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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205화 (204/1,590)

# 205

회귀자 사용설명서 205화

G.T.O (1)

거의 한 달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나는 검은백조 길드에서 약 일주일 정도의 응급처치를 받은 이후 파란으로 옮겨졌고, 파란의 병실에서 나머지 시간을 보냈다.

당연하지만 일주일이 지난 후에 붉은용병 소속이었던 안기모는 자신의 길드로 향했는데 그 과정에서 조금은 아쉽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탐나는 데….’

열정적인 연기를 보여준 녀석이 탐이 났기 때문이다.

서브 힐러면서 서브 탱커의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이 한 명쯤은 있어도 괜찮을 것 같다는 타이밍에 나타난 인재.

전투 성직자로서의 상태창도 나쁘지 않았고, 사실 무엇보다 성향이 이쪽과 조금 비슷한 게 가장 마음에 들었다.

내가 욕심을 내는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단순히 능력이 좋은 것을 넘어서 이 정도로 열정적인 배우를 다시 찾기는 힘들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조금 재미있었던 것은 녀석 역시 이쪽과 다시 한번 일해보고 싶다는 의사를 전해왔다는 것.

‘계약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붉은용병에서 나온다면 이후 갈 곳이 없으니 받아주겠냐는 의미로 던져온 질문.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당연하리라.

안 그래도 차희라에게 한번 찾아가려고 했었으니까. 다음에 붉은용병의 길드 하우스로 향할 때 안기모에 대한 이야기를 해봐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 본 지도 오래됐지.’

사실 차희라를 아예 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공식적으로 나와 정하얀, 김예리는 머더러 클랜의 습격을 받았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

세간의 시선을 위해서라도 차희라가 이쪽의 병문안을 오는 것은 당연한 행동이었다.

몇 마디를 나눈 이후에 민망해졌는지 빠르게 발걸음을 돌리기는 했지만 오랜만에 인사를 주고받을 수 있어 나쁘지는 않았다.

그 와중에 검은백조는 신성제국의 제국 8좌 중 한 명이 머더러 클랜의 습격을 받았다는 공식 발표를 진행했고 도시 내에 있는 린델에서의 영향력을 과시했다.

이 건은 차희라와 김현성 역시 공식적으로 찬성한 부분.

김현성은 물론 파란의 주요 인물들은 이 소란이 전부 박덕구 한 명을 위해 진행된 몰래 카메라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이런 커다란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

아마 이지혜의 작품이리라.

검은백조와 붉은용병 그리고 파란.

이 삼자동맹은 곧바로 도시의 경계를 강화시켰고 안보를 핑계로 도시 안에서의 영향력을 행사했다.

이지혜와 김현성을 믿고 있으니 자세한 보고서는 확인하지 않았지만 최근 조금 안주해 있는 도시에 경각심을 일깨워 줄 수 있는 사건이라 생각한 모양인지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물론 검은백조의 마스터인 박연주는 이걸 빌미로 김현성과 만나는 걸 조금 더 기대하고 있는 듯했지만 이지혜를 통해 들은 말로는 그다지 진전이 없었다고 하니 내가 자리를 만드는 것은 이미 확정된 사안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머리 아파지겠는데….’

우리 사랑스러운 회귀자의 뒤를 봐주는 것은 항상 내가 해왔던 일이지만 녀석의 연애에도 한 발 걸친다고 생각하니 생각이 조금 복잡해졌다.

큰 그림을 그려본다면 녀석이 박연주와 이어지는 것은 양 길드 모두에 이득이 된다.

도와주지 않을 이유가 없으니 이번 일만 잘 마무리된다면 한번 손을 써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당연하지만 검은백조의 움직임은 박연주 개인의 욕심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일단 가장 먼저 이쪽에 나왔던 이야기 중 하나가 용숨결 물약을 판매해 줄 수 있냐는 것.

노골적인 금액과 노골적인 제안이 오고갔지만 별로 놀라지는 않았다.

