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9
회귀자 사용설명서 229화
균열 박물관 (2)
“이거 완전히 창렬 뽑기 게임이라니까요.”
“우리 길드의 누구도 그런 말이랑 똑같은 소리를 하더라.”
“누구요?”
“박덕구.”
“…….”
“…….”
“아! 그러고 보니 요조라 길드의 카스가노 유노 역시 이번 원정에 참여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혀왔는데….”
“걔는 안 돼.”
조금은 단호한 발언에 이지혜가 의외라는 듯이 나를 바라보는 것이 느껴졌다.
당연히 8좌 중에 하나로 손에 꼽히는 그녀가 원정에 참여해 준다면 박수를 보내는 게 맞지만 아쉽게도 그건 평범한 던전일 경우의 이야기였다.
‘행운 수치 제로.’
카스가노 유노의 행운 수치를 생각해 본다면 도와준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민폐.
이쪽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왠지 모르게 부정 탈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아예 신경 쓰지 말라고 말하고 싶었으니 다른 말은 필요 없으리라.
“의외네요. 데려가고 싶어 할 줄 알았는데….”
“걔 행운 수치 낮아.”
“아….”
“그것도 절망적으로.”
“조금 친근한 사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스탯도 공유할 정도의 사이였어요?”
“그렇게 자세히는 모르지만….”
“글쎄요. 어쩌려나….”
묘하게 이쪽을 흘겨보는 것 같았지만 딱히 다른 말을 해오지 않는 걸 봐서는 어찌되든 그다지 상관없는 모양.
애초에 그녀는 내가 누굴 만나든 간에 크게 신경 쓰지는 않는다.
한 가지 신경 쓰는 것이 있다면 그렇게 만나는 사람들이 쓸모가 있는가에 대해서다.
어째서 이쪽이 최후에는 자신에게 돌아올 거라고 생각하는지는 모르겠지만 한 가지 인정할 수 있는 건 그녀가 있기 때문에 이 작업이 무척 편해졌다는 것이다.
‘파란으로 데려올 걸 그랬어.’
검은백조에서 잘 적응하고 있는 걸로도 모자라 완전히 날아오르고 있는 걸 보면 오히려 검은백조에 있는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분명히 아쉬운 부분도 존재했다.
‘편해.’
이런 생각을 하게 될 정도로 손발이 잘 맞는다는 게 어떤 건지 느낄 수 있는 시간이라는 거다.
다시금 원정대원 프로필에 고개를 처박았을 때 이지혜가 입을 열었다.
“이거 어렵네요. 행운 수치도 중요하고 그렇다고 해서 밸런스를 맞추기도 어렵고 편성자체에 이렇게 힘을 쏟아보는 건 처음이에요. 물론 다른 원정대의 편성도 분명히 까다로운 면이 있기는 했지만 이만큼 힘들었던 적은 없었다고요.”
“….”
“게다가… 이렇게 보니 정말 행운 스탯이 높은 사람이 많지 않네요. 오빠도 겨우 70대고… 생각보다 더 높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박물관 안에 고립되어 있는 이들은 평균 행운 수치가 몇 정도야?”
“글쎄요. 30정도? 아마 마이너스 플러스로 15정도의 오차가 있을 거예요.”
“망할 만하네.”
균열 박물관의 공략을 위해 가장 필요한 부분은 당연 행운 스탯의 공개였다.
굳이 내가 마음의 눈으로 훔쳐보면서 스탯이 높은 이들을 찾아다닐 필요가 없었다.
이지혜는 이 던전의 공략을 위해 행운 스탯을 일부 한정 공개하는 것을 제안했고 검은백조나 파란의 일원들은 당연히 그 쟁점에 합의했다.
무난한 편성이 될 거라고 생각한 것과는 다르게 제동이 걸린 것은 생각보다 행운 수치가 높은 사람이 없었다는 것.
가장 이상적인 것은 행운 능력치가 80이 넘는 이들로만 원정대를 구성하는 일이겠지만 행운 수치로 전설 등급의 재능을 가지고 있는 이들은 다른 일반 스탯에서 재능을 가지고 있는 이들보다 찾기 힘들었다.
플레이어들이 가지고 있는 스탯 중 가장 베일에 싸인 스탯이라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지.’
어떻게 올려야 하는지도 아직 규명된 바가 없었고 심지어는 어째서 행운 스탯이라는 게 존재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높은 행운 스탯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길을 걷다 객사하는 경우도 있고 카스가노 유노처럼 낮은 행운 스탯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성공가도를 달리는 경우도 있다.
근력 스탯이 오르면 강해진다.
민첩 스탯이 오르면 빨라진다.
