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5
회귀자 사용설명서 215화
강원도 연애 박사 (2)
“물론! 연애 상담하면 박덕구 아니요?!”
조금 뜬금없다고 느꼈기 때문에 당황한 나와는 다르게 박덕구는 벌써부터 콧김을 뿜으며 기대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녀석이 정말로 강원도 연애 박사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오랜만에 온 상담 신청에 기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던 모양인 것 같았다.
‘누구지?’
갑자기 맥이 빠지기는 했지만 나 역시 궁금해지기는 마찬가지.
‘혹시 김현성인가.’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우리 사랑스러운 회귀자는 덕구와 나와는 다르게 전형적인 미남일 뿐만이 아니라 언행이나 품성이 바르니까.
내가 여자였어도 녀석을 쫓아 다녔을 거다. 심지어 능력도 있으니 육탄전은 물론 주위 계집애들이 다가오지 못하도록 철벽 수비를 했을 게 분명하다.
충분히 마수에 걸려들 만하지.
‘아니면 교육생 중에 있나?’
교육생 중에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고 가정한다면 우리 길드의 제안을 미루고 미룰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여러 가지로 궁금해지기는 했지만 어차피 답은 나오게 되어 있으니 기다리는 것이 인지상정.
굳이 나가달라고 말하지 않는 것을 보면 내가 들어도 상관없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으리라.
“그러니까.”
“거, 허심탄회하게 말해보쇼.”
“저….”
“아무거나 다 괜찮다니까.”
잠깐 숨을 들이마신 이후에 말을 내뱉는 그녀의 모습이 시야에 비쳤다.
조금은 의외의 발언이었다.
“사실은… 만나는 친구가 있는데요.”
‘이건 또 뭐야.’
“엉?”
“저도 이기영 교관님과 정하얀 교관님처럼 튜토리얼 던전에서….”
“아아아….”
누군가를 좋아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과는 반대로 이미 만나고 있는 사람이 있는 것은 조금 의외.
그렇지만 이상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그야….’
남자라면 이런 여자를 싫어할 리가 없다. 성격은 그렇다고 쳐도 외형이 일단 압도적이다.
얼굴은 조금 평범한 것 같은 느낌이었지만 전설적인 흉부의 위용은 모든 단점을 커버하고도 남는다.
지금도 마찬가지겠지만 튜토리얼 던전 안에서도 그녀를 어떻게 해보려고 하는 사람들이 존재했으리라.
“그럼 두 사람은 이미 사귀고 있는 게 아니요? 그다지 도움이 필요한 것 같지는 않은데….”
그것보다 유아영이 교내에 남자친구가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분명히 처음에는 항상 혼자였던 걸로 기억.
다른 망둥이들이야 관심을 가지지는 않았지만 그녀에게 제법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조금 스토커스럽기는 했지만 그녀가 어떤 인간인지 파악하기 위해서였고 실제로도 그녀가 처한 상황에 대해 공감할 수 있었다.
‘최근에는 못 봤지만….’
단언컨대 남자친구라고 부를 만한 놈은 보이지도 않았다.
대화를 나눌 만한 친구도 없었고 항상 구석에서 혼자 행동했었다.
그녀가 어느 정도 성과를 이룰 때까지 그녀에게 말을 걸어오는 것은 시정잡배같이 생긴 양아치들밖에는 없었다는 거다.
그렇지만 왠지 모르게 예상이 가는 상황이 있기는 하다.
“아니요. 조금 상황이 복잡해서요.”
“큼. 사랑의 큐피드 역할은 할 수 없어서 유감이지만 그래도 상담은 상담이니까. 뭐,사랑의 고민이 있는 거 아니요? 그렇다면 이 박덕구지!”
“네. 아까 말씀드렸던 것처럼 오빠랑 저는 튜토리얼 던전에서 만났거든요. 괴물한테 당할 뻔했던 걸 우연히 오빠가 구해줘서요. 딱히 누가 먼저 사귀자는 소리도 안 했고 상황이 상황인 만큼 연인다운 뭔가를 해볼 시간은 없었지만….”