단순히 마력을 집어넣는 것만으로도 정신 나간 화력을 보여줄 수 있는 물약이니 이들이 판매해 달라고 아우성치는 것도 이해가 갔기 때문이다.

당연하지만 용숨결 물약을 시중에 판매할 생각은 없었다.

애초에 생산 과정이 까다로워 만들 수 있는 물량이 한정되어 있어 대량생산이 불가능하다.

공장에서 만들 수 있는 물건이 아니라 핸드메이드로만 만들 수 있는 물건이라는 거다.

물론 한두 개 정도야 판매할 수도 있기는 하지만 이쪽의 밥줄을 넘긴다는 게 그다지 기분 좋게 다가오지는 않았다.

아무튼 간에 전체적으로 정리해 보자면 생각 없이 던진 돌이 쓸데없이 커다란 파문을 일으킨 셈이다.

“끄으으으윽… 어어엉….”

물론 눈앞에 있는 돼지는 아직도 그 파문의 영향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이제 아픈 데 없다니까. 그만 울어라, 덕구야. 한 달이나 지난 일 이잖아.”

“그렇지만….”

“쯧. 다음부터 조금 조심하면 되는 거니까. 네 잘못이 아니야. 이번에는 내가 잘못한 게 맞다.”

“형님 잘못이 아니요.”

“조금 더 치밀하게 움직였어야 했어. 준비하기 전에 조금만 더 꼼꼼하게 살펴봤다면 애초에 이런 일이 생기지는 않았을 거다. 안기모 씨의 말대로 자신감이 넘쳤다고 하는 게 맞겠네.”

“무… 슨 말이요?”

“왜? 막 1년이 지난 플레이어들은 자신감이 넘쳐서 무리한 원정을 떠나기도 한다는 이야기. 그게 나한테도 해당되는 이야기였다는 거지. 사실 무슨 일이 생긴다는 상황을 별로 상상하지는 않았거든. 만약에 일어난다고 해도 해결할 만한 자신감이 있었고. 막말로 머더러 클랜이 우리를 습격해도 당연히 이겨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 이번 일은 커다란 교훈을 준 셈이야. 우리는 끝부분에 서 있는 게 아니라 이제 출발점에 서 있다는 거지. 잃은 것보다는 얻은 게 더 많다고 본다. 내 일뿐만이 아니라 네 일도 그렇고.”

“아….”

“그래서 어때? 전보다 강해진 기분은? 시험은 조금 해봤어?”

“뭐, 이것저것 시험해 본 건 아니요. 이상희 고문님이랑 형씨랑 대련 몇 번 해본게 다인데… 두 사람은 아주 만족스러워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사실 나는 뭐가 달라진 건지 잘 모르겠소. 확실히 몸은 단단해 졌지만… 아! 내구 능력치는 이제 90이요!”

“그래?”

“여전히 검을 맞히기는 어렵고 고급 마력 운용 지식이니 고급 방패술이니 뭐니 머릿속으로 떠오르는 건 많지만 아직 이 지식을 전부 흡수하지는 못했으니….”

“너무 급하게 생각하지 마라, 덕구야.”

“아….”

“넌 지금 충분히 잘해내고 있고 실제로도 강해. 솔직히 말하면 내가 기대한 것 이상이야. 네 머릿속에 있는 건 어디 도망가지 않을 거다. 지금처럼 착실히 한다면 지금보다 더 큰 성과를 얻을 수 있을 거라는 거야. 그리고….”

“형님….”

“이건 미안하다.”

슬쩍 강화의 혈청을 침대 옆에 있는 테이블 위에 내려놓으니 그걸 빤히 바라보는 녀석이 시야에 비쳤다.

“널 믿지 못해서 그랬던 게 아니었어.”

“아….”

지나치게 감동한 것 같은 표정이 눈에 보인다.

