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8
회귀자 사용설명서 228화
균열 박물관 (1)
“위험한 일입니까?”
“네.”
“그렇… 군요….”
회귀자의 품이 마냥 따뜻하지만 않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다.
이 대륙과 지금 이 상황을 게임에 비유한다고 한다면 김현성은 메인 퀘스트를 가지고 있는 네임드 NPC라고 할 수 있을 정도.
녀석이 여러 가지 사건의 중심에 선다는 것은 이미 확정된 이야기였고 그 과정에서 위기가 따라올 수도 있다는 것은 이미 인지하고 있다.
생각해 보면 그동안도 위험하지 않았던 적은 없었다.
처음 튜토리얼 때 정진호와 함께 공략조로 참가한 것 역시 위험을 감수한 일이었고 캐슬락 공성전도 위험한 일이었다.
당연하지만 내가 이런 이벤트에 별 부담을 느끼지 않았던 것은 사랑스러운 회귀자를 믿고 있었기 때문.
혹시나 어떤 위기가 닥쳐와도 번개처럼 나타나 해결해 주지는 않을까 하고 생각했던 것이 큰 탓이다.
특히나 튜토리얼 던전 같은 경우에는 녀석이 합류함으로써 난이도가 대폭 내려간 것이 현실.
위험한 상황이기는 했지만 딱히 긴장하지도 않았다.
생각해 보면 내 모든 결정은 이런 저런 요소들을 고려해 보고 결정한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조금 위험하기야 하겠지만 가능성 있어.’
따위의 생각을 하며 실행에 옮겼다는 거다.
실제로 김현성은 자신의 선택이 불러올 위험에 대해서는 경고한 적이 없었다.
혹여나 사건이 터져도 자신이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의 발로이기도 했지만 최소한 같은 파티의 동료들은 죽지 않게 만들 자신이 있었던 것이다.
‘얘가 이런 말을 꺼낼 정도면….’
이번에는 정말로 위험하다는 뜻이다.
솔직히 어느 정도 불안감이 피어날 수밖에 없었다.
“일단 무슨 일인지 들어도 되겠습니까?”
“검은백조에서 지원 요청이 왔었습니다.”
“거절하기 힘들겠군요.”
“네.”
멍하니 있던 박덕구가 입을 열어왔다.
“왜 거절하기 힘들다는 거요?”
“빚진 게 많으니까.”
“아….”
“우리는 여러 가지로 검은백조한테 빚진 게 많아. 아직 전부 다 갚지도 않았고 내가 왕성에서 문제가 있었을 때도 우릴 도와주었지. 또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거든. 아마 네가 알면 깜짝 놀랄 거다, 덕구야. 조금 사소하다고 할 수 있는 부분까지 영향을 받고 영향을 주고 있어.”
심지어 박덕구의 일로도 도움을 받은 적이 있다.
“동맹이라고 하지만 파란과 검은백조, 붉은용병은 어디까지나 독립된 세력을 유지하고 있는 집단이라는 거야. 당연히 개인의 이득을 위해서 움직일 수밖에 없지. 이 동맹이 유지되고 있는 이유는 어디까지나 이 집단이 서로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지 이상한 우정이나 린델을 지켜내야 한다는 목표 때문도 아니야.”
“그렇지만 형님은 그 빨간 머리 누님이랑 꽤… 친근하게 지내고 있는 거 아니요?”
“그건 나와 희라 누나의 관계지 파란과 붉은용병의 관계는 아니다. 물론 친해서 생기는 어느 정도의 이점은 있겠지만 단순히 그뿐이야. 내가 파란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만큼 그녀도 붉은용병을 우선으로 생각할걸. 실제로 현성 씨도 검은백조의 길드 마스터와 친근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잖아. 공적인 일은 공적으로 사적인 일은 사적으로 그게 기본이야.”
“아아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세 동맹 중에 여러 분야에서 여러 가지 방식으로 지원 받고 있는 게 우리 파란이라는 걸 생각해 보면 답이 나오지? 이미 우리는 충분히 배려 받고 있다는 거야. 애초에 우리 길드는 움직일 수 있는 재화나 능력으로 본다면 중견 길드지만 규모 자체는 작아.”
“대충은 알 것 같은데….”
“간단히 말하면 이 삼자동맹 관계에서 가장 맛있는 꿀을 빨고 있는 건 파란이라는 것. 그리고 이 꿀물은 공짜가 아니라는 것. 이렇게 이해하면 되겠지. 그 동안 받아먹던 꿀물에 페이를 지급할 때가 됐다는 거야.”
