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9
회귀자 사용설명서 209화
불길한 느낌(1)
“미친! 여우같이 생긴 뱁새눈 새끼가!”
“괜한 문제 일으키지 마라, 한소라.”
“짜증나 죽겠어. 짜증나 죽겠다고! 지가 뭐라도 되는 줄 알고…. 포션이나 만드는 연금술사 나부랭이가! 감히… 누구를… 누구를 훈계해?!”
“사고 일으키지 말라고 분명히 이야기했다. 여기는 튜토리얼 던전이 아니야. 우리가 그곳에서는 왕이었을지 몰라도 여기에서는 막 들어온 신입이야. 어떻게 생각해도 최대한 웅크리고 있는 게 옳아.”
“신입이긴 신입이지. 대형 길드들의 오퍼를 받고 있는 신입.”
“아직 확정된 건 아니야. 계약서에 도장 찍기 전까지는 아무 것도 몰라. 먼저 제의를 받았을 뿐이고 훈련소에서의 성장 정도와 시연회도 남아 있지. 심지어 일부 길드는 따로 입단 테스트도 본다고 하니까 아무것도 신경 쓰지 말고 네 훈련에나 집중해. 물론 네 심정이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지만….”
“오빠도 그 새끼 수업 들어서 알고 있을 거 아냐?!”
“글쎄… 사람을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선은 그다지 기분 좋지는 않았지만 사람 자체가 문제가 있는 것 같지는 않아 보였는데. 현실적인 이야기라 나쁘게 들리지는 않았어. 물론 우리 반은 너희 반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아서 그런 강압적인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다른 교관들도 나름대로 깍듯이 대하는 것 같은 느낌도 있었고….”
“어련하시겠어? 정하얀 교관의 남자친구 되시는데? 깍듯이 대하는 게 당연하겠지.”
“아 그래?”
“어. 여우같이 생긴 뱁새눈 새끼가 정하얀 교관 남자친구라고… 날아다니는 검도 분명히 정하얀 교관이 만들어 준 걸 거야. 대도시에서도 손꼽히는 마법산데 그런 검 하나 못 만들겠어? 박쥐같은 여우 새끼. 여자 하나 잘 물어서 인생 핀 놈이 분명하다니까.”
“글쎄….”
“나는 못 참아, 오빠.”
“뭐, 네가 어떻게 하든지 별로 상관은 없지만 최소한 이쪽에 피해를 끼치지 않게 하는 게 좋을 거야. 왠지 모르게 불길한 느낌이 들거든.”
“뭐가?”
“그 이기영이라는 사람.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려고 해도 통 나오는 게 없어. 교관들도 말을 아끼는 것 같고.”
“붉은용병 교관들이야 원래 사적인 질문은 안 받아주잖아. 오빠가 착각한 거겠지.”
“글세…. 착각이면 좋겠는데… 의도적으로 정보를 흘리지 않는 걸 원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나도 모르겠다. 네가 알아봐. 솔직히 나는 여기에 신경 쓸 여력 없거든. 당장 입단 테스트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깨질 것 같으니까.”
“참나. 영원히 하나라고 튜토리얼 던전에서 그렇게 입을 털더니만….”
“원래 상황이란 건 달라지게 마련이야. 너도 이상한 곳에 신경 쓰지 말고 입단 테스트나 시연회나 잘 신경 써. 다른 애들도 전부 그것 때문에 정신없으니까. 철 들 때도 됐잖아.”
“됐어. 내가 알아서 할 거니까.”
“피해만 끼치지 마.”
“알았다니까!”
짜증이 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영원히 하나는 개뿔….’
튜토리얼 던전에서 함께했던 동료들이 도와줄 거라고 생각한 건 어디까지나 착각인 모양.
사실 커다란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이렇게까지 냉담한 반응을 보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다들 멍청해가지고….’
갑작스레 답답해진 것은 당연지사.
멍청한 놈들이 이 기회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저렇게 납작 엎드려 있을 필요가 있어?’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정도로 납작 엎드려 있을 필요는 없다.
물론 거대 길드에 입단하고 싶은 마음은 이해가 된다. 그들의 비호를 받으면서 안정적인 출발을 할 수 있다는 건 충분히 이상적이라고 생각해도 될 만한 일이니까.
