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8
회귀자 사용설명서 208화
G.T.O (4)
‘허….’
어이가 없어 자꾸만 헛웃음이 나올 정도였다.
눈앞에 보이는 이들은 어딜 봐도 병아리라고 분류할 수 있는 이들.
커다란 목소리로 선생님 어쩌구라고 말한 놈을 바라보자 곧바로 녀석의 상태창이 눈에 보였다.
1차 전직을 마친 것을 보니 공략조로 참가했던 것 같았지만 그다지 눈에 띄는 재능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묻어갔겠네.’
열네 명으로 구성된 파티에서도 묻어갔을 것 같은 느낌.
이름도 얼굴도 그다지 기억해 놓을 필요 없다.
열심히 한다면 어느 정도 성과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평범한 방법으로 성장한다면 그다지 기대치가 느껴지지 않는 신인이라는 거다.
‘한소라?’
단발머리를 하고 있는 조그만 병아리가 다시 한번 더 입을 열어오는 것을 보니 기가차서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선생님?”
이걸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해 보는 것이 당연하리라. 이곳에 있는 병아리들에게 굳이 수작질을 하거나 지금에 와서 자기소개를 하는 것도 우스운 일.
이제는 약간의 사회적 체면이라는 게 생긴 만큼 저런 미친놈들을 머리 굴려 처리한다는 것 자체가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이토 소우타 때처럼 머리를 굴릴 필요도 없이 힘으로 찍어 누를 수 있다는 것.
내 감정에 반응했는지 자꾸만 허리춤에서 뽑혀져 나오려고 하는 율리에나가 느껴졌다.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자 한방 먹였다고 생각했는지 실실 쪼개고 있는 이들이 시야에 비쳤다.
정하얀이 저들을 착하다고 표현한 게 방금 전의 일이라 더욱더 현실성이 없다.
“선생님? 수업 진행 안 하세요?”
“선생님이 아니라 이기영 교관입니다.”
“아아아. 비전투직군 담당도 교관이라고 하는군요.”
저 여자의 말이 재미있었는지 여기저기에서 피식거리는 웃음소리가 새어나오기 시작.
나 역시 웃어넘기고 싶었지만 내 성격이 이런 일을 웃어넘길 수 있는 성격이 아니다.
“후우….”
잠깐 한숨을 쉬자 묘하게 조용해진 장내.
“한숨 쉬시지… 마시고요. 수업을….”
하는 소리가 그녀의 입 밖에서 튀어나오자마자 허리춤에서 율리에나가 그대로 뽑혀 그녀를 향해 날아가기 시작.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상황에 어디에선가 ‘꺄악!’ 소리가 들려왔지만 굳이 그 목소리에 반응하지는 않았다.
눈 깜짝할 사이에 날아간 율리에나의 영향으로 그녀와 나 사이에 있던 물건들이 사방으로 튕겨져 나갔고 심지어는 창밖에 있는 유리창도 쩌적 이상한 소리를 내며 갈라지고 있다.
눈 깜빡할 시간에 벌어진 일.
병아리의 목을 꿰뚫을 기세로 날아가던 율리에나가 멈춘 것은 그녀의 눈 바로 앞이었다.
“어….”
미처 반응도 하지 못한 것이다.
그녀의 단발머리가 율리에나의 영향을 받아 제자리로 돌아오기 전까지 입을 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만 자신이 방금 죽었을 지도 몰랐다는 것을 인지했는지 한소라의 턱이 덜덜덜 떨리는 것이 시야에 비쳤다.
‘지렸네….’
책상 아래로 노란색 액체가 뚝뚝 떨어지고 있는 걸 보니 겁을 집어먹어도 제대로 집어먹은 모양.
“아아아….”
센 척하는 건 생각보다 즐겁다.
“재미있군요. 이름이 뭔가요?”
“아….”
실어증이라도 걸렸는지 제대로 입을 열지 못하고 있다.
율리에나가 다시 한번 그녀를 향해 접근하자 그제야 조용히 입을 열어오는 것이 시야에 비쳤다.
