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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210화 (209/1,590)

# 210

회귀자 사용설명서 210화

불길한 느낌 (2)

‘감사합니다.’

라는 말이 나와야 맞다.

이게 정답이라고 끊임없이 생각하기는 했지만 왠지 모르게 입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이런 기회를 놓치는 것은 바보 같은 일이다. 머리로는 그걸 이해하고 있었지만 몸이 계속해서 거부반응을 일으키고 있는 것 같은 느낌에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승낙해야 돼.’

계속해서 속으로 되뇌고 있었지만 입은 결국 자신의 기대를 배신했다.

“저는… 그….”

“네?”

“방, 방과 후에는 조금 다른… 할, 할 일이 있어서요. 죄송합니다.”

“아….”

지나치게 실망한 것 같은 정하얀 교관님의 표정이 시야에 비쳤다.

풀이 죽은 듯한 표정은 마치 주인한테 버림받은 강아지를 보는 것 같은 느낌.

살짝 내려간 눈꼬리와 커다란 눈에는 실망감이 가득 차 있었다. 바보 같았던 자신의 선택을 자책하는 것 도 잠시.

어째서 몸이 거부반응을 일으켰는지에 대해 생각해 봤지만 답은 나오지 않았다.

뭔가를 자꾸 중얼거리고 있는 정하얀 교관의 목소리가 괜스레 신경 쓰였지만 애써 시선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는 거다.

‘느낌이 안 좋아.’

그렇게까지 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어쩌면 그 여우 놈의 함정일 가능성도 다분.

꽤나 쪼잔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 만큼 그럴 가능성이 아예 없다고는 할 수 없다.

그리고….

‘수업을 따라가는 것만도 벅차.’

물론 새로운 무언가를 배운다는 건 좋지만 계속해서 배우고 있는 숙제와 과제만으로도 이미 머리가 터져나갈 지경이다.

여러 가지 이유를 대기야 했지만 자신이 멍청한 선택을 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

그렇지만 굳이 이걸 정정하고 싶지는 않았다. 호흡이 조금씩 원래대로 되돌아오고 있었으니까.

때마침 수업을 알리는 종이 울렸고 계속해서 작게 중얼거리던 정하얀 교관님도 천천히 교실 밖을 나가기 시작.

뒷모습이 굉장히 씁쓸해 보여 붙잡을까 하는 생각도 해봤지만 굳이 손을 들지는 않았다. 같은 클래스의 교육생들이 이쪽으로 다시 몰려드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다.

“정, 정말로 대단하네요. 언니는….”

“아….”

“수업도 그렇고… 정하얀 교관님이 그런 제의를 해주실 줄은 누가 알았겠어요?”

“그… 런가?”

“네. 오늘 수업 분위기를 봤을 때는 틀림없이 그 연금술사가 뭔가 언질을 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능력을 보이니 결국 교관도 탐이 나셨던 모양이에요. 그분도 파란의 간부니까요. 어쩌면 조만간 파란에 제의를 받으실 수도 있으실 것 같은데요?”

옆쪽에 있는 떨거지 한 명이 곧바로 말을 이어왔다.

“소라 언니는 가지 않는다고 하셨는데 제의가 오든 오지 않든 별로 상관없지. 교관 제의도 단칼에 거절하시는 거 못 봤어?”

“아… 그랬지?”

“정하얀 교관도 조금 절박해 보이는 것 같았는데….”

“그래?”

“깜작 놀란 표정이었고….”

“분명히 소라 언니가 성공하셨을 때였죠?”

자신들끼리 여러 가지 말을 주고받고 있는 것이 들려왔지만 왠지 모르게 잘 들리지 않았다.

아까 봤던 정하얀 교관의 표정과 뭔가 이상한 느낌이 계속해서 생각났기 때문이다.

살짝 운을 띄우니 다시 한번 이쪽을 바라보는 이들의 표정이 시야에 비쳤다.

“혹시….”

“네? 소라 언니.”

“혹시 다들 이상한 거 못 느꼈어?”

“뭘, 말씀하시는 건가요?”

“정하얀 교관님 말이야. 오늘 조금 이상한 것 같지 않았어?”