그렇지만 현재 자신들이 받는 대우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못하고 있다.
공략조는 기본적으로 생존조와 받는 대우가 다르다.
물론 겉으로 보기에는 큰 차이가 없는 것 같기는 했지만 자신들이 이것저것 특혜를 받고 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어째서인지는 뻔하다.
애가 타는 건 이쪽도 마찬가지지만 저쪽 역시 이쪽을 영입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거다.
그야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어쩔 수 없는 현실.
적응하지 못하고 던전에서 벌벌 떨다가 허송세월을 낭비한 생존조와는 다르게 자신들은 목숨을 걸었고 결국에는 원하는 것을 쟁취해 냈다.
이곳에 있는 길드와 클랜들이 더 많은 강자와 더 많은 인재를 영입하고 싶어 한다는 걸 생각해 보면 적당히 튕기는 것 역시 중요하다.
만약에 열네 명이 똘똘 뭉친 이후에 협상을 진행했다면 지금보다 더 좋은 조건으로 계약 제의가 왔을지도 모른다.
자신들을 원하는 길드와 클랜이야 어차피 널려 있으니까.
‘지금은 우리가 갑인데!’
멍청한 사람들.
‘창렬이 오빠는 파란으로 가고 싶다고 했었고… 혜자 언니는 검은백조로 가고 싶다고 했었나…. 나머지는 붉은용병 아니면… 에휴….’
단언컨대 만약 공략조의 전원이 클레임을 걸거나 타 길드로 들어갈 의사가 없다고 밝히고 협상을 진행했다면 지금보다는 상황이 나았을 것이다.
그 연금술사에게도 이렇게 농락당할 일이 없었다는 거다.
“제길….”
오줌을 지린 것을 생각하니 얼굴이 붉어진 것은 당연지사.
신경질적으로 강의실의 문을 열어젖히자 이쪽으로 시선이 집중되는 것이 보였다.
몇몇 여자가 이쪽으로 달려오는 게 보인 것은 당연지사. 이름도 잘 기억나지 않는 일이지만 이런 풍경은 익숙하다.
‘줄 잘 서고 싶다는 거겠지.’
자신은 이곳에서는 특권 계층이라고 할 만한 사람이었으니까.
“언니? 이야기는 잘 됐어요?”
“아니. 오빠들은 별로 이번 일에 관심이 없나봐. 다들 입단 테스트랑 시연회 준비한다고…. 짜증나 죽겠다니까.”
“입단 테스트라면 역시 붉은용병인가요?”
“붉은용병도 있고 파란도 있고 그래. 다른 길드나 클랜도 있기는 한데… 아! 아직 너희는 모르겠구나.”
“네. 저희들은 들을 수 있 는게 없으니까요.”
“마도 길드도 있고 검은백조도 있고 다양해. 중견 길드는 사실 조건이 다들 괜찮은 것 같더라고….”
“아. 언니는 어디로 가실 건데요?”
“글쎄… 일단은 붉은용병에서도 제의를 받았고 넌지시이기는 했지만… 마도 길드에서도 제의를 받았지만 잘 모르겠네…. 파란도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마법사로 계속 성장하실 거면 파란도 나쁜 선택은 아닌 것 같아요. 정하얀 교관님이 계시니까요.”
“아직 파란의 관계자들이랑은 만난 적이 없어.”
“네? 정말인가요? 역, 역시 그 사람 때문일까요?”
“아마 그렇겠지….”
그 연금술사가 짜증나는 또 다른 이유였다.
“의도적이겠죠?”
“글세…. 확률이 높을 것 같긴 해.”
“길드에서… 나름대로 영향력이 높기는 높은 사람인가 봐요.”
“영향력은 개뿔….”
“저기… 유아영 있잖아요?”
“유아영이 누구?”
“가슴 커다란….”
“아… 그 젖소?”
“확실하지는 않은데 파란의 러브콜을 받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뭐?”
“파란 길드 마스터랑 면담도 했었대요.”
주먹을 꽉 쥘 수밖에 없었다.
자꾸만 속에서 불길이 올라오고 있는 것 같은 느낌.
튜토리얼이 진행되는 내내 도망치기 바빴던 멍청한 년이 파란의 입단제의를 받았는데 자신이 받지 못했다는 게 황당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는 대충 감이 온다.
‘그놈이 복수하는 거야.’
