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3
회귀자 사용설명서 203화
영웅은 만들어진다. (1)
확실히 이지혜에게는 기왕 할 거 제대로 해달라는 주문을 한 적이 있었다.
‘정말로 위기 상황처럼 느껴지게끔 하는 게 좋겠는데… 어색하면 안 하느니만 못 해.’
‘일단 오빠네 파티를 무력화시킬 수 있을 정도면 된다는 거 아니에요? 평 길드원으로는 택도 없겠네요.’
‘그렇게 되나?’
‘끄응…. 지금 간부들은 바쁜 타이밍인데…. 간부 한 명 껴봐야 별로 달라지는 것도 없을 것 같고… 이 건은 제가 알아서 해볼게요. 어쩔 수 없죠, 뭐. 될지 안 될지는 모르겠지만 거래만 괜찮게 되면 아마 만족하실 만한 결과를 얻으실 수 있으실 거예요?’
‘뾰족한 수가 있어?’
‘일단은 비밀. 선물 상자는 그 장소에 가서 풀어보세요.’
분명히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다.
이지혜의 일처리 능력은 한 번도 의심한 적이 없었으니까.
뭔가 대단한 이벤트를 준비했을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설마 자신이 속해 있는 길드의 마스터를 움직일 거라고는 상상하지도 못했다.
어떤 걸 조건으로 내밀었는지도 대충 이해가 간다.
아마 김현성과의 만남을 조건으로 이번 이벤트에 참가하기로 결정을 한 것이 틀림없으리라.
물론 이지혜의 일처리가 완벽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지만….’
해내도 너무 제대로 해냈다.
“도망쳐어!!!!”
박덕구의 격정적인 반응만 봐도 답이 나온다.
쏟아진 마력과 살기를 정면으로 받은 뒤에는 승산이 없다고 판단을 내린 것이다.
물론 이곳에 있는 이들은 전부 강자로 분류할 수 있는 이들이다.
정하얀 역시 그렇고 김예리 역시 그렇다.
심지어 제일 스펙이 떨어지는 박덕구 역시 함께 들어온 1년 차 동기들과 비교해 봤을 때는 엄청난 성장을 이루어냈다.
그렇지만 그 모든 게 저 정도의 강자를 이길 수 있다는 지표가 되지는 않는다.
‘레벨이 달라.’
라고 생각하는 것이 틀림없다는 거다.
“갑, 갑자기 이게 뭔….”
“형님! 빨리 도망치쇼! 빨리!”
위험을 느낀 것이 자신뿐인 줄 알았는지 계속해서 목소리를 높이는 모습은 가관.
그만큼 녀석이 이쪽의 안전을 신경 쓰고 있다는 거겠지만 이게 연기가 아니라고 가정한다면 녀석이 저렇게 난리를 치는 것도 이유가 간다.
차희라와 맞부딪쳤을 때와는 이야기가 다르다.
김현성, 조혜진이 있었기 때문에 균형이 유지된 것이기도 했고 차희라가 이쪽의 사정을 봐주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백번 생각해도 박덕구 혼자서는 후위의 안전을 장담할 수 없다.
녀석 역시 그걸 실감하고 있기 때문에 저런 모습을 보이는 거겠지만 이쪽도 그때보다는 성장했다.
일단 저항하는 모습은 보이는 게 맞다.
반사적으로 정하얀도 주문을 외웠고 김예리도 단검을 고쳐 잡으며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여자를 경계하기 시작했다.
‘시바… 혹시 저거 진짜 여단 아니야?’
라고 생각할 정도의 살기.
마음의 눈으로 그녀를 들여다보고서 박연주가 맞다는 것에 조금은 안심할 수 있었지만 그래도….
‘무서워.’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진 것으로도 모자라 이쪽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려오는 그녀의 모습은 무섭다.
“앗…!!”
어느 정도 거리가 있었기 때문에 정하얀의 주문이 먼저 튀어나왔다.
콰앙! 하는 소리와 함께 수십 가닥의 마력이 박연주를 향해 쏟아지기 시작.
유도형인지 중간 중간에 꺾이기도 하며 그녀를 추적하지만 들고 있는 한 개의 단검으로 그 모든 공격을 막아내며 이쪽을 향해 돌진하고 있다.
탐색용으로 한번 던져본 마법인 만큼 그녀에게는 별 다른 영향을 끼치긴 힘든 모양.
