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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214화 (213/1,5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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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 214화

강원도 연애 박사 (1)

이곳에서 조금 생활하다 보면 보기 싫어도 조금씩 눈에 보이는 것이 있다.

파란의 특별한 관리를 받은 우리 파티는 느낄 수 없었던 것들.

원래 인간이라는 게 대부분 그렇기는 하지만 밀폐되고 한정된 이 장소에서는 그런 행동들이 더욱더 두드러진다.

이곳에 있는 교육생들은 공략조를 제외하고는 거의 동등한 출발선에 서게 된다.

같은 훈련을 받고 같은 수업을 듣는다.

저마다 그리고 있는 그림은 다르겠지만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대우받는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 만큼 교육이 마무리되는 시간이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대부분이 필사적으로 변한다.

평소에 생각 없이 지내던 이들 역시 초조해지기 시작.

적절한 예는 아닐지도 모르지만 굳이 예를 들자면 수험생에 비유하고 싶을 정도였다. 조금 다른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그렇게 비유해도 별로 위화감이 없다.

일단 시험일이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모든 교육생이 발등에 불똥이라도 떨어진 것처럼 행동하는 것부터가 그렇다.

‘중견 길드 정도는 들어가겠지. 그래도 나 정도면 린델에 있는 주력 길드 중에 한 곳에서 제의가 오지 않을까?’

라고 막연히 생각했던 것이 와르르 무너지기 시작한다는 것.

밥벌이는 할 줄 알았을 거라고 생각한 것과는 반대로 갑작스레 현실이 앞으로 다가오니 자신들이 갈 곳이 없다는 걸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그 와중에 공략조, 혹은 그나마 싹수가 있었던 이들은 수시 합격이라는 형태로 길드에 오퍼를 받은 이후 모두의 부러움을 받는다.

남아 있는 이들은 조금 더 초조해 지기 시작하고 그 초조함을 표출하기 위해 뭐라도 해보려 하지만 재능이 없는 이들이 단기간에 무슨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리가 없다.

이 때 즈음에는 교육생들의 눈에도 어떤 놈이 될 놈인지, 어떤 놈이 떨어질 놈인지가 보이게 된다.

분명히 같은 수업을 듣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성취가 다른 이들, 어느 한 가지라도 특출한 재능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눈에 보인다는 거다.

‘저 사람은 중견 길드에는 들어 갈 수 있겠네.’

라든지.

‘부럽다. 붉은용병으로 입단한다는데?’

라든지.

‘쟤는 연금술 성적이 좋으니까 나쁘진 않은 거 아닌가?’

라든지.

‘파란의 제의를 아직도 생각하고 있다고? 붉은용병한테도 제의를 받은 거야?’

라든지 하는 식으로 말이다.

누구는 이미 꽃길을 걸을 게 예정되어 있고 또 누구는 어디에도 갈 수 없는 처지에 놓인다.

문제는 이 모든 이가 같은 강의실을 이용하고 같은 식당을 이용하며 같은 숙소를 이용한다는 것에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계급이 형성되는 것이다.

한소라에게 알랑방귀를 끼던 시녀들이나 하인들 같은 경우가 우후죽순 늘어나기 시작.

아무것도 없는 사회에서 어떻게든 끈을 잡으려고 발버둥치려고 노력하는 이들이 굉장히 많아진다.

잠깐이지만 입단 내정자들은 상류의 삶이 어떤 건지 느끼게 된다.

모두가 치켜세워 주고 대우해 주는 삶.

당연하지만 이런 이들은 행동하나하나가 조심스럽다.

‘이창렬처럼 다가오지 마라.’라는 분위기를 풍기는 특이한 놈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시녀들과 하인들이 가져다 주는 우월감이라는 떡을 조심스레 받아먹는다.

‘인맥이니까.’

나쁘지는 않다. 어차피 사회로 나가면 이 사람 저 사람을 만나게 될 테고 그나마 싹수가 보이는 이들과 끈을 만드는 건 이런 이들에게도 나쁜 일은 아니다.

문제는 이 반대의 경우. 이런 이들과는 반대로 완전히 밑바닥에 추락해 있는 이들의 경우다.

