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7
회귀자 사용설명서 207화
G.T.O (3)
‘해야지.’
냉정하게 판단해 보면 하는 게 옳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고 실제로도 하겠다고 결정을 내렸다.
당연하지만 우선교섭권 다섯 장이 탐이 난 것은 아니었다.
물론 타 길드보다 공략조를 영입하는 데 도움이 되기야 하겠지만 굳이 그게 아니더라도 신입들을 천천히 살펴보는 일은 오히려 내가 차희라에게 부탁하고 싶은 일들 중 하나.
누가 재능이 있고 누가 재능이 없는지 먼저 살펴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내게는 커다란 이점이다.
즐거운 보석 찾기를 대놓고 할 수 있는 시간이라는 거다.
조금 의외였던 것은 이번 신입들에 대한 붉은용병의 선택이었다.
‘공략조고 나발이고 전부다 훈련 받게 할 거야. 물론 걔네들한테 조금 더 신경을 써주기는 할 거지만 그걸로 끝이라는 거야.’
‘특별 취급을 하지 않는다는 거야? 그래도 돼? 우선교섭권을 가지고 있는 의미가 없잖아, 누나.’
‘자기, 나 차희라야. 이제 막 들어온 병아리들한테 잘 보이고 싶다고 특별 취급해 준다는 게 가당키나 해? 눈치를 봐야하는 건 내가 아니라 그 병아리들이야.’
‘그렇네….’
‘저번 튜토리얼 던전 때는 자기네 파티가 조금 특별한 케이스였고 파란에서도 급했기 때문에 이상희가 특별대우를 해준거지. 보통은 그렇게까지 하지는 않아. 어차피 공략조고 생존조고 내 눈으로 보기에는 거기서 거기인 애송이 들이고 제대로 한번 교육해 보는 게 낫다는 거야. 이번 년도 신입들을 엉망으로 교육시켰다는 소리가 나오는 건 내 쪽에서 사양이거든….’
‘그런 것까지 신경 쓰고 있을 줄은 몰랐네.’
‘작년에 파란이 얼마나 욕먹었는지는 알고 있는 거지?’
‘어?’
‘니네 파티 영입하기에 바빠서 신입 교육을 거지같이 했거든…. 물론 각 길드나 클랜에 가서 다시 한번 교육을 받기는 했지만 사람들이 보기에는 전체적으로 개판이었다는 거야. 말도 더럽게 안 들으니까 무리하게 숲에 들어가서 사망률이나 올리고 오고…. 다른 도시한테 쪽팔리게 말이야. 이번에도 그런 소리 나오면 안 되잖아?’
‘아아아아….’
‘붉은용병은 항상 완벽해야 돼. 우리 세컨드랑 선희영을 부른 이유도 바로 그거고….’
‘뭐? 정말로?’
‘기왕 협연하는 거 제대로 해야지.’
며칠 전에 나눴던 대화를 생각해 보니 고개가 끄덕여질 수밖에 없었다.
일단 공략조도 함께 훈련을 받게 한다는 건 차희라답다.
사실 아직까지 공략조를 본 적이 없어 그들이 어느 정도인지 판단할 수 없었지만 당장 붉은용병에서 영입 준비를 하고 있지 않는 걸로 봐서는 수준이 그리 뛰어나지는 않은 모양. 물론 은연중에 혜택을 주고야 있겠지만 급하게 움직이지 않는 것은 확실히 재미있는 모습이었다.
‘작년에 파란이랑은 완전히 다른데….’
발등에 불똥이 떨어진 것처럼 우리에게 들이댔던 이상희와는 아예 다르다.
물론 당시 배경을 생각해 보면 이상희가 그런 모습을 보이는 것도 이해가 가기는 했지만… 지금과 그때의 온도차가 너무 달랐기 때문에 이질적인 기분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가장 의외였던 것은 정하얀과 선희영을 교관으로 초청했다는 것.
붉은용병의 사제 라인과 마법사 라인이 그다지 좋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스쿼드가 빈약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안기모 같은 애들도 있고….’
수준 높은 마법사나 사제도 보유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굳이 그들을 부른 것을 보면 정말로 파란과 협연이라는 형태로 이번 튜토리얼 던전의 훈련을 마무리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덕분에 정하얀과 선희영의 입가에는 묘한 미소가 피어나는 중.
나와 함께 있기 때문이기보다는 생각보다 선생님 역할을 하는 게 재미있게 느껴졌던 모양이다.
며칠 전에 훈련소를 오픈했고 주류과목을 담당하고 있는 정하얀과 선희영은 이미 첫 번째 수업을 치렀다.
상태가 생각보다 좋은 걸 보니 확실히 기분이 좋은 모양.