“음음…. 그렇구만. 우리 형님과 누님도 그랬지.”
“그… 김현성 파란 길드 마스터님이 생존자들을 구해주셨다고 했나요?”
“아암. 대단했다오.”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오빠도 비슷했어요. 할 수 있는 내에서 생존자들을 구했고 식량을 구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과 위험한 길을 가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고…. 아마 저희들 때문에 공략에 참가하지 못하셨을 거예요. 공략조는 아니었지만 튜토리얼 던전에서 전직을 하셨으니까요.”
“오!”
“아무튼 간에 중요한 건 저도 오빠를 좋아하고 오빠도 저를 좋아했다는 거죠.”
“거, 선덕선덕하구만.”
“던전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부 말씀드리기는 힘들지만… 아! 또 무슨 일이 있었냐면요….”
조금은 더 들어주고 싶었지만 더 이상 기다리기가 힘들다.
두 명의 투머치토커의 이야기가 끝나려면 오늘 밤을 새도 모자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쓸데없는 일화를 듣는 걸 차단하고자 먼저 입을 열자 곧바로 대답이 들려왔다.
다행히 주제가 삼천포로 빠지는 것은 막을 수 있었다.
“궁금한 게 있는데 잠깐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유아영 교육생?”
“아! 네.”
“조금 실례되는 질문이지만 남자친구 분과 함께 다니시는 걸 본 적이 없는 것 같아서 말입니다. 물론 교육생이라는 특성상 그럴 수 없다는 걸 이해는 합니다만… 평소에 매번 혼자 계시는 것 같아서….”
“아아아아…. 사실은 튜토리얼 던전에 나와서 막 교육을 받기 시작했을 때 오빠가 조금 거리를 두자고 하셨거든요. 아무래도 훈련에 조금 더 집중해야 하는 시기였으니까 이해는 돼요. 조금 쓸쓸하기는 했지만….”
‘역시나.’
[플레이어 유아영의 고유 기벽을 확인합니다.]
[풍요로운 가슴]
‘호구 당한 거구만….’
퍼즐이 딱딱 짜 맞추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공략조는 아니었지만 일단 1차 전직을 마친 남자친구. 그리고 가진 게 아무것도 없었던 여자친구.
세세한 설명 없이 곧장 예를 들어 설명하자면 사시, 공무원, 의대 같은 곳에 합격해 인생이 펴지길 기다리고 있는 남자가 여자를 뻥 차버린 상황과 굉장히 유사하다.
‘나 같은 쓰레기네 이거….’
하나를 알면 열이 보이는 법이다.
‘이기영 같은 새끼.’
아마 튜토리얼 던전에서 유아영을 끌고 다닌 이유도 분명히 존재할 것이다.
막말로 이야기하자면 성욕을 풀 대상이 필요했을 수도 있고 자기 대신 죽어줄 사람이나 유사시에 희생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을 수도 있다.
“아직 권태기 같은 건 아니고요. 원래 오빠 성격이 조금 냉정한 편이라… 그래도 속은 따뜻한 사람이에요.”
말하자면 그녀는 어차피 버려질 사람이었다는 거다.
튜토리얼 던전에서 살아남은 이유는 어디까지나 운이 좋았기 때문. 만약 버려야 할 상황이 왔다면 가차 없이 버려졌으리라.
이 다음 이야기도 뻔하다. 1차 전직을 마치고 튜토리얼 던전에서 나온 이후에 본인이 제법 재능이 있다는 걸 깨달았을 테고… 자기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있었던 이 여자의 존재가 귀찮아졌을 것이다.
재능을 볼 수 없는 놈의 눈에는 이 여자의 장점은 가슴이 큰 것밖에는 없다고 생각했을 테니까.
물론 데리고 다닌 보험이 보석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때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을 터.
태세전환하기에는 아주 적절한 타이밍이다.
