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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231화 (230/1,590)

# 231

회귀자 사용설명서 231화

박물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1)

녀석이 점점 더 나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건 확실히 기뻐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였다.

본래도 이기영이라는 사람은 김현성 왕국에서 주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 사람이었지만 이번 일도 녀석의 마음을 흔들어 놓은 것이 분명하다.

아니, 마음을 흔들어 놨다기보다는 갑작스레 퍼뜩 깨달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며칠 전에 물어왔던 질문이 생각나 피식 하고 웃음이 튀어나올 정도였다.

‘형 어디 안 간다니까.’

어디에서나 이쪽을 원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자신도 모르게 이쪽을 떠보고 싶었으리라.

사실 객관적으로 봐도….

‘내가 좀 능력이 있기는 있지.’

본인에 대한 평가를 본인이 내린다는 게 아이러니하기는 하지만 사실 이기영이라는 사람이 파란에 끼친 영향력은 결코 적지 않다.

수입적인 측면에서도 그렇고, 외교적인 측면에서도 그렇다.

파란의 포션 공장에서 생산되는 포션들은 린델뿐만 아니라 실리아와 다완까지 유통되어 막대한 부를 쌓아주고 있었고 포션뿐만이 아니라 행정 팀에서 추진하는 사업까지 서서히 날개를 펴고 있었다.

조금 극단적으로 말하면 사실 파란은 더 이상 원정을 나갈 필요가 없다.

포션 사업 하나만으로도 계속해서 놀고먹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물론 내가 해낸 일은 단순히 그것뿐만이 아니다.

붉은용병과 검은백조와의 삼자동맹, 아니, 심지어 카스가노 유노가 있는 요조라 길드까지 포함한 사자동맹을 완성시킨 장본인이기도 했고 신성제국의 명예주교이기도 했다.

교황청과의 친분은 물론 유력 귀족들과도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으니 외교적으로도 이미 충분히 중요한 인물이라고 생각하는 게 맞다.

나 자신조차 디아루기아라는 용을 보유하고 있는 제국 8좌 중의 일원.

극단적으로 말한다면 파란에서 나가 다른 길드를 세운다고 해도 부족한 것이 없는 셈.

김현성이 불안해하고 있는 것도 당연한 이야기일 거라는 거다.

‘왜?’

녀석은 현재 나한테 줄 수 있는 게 없었으니까.

골드도 그렇고 직위도 그렇고 아이템도 그렇다.

초반에야 녀석이 주는 떡을 꿀꺽꿀꺽 잘 받아먹기는 했지만 현재 김현성과 나의 사회적인 지위와 위치는 거의 동등하다.

녀석에게는 조금 미안한 이야기일 수도 있겠지만 사실 내 쪽이 조금 더 우위에 있다고 하더라도 과언이 아니다.

희귀 아이템 하나에 눈이 휘둥그레지며 기뻐하던 과거의 순수했던 이기영은 이제 없다는 거다.

적절한 예라고 하기에는 힘들겠지만 굳이 예를 들어 보자면 학생 때부터 사귄 풋풋한 커플이 함께 성인이 된 셈이다.

자그마한 악세사리, 작은 이벤트, 비오는 날 함께 마셨던 따뜻한 커피 한 잔에 감동했던 것들이 점차 익숙해지면서 무뎌진 것.

어느 정도 눈이 높아지다 보니 무엇을 해줘야 할지, 무엇을 선물해 줘야 할지, 어떤 말을 해줘야 상대방이 기뻐할지 감이 안 오는 게 당연하다.

특히나 상대방 쪽에서 사회적으로 큰 성공을 이뤄 부족한 것이 없다고 가정해 보면 명품 가방이나 지갑, 귀금속 같은 것들을 선물로 주기도 애매하다고 생각할 것이 분명할 것이다.

‘이걸로 과연 기뻐해 줄까’라고 생각하는 것이 당연.

부족한 상대에게 해줄 선물을 고르는 것은 쉽다.

그렇지만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는 사람의 선물을 고르는 것은 쉽지 않다.

인간관계에 그다지 익숙하지 않은 김현성이 난항을 겪고 있는 건 너무나도 당연할 거라는 이야기다.

‘형은 그런 걸 원하는 게 아니다, 현성아.’

