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7
회귀자 사용설명서 227화
파티(3)
‘설득되고 있어.’
덕구 녀석이 처음 시동을 걸 때만 해도 이 자식이 도대체 무슨 개소리를 하는 건지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녀석의 말에 수긍하게 된다.
‘그럴 듯해….’
목소리에 묘한 울림이 있다는 건 둘째치고라도 박덕구의 말은 왠지 모르게 일리가 있다.
굳이 방어 전사를 선택할 이유가 없다.
방어 전사를 선택한 이점이라고 해봐야 관련된 근접 상위직으로 갈 수 있다는 것 정도.
물론 앞서 말한 것이 성장에 가장 중요한 요소이기는 했지만 기본적으로 낙천적인 그녀의 성향을 생각해 봤을 때 그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은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생각해 보면 유아영은 훈련소에서도 그렇게 열정적인 모습을 보여주지는 않았다.
‘적성에 맞지 않는 거야.’
재능이 뛰어나기는 하지만 본인이 그 분야에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개인적인 분석이었다.
대장장이라는 직업 선택창이 뜬 것 또한 우연이 아닐 것이다.
‘박덕구는 대장장이 직업이 뜬 적이 없었으니까.’
그녀가 말한 것처럼 그녀가 생산직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카테고리가 생겨났다는 거다.
물론 어떻게 생각해도 지금 당장 필요한 건 앞에서 버텨 줄 전위.
하지만 고급 방패 지식을 가지고 있는 박덕구가 유아영을 케어해 준다면 충분히 믿어볼 만하다.
나 역시 연금술로 마법사 못지않은 화력을 가졌다는 걸 생각해 보면 성장하는 방법과 타이밍만 맞는다면 대장장이도 충분히 전위로 사용할 수 있을 수도 있다.
‘잠재 능력도 나쁘지 않아.’
체력 재능이 전설이라는 것 또한 대장장이로 써먹을 여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부분.
걱정되는 것이 한 가지 있다면 김현성이 그다지 대장장이를 내켜하지 않는다는 거다.
당연하지만 미래에 유아영이 전사로서 큰 성공을 거두기 때문은 아니다.
김현성은 유아영을 잘 알지 못하고 있는 듯한 눈치였으니까.
김현성의 입장에서는 아주 귀하게 구한 인재를 생산직으로 돌리기 싫은 것뿐이겠지만 시간만 있으면 유아영과 레벨이 비슷한 인재는 어떻게든 구할 수는 있다.
왜?
나에게는 마음의 눈이 있으니까.
미래의 인재를 영입할 수 있는 김현성 역시 마찬가지다.
특히 이쪽에 지고의 보물인 디아루기아가 있다는 걸 생각해 보면 어쩌면 그녀는 드래곤 블랙스미스 같은 직업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거, 형님은 어떻게 생각하는 거요? 역시 대장장이 아니요?”
“글쎄….”
“생각해 보쇼! 대장장이가 딱이라니까! 누가 봐도 대장장이 상 아니요? 대장장이 상이라니까!”
정말로 그렇게 보이기 시작한다.
“망치를 들고 모루를 두드리는 모습을 상상해 보쇼. 초고열 용광로 속에서 일하니까 화염 저항도 일반 전위보다 뛰어날지도 모른다니까? 불바다 속에서도 버틸 수 있을 거요.”
‘말도 안 되는 소린데….’
이 영혼을 울리는 울림의 정체가 상상이 잘 안 된다. 슬쩍 유아영을 바라보자 그녀 역시 당황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중.
갑옷을 칭칭 입고 있는 것보다 뭔가 대장장이 같은 복장이 더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나 자신을 합리화하기 위해 앞서 말한 생각들도 점차 커져나가기 시작.
“대장장이!”
“방어 전사!”
“대장!”
“전사!”
그 와중에도 아직까지 김현성과 박덕구는 서로가 원하는 직업을 소리 높여 부르고 있었다.
이쪽에서도 뭔가 액션을 취해줘야 할 것 같은 타이밍.
결국에는 슬그머니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아쉽게도 사랑스러운 회귀자의 기대를 배신하는 목소리였다.
“대장장이… 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기영 씨?”
깜작 놀란 김현성의 얼굴이 가장 먼저 시선에 들어왔다.
‘미안하다, 자식아. 그런데 자꾸 마음이 대장장이한테 가네.’
비 맞은 강아지 같은 김현성의 눈빛조차 박덕구의 영혼의 울림을 이겨내지는 못했다.
“물론 현성 씨가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는 대충 이해가 갑니다만 아무래도 뛰어난 전사를 찾는 것보다 뛰어난 대장장이를 찾는 게 더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국 전체를 뒤져보면 괜찮은 대장장이가 나오기는 하겠지만….”