다른 스탯에는 쉽게 적용할 수 있는 간단한 논리가 행운 스탯에는 잘 들어맞지 않는다는 거다.
물론 운이 좋아진다는 것은…
‘생산직한테는 영향이 없지는 않은 것 같지만….’
아무튼 간에 이번 원정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높은 행운 스탯을 가지고 있는 이들을 원정대에 포함시킬 수밖에 없었다는 것.
물론 이들로만 원정대를 구성하는 것은 자살행위다.
현실적인 부분에서 목표로 잡고 있는 수치는 평균 행운 스탯 60이상.
이 정도의 행운 스탯을 가진 구성원으로 최소 전설 등급의 네임드 몬스터를 상대할 수 있는 전력을 만든다.
이게 이번 편성의 핵심이었고 이지혜가 힘들어 하는 이유였다.
“파란에서는 어떻게 하기로 했어요?”
“같이 고민 중이기는 해. 일단 나랑 현성 씨, 하얀이, 희영 씨 이렇게 네 명은 확정이거든.”
“덕구 씨는 안 데려가요? 이제 파란의 훌륭한 전력으로 성장한 거 아닌가?”
“지금 그것 때문에 고민이 많아. 얘가 다른 부분은 다 좋은데 행운 수치가 이제 사십이거든. 얘가 들어오는 것만으로도 평균 행운 스탯이 확 줄어드니 문제지.”
“우겨 넣어요. 일이 틀어졌을 때 그나마 오빠를 지켜줄 수 있는 사람이니까. 스탯은 오빠랑 하얀 씨, 현성 씨가 높아서 별로 상관없을 거예요. 문제는 우리 검은백조 단원들이 문제죠. 디아루기아는 어떻게 한대요?”
“아마 참가할 것 같은데… 던전이니 만큼 현신하기에도 무리가 있고. 무기를 잘 다루는 것도 아니니라서 그다지 환영하고 싶진 않아. 물론 스탯 자체가 높은 만큼 쓸모가 있기야 있겠지만….”
“소중한 딸내미는 어떻게 하고요?”
“만약에 함께 가게 되면 파란에 남은 길드원들이 전력으로 돌봐주게 될 거야. 똘똘이를 혼자 두는 건 걱정되기는 하지만… 그래도 본인이 가야된다고 생각하는데 뭐 어쩌겠어. 위험한 것도 사실이니까.”
“인간 형태일 경우에는 행운 수치가 80대였죠.”
“너희 길드 마스터도….”
“네. 80대예요. 그렇게만 된다면 일단 전위는 나쁘지 않네요. 어떤 네임드 몬스터가 튀어나와도 유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을 것 같고… 특히 덕구 씨는….”
“확실히 도움이 되지. 애초에 전설 등급의 네임드 몬스터의 공격을 받아낼 수 있는 스펙을 가지고 있는 순수탱커는 귀한 편이니까.”
“사제라인이 조금 빈약하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는 문제인 것 같고 이거 후위 편성도 어려워지네요. 물리 저항이 높은 네임드가 나올지 마법 저항이 높은 네임드가 나올지 알 수가 없으니까 한 곳에 집중 투자하기도 어렵고….”
“편성 자체는 조금 더 이야기를 해봐야 할 거야. 길드 마스터들끼리도 아마 여러 가지 이야기 나누고 있지 않을까 싶은데…. 몬스터 잡는 거야 그쪽이 전문가고 우리야 공략전략팀으로 의견을 내는 것뿐이니까. 보고서 제출하고 명단 추려서 올리고 할 일만 하면 돼. 다음 회의는 언제였지?”
“두 시간 뒤요.”
“보급팀 좀 봐줘.”
“편성은요? 우리 길드는 아직 조금 남았는데….”
“내가 마무리할게.”
할 수 있겠냐는 듯 미심쩍은 눈으로 날 바라보기는 했지만 이지혜는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저런 눈빛도 이해가 가기는 간다.
내가 검은백조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을 알 리가 없으니까.
검은백조를 들락날락 거리면서 이미 마음의 눈으로 특성과 대락적인 스펙을 확인한 바 있다.
간부급 이상 가는 이들은 당연히 기억해 두고 있는 만큼 혼자서 하는 게 조금 더 편하다.
특성이나 스탯, 직업에만 그치지 않고 성향까지 고려한 편성은 나 말고는 다른 사람들은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거다.
‘모두가 상태창을 공개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지겠지만….’
사람들은 의외로 숨기고 싶어 하는 게 많다.
특히나 성향과 기벽 같은 경우는 더더욱.