당연하지만 비싼 선물이나 전설 등급의 아이템 같은 걸 바라고 있는 게 아니다.

오히려….

“기영 씨.”

“아, 네.”

‘그래 이런 걸 원했어. 이 자식아.’

슬그머니 이쪽을 향해 건네 오는 손에 들려 있는 커피 한 잔.

이런 사소한 걸 원했다는 거다.

‘정답이다, 자식아.’

조금이지만 뭔가 대견스러운 듯한 느낌이 든다.

내가 살짝 기뻐한다는 것을 눈치챘는지 얼굴에는 왠지 모를 뿌듯함 마저 감돌고 있었다.

“어머… 어머….”

“방금 봤어?”

“호모나….”

“분위기 좋다….”

조금 이상했던 건 주변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시선과 목소리들이 날아와 꽂혔다는 것.

“타 왕국 쪽에서 들어온 커피라고 하더군요. 아무래도 조금 피곤해 보이시는 터라….”

“감사합니다. 사실 어제 통 잠을 자지 못해서…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그거 다행이군요.”

노골적인 시선이 느껴진 것은 아니었지만 왠지 모르게 이쪽을 힐끔힐끔 바라보는 느낌이었다.

‘왜인지는 알 것 같은데….’

이번 원정대에 포함된 남자가 네 명밖에 없다는 게 주요 원인일 것이다.

‘네 명이 끝인가.’

어떻게 보면 시선이 집중되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

김현성, 나, 박덕구, 안기모를 제외하면 원정대원 전원이 여성으로 구성되어 있다.

‘…….’

여기를 둘러봐도 여자, 저기를 둘러봐도 여자다.

최근 정하얀과 황정연이 조금 저기압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원인이 이곳에 있었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원정을 함께 나가는 정하얀은 조금 상황이 나은 편이었지만 박덕구와 인사를 나누고 있는 황정연의 표정을 보니 원정보다는 다른 것을 더 걱정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번에 뽑히지 못한 김예리도 그건 마찬가지였다.

오매불망 김현성을 바라보던 저 꼬맹이가 인선에서 탈락되었을 때 보여준 표정은 아직도 기억난다.

표정 변화가 거의 없는 김예리에게는 충분히 이례적인 일.

김현성의 입장에서는 김예리의 안전 그리고 암살자 비율이 높은 검은백조에 굳이 김예리를 끼워 넣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서 내린 결정이었겠지만 항상 1군에 포함되어 있었던 김예리의 표정은 말이 아니었다.

‘그야 사랑하는 오빠가 이런 환경에서 몇 주가 넘는 시간을 보낼 거라고 생각해 보면….’

나라도 충분히 걱정할 것이다.

주변을 슬쩍 둘러봐도 곳곳에서 여초 길드가 보여줄 수 있는 모습들이 비친다.

“생리대 챙겼어?”

“네. 언니. 보급품으로 나온 거 미리 챙겨놨어요.”

“원정 중에는 제발 안 왔으면 좋겠는데… 움직이기 불편하고 짜증난단 말야.”

“그러게요. 여기는 약도 없으니까요. 누가 이런 마법은 개발 안 해 주나….”

“이거 연금술로는 해결되지 않을까요?”

별것 아닌 것처럼 들으면 안 될 것 같은 이야기를 꺼내고 있다.

무방비하다고 하기보다는 상관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보통 여자들끼리도 저런 이야기 하나.’

내가 알 수 있는 부분은 아니었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 대륙에서 모험가로 성장한 여성들은 지구에 있는 여성들과 거의 180도 다르다는 것.

성 관념도 조금 더 자유롭고 행동도 조금 더 주체적이다.

신체 능력 자체가 이미 남자와 거의 동일하다 보니 조금 더 털털해지는 한편 남들의 시선 또한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아주 사소한 부분에서부터 다른 것이 눈에 보인다는 거다.

내가 보든 말든 신경 쓰지 않는 다는 듯 의자에 앉아서 스타킹 같은 종류의 방어구를 갈아입는 단원들도 눈에 보인다.

예쁘게 잘 빠진 다리가 시선을 끌어당긴 것은 당연지사.

정하얀이 괜스레 이쪽의 소매를 붙잡는 것이 느껴졌다.