무관심을 주는 것은 차라리 양반.

자신보다 더 괴로운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위안을 느끼는 이들은 어디에서나 꼭 존재한다.

입단 내정자도 아니고 재능이 있는 이들도 아니다. 중간 어딘가에 애매하게 걸쳐 있는 이들은 약자로 보이는 이들을 괴롭히고 그것으로 자신의 처지가 저 녀석보다는 낫다는 우월감으로 하루하루를 자위한다.

하루 종일 교육소에 있는 것이 아닌지라 내 눈에는 전부 보이지는 않지만 쓰레기가 되어버린 한소라를 포함한 몇몇 이는 틀림없이 괴롭힘을 당하고 있었다.

다른 이들 같은 경우에는 그나마 덜했지만 가장 위에 있다가 추락한 한소라의 경우는 완전히 조롱의 대상이 되어버렸다는 거다.

모두의 기대를 받고 있던 신인이 하루아침에 마력도 제대로 운용하지 못하는 장애인이 된 셈이었으니 무척이나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고 생각했다.

‘그 반대의 경우도 있지.’

그녀가 가장 위에서 추락한 사람이라고 한다면 유아영 같은 경우에는 당연 반대의 경우.

밑바닥에서부터 위로 올라온 유형이었다.

물론 그녀가 크게 노력한 것은 아니다. 그렇지 않아도 그녀는 위로 쑥쑥 올라갈 수 있는 유형의 인간이었으니까.

처음 수업에 들어갔을 당시에 나는 그녀의 가능성을 칭찬한 바 있다.

그 때문에 은근히 미움을 사고 있는 것 같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녀의 진가가 드러나자 그녀를 미워하던 대부분의 교육생들은 그녀를 위해서라면 목숨이라도 바칠 수 있을 것 같은 충신인 양 행동하기 시작했다.

밑바닥을 찍고 있었던 근접 직군으로서의 평가와 성적은 최하에서 최상으로, 파란에게 입단 제의를 받았다는 소문이 뇌피셜에서 오피셜이 되자 마치 역병이라도 창궐하듯 이곳저곳에 있는 쓰레기들을 모아 끌고 다니는 피리 부는 사나이가 되어버렸다.

지금 내 앞에서 박덕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유아영을 보자 확실히 세상이라는 게 불공평하기는 불공평한 거구나.

하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큼… 거 그러니까. 그 우리 파란길드는 말이요. 그… 지원이 굉장히 잘 되어 있다고 그래야 되나…. 뭐, 아무튼 그런 식이요. 나도 옛날에는 사실 별거 없었는데 말이요. 파란에 들어와서 거 완전히 달라졌다니까. 그러니까… 그게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건 전부 해줄 수 있소.”

“아… 네.”

“인생을 바꾸고 싶으면 파란으로! 거, 확실하다니까! 유아영 씨도 이미 들으셨을 거 아니요. 아직 공식적으로 발표가 나지는 않았지만 파란의 길드 마스터 형씨랑 우리 형님은 제국 8좌의 자리에 내정되어 있고 또 누님은 얼마나 마법을 잘하는지, 피융 피융! 쾅! 아주 진짜 보면 입이 떡 벌어진다오.”

“그렇군요.”

“예리라는 꼬맹이는 얼마나 잽싼지 한번 움직이면 제대로 눈에 보이지도 않고 조혜진이라는 창잡이 누님도 있는데 창을 정말로 귀신같이 다루고 또… 또! 마도학자 정연 씨는 진짜로 똑똑하다니까. 아마 형님만큼 똑똑할 거요. 한 번 본 거는 거의 잊어버리지도 않는데 행정 업무도 기가 막히게 해내서! 그리고 선희영 누님은 조금 무섭기는 했지만 신성력 뿌리는 거 보면 입이 떡 벌어진다니까. 아무튼 같이 던전에 들어가면 말이요.”

“네.”