“조금 상태가 안 좋아 보이시기는 했어요. 조금 신경질적이셨고…. 피곤해 보였다고 해야 되나? 좀 그런 느낌이었는데….”

“아니, 그걸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조금 이상한 것 같은 느낌이.”

“조금… 정박아스럽기는 했죠.”

자신이 원한 대답과는 조금 다른 대답.

옆에 있는 떨거지 한 명이 곧바로 입을 열어왔다.

“얘! 누구 듣겠다. 풉. 사실 틀린 말도 아니지만….”

“왜 그렇잖아? 사실 처음부터 조금 그런 느낌이 없지 않아 있기는 했는데…. 그때는 그냥 말을 더듬는구나… 이 정도로 생각했었거든. 원래 천재는 다 저러는 줄 모르겠는데 조금 장애가 있는 것 같은 느낌 아니었어?”

“천재들은 다 그런가?”

“그런 게 천재면 하나도 안 부럽다. 바, 바, 바, 바, 바… 바보 아니야?”

“미친! 성대모사 진짜 똑같아! 한번 만 더 해봐.”

“여… 여러분들 은 멍, 멍, 멍청해요! 개도 아니고 왜 이렇게 멍멍 대는 건지… 풉. 그렇게 말하면 지가 더 멍청해 보인다는 건 모르나 봐.”

“진짜 개 웃겨!”

“조금 모자란 구석이 있으니까 그런 남자 만나고 다니는 거겠지, 뭐. 내가 아는 사람 중에서도 그런 사람이 있기는 있어. 남들이랑 의사소통하는 게 조금 문제가 있는 사람들. 어렸을 때 제대로 된 가정에서 못 배우고 자란 사람들이 조금 그런 식이더라. 모르긴 몰라도 트라우마 몇 가지는 분명히 가지고 있을걸.”

“말이 좀 심하기는 한데 웃기기는 웃기네. 진짜 정박아는 아니겠지?”

“모르지. 원래는 정상이었는데 마법을 너무 공부해서 돌아버린 걸지도… 그렇지 않나요? 소라 언니?”

‘내가 너무 심각하게 생각했던 건가.’

아무렇지도 않게 웃고 떠드는 이들을 보니 조금은 심각하게 생각했던 자신이 멍청하게 느껴졌다.

‘몸이 안 좋았나 보네.’

다들 뭔가 이상한 점을 느끼지 못한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확실히 그때 자신의 몸 상태가 조금 좋지 않았던 것 같은 느낌.

계속해서 히죽거리면서 말을 더듬었던 모습도 지금 생각해 보니 굉장히 우습다.

당장 눈앞에 있는 떨거지들이 하는 성대모사에 저도 모르게 웃음이 튀어나올 정도였으니 다른 말은 필요 없으리라.

‘진짜 어딘가 조금 모자란 거 같기도 했고….’

어쩌면 저들의 말이 옳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슬쩍 말을 이었다.

“글쎄…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지. 원래 영화에서도 보통 그런 식이잖아. 조금 어디 돌아버린 사람들. 자폐증 있는 사람들도 기억력이 엄청 좋다는 사례는 있으니까. 마법에서도 그런 경우가 아예 없는 건 아니겠지? 정하얀 교관 같은 경우에는 선천적으로 마력이랑 친화력이 있는 것 같고….”

“아, 그래요?”

“어쩌면 정말로 돌아버렸을지도 모르지. 하하. 튜토리얼 던전에서의 트라우마로 실어증이 생긴 사람들도 있는데, 뭐. 그런 경우 아니겠어?”

“아. 언니 드디어 웃었네요. 아까 까지만 해도 계속 심각한 표정이었는데.”

“너희들 말이 너무 웃기니까. 나도 모르게 진짜 그렇게 생각할 정도였다니까. 정박아. 하하핫. 진짜로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까 그 사람을 위로 올려다보던 내가 너무 바보 같아. 천재면 뭐 하겠어? 어차피 말더듬인데 말이야.”

“그렇죠. 같은 실력을 가지고 있으면 기왕이면 정신이 제대로 박히거나 말을 똑바로 하는 사람을 쓰는 게 길드 입장에서도 더 좋으니까요. 언니.”