처음 만났을 당시에 태도가 건방졌다는 이유일 것이다. 의도적으로 이쪽을 배척하고 배재하려 하는 게 너무 티가 나 황당할 정도.
자신이 모르는 뒷사정이 있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길드 휘장이라도 좀 달고 다니든가. 짜증나게….’
저도 모르게 욕설이 튀어나왔다.
“하… 씨발. 진짜 황당하네.”
“그러니까요. 만약에 정말이라면 진짜 황당한 거 아닌가요? 저런 젖소가 뭐가 좋아서 영입제의를… 성적도 안 좋던데요? 체력 훈련은 괜찮은 것 같기는 했지만….”
“뭐 뻔할 뻔자 아니겠어? 보나마나 더러운 생각을 하고 있는 거겠지. 길드에 영향력이 있다는 것도 전부 개소리야. 이기영 그놈이 여기서 왕 행세를 하고 있는 것도 전부 정하얀 교관 때문이고… 아마 파란에서도 마찬가지일 거야. 골칫거리일걸. 제비 놈 한 명한테 흔들리는 그딴 길드? 영입 제의가 들어와도 내가 차버릴 거야.”
“정말인가요?”
“…….”
당연히 거짓말이다. 다른 대형 길드도 나쁘지는 않지만 정말로 가고 싶은 길드가 어디냐고 묻는다면 파란.
천재 마법사 정하얀에게 여러 가지를 배울 수 있을 수도 있다는 이유도 있기는 하지만 파란이 괜찮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그 중형 길드가 가지고 있는 배경에 있다.
붉은용병과의 동맹.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이유다.
이제 막 날아오르기 시작한 파란으로 들어가 실권을 잡는 것이 붉은용병의 말단 길드원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이득.
규모가 크지 않은 만큼 이쪽에게 쏟아질 지원도 조금은 더 집중적일 것이다.
‘완전 꼬였어.’
혹시나 정하얀 교관에게도 이번 일에 대해 말을 해놓은 것은 아닌지까지 생각이 미치자 괜스레 초조해졌다.
‘뭔가 수를 써야 되는데….’
교실 문이 갑작스레 열린 것은 바로 그때였다.
자연스럽게 고개가 돌아간 것은 당연지사.
순식간에 이쪽에 몰려 있던 떨거지 들이 자리로 달려가 착석했고 눈앞에 있는 교관이 인사를 하는 것을 기다렸다.
정하얀 교관이 수업을 위해 강의실 안으로 들어온 것이다.
항상 들어오면서 인사를 했던 평소와는 조금 다른 모습.
돌아오자마자 이곳을 바라보지 않은 채 대충 입을 열어오는 모습이 시야에 비쳤다.
“자리에 앉으세요. 인사는 생략하고 바로 수업 시작하겠습니다.”
“네.”
“저번 수업처럼 마력으로 글씨 쓰기를 할 거예요. 아직 마력을 느끼지 못하신 분들은 따로 빠져요.”
“네, 교관님.”
“시… 시간 없으니까 빨리빨리 움, 움직여요!”
“아… 네!”
저번과는 다르게 왠지 모르게 싸늘해진 것 같은 분위기가 괜스레 눈에 띈다.
순식간에 자리에 착석하는 교육생들은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게 괜스레 신경 쓰였다.
겉모습도 조금 수척해진 것 같은 느낌이었고 비교적 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는 모습은 혹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닌지 떠올리게 했다.
짜증난다는 분위기를 팍팍 풍기고 있는 듯한 모습에 그 여우 놈이 생각난 것은 당연지사.
여기 있는 교육생들이 모두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거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분명히 지 좋을 대로 포장해서 전달했겠지.’
어째서 어울리지 않는 두 사람이 만남을 가지고 있는지는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다.
수업이 계속해서 진행되는 와중에도 굉장히 날이 선 것 같은 느낌.
대놓고 신경질을 부리는 건 아니었지만….
“바… 바보들 아닌가…. 똑, 똑바로 해요!”
라든지.
“나는 이거 처음부터 할 수 있었는데… 설명해 줬잖아… 진짜… 바보야.”
라든지.
“왜 이해를 못 하지? 답답해…. 이건 다 하는 거잖아요.”
라든지.
