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7
회귀자 사용설명서 217화
귀여운 복수 (2)
‘쯧.’
강의실을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2번 쓰레기. 조금 훤칠한 키와 외모를 가지고 있는 남자였다.
당연하지만 혼자 온 것은 아니다.
옆에 붙어 있는 것은 제법 괜찮은 외모를 가지고 있는 여자였다.
[플레이어 김기철의 상태창과 잠재 능력을 확인합니다.]
[이름 - 김기철]
[칭호 - 없습니다. 조금 더 노력하셔야겠네요.]
[나이 - 25]
[성향 - 이기적인 낙천주의자]
[직업 - 전사]
[능력치]
[근력 - 18/성장한계치 희귀 이상]
[민첩 - 18/성장한계치 희귀 이상]
[체력 - 18/성장한계치 희귀 이하]
[지력 - 18/성장한계치 희귀 이하]
[내구 - 18/성장한계치 희귀 이상]
[행운 - 18/성장한계치 희귀 이상]
[마력 - 08/성장한계치 희귀 이상]
[총평 - 그저 그런 능력치와 스탯을 가지고 있습니다. 별 볼일 없는 쓰레기입니다.]
당연하지만 마음의 눈으로 확인을 해도 특이사항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한 가지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녀석의 성향이 유아영과 같은 낙천주의자라는 것.
물론 유아영은 ‘소심한’이 붙어 있고 녀석은 ‘이기적인’이 붙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둘이 제법 잘 맞는 부분도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니 조금 흥미로워졌다.
아무튼 간에 갑작스러운 손님 두 명이 강의실 문을 드륵 열고 놀란 표정을 한 것은 당연할 것이다.
아무도 없었을 거라고 생각한 것과는 다르게 먼저 온 손님이 있으니 신경 쓰일 만도 하다.
한소라를 확인한 이후에는 곧바로 말을 주고받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어떡하지? 오빠? 다음에 와야 되나?”
“또 언제 기회가 올 줄 알고… 이제 시간도 없는데 교관들이 안 돌아다니는 강의실도 여기밖에 없고.”
“나중에는 실컷 할 수 있잖아.”
“그래도 싫어. 지금 같이 있고 싶단 말이야. 저기요.”
“…….”
“죄송한데 여기 쓰시는 거 아니면 저희 좀 써도 되겠습니까?”
“…….”
당연하지만 한소라가 그들의 제안을 거절할 수 있을 리가 만무.
대답은 하지 않았지만 몸은 이미 나갈 채비를 마치고 있었다.
이미 들어온 것을 확인하고서는 닭똥 같이 흘러내리는 눈물을 한쪽 손으로 쓱쓱 닦으며 바깥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모습은 가관.
쩔뚝거리며 밖으로 나가는 꼴이 마치 비 맞은 강아지를 생각나게 한다.
‘진짜 불쌍하네.’
물론 린델에는 한소라보다 불쌍한 사람이 널려 있기는 하지만 바로 앞에서 이런 이벤트를 목격하게 되니 괜스레 가슴이 쿡쿡 찔러왔다.
먼저 시비를 준 게 저쪽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사람인지라 동정심이 생겨나기는 한다는 거다.
“뭐야? 대답도 없고. 몰골은 또 왜 저래? 오빠 쟤 알아?”
“쟤 한소라잖아.”
“한소라?”
“응. 공략조였던 애.”
“정말로? 그 마법사 한소라 말하는 거 맞아? 기철 오빠?”
“너는 왜 이렇게 바깥소식에 둔감해?”
“저거 하나 모르고 있다는 게 꾸지람 당할 일이야? 관심이 없었으니까 그렇지. 관심이….”
“쟤 정하얀 교관 연구실 털려다가 걸렸잖아. 욕심이 많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운이 없었던 거지, 뭐. 하필 정하얀 교관이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에 실험하고 있는 걸 잘못 건드렸다가 폭발했다더라.”
“아아아….”
“천재 마법사의 연구 결과물이니 훔치고 싶은 게 당연하다만은 정신이 나가도 보통 나간 게 아닌 거지. 덕분에 마법사들 중에서 쟤 원망하는 사람 많아. 정하얀 교관 강의가 조금 중구난방에다가 알아듣기 힘들기는 했어도 확실히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거든. 나도 마력 운용 방법은 정하얀 교관 때문에 배운 거고…. 전사들한테도 도움이 되는 거니까 말 다했지, 뭐.”
“아아아… 그런 거구나.”
“잘못은 한소라가 했는데 정하얀 교관이 자격 박탈 당하니까 나로서도 아쉽지. 정하얀 교관이랑은 조금 더 친해졌어야 했는데….”
“왜? 오빠 파란으로 갈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아직 확정된 건 아니야. 파란 아니라 다른 곳으로 갈 확률도 높고 그래도 그런 사람이랑 인맥을 만들어 놨다는 것 자체가 도움이 되는 일이니까. 여기는 이미 사회야. 멍청하게 시간 보내는 것보다는 교관 하나하나랑 전부 친해져도 나쁠 게 없어.”