이번 일의 뒤처리 때문에 여기에 처박혀 있어야 했던 내가 어떤 일이 있었는지 궁금해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일 것이다.
기분 좋게 식사를 하고 있는 정하얀을 바라보니 괜스레 내가 다 기분이 좋아진다.
그녀가 집중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는 건 이쪽에서도 희소식.
선희영이야 원래 이런 일을 좋아한다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그녀 역시 입가에 희미하게 미소가 걸린 것을 보니 이번 일을 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희영 씨는 정말 기분 좋아 보이시는군요.”
“아, 그렇게 보였나요? 옛날 일이 조금 생각나서….”
“네?”
“예전에 잠깐 교단에 섰던 적이 있었습니다.”
“어? 정말입니까?”
“네. 물론 개인적인 사정 때문에 그만두기는 했지만 이렇게 다시 한번 비슷한 일을 하게 되니 감회가 새롭네요.”
‘뭔가 어울리는데.’
새롭게 얻은 정보였지만 왠지 모르게 이미지가 맞는다.
절로 고개가 끄덕여질 지경.
물론 사회복지사나 유니세프 같은 곳에서 구호활동은 벌이는 모습도 그녀와 매치가 되기는 하지만 안경을 쓰고 교단에 선 모습도 싱크로가 완벽하다.
“저도 초등학교 때는 선생님이 꿈이었어요, 오빠!”
“아, 그래?”
“네.”
‘이건 별로 안 어울리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정하얀이 선생님이 되는 그림은 그려지지가 않는다.
“그거… 굉장히 잘했겠는걸?”
“정말요?”
“그럼… 수업은 조금 어땠어?”
“생각보다 괜찮았어요, 오빠. 헤헤….”
“그래?”
“네. 사람들이 어째서 이해를 못하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그래도 열심히 해보려고 하는 모습을 보이는 사람들은 많더라고요.”
“이해를 못 한다고?”
“네. 아무리 설명해도 잘 이해를 못 해요. 최대한 쉽게 설명하려고 해도 한 명도 못 알아듣는 것 같아서… 그래도 대부분 착하더라고요.”
“어떤 식으로 설명했는데?”
“그냥 이렇게 하고 저렇게 하면 된다는 식으로… 마력을 느껴보라고 해도 통 느끼지 못하더라고요.”
‘이거 안 되겠는데….’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정하얀과 일반인은 바라보는 관점 자체가 다르다. 아무리 수업에 열정을 쏟아 부어도 정하얀의 설명을 알아들을 수 있는 이들은 1%도 되지 않으리라.
마법 교관이 정하얀 하나가 아닌 게 다행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희영 씨도 그렇습니까?”
“네. 그렇지만 당연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공략조는 보통 1차 전직을 마치기는 했지만 생존조 같은 경우에는 1차 전직도 하지 못한 사람들이 많거든요. 마력이나 신성력을 느끼지 못하는 것도… 어떻게 생각하면 당연하죠.”
“음….”
“지금은 심화 과정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사제와 마법사는 이렇다는 걸 알아보는 시간이니까요. 재능이 있는 이들은 이 과정에서 전직할 가능성도 있고… 자신의 진로를 결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붉은용병에서도 아직까지 클래스를 구별해 놓지 않은 거겠죠?”
“간단하게 말해서 조금씩 조금씩 간만 보여주는 걸로 족하다. 이 말씀이십니까?”
“네, 기영 씨. 아직 어린아이를 피아노 학원도 보내고 태권도도 보내고 영어 학원도 보내보고… 한 번씩 원하는 걸 시켜보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시면 될 거예요. 그러고 보니… 오늘이 첫 수업이신가요?”
“네. 아무래도 직군이 직군인 만큼 수업이 그리 많지 않으니까요.”
“어? 오빠 같이 가요! 저도 수업 있거든요. 헤헤.”
“그래? 그럼 그렇게 하자. 희영 씨는?”
“저는 오늘은 더 이상 수업이 없네요. 그럼 끝난 이후에 뵙도록 하겠습니다, 기영 씨. 하얀 씨도요.”
“네.”
사실 그다지 수업에 신경 쓰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차피 저들 중에 연금술에 대해 제대로 알아들을 수 있는 이들은 없기도 하고… 물론 심화 과정 때는 제대로 된 교육을 하기야 하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파란에서 열심히 일해 줄 노예들을 물색하는 거였으니까.
일단 비전투직군이나 생산직 연금술사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설명하는 시간을 가진 이후에 마법사로 전직한 이들을 대상으로 라무스 터커의 연금학 개론의 기초를 설명하면 그걸로 끝.
수업은 어려운 것이 아니다.