“한소라… 입니다….”
“한소라 씨군요. 뭐… 본격적인 수업에 들어가기 전에 일단 배경 설명을 할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이 수업에 불만을 가지신 분들이 많은 것 같아서 말입니다.”
“…….”
“전부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겠지만 일부 교육생은 아마 이런 의문을 느끼실 겁니다. 훈련할 시간도 부족한데… 어째서 비주류직군과 생산직군이 진행하는 교육을 받아야 하는가. 음… 한소라 교육생의 옆에 앉아 있는 교육생이 한번 대답해 보세요.”
“네?”
“솔직하게 대답하셔도 괜찮습니다.”
“그,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 생각을 한 적은….”
“아니요. 솔직히 대답하셔도 괜찮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조, 조금은….”
“아마 그렇게 생각하시는 게 당연할 겁니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갑작스럽게 괴물과 검을 부딪쳐야 되는 상황이 왔고 이런 장소에서 여러 가지를 배우게 됐으니까요. 적응하기에는 조금 이른 시기이기는 하지만 여러분들도 대충은 이곳에 대해 이해하셨을 겁니다.”
“…….”
“힘을 가지고 있으면 대우받는다.”
말을 마친 이후에 잠깐 주변을 둘러보자 복잡한 얼굴을 하고 있는 이들이 시야에 비쳤다.
“아마 벌써부터 이 차이점을 느끼신 분들도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은연중에 공략을 마친 공략조가 대우받고 있다는 건 모두가 알고 계실 테니까요. 실제로 이들은 대우받을 만합니다. 그만큼 적응력이 빠르다는 거고… 우리 사회가 좋아하는 경력 있는 신입의 표본이니까요.”
“…….”
“잠깐 이야기가 샜지만… 여러분의 생각이 정답은 맞습니다. 이곳은 힘을 가지면 대우받을 수 있는 장소가 맞아요. 실제로 이 세계의 몇 안 되는 강자들은 일반 플레이어들과 비교했을 때 비교 자체가 불가능한 특권을 누리기도 하고… 벌어들이는 재화 역시 상상을 초월합니다. 그 소득 차이가 얼마나 될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하루에 1골드도 벌지 못하는 플레이어도 있는 반면에 하루에 1,000골드가 넘는 돈을 벌어들이는 플레이어도 있습니다. 몬스터의 사체는 돈이 되고 난이도가 높은 몬스터일수록 그 가치가 올라가니까요. 더 높은 등급의 던전 공략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웅 등급 이상의 던전을 공략한다는 건 곧 막대한 재화를 얻는 것과 다름이 없어요. 문제는….”
“…….”
“문제는 여기까지 올라가는 플레이어의 숫자가 그다지 많지 않다는 겁니다.”
조금 흥미가 생겼는지 이쪽을 바라보는 교육생들의 모습이 시야에 비쳤다.
“네. 그다지 많지가 않아요. 모두가 처음에는 여러분들처럼 시작합니다. 뭔가 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기 시작하고 나도 잘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에 열심히 검을 휘두릅니다. 조심조심 몬스터를 사냥해 나가고 뭔가 성장하는 느낌도 들죠. 이쯤 되면 이 세계가 괜찮은 것은 아닌지에 대해 생각해 보기도 합니다. 게임을 하는 것처럼 자신을 레벨업 시키는 게 재미있고 새로운 장비를 맞추는 것도 즐거워집니다.”
“…….”
“그러다 사고가 터지거나 한계를 맞이하게 됩니다. 이곳이 게임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되죠. 재능이 있는 사람과 재능이 없는 사람이 분류되기 시작하고 위로 쭉쭉 올라가는 다른 이들을 허망하게 올려다보기도 합니다. 아마 몇몇 분은 당장 이 교육소를 벗어나자마자 현실을 느끼게 될 겁니다. 밖은 생각보다 더 위험하니까요. 어째서 위로 올라가는 플레이어들의 숫자가 적을까요?”
대충은 알고 있을 것이다.
