제됐다.
촉매 하나만 있으면 모든 게 가능하다. 고유 전설 등급의 직업 보정 효과라고 할 수 있으리라.
파직! 파직! 하는 소리와 함께 손에 묘한 기운이 튀었다.
디아루기아가 그런 날 멍하니 바라보는 것은 당연.
내가 뭘 할지 꽤나 궁금한 모양이다. 나도 어떤 결과물이 나올지 궁금하다.
손에 맺혀 있는 기운을 이용해 수인을 맺고 땅바닥을 짚는 순간 조금 떨어진 곳에서 커다란 용의 손이 땅바닥에서부터 생성되기 시작.
마력은 순식간에 빠져나가고 파직! 파직! 하는 소리와 함께 튀어나온 용의 팔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어….
“엄청 좋네…. 이거….”
-말도 안 돼… 당, 당신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의 디아루기아.
당연하지만 그런 표정을 하고 있는 것은 디아루기아뿐만이 아니었다. 나 역시도 내가 만들어낸 결과물이 황당하다.
-신이라도 되는 겁니까? 지금 당신이 한 건! 상식적으로!
“아 엄연히 저건 생명체가 아닙니다. 아직까지는 파괴력도 기대하기는 힘들어요. 그리고 저는 진짜 용을 만들어 낼 수도 없고요. 이건 실험으로 가능한지 불가능한지에 대해서 따질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인간 형태의 호문클루스를 만들어 내는 것도 엄청난 시간과 비용이 소모되니까요. 그게 가능하다면 당신의 말대로 저는 인간이 아니라 신의 영역에 있을 겁니다. 당신같이 복잡하고 고귀한 생명체를 만들어 낼 수는 없어요. 물론 하위종은….”
-하위종은 가능하다는 겁니까?
“불가능합니다.”
-그렇군요.
“아직은.”
커다란 용이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디아루기아의 클론을 만들 수 있는 건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그 외의 드레이크 종에 대한 클론 양산은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브레스 물약 같은 가능할 것 같은 아이디어도 계속해서 떠오르기 시작.
물론 이 연구의 최종 목적, 박덕구의 강화 방법에 대해서도 생각할 게 많다.
‘어쩌면 정말로 가능성이 있을 수도 있어.’
정말로 파란 길드의 마크가 새겨진 방패를 집어 던지는 캡틴 린델을 만들어 낼 수 있을 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