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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230화 (229/1,590)

# 230

회귀자 사용설명서 230화

균열 박물관 (3)

모의 훈련을 마친 원정 대원들이 숨을 헐떡이는 와중에도 정체를 알 수 없는 고양감에 휩싸였다.

일부는 탄성을 내지르고 있었고 일부는 고개를 끄덕이는 이들도 있었다.

모두 뭔가 알 수 없는 흥분감이 가득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심지어는 박덕구나 김현성 역시 주먹을 꽉 쥐고 있을 정도.

‘이해할 수 있지.’

당연히 이해할 수 있다.

당장 이 훈련에 참가한 나 역시 정체모를 즐거움을 느끼고 있었으니까.

아마 대부분이 재미있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스포츠든 게임이든 간에 이런 경우에는 재미있다고 느껴져야 정상이다.

물론 이건 종류가 다른 훈련이기는 했지만 악기를 켜는 오케스트라 단원들 스스로가 생각하기에도 완벽한 합주를 성공시킨 셈이니 저런 표정을 하는 것이 당연하리라.

축구에 비유하자면 10명이 함께 완벽한 골을 만들어냈고 AOS게임에 비유하자면 다섯 명이 완벽한 한타를 만들어낸 셈.

뭔가 삐걱거리는 부분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스무스하게 훈련이 끝이 났고 서른 명에 가까운 원정대가 마치 한 몸처럼 움직였다.

동선 역시 꼬이지 않았고 스왑이나 타이밍 역시 완벽했다.

이 원정대를 구성한 나조차도 깜짝 놀랐으니 다른 수식어가 굳이 필요하지 않으리라.

물론 그중에서도 가장 격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은 검은백조의 공략전략팀과 그들을 이끄는 길드 마스터 박연주였다.

그들에게는 다소 생소했던 편성을 들이밀었을 때만 해도 그다지 얼굴이 시원치 않았던 것으로 기억.

‘조금 생소하네요. 저희 길드의 1군들도 조금 빠져 있고….’

특히나 검은백조의 공략전략팀의 반응은 은근히 냉담했다.

물론 이해할 수는 있다.

나 역시도 첫 번째는 시험해 보는 것으로 생각했고 저들의 입장에서는 주요 1군 인물 몇몇이 빠진 게 아쉬워 보였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도 한번 시험해 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사랑스러운 회귀자의 한마디와 박연주의 긍정으로 시작한 훈련은 시작한 지 30분도 되지 않아 임시 원정대를 정규 원정대의 자리를 올려 버렸다.

나름대로 만족스러운 결과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을 때 박연주도 장비에 붙은 먼지를 털어내며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이건 정말로… 당황스럽네요. 사실 공략지원팀이라는 걸 그다지 신뢰하지는 않았는데…. 이건… 물론 실전은 다를 수도 있겠지만 느낌이 너무 달라요.”

조금 재미있었던 것은 나보다 김현성이 조금 더 뿌듯해하는 것처럼 보였다는 것.

녀석의 얼굴에 왠지 모를 뿌듯함이 서려 있었다.

‘새끼….’

저 표정은 녀석이 나를 믿고 있었다는 증거이기도 한 만큼 기분이 나쁠 리 없다.

오히려 다시 한번 이쪽이 쓸모 있음을 입증했으니 썩 만족할 일이다.

“기영 씨는 여러 방면에서 뛰어난 능력을 보여줘서…. 사실 30명의 원정대의 편성과 구성을 맡겨본 적은 처음이라 조금 걱정했었는데 결과가 잘 나와서 다행이군요.”

“처음이요?”

“네. 아, 물론 캐슬락 공성전에서는 대규모 병력을 지휘한 적이 있었지만 30인 원정대의 편성은 처음입니다.”

“하….”

“항상 생각하지만 기영 씨는 참 재능이 많으신 것 같습니다.”

“아니요, 현성 씨. 이건 재능이 있다 없다로 설명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제가 지금까지 경험한 수많은 사냥과 원정, 훈련 중에 오늘이 제일 완벽했다고 말하면 알아들으시겠어요? 이건 정말로… 이건 말도 안 된다고요. 심지어 기영 씨는 엊그제야 저희 길드원에 대한 정보를 받은으셨고… 단원들의 이름도 전부 외우지 못했을 텐데….”

“하하하하.”

“애초에 대규모 병력 편성과 원정대의 편성은 완전히 다른 문제예요. 상식적으로 이건 너무 이상하다고요. 게다가 평균 행운 스탯 60이상이라는 제한이 있었는데도 이정도 라면….”

불안해하던 김현성의 얼굴이 조금 풀어진 것을 보니 기분이 좋긴 좋은 모양이다.