“대부분은 그 과정에서 죽어요. 몬스터한테 산 채로 잡아먹히거나 살아남아도 어디 한 곳에 장애가 남아 빈민촌에 들어가서 구걸을 하며 살아간다는 겁니다. 남자들 같은 경우에는 인체 실험에 사용되는 일도 허다하고 여자들 같은 경우에는 타국에 노예로 팔려 가거나 창녀가 되기 십상입니다. 먹고 사는 게 생각보다 어렵거든요.”
“…….”
“위의 경우는 그나마 양반입니다. 몬스터에게 납치되서 평생 동안 몬스터의 부락에서 똥오줌을 받아먹다 결국에는 잡아먹히는 사람들도 있고… 사지가 잘려나간 채로 목숨만 부지하게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저런 경우도 사실 양반이다.
실제로 플레이어들 중에서는 더 심한 꼴을 당하는 사람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게 나는 아니지만….’
“아마 이곳에서도 분명히 나올 겁니다. 대충 여러분들을 훑어봤을 뿐이지만 개인적인 감상을 말씀드린다면 아마 이곳에 있는 대부분이 3년을 넘기지 못하고 죽거나 반병신이 되어 빈민촌을 떠돌아다니게 될 겁니다. 어쩌면 술집에서도 마주칠 수도 있겠네요. 아… 특히 한소라 교육생 같은 사람들 말입니다.”
“네?”
“보통 당신 같은 사람이 제일 먼저 죽거나 병신이 돼요. 물론 뭐 거기서 거기로 보이기는 하지만 왜… 가장 먼저 날뛰는 사람이 가장 먼저 최후를 맞이한다는 건 흔한 클리셰니까요.”
“아….”
“당신. 그리고 당신… 그리고 당신, 그 옆에 있는 교육생… 그리고 또 그 옆에 있는 교육생도… 아마 어디에선가 객사할 확률이 높을 겁니다. 단언컨대 이 자리에 있는 이들 중에 위로 올라갈 수 있는 사람들은 단 한명도… 아! 당신은 제외하겠습니다.”
[플레이어 유아영의 상태창과 잠재 능력을 확인합니다.]
[이름 - 유아영]
[칭호 - 없습니다. 조금 더 노력하셔야겠네요.]
[나이 - 21]
[성향 - 소심한 낙천주의자]
[직업 - 백수입니다.]
[능력치]
[근력 - 11/성장한계치 영웅 이상]
[민첩 - 10/성장한계치 희귀 이하]
[체력 - 27/성장한계치 전설 이상]
[지력 - 10/성장한계치 일반 이하]
[내구 - 12/성장한계치 희귀 이상]
[행운 - 15/성장한계치 영웅 이상]
[마력 - 01/성장한계치 희귀 이상]
[총평 - 체력과 근력의 잠재능력치가 높습니다. 내구와 마력의 잠재능력이 아쉽기는 하지만 훌륭한 전위로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괜찮네.’
공략조에는 참가하지 않았던 것 같지만 내 생각보다 훨씬 괜찮다.
체력 능력치만 전설 이상 판정을 받은 것을 본 것은 처음.
이런 보석을 발견하고 싶어서 이 자리에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엄청나게 거대한 흉부가 왠지 모르게 시선을 끌어당기는 것 같기는 했지만 이렇게 쳐다보는 것도 당연히 실례.
갑작스러운 지목에 깜짝 놀라는 그녀에게서 곧바로 시선을 뗀 이후에는 곧바로 다음 말을 이어나갔다.
“이름이?”
“유… 아영입니다. 교, 교관님.”
생각해 보니 처음에 이쪽을 비웃지 않았던 이들 중에 한 명.
내 말에 모두가 그녀를 보려 고개를 돌리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이 서려 있었지만 저들이 이해하든 이해하지 못하든 나와는 전혀 상관없다.
교탁을 손가락으로 툭툭 친 다음 다시 한번 말을 잇자 이번에는 나에게 시선들이 꽂혔다.
“유아영 교육생을 제외하면 이곳에 있는 사람들 중에 위로 올라갈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전혀요. 혹시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몇 번이나 죽을 위기를 넘기면서 성장해야 겨우 도달할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할 수 있습니다.”