“이제 교육도 거의 끝나가니까요. 오빠도 예전처럼 다시 다가와 주시더라고요. 아직 길드에 제의를 받지는 못했지만 다른 클랜과 길드에서도 분명히 데려갈 거예요. 제가 고민인 건….”
“아마 남자친구 되시는 분이 같은 길드에 들어가고 싶다고 하신 모양이군요. 혹은 파란에 함께 들어갈 수 있는지에 대해서 물어보라고 말하실 수도 있고요.”
“어. 어떻게 아셨나요?”
그야 너무 뻔하니까.
“그냥. 왠지 그런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기영 교관님 말이 맞아요. 조금 보잘 것 없게 느껴지실 수도 있겠지만 저한테는 중요한 문제라서…. 사실 누가 기대를 해준 게 처음이라서요. 열심히 할 수 있었던 것도 전부 교관님이 해주신 말씀 때문이고… 또 교관님 마음에 응하고 싶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계속 오빠가 마음에 걸려서.”
“어째서 함께 넣어달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그야 민폐를 끼친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요.”
‘착하네.’
눈 딱 감고 함께 들어가 달라고 말했다면 어쩌면 대충 자리를 만들어 줬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대우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니까.
정말로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던 것은 그런 말을 꺼내는 게 민폐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리라. 아마 저런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호구 잡힌 거겠지… 자리를 만들어 봐야 되나.’
남자 쪽은 인성이 쓰레기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일단 계약만 성공시킨다면 쓸 수는 있다.
파티원으로는 쓰지 않더라도 다른 부분에서 쓸 곳이 생길지도 모르고 배짱부려 연봉을 올려달라고 개거품을 물지만 않는다면 쓰레기 한 명으로 인재를 구할 수 있다는 건 나쁘지 않은 거래.
유아영이나 되는 사람을 컨트롤할 수 있는 사람이 생긴다는 건 짜증 날 수도 있겠지만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위치와 힘이라면 쓰레기 한 명 컨트롤하는 건 일도 아니다.
수틀리면 쓱싹 해버려도 되고….
‘대충 골드 몇 푼 쥐어주면 되겠지, 뭐.’
물론 진지한 연애 상담을 해주는 방법도 있지만 사실상 이게 제일 간단한 방법이라는 거다.
아니면….
‘그냥 떨어뜨리는 게 낫나.’
누가 봐도 호구처럼 보이는 가슴과 맹해 보이는 얼굴. 입만 조금 털어주면 쓸개고 겉옷이고 나발이고 다 줄 것 같은 표정을 보니 작업을 쳐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테이블을 툭툭 두드리며 생각을 정리하고 있을 때였다.
“형님, 제가 한마디 해야겠소.”
덕구 녀석이 꽤나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연 것이다.
“어….”
“아영 씨한테는 미안한 말이지만….”
“네?”
“헤어지는 게 좋은 것 같소.”
조금 당황한 것 같은 얼굴.
새삼스레 진지한 표정의 박덕구가 조금은 낯설었다.
유아영의 반응을 살피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 혹시나 네가 뭔데 나와 우리 오빠의 관계에 대해 단정 지을 수 있냐, 분노하는 것은 아닌지 신경 쓰였기 때문이다.
“나는 그 사람을 본 적도 없고 얼굴도 모르지만 솔직히 좋은 사람 같지는 않소.”
‘너무 돌직군데….’
조금 더 조심스럽게 말해주는 게 좋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왠지 모르게 녀석의 목소리는 무게감이 있다.
‘강원도 연애 박사 킹덕구….’
“아….”
“사랑의 메신저로서 두 사람을 축복해 주지 못한다는 건 가슴이 아프기는 하지만 그 사람과 함께 하기에는 아영 씨는 너무 아까운 사람이요. 내가 파란 길드라서 이런 말을 하는 게 아니라니까. 솔직히 형님이라면 아영 씨와 함께 그 사람을 길드로 데려오는 건 문제도 아닐 거요. 그렇지 않습니까? 형님?”