“나한테 잘해주는 것도 그런 이유야?”
“글쎄… 알고 싶어?”
“됐어. 나도 오빠 덕분에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지, 뭐. 나도 캐쥬얼한 게 좋으니까.”
“역시 네가 이래서 좋다니까.”
슬쩍 옆을 보니 부들부들 떨고 있는 유아영이 시야에 비쳤다.
괜스레 움찔거린 것은 당연지사.
그렇지만 옆에 있는 유아영은 정하얀이 아니다. 단검을 꺼내들지도 않고 캐스팅을 하고 있지도 않은 모습에 조금은 안심할 수 있었다.
그녀가 마음에 걸리던 게 저 여자인지 아니면 다른 사건인지는 알 수 없지만 오늘의 실험남과 실험녀는 제법 끈적끈적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중.
잘은 모르겠지만 이런 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누가 봐도 가까워 보이는 모습이었고 무척 친근해 보이기까지 했다.
‘쯧쯧.’
[플레이어 김기철의 고유 기벽을 확인합니다.]
[호색한 여우]
고유 기벽을 확인하자 너무나도 예상 가능한 기벽이 튀어나왔다.
‘여자 좋아하는 모양이네.’
예상하기는 했지만 확인하면 할수록 정이 별로 가지 않는 타입.
벌써부터 인맥을 관리하거나 교관들과의 관계를 신경 쓰는 것을 보면 자신이 현재 처해 있는 상황에 잘 처신하고 있는 것 같기는 했지만 알맹이가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저런 놈들 치고 제대로 된 놈들을 본 기억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여자 친구 있는데… 오빠 이래도 되는 거 맞아?”
“너는 매일 그거 물어보더라.”
“그야 그 편이 조금 더 흥분되니까. 오빠는 안 그래?”
“조금은 그런 면도 있기도 해.”
“유아영한테는 잘해야지. 그래야 파란으로 가는 거 아니야?”
“이미 들어간 거나 다름없어. 아니면 다른 길드로 갈 수도 있고… 쓰다 버릴 여자가 보석일 줄 누가 알았겠어? 튜토리얼에서 데리고 다니길 잘했다니까.”
“그래도 나 같으면 조금 더 조심하겠다. 물론 오빠랑 이러는 거 나야 나쁘지는 않은데… 불안하지도 않아? 그 젖소가 눈치가 없어 보이기는 하지만… 그냥 정착해 버려. 몸매도 좋고.”
“몸매 좋은 거랑은 아무 상관없어. 걔는 재미가 너무 없는 게 흠이라고… 결혼은 해도 연애는 하기 싫은 종류란 말이야. 내 말 무슨 말인지 알지?”
“그럼 연애는?”
“그 소리가 듣고 싶은 거였어? 너랑 해야지. 이 계집애야.”
“좋다아.”
쪽쪽거리기 시작한 한 쌍의 바퀴벌레를 보고 있자니 속이 조금 안 좋아지기는 한다.
당연하지만 내 옆에 있는 유아영 보다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일말의 기대감은 있었는지 자신의 이야기가 나올 때는 빤히 쳐다보기는 했지만 이야기가 진행되고 두 사람이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몸을 떨고 있었다.
저도 모르게 내 손을 꽈악 움켜쥔 것은 물론.
눈에서는 계속해서 눈물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한소라도 그렇고….’
오늘만 여자가 서럽게 우는 걸 두 번이나 목격한 셈.
괜히 찝찝해진다.
“그만 나갈까요?”
“…….”
“나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네….”
“더 있어봐야 좋을 게 없으니까요.”
강의실 문이 스스로 열리는 걸 보고 깜작 놀라기는 하겠지만 내가 신경 쓸 부분은 아니다.
조용히 유아영을 데리고 문을 열자 깜작 놀랐는지 잠깐 안이 소란스러워지기는 했지만 저들을 무시하고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유아영의 상태는 한소라의 모습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다.
아까 전에는 눈물만 뚝뚝 떨어뜨리고 있었던 것과는 다르게 지금은 계속해서 손으로 얼굴을 비비며 안에 있는 감정을 쏟아내고 있는 중.
위로해 줘야 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해 툭툭 어깨를 두드리자 이쪽으로 꽉 안겨 왔다.
‘이럴 줄 알았어.’
“꺼으어으어어엉… 끄으으윽….”
박덕구가 원망스러워지는 것이 당연.
이 사단을 만들어낸 강원도 연애 박사는 현재 발 뻗고 자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심사가 뒤틀리기 시작했지만 가슴에서 느껴지는 압도적인 위용 때문인지 기분이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흐어어어엉… 꺼어어엉….”
생각보다도 더 신뢰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튜토리얼 던전이라는 배경의 특성상 더 많이 의지하고 더 많이 가까워졌을 터.
저렇게 뒤통수를 제대로 맞아본 적이 없어 제대로 공감하기는 힘들었지만 그녀가 어느 정도로 가슴 아파하는지는 충분히 전해진다.
조금 진정한 것은 한참 뒤.
“괜찮으십니까?”
아직도 훌쩍이고 있기는 하지만 방금보다는 훨씬 낫다.