‘왜 니가 더 뿌듯해하냐.’

김현성뿐만이 아니다.

이번 원정에 참여하기로 한 박덕구와 정하얀까지 대놓고 콧대가 올라가 있었다.

검은백조의 다른 단원에게 계속해서 질문 세례를 받고 있는 걸 보니 확실히 저들도 흥미가 돈 모양.

“우리 형님은 천재라니까! 거 천재요! 천재!”

박덕구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그런 식으로 칭찬하지 마, 이 자식아.’

물론 나를 띄어주는 것은 좋지만 녀석은 항상 정도가 심한 것이 문제다.

원정대원들이 나름대로 친분을 쌓고 있는 상황에서도 박연주는 여전히 나를 바라보고 있는 중.

아직까지 당황하고 있는 표정에는 내가 더 당황스러워졌다.

“어떻게 하신 건가요? 이건….”

“간단합니다. 그냥 통계일 뿐입니다.”

“그건 저도 알고 있어요. 탐험일지에 나온 보고서를 수치화해서 데이터를 만들어 놓는 건… 그건 저희 길드의 던전 공략전략팀에서도 하고 있는 일이라고요.”

“지혜 씨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지혜요? 아 물론 지혜도 유능하고 똑똑하기는 하지만….”

사실 아예 혼자만의 작품이라고는 할 수 없다.

부대 편성은 거의 온전히 내 몫이기는 했지만 이지혜가 미리 만들어 놓은 데이터를 바탕으로 결과를 도출해낼 수 있었다.

원정대원의 동선이나 스왑 같은 부분은 실제로 그녀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심지어 그녀가 가지고 있는 데이터는 자신의 길드에게도 뿌리지 않은 데이터인 만큼, 그 도움을 톡톡하게 받았다고 하는 게 맞으리라.

게다가 이지혜는….

‘지휘관이니까.’

이지혜가 선택한 직업은 지휘관인 만큼 아무래도 이런 방향으로는 나보다는 조금 더 밝다.

말하자면 시스템도 인정한 시너지 효과가 있었다는 거다.

물론 이 정도의 결과물은 나조차도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운이 좋았어.’

본래는 시험 후 수정이란 과정을 반복해 겪어야 하는 일이 한 번만에 대박을 쳐버린 셈.

대충 때린 골프공이 그대로 홀인원이 되어버린 것이다.

최대 3일은 더 생각하고 있었던 편성이 한 큐에 성공해 버렸다.

아마 다시 한번 똑같이 해보라면 할 수 없으리라.

“유능하기는 하지만 이건 너무 말이 안, 안 돼요. 기영 씨 괜찮으시면 혹시 검은백조에서….”

꽤 충격적이었는지 김현성의 앞에서 꺼내면 안 되는 말도 꺼내려고 하는 것 같은 느낌.

슬그머니 김현성이 헛기침을 하자 자신이 실수했다는 걸 알아차렸는지 얼굴이 붉어진 모습이 시야에 비쳤다.

“아. 죄송합니다, 현성 씨. 제가 조금….”

“괜찮습니다. 검은백조 길드 마스터. 원래 한 집단의 수장으로 있는 이상 인재가 탐이 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니까요.”

“아! 영입제의는 아니었어요. 단지 정말로 신기해서….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혹시 뭔가 다른 방법이 있었는지 알려주실 수 있나요? 꼭 오늘이 아니어도 괜찮은데….”

“음….”

그러고 보니 눈앞에 있는 박연주에게는 덕구 문제로 개인적으로 진 빚이 있다.

뭐라도 팁을 주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든 것도 당연하다.

물론 처음부터 끝까지 설명하려면 내가 가지고 있는 특성에 대해서도 말을 해야 했기 때문에 적당한 이유를 만들어낼 수밖에 없었다.

아마 검은백조의 전략팀에게는 조금 미안한 말이 될 수도 있겠지만….

‘할 말은 해야지.’

이것도 팁이라면 팁이다.

“정말로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본래는 저도 3일은 잡고 있었던 일이었고….”

“3일도 충분히 놀라워요.”

“큼…. 아무튼 조금 말씀 드리기 힘든 이유도 존재하지만, 하나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아마 생소한 구성으로 이런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이유는 제가 외부인이기 때문일 겁니다.”

“네?”

“내부의 공략전략팀이 만든 편성이나 구성은 당연히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듣기로는 공략전략팀은 어쩔 수 없이 은퇴한 이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들었는데….”

“네. 맞아요.”