“그러네? 기왕 이렇게 된 거 파란으로 가서 확 집어 삼켜버릴까. 나라고 천재가 아니라는 보장도 없고… 내가 어느 정도 성장을 이루면 정박아 더듬이 년보다는 나를 더 선호할 거 아니야? 파란 길드 마스터도 바보는 아니니까.”

“언니라면 가능하실 거예요. 혹시 그렇게 되시면 저희도 잊으시면 안 돼요?”

“내가 너희를 왜 잊겠어? 혹시 다른 길드로 가더라도 종종 연락은 하고 지내야지. 얘, 만약에 파란에 들어가서 길드마스터 눈에 들면 말단 파티원으로라도 들여 달라고 청원해 줄 수도 있고.”

“정말인가요?”

“물론 아마 가능할걸? 파란이 대형 길드도 아니고….”

“정말 그렇게 되면 좋겠네요. 확실히 다른 대형 길드랑은 다르겠죠. 영향력이 커지면… 지금 그 연금술사가 하고 다니는 걸 보면 설득력이 있네요. 혹시 파란에 들어가시게 되면 그 사람은 어떻게 할 거예요?”

“내가 들어갈 길드에 그런 사람이 있으면 안 되지. 어차피 그놈이야 정하얀 교관 옆에 붙어 있는 들러리니까. 둘이 헤어지면 그걸로 끝이고….”

“지금 당장이요?”

“남자 인생 하나 조지는 건 일도 아니야. 성적으로 희롱당했다고 하면 지가 뭐 어쩌겠어. 정하얀 교관, 아니, 그 정박아도 그놈한테 정 떨어질 테고 안 그래도 그놈이 눈에 가시처럼 느껴졌던 파란 길드에서는 옳다구나 하고 방출해 버릴 수도 있지. 잠깐 피해자인 척 연기하고 길드의 지원을 받을 수 있으면 그걸로 이득 아니야?”

“그렇게까지 하시게요? 아니, 지금 이 말 누가 들으면….”

“걱정하지 마. 아까 정박아 어쩌구 할 때부터 마력으로 소리가 나오지 않게 차단했으니까.”

“와….”

“아무것도 없는 곳인데 이렇게라도 살아남아야지. 능력도 능력이지만 가끔은 쉽게 쉽게 살아가는 삶의 지혜도 필요한 법이야.”

“뭔가 언니는 정말로 성공할 것 같네요….”

“원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게 좋아. 연약한 여자라는 것도 사회에서는 훌륭한 무기니까.”

“뭔가 배운 것 같은 기분이에요.”

“어? 언니. 누가 찾아온 것 같은데요?”

“누구?”

한참 대화가 재미있어 질 때였다.

정말로 이 떨거지들을 데리고 가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은 생각을 하던 차, 슬그머니 뒤를 돌아보니 조용히 손을 들고 있는 남자가 시야에 비쳤다.

‘창렬 오빠?’

함께 했던 공략조 중에서도 조금은 껄끄러운 사람이었다.

말수가 적고 조금 차가워 보이는 인상 때문.

어째서 자신을 찾아온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도통 속을 알 수 없는 모습 때문인지 무슨 의도를 가지고 있는지 파악하기 힘들었다.

“나 잠깐 이야기 좀 하고 올게.”

“네. 그렇게 하세요, 언니.”

발걸음을 옮기는 게 당연할 것이다. 잠깐 심심함을 달래줄 이들과는 다르게 눈앞에 있는 남자는 조금 중요한 사람으로 분류되어 있었으니까.

‘복면은 왜 하고 다니는 거야?’

여전히 이해하기 힘든 사람이다.

그렇지만 티를 낼 수 있을 리가 만무. 조용히 다가가자 먼저 입을 열어오는 남자의 모습이 눈에 보였다.

“잠깐 이야기 좀 하자.”

“무슨 일이예요? 오빠? 아! 그러고 보니 오빠 최근에 파란 길드 마스터랑 만났다 그러지 않았어요?”

“…….”

“거기도 입단 테스트 있대요? 들어가는 거 확정된 거예요? 아니, 계약금이랑 연봉은 얼마에 들어가신 거예요? 그냥 대충 싼값에 들어간 건 아니죠?”