당연히 나 역시 용숨결 물약에 마력을 집어넣을 수밖에 없었다.
최선을 다해서 저항해야 된다는 생각보다는 그녀가 쏘아내는 살기를 떨쳐내기 위한 행동이라고 하는 게 맞으리라.
위이이이이이잉!!!
콰아아아아아아아앙!!
정하얀의 마법 가닥을 쳐낸 이후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커다란 폭발일 터.
물론 다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이쪽이 전력을 다해도 저쪽은 여유가 있다.
용숨결 물약의 화력을 처음 봤는지 깜짝 놀란 박덕구가 이쪽을 바라봤지만 대답할 여유는 없다.
“집중해! 돼지 새끼야!”
“알, 알겠소. 형님!”
현재 박덕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그녀는 거리를 좁히려고 하고 있고 우리는 거리를 벌리려는 상황이었으니까.
정하얀은 그녀를 떨쳐내기 위한 주문을 외우고 나 역시 혹시 모를 변수에 대응한다.
‘자존심 상하니까.’
나와 정하얀이 어느 정도인지 시험해 보는 시험대이기도 하다.
“바람 발걸음!”
정하얀의 주문에 몸이 가벼워지기 시작.
그래봤자 저 여자의 민첩 수치에 비하면 미비하지만 체력적으로는 도움이 된다.
폭발이 걷힌 이후에는 역시나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모습으로 연기를 뚫고 지나온 얼굴.
표정을 보니 얼굴에 짜증이 묻어 있었다.
‘화나게 했나? 슈바….’
냅다 전설 등급의 물약을 던졌으니 저런 얼굴을 하는 것도 이해는 간다.
아까보다 조금 더 빠른 속도.
다시 한번 마력을 집어넣는다.
터지기 전까지 2초. 그렇지만 박연주가 이쪽으로 달려오기까지는 2초도 채 걸리지 않을 것이다.
위이이이이이잉!
그래도 일단 마력을 집어넣었으니 던지는 것이 맞다.
폭발 반경에는 우리 쪽도 포함되어 있었지만 굳이 신경 쓰지는 않았다.
코앞에 던진 이후에 곧바로 땅바닥을 손으로 집자 파직파직 하는 소리와 함께 커다란 용의 꼬리가 파티원을 감싸 안았다.
콰아아아아아아앙!!!
폭발의 반경에 노출된 것은 박연주 혼자.
이번에도 박덕구는 나를 깜짝 놀랐다는 표정으로 바라본다.
“이, 이게….”
“최근에 조금 성취가 있었어.”
“그렇구만….”
용의 꼬리가 사라진 순간 정하얀의 마법이 터져 나온다.
‘이거 이기는 거 아니야?’
꿈같은 상상을 잠깐 해봤지만 정하얀의 범위형 마법을 뚫고 접근하는 모습은 가관.
이번에는 조금 더 짜증난다는 표정으로 나와 정하얀을 응시하고 있는 표정이 보인다.
‘으아….’
조금 더 거리를 벌렸다고 생각했을 때였다.
‘어?’
조금 멀리 떨어져 있는 것처럼 느껴졌던 그녀가 우리 그룹에 섞인 채로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특성인가?’
마음의 눈으로는 이름만 확인한 것이 전부.
박연주는 순식간에 거리를 좁힐 수 있는 특성이나 능력을 가지고 있다.
급하게 촉매를 만지작거리자 다시금 파직파직 하는 소리와 함께 손에서 불꽃이 튀었지만 다른 행동을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곧바로 나를 향해 단검을 휘두르는 그녀의 모습이 시야에 비쳤으니까.
박덕구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튀어나온 것은 단검을 들고 있는 김예리.
콰앙!
“파란에는 인재가 많다더니… 정말이었네?”
작은 목소리가 튀어 나왔다.
그녀의 공격을 따라와 막았다는 것만으로도 김예리를 칭찬하는 게 옳다.
순식간에 무리 가운데에 나타난 그녀에게 반응한 사람은 그녀가 유일했으니까.
그렇지만 그게 그녀를 막을 수 있다는 소리는 건 아니다.
한 번의 공격은 막아냈지만 그 이후의 공격은 막아내지 못하는 것이 당연.
박연주는 단검을 회수한 이후에는 곧바로 발을 내질렀고 발에 맞은 김예리가 피를 울컥 토하며 반대쪽으로 날아가 커다란 나무에 처박혔다.