“그 사람들도 인간관계에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겁니다. 똑같은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도 조금 더 마음이 가는 쪽에 유리한 편성을 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죠. 검은백조의 2군에서도 재능을 썩히고 있는 이들이 분명히 존재할 겁니다. 제가 발견한 이들은 대부분 그런 부류고요. 저희 같은 소수정예 중심의 길드에서는 일어나기 힘든 일이지만… 검은백조나 붉은용병 같은 경우에는 상황이 다르니까요.”

“아아아… 그렇군요.”

“이런 문제만 조금 해결되면 지금보다는 상황이 더 나아질 겁니다.”

“네. 조언 감사드립니다.”

“아뇨. 저도 좋은 경험이었고 무엇보다 평소에 훈련이 잘 되어 있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온 것 같습니다. 확실히 검은백조로군요.”

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잠깐 이었지만 표정이 조금 서늘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지혜가 이전에 해줬던 말이 생각이 들었던 건 바로 그때.

‘여기 친목질 심해요. 딱히 여자들만 모여서 그런 건 아니지만… 그냥 누가 봐도 편 가르고 싸우는 게 눈에 보일 때가 많다니까요? 나참.’

이지혜가 검은백조길드의 단점이라며 한탄하듯 말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박연주의 표정을 보면 아마 비슷한 종류의 일로 스트레스를 겪고 있는 모양.

확실하게는 모르겠지만 아마 이번 원정이 끝난 뒤에는 길드 내부적인 물갈이가 있을 것 같았다.

‘괜히 미안해지는데….’

이쪽과는 별로 상관없지만 나름대로 고군분투했던 던전 공략전략팀의 운명이 새삼스레 궁금해졌다.

‘이지혜에게는 잘된 일일 수도 있겠네.’

어쩌면 내가 이런 말을 해주기를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슬쩍 고개를 돌리자 곧바로 입꼬리를 올리는 걸 보니 확실히 내 생각이 맞았던 모양이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잡생각들을 떨치자 이쪽에 말을 걸어오는 김현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생하셨습니다, 기영 씨.”

“아뇨. 고생이라고 할 정도는…. 이번에는 정말로 지혜 도움을 많이 받기도 했고 계속 말씀드리지만 운이 좋았습니다. 저도 깜짝 놀랄 만한 결과물이 만들어져서.”

“굳이 겸손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진짜라니까 왜 안 믿어, 이 자식아.’

더 이상 변명해도 통하지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말을 돌리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혹시 출발은….”

“기간이 조금 더 당겨질 것 같습니다. 본래 준비에 조금 더 시간을 잡으려고 했었는데… 원정대 편성이 이 정도로 빠르게 마무리 될 줄은 검은백조 측에서도 예상하지 못했을 테니까요. 생각하시는 것처럼 일정 변경이 있을 것 같습니다.”

“검은백조에게는 잘된 일이군요.”

“네. 아무렇지도 않은 척해도 연주 씨는 꽤 초조해하고 있으니까요. 듣기로는 고립되어 있는 이들 중에 아끼는 단원이 많은 모양입니다. 최대한 빨리 구조하고 싶은 게 당연할 겁니다.”

“그렇군요.”

“네.”

슬쩍 고개를 들고 김현성을 바라보니 아까와는 다르게 불안해하는 표정이 시야에 비쳤다.

최근에 조금 저런 표정을 많이 짓기는 했지만 오늘은 평소보다 더 불안해 보이는 표정이다.

김현성에게 어울리는 표현은 아니지만 뭔가 오줌 마려운 강아지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방금까지 뿌듯해하고 있었던 표정이 거짓말 같을 정도였다. 뭔가 할 말이 있는지 자꾸만 입을 오물거리고 있었지만 제대로 나오지 않은 모양.

‘새끼… 또 고민이라도 생겼나.’

내가 정답이 될 수는 없지만 녀석의 멘탈을 케어해 주는 것 역시 내 할 일이다.

뭔가 말하기 힘들어 하는 만큼 내 쪽에서 먼저 운을 띄울 수밖에 없었다.

“혹시 뭔가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으십니까?”

“아… 이거 제가 너무 티를 낸 모양이군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녀석이 민망해하는 것도 잠시.

이내 용기를 얻었는지 천천히 입을 열어오는 게 보였다. 아마도 공략에 관련된 일일 거라고 생각했지만 녀석의 입에서 나온 말은 전혀 다른 말이었다.

“저….”

“네?”

“혹시 그… 아까 검은백조 마스터는 영입제의는 아니라고 했지만… 그….”

“아, 방금 나온 말이로군요.”

“네.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이지만….”

굉장히 우물쭈물거리는 입가와 불안한 눈빛.

녀석이 뭘 생각하고 있는지 단박에 눈치챌 수 있었다.

‘형 어디 안 간다, 자식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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