눈은 퉁퉁 부어 있었고 진정이 되지 않는지 내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있었지만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조금 더 오래 껴안고 있으면 린델에서 쉬고 있는 정하얀이 등장할 수도 있었기 때문에 슬그머니 그녀를 떨어뜨린 뒤에 다시 한번 말을 이었다.
“뭐라고 위로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잘 모르겠지만 유감입니다.”
“아뇨… 훌쩍. 괜찮아요. 저도 조금은 예상하고 있었고… 곰곰이 잘 생각해 보면 이상한 점이 많았으니까요.”
“네.”
“아닐 거야. 아닐 거야. 생각하고 있기는 했지만 눈으로 보니까… 흐으윽….”
다시 한번 눈물을 장전하려는 듯한 느낌.
슬픔에 공감이 가지는 않았지만 일단은 열심히 위로의 말을 전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야 긍정적인 대답이 나올 거라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이미 그녀의 파란 입단은 확실시 된 거나 마찬가지.
그렇지만 한 가지 일이 더 남아 있었다.
내가 벌인 일이 아니라 박덕구가 벌인 일이었다.
‘복수?’
물론 그녀의 상태나 성향을 보면 크게 원할 것 같지는 않았지만 배신당한 마음 정도는 갚아주는 걸 원하고 있을 수도 있으리라.
‘죽이거나 폐인으로 만들 정도는 아닐 테고….’
그건 내 주위에 있는 정하얀, 이지혜, 차희라 같은 사람들의 솔루션으로 어울리는 방법이지 이런 여자나 병아리들을 위한 해결책으로는 어울리지 않는다.
마침 딱 맞는 적당한 방법이 생각나기는 했지만 굳이 움직이기도 귀찮은 일.
이제 한 가족이 될 사람을 위한 서비스로는 나쁘지 않지만….
‘조금 재미있을 것 같긴 한데….’
최근 열심히 움직였으니 한순간 즐기는 여흥으로는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 것은 바로 그때였다.
마침 조용히 입술을 깨문 그녀가 입을 열어오는 것이 시야에 비쳤다.
제법 확고한 목소리였다.
“파란에 입단할게요.”
‘나이스.’
“잘 생각하셨습니다. 본래 최고의 복수는 성공이라는 말도 격언도 있으니까요. 아마 전 남자친구 되시는 분 배가 꽤 아플 겁니다. 연봉도 계약금도 모두 최상으로 대우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네…. 딱히 그런 마음이 있는 건 아니지만.”
“자신이 버리고 농락한 여자가 이렇게 아까운 사람인 줄 알면 땅을 치고 후회할 겁니다.”
“좋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단순히 말이 아니라 현실을 이야기 한 것뿐입니다. 유아영 씨, 당신은 재능이 있고 아름답고 똑똑한 여성이에요. 저기 강의실에 있는 멍청이한테는 사실 아깝죠. 유아영 씨만 괜찮으시다면 재미있게 골탕 먹일 수 있는 방법을 하나 추천 드리고 싶은데… 아, 물론 이건 파란에 입단하게 된 입단 선물입니다.”
“네? 아뇨 굳이 그러실 필요는….”
“저와 잠깐 만나도록 하시죠.”
“네…?”
“아. 물론 며칠 동안이니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교육기간이 끝날 때까지만도 괜찮습니다. 본래 저런 남자가 개거품을 무는 상황이 자기 거라고 생각했던 여자를 다른 남자한테 빼앗기는 상황이거든요.”
“…….”
“그것도 자기보다 더 능력 있는 사람에게 말입니다. 뭐, 여러 가지 면에서요. 성적으로든 재력이든 권력이든….”
“아….”
아마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본래는 혼자 슬픔을 삭일 작전이었을 수도 있었겠지만 대충 이야기를 꺼내자 그럴 듯하게 들리는지 혹하는 표정을 보내오고 있었다.
사람의 심리가 이래서 재미있다.
속에서 끌어 오르는 게 없을 리가 없다.
방금 그녀가 눈으로 본 장면은 충분히 충격적인 장면이다. 슬픔이 아직 가시고 있지는 않겠지만 가슴 한편에서는 복수심 같은 부정적인 감정이 스물스물 올라오고 있다는 거다.
‘곧바로 파란으로 들어오고 싶다는 것도 그런 이유일 수도 있고….’
파란에 들어와서도 계속해서 질질 짜며 슬픔에 젖어 있을 바에야 차라리 화끈하게 털어주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오히려 속에 계속 담고 있으면 이후에 폭발할 여지가 있을 수도 있으니까.
‘하얀이나 희영 씨처럼 인성이 망가질 염려도 없겠지.’
귀엽다면 귀엽다고 할 수 있는 복수.
저도 모르게 고개를 사정없이 끄덕이는 유아영의 표정이 시야에 비쳤다.
“그럼… 부탁드려요, 교관님.”
대신 기왕 할 거면 확실하게….
‘오랜만에 똘똘이도 봐야겠네. 화이트 폴도 부르고….’
차는 남자의 자존심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