“바보들이야. 바보들이라구… 진짜 멍청해… 진짜 멍청하다구….”
같은 소리를 혼자 중얼거리는 것이 들려왔다.
그나마 화기애애했던 수업 시간이 순식간에 가시방석이 된 것은 당연지사.
최근에 들었던 수업과 온도차가 너무 극심해 무척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수업 내용도 조금 불친절해진 것 같은 느낌.
아직도 소수는 마력을 느끼는 걸 연습하고 있다는 걸 생각해 보면 마법사인 자신도 어려워하는 수업 내용을 다른 이들이 제대로 해낼 수 있을 리가 없다.
그중에서도 신경 쓰였던 것은 눈앞에 있는 마법사가 자신에게 보내는 시선이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자꾸만 닭살이 돋는 시선에 자신도 모르게 필사적으로 변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리라.
마력으로 허공에 글씨를 쓰는 수련 방법은 해본 적도 없고 들은 적도 없다.
그렇지만 기대에 부응해야 된다고 생각했고 실제로도 아슬아슬하게 진도를 따라가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실력으로 눌러줘야 돼.’
낭중지추라고 했다. 자신이 열심히 한다면 결국에는 여기저기에서 자신의 가치를 알아볼 것이다.
‘이 정도는 해야 돼.’
특별하다는 걸 계속해서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 대우받는다.
결국에는 입술을 꽉 깨물고 천천히 마력을 유형화해 글자를 띄우기 시작.
긴장이 풀리면 곧바로 무너질 것 같아 부들부들 떨면서 마력을 집중하자 천천히 이쪽을 바라보는 정하얀 교관의 시선이 느껴졌다.
‘어?’
잠깐 착각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모르게 기분이 나쁘다는 표정.
아니, 뭔가 복잡한 표정이다.
혹시나 이쪽의 방식이 잘못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틀림없이 아직까지도 마력은 유지되어 있었다.
뭔가를 굉장히 고민하는 것 같은 느낌.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뭘… 고민하고 있는 거지?’
순식간에 침묵이 드리운 장내에 괜스레 침이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뭔가를 깨달았다는 듯이 깜짝 놀란 표정으로 입꼬리를 올린 정하얀의 표정이 시야에 비친 것은 바로 그때였다.
‘어어어어?’
히죽히죽거리는 표정에는 설명하지 못할 감정이 들어가 있다.
팔뚝에는 갑작스레 닭살이 돋아나고 등 뒤로는 소름이 돋아나기 시작.
괜스레 식은땀이 흘러나온 것은 물론 자신도 모르게 턱이 덜덜 떨려왔다.
계속해서 히죽거리고 있는 표정은 왠지 모르게 기분이 나쁘기는 했지만 지금 자신의 몸이 이상을 느끼는 게 저 표정 때문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뭐지… 왜 그러지….’
착각일지도 모르겠지만 왠지 모르게 눈이 이상한 것 같은 것 같은 느낌.
뭔가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은 눈이었다.
“어… 아….”
“잘… 잘했어요, 한소라 교육생.”
“아… 네. 감사합니다.”
“그나마 여기에 있는 사람들 중에서는 꽤 괜찮네요…. 다행이다…. 멍청하지 않아서….”
“고맙습니다.”
“한소라 교육생은 따로 수업을 받아도 될 것 같은데… 히히….”
“아… 네.”
“혹시 괜찮으면… 방과 후에 잠깐 이것저것 가르쳐 줄까요?”
자신을 알아준 건가라는 생각이 든 게 당연.
아무한테나 이런 말을 해오지는 않을 것이다. 기뻐하는 것은 물론 자랑스러워하는 게 옳다.
주변을 살짝 둘러보자 모두가 부럽다는 눈으로 자신을 응시하고 있는 중. 역시 다르다는 시선과 동경의 시선이 쏟아져 내려온다.
‘승낙해야지.’
당연히 고개를 끄덕이는 게 옳다.
몇 세기에 걸쳐 나올 만한 천재 마법사의 과외를 받을 수 있는 기회니까.
그렇지만 왠지 모르게 대답이 입 밖에서 나오지 않았다.
“가르쳐… 준, 준, 준다니까요?!”
고개를 들어 확인한 정하얀의 얼굴의 한쪽 입꼬리가 기괴한 방향으로 비틀려 있었기 때문이다.
“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