“네.”
“개인적으로는 파란이 보유하고 있는 특수한 자원을 외부 길드나 바깥쪽에 공개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크기도 하고… 덕구가 말했듯이 전직으로 얻을 수 있는 지식들은 덕구가 충분히 가르칠 수 있으니까요.”
“그렇지만… 고급 마력 운용 지식은 따로 배울 수 없을 겁니다.”
“저 역시 고급 마력 운용 지식은 가지고 있지 않지만 화력 면에서는 다른 마법사에 비해 크게 밀린다는 생각하진 않습니다.”
“그건 기영 씨가 특별한 경우….”
“그녀 역시 특별한 경우가 될 수도 있습니다. 아, 물론 저는 단순한 예를 설명해 드린 것뿐입니다. 어디까지나 선택은 그녀의 몫으로 남겨두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사실 이게 가장 중요한 문제다.
‘그녀가 어떤 선택을 하는가.’
이쪽에서 아무리 밀어붙인다고 한 들, 그녀가 어떤 선택을 하는가에 따라 운명이 결정지어질 것이다.
사실 길드의 입장에서도 강제로 밀어붙일 수 있기는 하다. 특히나 유아영 같이 애초에 전투직으로 계약한 경우에는 더욱더 그렇다.
대뜸 이야기도 안하고 대장장이로 전직해 버린다면 길드의 입장에서도 충분히 난감할 수 있다는 거다.
그렇지만 파란은 개인의 자유를 존중한다.
강제로 직업을 바꾸라고 한다고 해서 효율이 나오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박덕구 녀석의 영혼의 울림은 이상할 정도의 설득력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김현성과 박덕구의 다툼은 어디까지나 추천에 불과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유아영의 의견.
다시 한번 장내가 조용해지기 시작했다.
“그….”
“…….”
“…….”
“사실은… 대장장이가….”
“…….”
“크으! 내가 그럴 줄 알았다니까! 누가 봐도 대장장이 얼굴이었다니까!”
‘어딜 봐서.’
“이유를 들어도 되겠습니까?”
“아, 네. 딱히 뭐라고 말하기는 힘들지만… 왠지 모르게 그쪽이 끌린다고 해야 되나…. 이런 말이 어울릴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모르게 가슴이 시킨다는 느낌이라서요.”
이건 설득력이 있다.
“아….”
이유를 들어야 된다고 생각한 회귀자 역시 슬그머니 미드로 시선을 옮기다 붉어진 얼굴로 고개를 돌리는 중.
‘너도 남자구나….’
김현성의 반응을 아는지 모르는 유아영은 계속해서 입을 열었다.
“물론 제2파티에도 해가 되지 않도록 열심히 훈련할게요. 이기영 교관님 말씀대로 제 나름의 방법을 찾으면 가능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생산직을 선택한다는 게 조금 무섭기는 하지만….”
“그렇군요.”
현실로 복귀한 김현성이 조금은 뚱한 표정.
‘미안하다니까, 자식아.’
그렇지만 그 표정이 풀리는 것은 순식간. 유아영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면 그렇게 지원해 주는 게 맞다는 쪽으로 마음이 기운 모양이다.
디아루기아가 가지고 있는 자원에 대해서도 생각이 미쳤을지도 모르고 어쩌면 미래에 등장할 대장기술 따위를 생각해 보며 나쁘지 않은 타이밍이라는 생각이 들었을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가슴이 시킨다는 말에 엄청난 설득력을 얻었을지도 모른다.
전체적으로 일단은 그녀의 선택을 존중한다는 느낌이었다.
“아쉽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겠군요. 길드에서 최대한 지원을 해드리는 방식으로….”
“혹시 계약서에 적혀 있는 내용을 바꾸고 싶으시면 그렇게 하셔도 돼요. 애초에 전투직으로 계약을 하신 거니까… 갑자기 저도 죄송해지네요.”
‘그렇게 생각할 만도 하지.’
이 건은 이쪽에서 대신 말해줘야 될 것 같았다.
“아. 그 건은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영 씨. 대신 계약기간을 조정해야 될 것 같은데… 아무래도 아영 씨가 대장장이를 선택하게 되면 만질 자원이 주변에 널려 있는 다른 것들과 조금 다를 수도 있는 터라….”
“네. 그 부분도 충분히 염두에 두고 있어요, 교관님.”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음! 음!”
만족스러운 듯이 연신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박덕구는 기분이 좋은 모양.
혹시나 자신을 위협할 새로운 전위의 싹을 애초에 잘라버리려는 설계는 아닐까.
그런 생각을 했지만 박덕구는 내가 아니다.