조금 낯간지러운 소리를 하려고 했었는데 표정을 보니 몇 마디 더 내뱉었다가는 녀석의 사정없는 포옹을 온 몸으로 느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

결국에는 짧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항상 말해왔던 것처럼 나는 너를 믿는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너는 더 잘할 수 있어.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그 생각은 변함이 없고… 아무튼 간에 축하한다. 덕구야.”

“형니임….”

“알았으니까 울지 마. 이제 지겹다.”

“꺼으으으윽… 예리야.”

다시 한번 눈에 눈물이 슬금슬금 차오르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이 상태가 한 달은 더 지속될 것 같았다.

녀석을 밀치자 이번에는 옆에 있는 김예리의 팔을 부여잡으려고 했지만 김예리가 받아줄 리가 없다.

오히려 김예리는 필사적으로 녀석에게서 시선을 돌리는 중.

아직도 죄책감이 아물지 않은 것이다.

‘덕구 아저씨 눈. 못 쳐다보겠어.’

라고 실제로 말한 적이 있을 정도니 다른 말은 필요 없으리라.

“하얀이 누니임… 꺼어으어억….”

“이, 이제는 정말로 괜찮아요. 건강해요. 이렇게 걸어 다닐 수도 있을 정도예요!”

다른 사람의 일에 죄책감 같은 걸 잘 느끼지 않는 정하얀도 민망해하기는 마찬가지.

평소에는 괜찮았지만 녀석이 눈을 글썽거리며 어디 아프지 않냐고 물어볼 때면 모두가 같은 반응을 보이기는 했다.

솔직히 나도 제대로 녀석을 마주하기가 민망하다. 아마 안기모 정도가 녀석을 제대로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형님은….”

사실은 나 역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상태다. 녀석이 계속 쫄레쫄레 따라다니다 보니 침대에 누워 있는 게 더 좋을 것 같다고 판단했을 뿐이다.

아무리 변명해 봤자 믿지 않을 것 같은 느낌에 함께 자리해 있는 선희영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나도 문제없어. 실제로 여기서 업무도 같이 병행하고 있으니까. 희영 씨도 이제는 문제가 없다고 하기도 했고… 그렇지 않습니까?”

“네. 외상은 완벽하게 다 나았습니다. 다른 부작용도 없고요. 다른 분들보다 회복이 더딘 건 직업 특성상 어쩔 수 없으신 것 같습니다.”

“봤지?”

“아마 일주일 이후에는 평소처럼 행동할 수 있으실 겁니다.”

“그…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그러니까 기영 씨가 몸을 편히 쉴 수 있도록 배려해 주셨으면 좋겠네요.”

‘나이스, 선희영.’

이쪽의 마음을 이해하고 있다.

내가 혼자 있고 싶다고 한 걸 완벽하게 이해한 것이다.

정곡을 찌르는 한마디에 박덕구는 괜스레 헛기침을 두어 번 하며 김예리와 정하얀을 데리고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물론 정하얀은 그다지 나가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았지만… 그녀 역시 덕구 녀석과 쌓인 이야기가 있을 테니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결국에 방에 남은 것은 나와 선희영이 전부.

생각해 보니 둘이 이렇게 함께만 있는 것은 조금은 오랜만이다. 별로 어색한 것은 없지만 묘하게 얼굴이 붉어져 있는 얼굴이 굉장히 신경 쓰였다.

‘얘는 사리 분별은 할 줄 아니까.’

솔직히 파란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무척이나 고맙다.

잠깐 동안의 침묵이 조금은 거슬렸기 때문에 슬쩍 입꼬리를 올리며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물론 사무적인 이야기였다.

“그러고 보니 튜토리얼 던전은 조금 어떻습니까?”

“아… 원래는 이 정도 시기쯤에 열리는 게 보통이기는 한데… 이번에는 조금 늦는 모양입니다.”

“그렇군요.”

“네. 아마 잠시 후면 열릴 겁니다. 저도 이곳에서 그리 오랜 시간을 보낸 것은 아니지만 보통 이 정도 시기쯤에 열리고는 하니까요.”