내 말에 김현성을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기영 씨 말이 맞습니다. 검은백조 길드에서 공식적으로 저희 파란에게 도움을 요청한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만약 이번 일이 위험하다 해서 발을 뺀다면 검은백조에게는 물론 붉은용병에게도 신뢰를 잃을 겁니다. 물론 다른 길드나 클랜에게도 마찬가지고요.”
“아… 그런 거구만…. 말하자면 신의라는 거 아니요.”
“네. 그렇게 생각하는 게 이해하기 쉬울 겁니다.”
입장상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한다는 이야기다.
만약에 김현성의 말대로 이번 임무가 정말로 위험하다면 빚을 지운 것으로 모자라 빚을 달아놓을 수도 있다.
똑같은 일로 한 번 더 그녀들을 호출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나쁘지는 않아.’
파란도 언제 어떤 방식으로 위험을 맞을지 모른다.
위험을 극복하기 위해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는 게 조금 아이러니하지만 원래 이 대륙은 리스크를 진 만큼 보상을 안겨다 준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인 만큼 주사위를 던져볼 필요는 있다고 생각했다.
“정확히 어떤 일입니까?”
“던전입니다.”
‘이럴 줄 알았지.’
전쟁이 일어나 다른 나라에 포로로 억류되어 있는 게 아니라면 검은백조에서 도움을 청할 부분은 이 정도 밖에 없다.
“결론부터 설명해 드리자면 검은백조의 주요 간부진과 단원들이 던전 안에 고립되어 있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검은백조의 길드 마스터 박연주 씨에게 받은 부탁은 이 던전에 고립되어 있는 이들을 구조함과 동시에 던전을 공략하는 일입니다. 물론 박연주 씨를 포함한 검은백조의 주요 전력도 함께 움직이게 될 것 같고요. 공략 인원은 총 30명이 될 것 같습니다.”
“음… 던전 안에 있었던 이들이 죽었을 가능성은 없습니까?”
“던전 안을 빠져나온 생존자가 한 명 존재합니다. 증언에 따르면 던전 안에 있는 이들은 확실히 고립되어 있는 것이 맞습니다. 던전의 이름은 균열 박물관. 특이사항으로는… 무등급의 던전이라고 하더군요.”
“빠져나온 생존자가 있었군요. 아니, 그보다는… 등급이 없다는 말입니까?”
“네. 조금 더 자세하게 설명해 드리면 등급이 변화하는 종류의 던전이라고 들었습니다. 일반 등급의 던전이 될 수 있는 것은 물론, 전설 등급의 던전이 될 수도 있다는 거겠죠. 개인적으로는… 어쩌면 전설 등급 이상의 던전으로 변화할 수 있을 가능성도 생각해 봐야 될 것 같습니다.”
“네?”
“물론 그렇게까지 될 확률은 현저히 낮지만….”
만약 정말로 전설 등급 이상의 던전으로 변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면 들어가는 것 자체가 무리수이며 자살 행위다.
애초에 지금껏 공략된 전설 등급의 던전도 몇 개 없다는 걸 생각해 보면 전설 등급 이상일지도 모르는 던전에 들어간다는 것 가정 자체가 틀려먹었다.
물론 생존자가 있다고 한다면 검은백조에서 이것저것 공략에 관련된 것들을 준비하기야 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험 요소가 너무 많다는 생각을 해볼 정도.
‘전설 등급 이상이면… 신화 등급인가.’
일반 등급일 수도 있고 영웅 등급 일 수도 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게 가능한 건지 궁금해질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그런 게 가능한 겁니까?”
“균열 박물관은 네임드 몬스터가 랜덤으로 나오는 종류의 던전입니다.”
“아아….”
“희귀 등급과 영웅 등급, 전설 등급과 신화 등급의 네임드 몬스터들이 균열 속에 봉인되어 있고 오로지 무작위로만 네임드 몬스터들을 내보낸다고 하더군요.”
“그런 정보는 어떻게….”
“아무래도 말로만 설명드릴 것이 아니라 직접 보고서를 보여드리는 게 좋겠군요. 균열 박물관 안내인이라는 던전 안내인에게서 나온 정보를 토대로 만들어진 보고서입니다.”
“네. 부탁드립니다.”
‘던전 안내인….’
간혹 이런 종류의 던전이 있다는 걸 듣기도 했다. 아니, 실제로 겪어본 적도 있다.
조금 종류가 다를 수도 있겠지만 사실 튜토리얼 던전에서 들리던 여자의 목소리도 던전 안내인이라고 생각할 수 있으니까.
이를 테면 던전 안내인이라는 것은 이 던전이 어떤 식으로 굴러가는 던전이며 이 던전에서 이뤄야 할 목표가 뭔지 확실하게 알려주는 이레귤러다.