‘리타이어.’
“예리야!”
“네 걱정부터 하는 게 좋을 거야, 이기영.”
“으아아아아아아!”
김예리가 나무에 부딪친 이후에 깜짝 놀란 박덕구가 방패를 들고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안기모 씨는 예리를!”
“네… 네!”
급하게 김예리에게 달려가는 안기모의 등 뒤로는 수십 개의 단검과 검이 꽂힌다.
‘저것도 특성인가?’
“커헉!”
즉사하는 게 당연한 상처지만 비명을 내지르는 안기모를 보니 직접적인 대미지가 있는 공격은 아닌 것 같았다.
아마 특수하게 처리된 검일 확률이 높다.
“끄어어어어억….”
그럼에도 불구하고 질질 기어가며 혼신의 연기를 펼치고 있는 안기모의 모습은 가관.
봐주는 사람이 없는데도 저런 연기를 펼치는 것을 보니 난놈이긴 난놈이라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저렇게까지 할 필요 없는데….’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지르며 김예리를 치료하기 위해 엉금엉금 기어가는 모습은 전우를 잃은 이의 모습 그 자체다.
혼신의 연기에 나도 모르게 시선을 빼앗겼지만 이 무대의 주인공은 안기모가 아니다.
어디까지나 박덕구.
이 모든 무대는 녀석을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 맞다.
입술을 꽉 깨물고 박연주와 맞서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당연하지만 상대가 될 리가 없다.
오히려 휘둘리고 있는 듯한 느낌.
민첩 수치에서 차이가 나니 어쩔 수가 없다.
박덕구를 완전히 무시한 채로 정하얀에게 달려드는 박연주를 녀석이 막을 수 있을 리가 만무.
결국에는 정하얀 역시 가슴에 검정색의 검이 박힌 채로 일단은 리타이어.
나는 깜짝 놀란 모습으로 정하얀에게 다가가 가슴 쪽에 포션을 뿌려댔다.
‘진짜 꽂힌 거 아니지?’
살짝 눈을 뜨며 나를 바라보는 것을 보니 확실히 아무 이상 없는 모양. 검의 소재가 조금 궁금해지기는 했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오… 빠… 사랑….”
“살 수 있어, 하얀아.”
“사랑해요….”
“하얀아!!”
주문한 적이 없는 비련의 여주인공 연기를 끝으로 정하얀의 숨이 점점 가라앉기 시작.
그 모습을 본 박덕구가 방패를 휘두르며 비명을 질러댔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
예상은 했지만 꽤나 처절한 모습이다.
얼굴에는 자신의 무기력에 대한 원망이 담겨져 있었다.
너무나도 순식간에 일어난 일.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눈가에 눈물이 맺혀 있는 것 같아 조금 미안하기도 했다.
‘다 너를 위해서다, 덕구야.’
분명히….
‘할 수 있다.’
박연주는 정하얀에게 검은색 검을 꽂은 뒤로는 나를 노리지 않았다.
아직까지는 내가 정하얀을 붙잡고 오열하는 포지션에 있었으니까.
아마 박덕구를 무기력하게 만든 이후에 나를 처리하는 게 옳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게 조금 더 극적이기도 하다는 걸 그녀 역시 인지하고 있을 테니까.
계속해서 방패를 휘두르며 검을 놀리고 있었지만 너무나 당연하게도 박덕구의 검은 그녀에게 닿지 않는다.
“제기랄!! 제기랄!!!”
김예리에게도 닿지 못했던 검이 박연주에게 닿을 리가 없다.
오히려 농락 당하고 있는 모습.
철저하게 괴롭힘 당하고 있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점점 더 피투성이가 되어가는 외관을 보니 내가 다 안쓰러울 지경. 그럼에도 불구하고 놈은 검을 놓지 않는다.
어째서인지는 뻔할 뻔자.
녀석이 지금 나를 지키려고 한다는 건 누가 봐도 알 수 있을 것이다.
“도망치쇼! 형님! 빨리 멀리 떨어지쇼!”
같은 소리를 계속해서 입 밖으로 내뱉고 있었으니까.
“형님!”
‘엄청 미안한데….’
이 모든 게 연기라는 게 밝혀진다면 박덕구가 나를 때려 죽여도 할 말이 없을 정도로 화끈하게 일을 벌였다.