“뭐, 그렇지.”
“우리 길드의 티오에도 당연히 공석은 있지만!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이 잘되는 걸 응원해 주고 등을 밀어주지는 못할망정 발목을 붙잡고 등에 업히려고 하는 게 대관절 남자라고 할 수 있겠소? 튜토리얼 던전에서 나오자마자 시간을 두자는 것도 그렇고 너무 치졸하고 속이 옹졸한 사람이요. 아영 씨가 잘되니까 다시 다가온 게 아니라는 보장은 어디 있겠소.”
“아….”
이 새끼는 뭔데 갑자기 이렇게 날카로워.
“거, 뜬금없지만 옛날이야기 한번 하겠소. 예전에 우리 동네에 오영희라는 아지매가 한 명 있었는데 말이요. 남편 되는 놈이 다른 여자랑 눈 맞아서 서울로 도망갔다고 합디다. 아직 돌도 안 된 아기를 내버려 두고 말이요. 내가 막 고등학생되었을 때 그 영희라는 아지매가 하던 식당이 대박이 나서 막 다른 지역에 2호점, 3호점도 내고 막 그랬었는데… 그 바람난 남편이라는 놈이 쓰벌, 다시 되돌아와서 받아달라고 했다는 거 아니요.”
“아….”
“결국 그 아지매가 애도 딸려 있고 그러니까 어쩔 수 없이 받아줬는데 말이요. 그 아지매 병으로 죽고 난 다음에는 도망친 그 여자랑 같이 와서 돈 펑펑 쓰면서 삽디다. 세상에는 나쁜 사람이 많다는 거요. 아영 씨는 딱 봐도 착할 것 같아서 하는 이야긴데….”
“네….”
“물론 내가 이런 충고를 해줄 정도로 오래 산 것도 아니요. 내 말을 들으라고 말하는 그런 꼰대는 아니고…. 위에 있는 입장으로서 말하는 것도 아니지만… 아! 술잔을 나눴으니 이제는 친구 아니요. 친구 입장에서 말하는 거요. 이건 아영 씨가 선택해야 되는 거요. 한번 잘 생각해 보쇼. 그 사람이 정말로 아영 씨가 생각하는 인간이 맞을까에 대해서 잘 한번 생각해 보쇼.”
‘이 돼지 갑자기 왜 이래.’
“만약에 그런 사람이 아닌 것 같다면 사랑의 메신저 박덕구가 전력으로 사랑을 응원해 주겠다니까.”
짧지만 나쁘지 않았다.
일단 목소리에 무게감이 실려 있으니 왠지 모르게 조금은 집중해서 듣게 되는 목소리다.
내가 이런 반응을 보이는데 저 조언 아닌 조언을 정면으로 받은 유아영이 어떤 반응을 할지는 뻔할 뻔자.
단순히 꼰대나 자신을 파란으로 들여오기 위한 말이 아니라는 건 본인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연애 박사 킹덕구의 조언을 조금 더 무게 있게 받아드릴 수 있다.
아마도 지금 혼자서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정말로 그 사람이 자기가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 맞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어떤 결론에 도달했는지 자꾸만 표정이 안 좋아지는 것 같은 느낌.
콩깍지가 한 풀 벗겨지면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게 떠오르는 법이라는 거다.
만약에 정말로 그 남자친구라는 놈이 진심으로 유아영을 대했다면 캥기는 게 없겠지만 나는 녀석이 쓰레기가 맞다고 백퍼센트 확신할 수 있다.
“잘… 잘 모르겠어요.”
말은 저렇게 하지만 표정은 이미 울상인 것을 보니 몇 가지 생각나는 정황이 있는 모양.
“만, 만약에 덕구 오빠 말… 이 맞다면… 어… 어떡하나요? 어떻게 해야 되나요?”
박덕구가 슬쩍 내 쪽을 바라보며 입을 열어왔다.
“그야 우리 형님이 복수해 줄 거요!”
조금 귀찮아지게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