예전 마도 길드에 의해 공략된 적이 있는 마법사의 탑 같은 던전에서 남아 있는 마법사의 잔존 사념, 튜토리얼 던전에서의 시스템, 아니면 던전을 배회하는 영혼 같은 것을 전부 포함해서 아우르는 말.
대놓고 균열 박물관 안내인이라는 게 있을 정도라면 이 던전은 조금 친절한 종류의 던전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저주 받은 신단과는 딴판이네….’
율리에나를 얻었던 저주받은 신단 같은 경우에는 정보가 아예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 문제.
겨우 영웅 등급 판정을 받았던 던전이 파란이라는 길드 하나를 통째로 집어 삼킨 이유였다.
그런 의미에서 이런 특수 NPC가 붙는다는 건 나쁘지는 않다.
‘짜증나는 함정이나 복잡한 일은 없다고 봐도 되는 건가.’
그만큼 다른 부분에서 사람을 쥐어 짤 여지가 있기는 하지만….
‘일단은 나쁘지 않아.’
적어도 저번처럼 공략 외적인 부분에서 머리를 굴리거나 걱정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거다.
검은백조의 생존자가 만든 보고서 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확실히 내 생각이 맞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물론 이 생존자가 만든 보고서가 이 던전의 모든 것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들겠지만 적어도 정보가 아예 없는 것보다는….
‘좋겠지.’
꽤나 두껍게 만들어진 보고서를 차례로 넘기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내가 제법 진지한 표정으로 보고서를 읽고 있는 걸 본 김현성도 이때만큼은 딱히 사족을 달거나 입을 열지 않았다.
온전히 집중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는 것이다.
‘사실 내가 읽는다고 뭐 달라지는 건 없겠지만….’
[무등급 던전 균열 박물관 보고서.]
[본 보고서는 균열 박물관 안내인의 안내을 받은 검은백조 길드의 생존자의 증언을 토대로 만들어진 보고서임을 밝힌다.]
[안내인의 안내를 그대로 나열한 전반부, 균열 박물관이라는 던전에서 이루어진 일의 경과와 사건을 나열한 중반부와 공략을 위한 후반부로 분류한다.]
“…….”
[균열 박물관 안내인의 말에 따르면 균열 박물관은 고대부터 이어져 내려오던 비밀 결사, 균열 수호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지식과 보물의 총집체이며 안내인 막스는 이들에 의해 만들어진 에고 반지이다.]
[균열 수호자들은 기나긴 세월을 견디지 못하고 시간에 풍화되어 그 존재와 의의를 잃어버렸으며 안내인 막스가 유일하게 남아 있는 균열 수호자이다. 던전의 입장한 이들 중에서 대표를 선출, 박물관의 정숙을 위해 탐험가는 30여 명으로 고정된다. 박물관 탐험가들은 안내인의 반지를 착용한 이후에 박물관 탐험을 시작하게 되는데 한 번 던전에 입장한 이들은 탐험을 마치거나 대가를 지불할 때까지 던전을 나갈 수 없으며 반 강제적으로 공략에 임해야 한다.]
“…….”
[던전 공략은 균열 수호자들을 봉인하거나 계약을 맺은 네임드 몬스터들 중 세 개의 개체를 쓰러뜨린 이후에야 완료할 수 있고 다른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박물관에서 관리하고 있는 네임드 개체들은 본 대륙의 것뿐만이 아니라 밖에서 온 것 역시 존재한다. 일부 초월적인 존재는 봉인이 아니라 계약이라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하….”
[박물관에는 총 500여 개의 개체가 존재하며 세 가지 종류의 전설 등급 이상의 네임드 몬스터, 서른 가지 종류의 전설 등급의 몬스터, 사백여 가지의 영웅 등급의 몬스터, 나머지 등급의 몬스터들은 희귀 등급의 몬스터로 분류한다.]
‘이거… 완전히….’
[선택되는 세 개체의 네임드 몬스터는 철저하게 무작위로 결정된다.]
‘…….’
[박물관 탐험의 보상 역시 세 가지이며 보상 역시 세 가지 종류의 전설 등급 이상의 무구, 서른 가지 종류의 전설 등급 무구, 사백여 가지의 영웅 등급의 무구, 나머지 등급의 무구는 희귀 등급 중… 중략.]
‘…….’
[보상 역시 철저하게 무작위로 결정된다.]
‘운빨이잖아….’
전설 등급의 몬스터를 쓰러뜨리고도 희귀 등급의 보상을 받을 수도 있고 희귀 등급의 몬스터를 잡고도 전설 등급의 무구를 받아갈 수 있다.
조용히 내 옆에서 내가 읽고 있었던 보고서를 훔쳐보던 박덕구도 이 정도는 이해할 수 있는 모양.
“이거 완전히 창렬 뽑기 게임 아니요?”
녀석의 중얼거림에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