계획할 때부터 조금 미안한 짓을 할 거라는 걸 인지하고 있었지만 눈물 콧물을 흘리며 도망치라고 말하는 놈의 모습을 보니 괜스레 더 찡해진다.
녀석이 얼마나 나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는지 다시 한번 깨달았던 탓이다.
우리야 이 모든 게 가짜라는 걸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별 생각이 없었지만 녀석에게는 이 모든 게 현실이다.
자신이 이 여자를 막고 있을 테니 빨리 도망치라고 말하는 것은 정말로 자신의 목숨보다 내 목숨을 소중히 여긴다는 말과 같다.
단순히 말뿐만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물론 열정과 투지가 모든 일을 해결해 주지는 않는다.
시간이 지나자 박덕구는 숨을 헐떡이며 피투성이의 모습으로 박연주를 노려보기 시작.
이미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
박연주가 슬쩍 손을 들어 올리자 검정색 검이 하늘 위로 떠올랐다.
마치 처형이라도 하는 것 같은 모양새.
“도망치쇼… 형님…. 누님이랑 같이… 빨리….”
똑같은 말을 중얼거리는 녀석의 위로 검정색 검이 떨어지는 순간, 나는 몸을 옮겨 박덕구의 앞을 막아섰다.
박연주의 신호에 맞춰 몸을 움직인 것에 불과하지만 꽤나 극적이다.
내 몸에 검은색 검들이 꽂혔지만 고통은 없다.
몸을 움직이기 불편하기는 하지만 고통이 없다는 건 무척이나 신기한 부분.
당연하지만 등 뒤로는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마 박덕구가 보는 장면은 내가 양팔을 벌려 자신을 보호한 장면일 터.
누가 봐도 그림으로 그린 듯한 명장면이다.
“형님?”
“아….”
“형님?”
“돼지 새끼야, 도망… 쳐….”
미리 입에 머금고 있던 붉은색 포션을 왈칵 내뱉으며 박덕구를 바라보자 녀석의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졌다.
“형… 형니임… 형니임….”
어린애처럼 나를 부르며 울부짖는 모습은 가슴이 찡해 괜스레 감동스러울 지경.
이렇게까지 나를 생각하고 있을 줄은 상상하지도 못했다.
“형니임… 끄으으으윽… 형님!!”
“아….”
“형님! 형님!!”
“항상 기억해라… 덕구야.”
“가지 마쇼…. 가지 마쇼…. 기억하고 있으니까… 조금만 더 버티쇼… 조금만 더….”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된 얼굴이 조금 더 비정해진다.
아마 박덕구도 대충 인지하고 있을 것이다.
‘아직 살릴 수 있다.’
정하얀도 미세하게 숨을 헐떡이고 있었고 김예리도 마찬가지다.
물론 나 역시 아직 숨이 붙어 있다.
‘좋아.’
할 줄 아는 게 없는 돼지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기 시작.
이미 몸을 움직이기도 힘든 상태다.
저런 몸으로 녀석은 질질 짜서 최후를 맞는 것보다 일어서서 싸우고 지키는 것을 선택했다.
‘좋아! 슈바! 그거야!’
움직이지 않는 몸으로 검과 방패를 다시 한번 붙잡고 내 앞을 막아서는 녀석의 모습이 괜스레 듬직해 보이기 시작.
계속해서 중얼거리는 모습 역시 내 귀로 들어와 내리 꽂혔다.
“나는… 더 잘할 수 있다.”
녀석을 계속해서 지탱해 주던 대사였다.
모든 준비물이 모였고 상황 역시 충분히 극적이다.
본디 영웅이라는 놈들은 이런 상황에서 한두 개쯤 자신의 한계를 돌파하게 마련.
당연하지만 나는 녀석을 믿는다.
검과 방패를 다시 들어 올린 것만으로도 녀석은 충분히 자격이 있다.
“나는… 더 잘할 수 있다.”
아직까지 차가운 표정을 유지하고 있는 박연주가 다시 한번 손을 휘두른 순간, 수십 개의 검이 다시 한번 내 몸 위로 떨어진다.
박덕구는 방패를 들어 올렸고 의미를 알 수 없는 외침과 함께 녀석의 몸이 황금색으로 물드는 것이 시야에 비쳤다.
“전직….”
[플레이어 박덕구의 고유기벽을 확인합니다.]
[쓰러지지 않는 영웅]
‘그렇지!!!!!’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