흔하지는 않지만 남들이 상태창을 확인할 수가 없다는 걸 이용해서 거짓 정보를 흘리는 사람들도 많다는 걸 생각해 보면 이런 관점에서 원정대를 구성할 수 있는 건 대륙에서 내가 유일할 거라고 생각했다.
‘이건 통계야.’
편성은 곧 통계이기도 하다.
적지 않은 시간 동안 쌓이고 쌓인 검은백조의 원정데이터를 토대로 어느 쪽과 어느 쪽이 만났을 때 효율이 좋을지, 이 전사와 이 마법사의 궁합이 좋을 거라는 것에 대한 판단을 내리는 것.
그게 바로 편성이다.
던전 공략을 축구경기에 비유하고 원정대원을 11명의 선수로 생각해 본다면 금방 답이 나온다.
두 선수를 함께 기용했을 때의 승률이 몇 퍼센트였는지, 특정 선수가 홈에서 경기를 치를 때의 승률과 어웨이에서 경기를 치를 때의 승률이라든지.
특정 선수가 라이벌과 경기를 했을 때 보여주는 승률이 몇 퍼센트였는지.
경기의 승리는 곧 원정의 성공이며 경기의 패배는 곧 원정의 실패다.
물론 이런 종류의 방식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분명히 존재한다.
‘어찌 됐건 단순한 수치화일 뿐이니까.’
분명히 실전에서는 변수가 있고 그 변수에 대응하는 것은 온전히 원정대원의 몫이다.
책상에서 펜이나 굴리던 양반이 한 편성이 뭐가 의미가 있겠냐고 일부는 떠들어 댈 수도 있겠지만….
애초에 선수들끼리 경기를 치룰 수 있었다면 감독이나 코치 같은 건 필요하지도 않았을 거라는 거다.
통계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쓸데없는 우정의 힘이나 열정, 근성, 기백 같은 설명할 수 없는 종류 보다는 훨씬 더 설득력 있다.
이전에 있었던 원정의 사망자와 부상자의 숫자.
특정 단원이 포함된 원정의 성공 확률.
나 같은 경우에는 이런 것도 가능하다는 거다.
‘어떤 성향을 가진 인간들이 주로 원정에서 실패하는가.’
물론 나는 신이 아니다.
겨우 성향이나 기벽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것 정도는 위험하다는 사실도 인지하고 있다.
그렇지만 조금이라도 성공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이런 사소한 부분까지 수치화해 비벼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야….
우리 회귀자가 조금 불안해하고 있으니까.
‘뽑기만 잘하면 돼’라고 낙천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박덕구와는 다르게 김현성은 이번 원정이 결정된 내내 의외로 초조함을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
항상 자신감 넘쳐보였던 사랑스러운 회귀자가 어째서 저런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지는 뻔할 뻔자.
‘겪어본 적이 있었나.’
이것 역시 추측일 뿐이지만 녀석은 균열 박물관을 한 번 체험해 본 적이 있다.
그게 아니라면 최소한 이 던전에 대해 들어봤을지도 모른다.
예상할 수 있는 스토리로는 신화 등급의 몬스터가 뻥 하고 튀어나온 뒤로는 모든 동료들이 전멸.
그것도 꽤 일방적으로 당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표정은 조금 굳어 있었고 위험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게 연신 시야에 비쳤다.
혼자서 검을 휘두르는 시간도 길어졌고 불안한 만큼 더욱더 공략 준비에 열정적으로 임했다.
아마 김현성이 걱정하고 있는 것은 균열 박물관에 봉인되거나 계약을 맺은 존재들 중에 하나다.
지금의 자신의 힘으로는 어떻게 통제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몬스터가 분명히 있다.
‘형이 캐리해 줄게.’
할 수 있는 게 많지는 않지만 적어도 이런 부분에서는 도와줄 수 있다.
나 역시 이 정도로 집중해 보는 것은 오랜만이다. 아니, 이 정도로 바빠진 것은 대부분의 직책을 다른 이들에게 분재한 이후에는 정말로 오랜만이다.
내가 탄력이 붙은 걸 알아차렸는지 이지혜도 집무실을 나간 지 오래다.
원정대원의 구성에 집중하기를 한참.
회의는 시작됐고 내가 편성한 부대의 보고서는 김현성과 박연주에게 무사히 전달됐다.
물론.
“현성 씨, 당신네 부길드 마스터… 정말로 유능하군요. 아니, 어떻게… 어떻게 이런 게… 가능한 건가요?”
이쪽이 구성한 원정대는 곧바로 실시된 시범 훈련에서 검은백조의 길드 마스터조차 놀랄 만한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운이 좋았네.’
생각 그대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