“아아아아…. 그러고 보니 희영 씨는 제법 오랜 시간 동안 지내셨죠.”

“네. 사실 그때 당시에는 뭔가 생산적인 일은 하지는 않았지만요. 그 시절의 저를 생각해 보면 그냥 죽어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네?”

“이런 말이 조금 우습게 들리실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최근에야 조금 살아 있다는 감각을 느끼고 있어요. 참된 의미의 봉사에 대해서도 그렇고 파란에서 하는 일도 그렇고요. 제가 예전에 하던 일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 일이었는지에 대해서도 항상 생각하게 되고요. 전부 기영 씨 덕분입니다.”

“하하하. 제가 한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전부 희영 씨가 잘해주신 덕분입니다.”

“아니요. 저는 정말로 기영 씨에게 감사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번에도 어째서 이런 일을 벌였는지에 대해서도 알 것 같고요.”

“네?”

“덕구 씨를 빌미로… 도시밖에 있는 살인자들을 확실하게 처단하기 위해 계획을 세우셨다는 거….”

‘뭔 소리야.’

그런 계획을 세운 적은 없다.

그렇지만 눈앞에 있는 미친 사제는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생각하는 모양.

확실히 저런 방향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도시 내에서 머더러 클랜을 더 이상 내버려 둬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도중이니까.

“저 이런 생각은 주제 넘는다는 걸 이해하고 있고 또 죄송합니다만… 저… 기영 씨!….”

‘무슨 생각인데….’

괜스레 불안해진다.

갑작스럽게 이쪽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는 것 선희영의 얼굴이 시야에 비친다.

묘하게 두 뺨이 붉어져 있었고 한쪽 손으로 자신의 가슴을 부여잡고 있는 모습.

조금 호흡이 거친 것 같은 느낌이 있었지만 흥분한 것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조금 애타게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기도 했고 긴장하고 초조해하는 것 같기도 했다.

‘아….’

왠지 모르게 그녀가 신호를 보내오고 있다는 걸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바보라도 그녀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는 깨달을 수 있다.

‘뭐야 갑자기. 이런 타이밍에….’

입술을 오물거리고 있는 게 당장에라고 고백할 것 같은 분위기.

이 미친 사제가 나에게 은근슬쩍 호감을 느끼고 있다는 건 대충은 알고 있었지만 이런 움직임을 보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녀는 항상 몇 발자국 뒤에서 이쪽을 지켜보는 포지션이었으니까.

저번에도 한 번 움직임이 있었기는 했지만 지금은 그때보다 조금 더 저돌적이다.

‘예쁘긴 예쁘네.’

확실히 예쁘긴 예쁘다.

괜히 버림받은 자들의 성녀라고 불린 것이 아니다.

물론 그녀의 행동과 품성도 당연히 영향을 끼치고 있겠지만 린델에서 성녀라고 불리게 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그녀의 외모에 있으리라 확신할 수 있었다.

딱 어깨까지 오는 머리카락에 항상 입고 있는 단정한 사제복. 차분해 보이는 분위기는 ‘성인 여성이라는 건 이런 느낌이다’라는 생각이 들게 할 정도.

이쪽도 남자인지라 두근거리는 것은 당연지사. 저런 진지한 얼굴로 나를 마주보니 괜스레 가슴이 선덕거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오빠!”

벌컥 하고 문이 열린 것은 바로 그때. 노크도 없이 이쪽의 병실에 문을 연 것은 정하얀이었다.

“어?”

신체적 접촉은 없었다.

타이밍 좋게 튀어나오기는 했지만 저번에 호되게 혼난 이후에도 이런 행동을 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부분.

아마 뭔가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정하얀의 얼굴이 조금 흥분한 것처럼 보였으니까.

화를 내기보다는 일단은 차분히 말을 기다렸고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확신할 수 있었다.

“튜토리얼 던전이 열렸어요! 붉은용병에서 오빠를 선생님으로 모시고 싶대요!”

“재미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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