“그… 런….”
“원래 세상은 불합리해요. 정하얀 교관에 대한 이야기를 잠깐 해봅시다. 그녀는 지금 린델을 대표하는 마법사 중 한 명입니다. 마도 길드에서 주목하고 있을 정도로 높은 성장치를 이루어냈고 실제로 그녀의 위에 있는 마법사보다 아래에 깔려 있는 마법사들이 더 많을 겁니다. 그녀가 이 모든 걸 이룩하는 데 걸린 시간이 얼마일까요.”
“아….”
“고작 1년입니다.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겠지만 이건 충분히 이례적인 일이예요. 20년이 넘는 시간동안 마법을 공부해도 그녀의 발끝도 따라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도시 내에 널려 있다는 걸 생각해 보면 더욱더 그렇습니다. 아니… 기왕 이렇게 된 거 조금 까놓고 이야기해 드리는 게 좋을 것 같군요.”
“…….”
“당신들은 가능성 없는 쓰레기들이야.”
“아….”
“그렇기 때문에 제가 이곳에 있는 겁니다. 어째서 비전투직군의 교관이 수업을 진행하는지 딱 보면 답이 나오지 않습니까. 어차피 밖으로 나가면 뒈져나갈 불나방들을 한 명이라도 구제하고 그나마 도시에 쓸모 있는 부품으로 만들기 위해 제가 여기에 있는 거예요.”
“말, 말씀이….”
“전혀 심하지 않습니다. 어차피 몬스터 사냥이나 전쟁에 나가도 당신들은 총알받이 그 이상의 역할은 하지 못할 겁니다. 도시에 기여하지 못할 바에야 망치질을 하든지 연금키트를 만지는 게 도시에 더 도움이 된다 이 말입니다. 쓸데없는 방향으로 노력하지 마세요, 멍청한 놈들아. 시간 아까우니까. 장담하는데 너희 같은 놈들은 다른 교관의 수업을 듣는 것보다 내 말을 듣는 게 이득이야.”
말을 마치고 조용히 교육생들을 바라보자 묘한 적의를 보내오는 것이 느껴졌다.
뭔가 할 말이 있는 것 같기는 했지만 제대로 말을 내뱉지 못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
그야 아직도 율리에나가 공중에 떠 있으니 그럴 만하다.
때마침 수업을 끝마치는 종이 울리는 중.
굳이 인사를 받지는 않았다.
“그럼 다음 수업 때 보자, 머저리들아.”
곧바로 밖으로 나가니 재미있게도 정하얀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보인다.
학생들이 창문 너머로 우리를 지켜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찰싹 붙어오는 정하얀의 모습이 조금 재미있다.
수업에 들어가기 전에 정하얀에 대해서 떠들어 댔던 남자 두 명 역시 멍하니 이쪽을 바라보는 모습.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졌다.
“푸핫.”
“재미있으셨어요? 오빠?”
“아… 응. 생각보다 재미있더라. 학생들도 괜찮고….”
“그렇죠? C반 애들이 정말로 다 착하더라고요.”
“응. 특히 한소라라는 친구한테는 왠지 모르게 계속 시선이 가더라고….”
“네?”
“수업에도 열정적이고….”
“아….”
“얼굴도 귀엽고….”
“그, 그, 그… 렇군요.”
“공략조였던 것 같았는데 파란으로 영입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옆에 두고 싶거든.”
“네? 네… 네…. 그렇게 됐으면…. 아… 저도 알아요…. 그 친구… 네… 헤헤헤…. 기억 난다…. 귀여웠죠… 그랬죠… 네….”
어색한 미소를 흘리며 웃고 있는 정하얀의 얼굴이 시야에 비쳤다.
그녀의 행동을 일러바치는 것보다는 이쪽이 조금 더 효과가 좋을 거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쪼잔하게 보이기는 했지만 이런 소심한 복수는 꽤나 취향이다.
‘벌은 받아야지 오줌싸개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