“막 와르르 밀고 들어가서 길드 마스터 형씨가 검을 탁치면 몬스터들이 막 이리로 갔다가, 저리로 갔다가 홀로로로로로! 하고 막! 홀로롤로! 추풍낙엽처럼 쓰러지고 누님이랑 형님이랑 정연 씨가 마법을 막! 일부는 통통통 일부는 막 자리 잡고 본격적으로 쾅쾅쾅! 예리 꼬맹이는 활도 잘 써서 활로 막 파바바바박! 하는데 그사이에 혹시 몬스터들이 들어올라 치면 귀신같이 조혜진 누님 창이 막! 요로케! 요로케 뱀처럼 움직이고!”

“풉.”

“막 뭐, 손 써볼 틈도 없이 순식간에 정리가 된다니까! 엄청 빠르고 엄청 안전하고. 요 전번에는 말이요.”

“네.”

“아, 일단 한 잔 더 받으쇼. 거 고기도 팍팍 먹고! 교육생 밥이 원래 좀 부실한 거 아니요?”

“아니에요. 생각하시는 것보다 괜찮아요. 숙소도 괜찮고요.”

‘덕구야! 잘하고 있다!’

작게나마 웃음을 터뜨리는 유아영의 모습을 보고는 내 생각이 들어맞았다는 걸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좋아.’

김현성과의 면담은 이미 수차례.

심지어 나와도 면담을 나눈 적이 있다. 당연하지만 길드의 카탈로그를 뿌린 것도 이미 한참 전이었고 혹시 돈이 부족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연봉과 계약금을 계속해서 높여가며 이야기를 꺼냈던 적도 있었다.

친해지려고 먼저 다가간 적도 있었지만 애초에 사교 레벨이 그다지 높지 않은 김현성이 그녀를 설득할 수 있을 리가 만무.

나 역시 유아영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제법 노력했었지만 묘하게 경계하는 느낌에 더 이상 다가가는 것이 무리라고 생각했었다.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어 며칠 전부터 박덕구를 투입한 게 드디어 성과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뭔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있어야지.’

장담컨대 박덕구의 친화력은 내가 가지고 있는 것 이상이다.

조금 취향을 타기는 하지만 꾸밈이 없고 거짓이 없다는 느낌을 들게 하니까.

처음 식사를 한 자리에서 순식간에 그녀와 친해졌던 모습을 떠올리자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정말로 서로 친하고 사이가 좋으신 것 같으시네요.”

“아암! 당연하지. 저번에도 말하지 않았소? 다른 사람도 물론 전부 친하기는 하지만 형님이랑 나랑 현성이 형씨는 그 뭐라고 말해야 되나. 튜토리얼 때부터 이어져 내려온 끈끈한 유대. 그 남자들만의 말할 수 없는 뜨거운 우정! 이런 게 있다고! 이제는 눈을 감고도 형님이랑 형씨가 뭔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니까!”

저건 분명히 착각일 것이다.

“튜토리얼 하니까 생각났는데 말이요. 그때 형님이 딱! 몬스터 뚝배기를 돌로 내려친 다음에 말이요. 덕구야, 내가 할 수 있으면… 너는 더 잘할 수 있다. 키야! 내가 그 말 때문에 던전에서도 용기를 낸 거 아니요? 원래는 무서워서 덜덜 떨고 있었는데 용기도 생기고 막!”

‘저 이야기는 몇 번째야.’

한 가지 단점이 있다면 조금 낯부끄러워진다는 것이었지만 충분히 감수할 수 있다.

“그 이야기는 저번에도 해주셨어요, 덕구 오빠.”

“그랬었나?”

“네. 그래도 매번 들어도 기분 좋아지는 이야기네요. 두 분이 정말 친한 게 느껴져서.”

“하하하. 실제로도 조금 그렇습니다. 물론 튜토리얼 던전에서 만난 덕구와 하얀이, 현성 씨와의 인연도 소중하기는 하지만 저희 파란 길드가 우선으로 하고 싶은 건 일단은 가족 같은 분위기라서 말입니다. 다른 길드원과도 허물없이 지내고 있는 편입니다.”

“아! 그렇군요.”

“네. 실제로 모두가 가족처럼 친하니까요.”

“가족처럼 친하다마다! 형님이랑 누님은 곧 진짜 가족이 될지도 모르니까.”