슬쩍 시간을 보니 이쪽 차례가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에 아쉬움을 뒤로 하고 몸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대충 식사를 한 다음에는 곧바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
한쪽 손에 연금학개론을 들고 있으니 왠지 모르게 폼이 난다.
어째서 정하얀이 조금 신난 기분으로 수업에 임했는지 알 것 같은 느낌이었다.
“오빠는 무슨 반이예요?”
“C반?”
“아. 어제 그 반 들어갔었는데 애들이 정말 착하더라고요. 거기는 평균 나이가 조금 어려요.”
“그래?”
“네. 그래도 마법사 지망생 비율이 높아서 다들 의욕적이에요…. 그러고 보니까 여자애들 비율이 조금 높기는 높은데… 으득.”
“아. 근데… 이러니까 꼭 선생님 커플 같지 않아? 하얀아?”
“그, 그렇네요! 헤헤헤…. 그래요! 헤헤.”
‘생각보다 기분 괜찮네.’
잠깐 위기가 있었던 것 같지만 생각보다 괜찮다.
훈련소 안으로 들어가는 것도 처음이다. 연무장에서 훈련과 체력 단련을 하고 있는 이들이 눈에 보인 것은 당연지사.
바깥에서 훈련을 봐주고 있는 교관들이 슬쩍 인사를 해왔기 때문에 대충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인사를 대신했다.
오래 머물 생각은 물론 없다.
계속해서 눈알을 굴려보기는 했지만 그다지 눈에 띄는 이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저는 이쪽이에요, 오빠.”
“그래. 그럼 조금 있다 보자.”
“네!”
정하얀은 B반의 수업을 맡은 모양. 조용한 교실에 정하얀이 들어가자마자 요란한 소리가 들려온다.
“교관님 안녕하십니까!”
“네. 모두 안녕하셨나요? 수업 시작하겠어요.”
뭔가 정하얀답지 않은 목소리.
왠지 모르게 위풍당당하게 들려오는 목소리에는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훈련소가 오픈한 뒤로 시간이 좀 지난 만큼 통제하는 과정에서 이것저것 다양한 설명을 들어 제대로 적응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번 신입들은 괜찮은 모양이네.’
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확실히 파란과는 다르게 붉은용병에서 체계적인 시스템을 마련하다 보니 벌써부터 이곳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아주 약간의 기대감을 가진 것은 당연지사. 나 역시 B반을 지나쳐 곧바로 C반으로 들어갔을 때였다.
“선희영 교관 진짜 예쁘지 않냐?”
“어. 나는 정하얀 교관님이 더….”
“아 정하얀 교관님도 예쁘기는 하지… 귀여우시잖아. 여기 생활의 유일한 낙이라니까.”
“그러면 뭐해. 정하얀 교관은 남자친구 있다고 하더라.”
교실 안에서부터 목소리가 들려온 것.
조금 더 황당했던 것은 내가 교실 안으로 들어간 이후에도 남자 두 명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눈치를 보고 자리에 앉기는 했지만 옆 강의실에서 정하얀을 맞이했던 커다란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어?’
내가 이쪽에 들어 온 지도 시간이 제법 지난 시점.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위기가 쉽게 정리되지 않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을 보니 눈앞에 있는 게 누구인지 제대로 정보를 전달 받지 못한 것 같았다.
꼰대스러운 발상이기는 하지만 절로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몇몇은 대놓고 엎드려 있었고 몇몇은 이쪽을 보고 히죽거리고 있는 표정. 어처구니없지만 그 표정에서 보이는 감정은 틀림없이 멸시였다.
‘내가 누군지 이야기를 안 해놨나?’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저들의 저런 차가운 반응도 이해가 가기는 한다.
처음에는 대부분이 전투직군을 희망하는 만큼 생산직에 관심이 없는 것이 당연.
비주류 과목을 맡고 있는 교사의 서러움을 왠지 모르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심정이었다.
물론 내가 느끼는 감정은 그것보다 더 지독하다.
저 병아리들의 눈에서 자신들은 눈앞에 있는 사람과는 다르다는 표정이 언뜻 언뜻 스쳐 지나갔으니까.
‘허….’
전투직군과 생산직군을 벌써부터 구분하는 적응력을 칭찬해 주고는 싶지만….
‘사람 잘못 골랐는데….’
사람이 너무 어이가 없으면 할 말이 생각나지 않는다고 했던가.
잠깐 동안 멍하니 앞을 바라보고 왔을 때 교실에 끝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수업 진행 안 하세요? 벌써 오 분 지났는데. 그러니까… 비전투직군 담당 선생님이라고 부르면 되나요?”
누가 들어도 싸가지 없게 들려오는 목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