아마 그런 생각 따위는 못 했으리라. 그렇지만 조금 이상한 느낌이 들기는 한다. 박덕구의 입장에서는 얻어걸린 것뿐이겠지만 결과만 두고 생각해 봤을 때는 한 번쯤은 해볼 만한 추론이다.
‘애초에 처음 생산직 이야기를 꺼낸 것도 박덕구였고….’
물론 녀석은 유아영의 직업 선택 목록창에 대장장이가 있는 것도 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건 마음의 눈으로도 볼 수 없다.
‘설마 진짜 그런 건 아니겠지.’
“이거 드디어 길드 대장장이가 만들어주는 방패를 쓸 수 있겠구만!”
‘가지고 싶어서 그런 것도 아닐 거야….’
디아루기아의 뿔이나 비늘로 만든 무기가 가지고 싶어서도 아닐 것이다.
그나마 파란에서 정상인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유일무이하게 박덕구뿐이다.
그렇지만 영혼의 외침의 결과물이 녀석에게 굉장히 유리하게 설계되어 있다.
“내가 팍팍 밀어 준다니까! 훈련은 맡겨주쇼!”
새로운 새싹을 전혀 다른 방향으로 돌린 것은 물론 자신의 방어구까지 만들게 하는 대담함.
‘이 새끼 바보 아닐지도 몰라.’
왠지 모르게 자꾸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결국에는 유아영이 희미한 빛에 휩싸였고 박덕구는 한 번 더 자신의 입지를 지킬 수 있게 됐다.
다시 한번 커다란 소리가 들리며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오고 갔지만 당연히 주제의 대부분은 유아영이나 한소라, 이창렬에 대한 것이었다.
“뭔가 새로운 지식이 들어 온 거요?”
“네. 지금 당장 한번 시험해 보고 싶네요.”
“여러 가지로 도움을 드릴 수 있는 부분이 있는지 한 번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기영 교관님.”
물론 그중에서도 제일 관심을 받은 것은 유아영이었다.
애초에 여러 가지 일에서 벗어나기 위해 만든 자리에서도 이런 대화가 오고가는 것을 보니 이미 우리도 뼛속까지 플레이어인 모양.
김예리도 이창렬과 제법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선희영도 한소라와 뭔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당연하지만 일상적인 대화가 아니다.
‘여기에 적응하기는 적응했구나.’
확실히 인간은 적응하는 동물이라는 걸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오늘 린델에 들어온 만큼 조금은 빠르게 끝내려고 한 자리가 끝나지 않는다.
결국에는 한두 명씩 술에 취해 숙소로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애초에 미성년자인 김예리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라는 길드 마스터의 엄명에 따라 조혜진과 함께 안으로 들어간 지 오래.
선희영과 황정연 그리고 신입들과 안기모도 하나둘 몸을 쉬기 위해 들어갔지만 정하얀은 꾸벅꾸벅 졸면서도 굳건히 내 옆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물론 박덕구와 김현성도 마찬가지.
어쩌다 보니 마지막에 남은 사람들은 튜토리얼 던전에서 만났던 네 명이다.
“역시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건 우리 네 명이구만!”
“그러네. 튜토리얼에서 함께 나온….”
“크으… 벌써 1년이나 지났다고 생각하니까 감회가 너무 새로운 거 아니요. 벌써 후임들을 키워야 될 때가 왔다고 생각하니까 정말 신기하다, 이 말이요. 형님이랑은 계속 붙어 있을 것 같았지만 사실 형씨랑도 이렇게 오래 함께 지내게 돼서 기쁘다니까.”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알 것 같습니다. 조금 낯간지럽기는 하지만 길 다면 길다고 할 수 있는 시간 동안 잘 따라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조금 쑥스러운 발언이라고 생각했는지 표정이 조금 굳어 있는 것 같다.
당연하지만 저런 말에는 똑같이 간지럽게 받아쳐주는 게 옳은 선택이다.
“당연한 일입니다. 동료니까요.”
“…….”
“…….”
“형님….”
입을 열면서도 조금 오그라들었던 발언.
그렇지만 박덕구와 김현성이 뭔가 찡하다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것이 보였다.
서둘러 주제를 옮길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현성 씨의 결정이 항상 합리적이기 때문이겠죠.”
“아암… 그건 그렇지.”
녀석이 조금 진지하게 입을 열어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사실….”
“네?”
“이번에는 조금 합리적이지 못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분위기가 조금 달라진 것 같은 느낌, 녀석이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단번에 눈치챌 수 있었다.
“검은백조와 나눴던 이야기를 하시는 겁니까?”
“예.”
“그렇군요.”
“위험한 일입니까?”
“네.”
‘슈… 바….’
조금은 걱정했던 일이 들이닥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