“…….”

“우리 가치는 저들이 아니라 우리가 결정해야 돼요. 말 좀 맞추면 연봉이랑 계약금 둘 다 높여서 들어갈 수….”

“그런 말 하려고 온 거 아니니까 입 좀 다물어. 목소리도 낮추고.”

“나… 참… 그럼 빨리 말해요.”

“난 솔직히 네가 싫다.”

“그거 참 다행이네요. 저도 오빠 싫어하거든요.”

“그렇지만 정이 아예 없는 건 아니야. 그래도 공략조에서 서로 동거동락한 사이였으니까. 튜토리얼 던전에서의 일도 있고.”

“그런 말 하지 말고 조금 더 생산적인 이야기 좀 해줘요.”

“앞으로 네가 뭘 어떻게 하려는지는 모르겠지만… 파란과는 연관되지 말고 그냥 쥐 죽은 듯이 조용히 사는 게 좋을 거다.”

“뭐예요? 갑자기.”

“이건 경고야.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조용히 너만 생각해. 괜히 던전 안에서처럼 되도 않는 개수작 부리지 말고.”

“뭐요? 던전 안에서 제가 뭘….”

“내가 모를 거라고 생각하지 마라. 넌 욕심이 너무 많아.”

“이런 쓸데없는 말 말고 조금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여기까지야. 난 너한테 깊게 관여하고 싶지도 않고 입이 가볍다는 이미지도 만들기 싫으니까. 솔직히 지금 이 말을 너한테 전하는 것도 불쾌할 지경이고… 짜증 나거든.”

“무슨 정보 가지고 있는 거예요?”

“이게 내가 주는 정보야. 조용히 쥐 죽은 듯이 조용히 있을 것.”

“아니 그러지 말고… 파란 입단은 결정된 거냐고요?”

“간다. 난 분명히 전했다.”

“뭐야? 창렬 오빠!”

이야기를 마친 뒤에 다시 한번 복면을 올린 이후에 발걸음을 옮기는 모습은 가관. 짧은 대화였지만 불쾌감이 치솟을 수밖에 없었다.

‘말하고 싶은 게 있으면 속 시원하게 말하면 되지.’

애매모호하게 말한 뒤로 자기 말 들으라니 짜증이 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인상이 절로 구겨지는 것은 물론 괜스레 혼잣말이 튀어나올 정도였다.

“개 창렬하네 진짜. 정보를 줄 거면 확실히 주든가. 누가 저딴 거 궁금하다고 했나?”

한마디를 내뱉은 이후에는 바로 발걸음을 돌리니 여전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떨거지들이 보인다.

이쪽이 다가오고 있는 걸 눈치채지 못했는지 자신들끼리 열심히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혹시 뒷담화라도 하는 건 아닌지 궁금했기 때문에 귓가에 마력을 집중 시키자 목소리가 조금 더 정확히 들려오기 시작. 당연하지만 욕을 하고 있는 건 아니었다.

“근데 언니가 파란으로 들어갈 수 있는 거 맞아? 아까 분명 정박아얀 제안을 무시한 걸로 끝 아닌가?”

“글세…. 그건 아닐걸? 만약에 그렇다고 해도 언니 계획이 성공하면 입단이야 거의 확실한 거고 우리도 그 멍청한 연금술사한테 한 방 먹이는 것 같아서 좋잖아. 생산직 주제에….”

“언니가 파란으로 가면 우리도 파란 입단 가능성이 생기는 건가?”

“글세…. 그건 아니겠지만 언니가 이것저것 챙겨주겠지, 뭐. 그리고 정박아얀 교관도 별로 포기할 것 같지는 않더라고 언니가 어지간히 탐이 났나 봐.”

“왜?”

“아까 강의실 나가면서 계속 중얼거리더라.”

“뭐라고? 난 못 들었는데….”

“뭐라고 그랬더라… 분명히.”

“…….”

“…….”

“…….”

“괜, 괜, 괜찮아… 아… 아직도 기회는 많, 많으니까… 할 수 있을 거야.”

“성대모사 개 웃겨.”

“나도 웃음 참느라 혼났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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