“아… 역시 두 분은 서로 사귀는 사이였군요? 들려오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확실하지는 않아서 그냥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일… 단은 그렇습니다.”

“그리고 이 둘을 이어준 게 바로 강원도 연애 박사, 박덕구요!”

“네?”

“내가 중간에서 다리도 좀 놔주고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거 아니요. 누님이 조금 소심해서 내가 등을 떠밀어 줬다니까. 큼.”

“강원도 연애 박사요? 그럼 두 분은 튜토리얼에서 만나서 사귀시기로 하신 건가요?”

“네. 일단은 그렇습니다.”

뭔가 흥미로워하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이런데 관심이 있나.’

아마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정신없이 시간이 지나가기는 했지만 아직 20대 초반인 그녀가 이런 연애담에 흥미로워하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

내 입으로 막 이야기를 꺼내던 찰나 먼저 입을 열어온 것은 박덕구였다.

“그게… 원래는 누님이 저렇게 천재이기는 하지만! 큼! 튜토리얼 던전에 있었을 때에는 조금 안 좋은 시기도 있었다오. 자세히는 모르겠는데 막 사람들한테 밉보여가지고….”

“네.”

“막 나쁜 사람들이 누님을 괴롭히고 따돌리고 이랬다는 거 아니요. 그때 우리 튜토리얼 던전에서는 우리 형씨가 생존자들을 한곳에 모으고 보호하고 있었는데… 아무튼 배분한 식량도 일부로 누님한테는 조금만 주고 그랬다니까! 이 썩을 놈들이!”

“아….”

“이런 말은 조금 그렇지만 심지어 어떤 놈이! 누님을 막 어떻게 해보려고 해서! 아니, 이 이야기는 조금 그렇고. 아무튼 누님이 말은 못 했지만 당시에는 무척 힘들었을 거요.”

“그렇군요.”

“그때 혜성처럼 등장한 게 우리 기영이 형님이었지.”

괜스레 얼굴이 붉어졌다.

‘쪽팔려.’

그렇지만 나쁘지 않아.

내가 있는 쪽을 힐끔 힐끔 보며 고개를 끄덕이는 유아영의 얼굴이 시야에 비쳤으니까.

“그때 기영이 형님이 우리 누님한테 이것저것 챙겨주기 시작해서 말이요. 물론 여기까지는 형님도 자기 여동생이 생각나서 누님을 돌봐준 거라고 말했었는데… 그게 사람 마음이라는 게 그렇게 쉽게 되는 게 아니지 않소. 누님이 형님을 너무 좋아하다 보니까 내가 여기에서 이것저것 조언도 좀 해주고….”

“네.”

“원래 강원도에서 연애 박사 박덕구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었으니까. 큼. 큰일은 아니었소. 자세하게 이야기하자면 너무 길어지는데 아무튼 간에 내가 누님한테 여러 가지 조언도 해주고 형님 몰래 팁도 팍팍 넣어주고 그러다 보니까 둘이 갑자기 가까워지고 그랬다는 거지. 누구든 강원도 연애 박사 손에 걸리기만 하면 아주 그냥!”

“그렇군요.”

“그래도 두 사람의 사랑이 싹 튼 것은 결국에는 두 사람 때문이 맞소. 누님이 용기를 냈고 형님도 결국에는 누님을 좋아하게 됐으니까. 두 사람의 사랑이 아름답게 마무리된 건 사실은 내 역할이 아니라 두 사람의 역할이 가장 컸다는 거요. 강원도 연애 박사는 그냥 거들기만 했다는 거지.”

‘이 돼지 새끼….’

슬쩍 나를 바라보며 엄지를 들어 올리는 모습을 바라보니 괜스레 심사가 뒤틀리기는 했지만 적어도 유아영의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모자라 마지막 말에는 제법 감명을 받은 것 같은 느낌.

그녀가 입을 연 것은 바로 그때였다.

“저….”

“응?”

“괜찮으시면 혹시 상담 좀 받을 수 있을까요? 입단에 관련된 이야기이기도 해서요….”

당연하지만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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