‘그런 거 아니다, 하얀아. 이건 어쩔 수 없는 거야. 관성 같은 거야.’

암살자 계열과 궁수 계열들은 대부분 노출도가 있는 방어구를 착용하고 있었다.

물론 저게 끝이었다면 김예리와 황정연이 저렇게 불안한 표정을 보내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저런 무방비한 이들보다 더 위험한 것은 괜스레 이쪽을 의식하고 있는 집단이다.

‘나쁘지는 않지.’

대놓고 말하자면 이곳에 있는 네 명은 이 대륙을 기준으로 생각해도 나쁘지 않은 신랑감들이다.

애초에 모델 같은 비율과 연예인 같은 얼굴을 가지고 있는 김현성은 1년 만에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든 인물.

얼굴은 조금 딸리기는 하지만 반갑지 않은 매니아 층을 형성하고 있는 나 역시 마찬가지고….

커다란 덩치와 터질듯한 근육을 가지고 있는 박덕구도 틀림없이 수요가 있다.

‘안기모도….’

특징이 없는 것 같기는 했지만 한 때 배우를 지망했던 만큼 기본은 먹고 들어가는 얼굴.

중요한 것은 이들이 사회적 지위와 미래가 보장되어 있는 이들이라는 거다.

대륙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평가받는 요소인 무력도 보유하고 있는 것은 물론 최근 떠오르는 벤처 회사의 간부들이니 잘 보이고 싶은 마음도 충분히 이해는 한다.

‘다들 나이가 많으니까….’

물론 나이야 전혀 상관없는 요소이기는 하지만 20대 후반이나 30대 초반인 만큼 괜찮은 인연을 잡고 싶은 마음이 있기야 있는 것 같았다.

보통 저 정도 수준에 올라선 플레이어들은 눈이 높다.

애매한 이들은 눈에 차지 않아 다가오기도 전에 차버리기 일수고 얼굴 반반한 놈들은 몇몇 골라 가지고 노는 분위기가 있기야 있었지만 그런 이들을 진심으로 대할 리가 없다.

어느 정도 수준이 맞아야 된다고 생각하는 건 남자나 여자나 지구나 대륙이나 똑같다는 이야기다.

이상하게도 가장 인기가 많은 것은 의외로 박덕구였다.

‘하렘왕 박덕구….’

황정연과 인사를 마친 뒤에는 여성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것을 보니 조금이지만 부럽다는 생각해 볼 정도.

입술을 깨물고 있는 황정연의 표정은 안중에도 없는 모양이다.

“팔에 한 번 매달려도 돼요?”

“상관은 없기는 한데… 큼….”

“몸 탄탄한 것 좀 봐. 다 근육이야.”

“키 정말로 크네요.”

“거, 잘 먹고 잘 자다 보니 쑥쑥 자라더오.”

별것 아닌 말에도 빵빵 터지며 웃음꽃을 피우는 여성들의 중심에 있는 박덕구는 그야말로 강원도 연애 박사 그 자체.

김현성이야 자신들의 길드 마스터인 박연주가 점찍어 놓은 사람이니 다가오지 않는 게 편하다고 생각할 것이고 마찬가지로 나 역시 용병여왕과의 관계가 있으니 다가오지 쉽지 않을 것이다.

물론 가장 큰 원인은 소매를 꼭 붙잡으며 여기저기에서 눈을 부라리고 있는 정하얀 때문이겠지만 이쪽도 남자인 만큼, 은근슬쩍 박덕구가 부러워졌다.

남아 있는 이들의 표정과는 반대로 원정을 떠나는 이들의 분위기는 나쁘지 않다.

마지막으로 한 명만 더 합류하면 이번 원정대의 구성은 완벽하게 마무리가 되는 상황.

모두가 오매불망 기다리던 한 사람이 천천히 걸어오는 게 시야에 비쳤다.

“끄에에에에엑!”

누구인지는 뻔할 뻔자.

특별 경호원 디아루기아였다.

‘데려오지 말라고 했는데….’

분명히 여기까지는 데려오지 말라고 이야기를 해놓은 사랑스러운 똘똘이도 함께 등장하고 있다.

‘단호해져야 되는데….’

헤어지는 마당에 끝까지 똘똘이를 데리고 온 걸 보면 아마도 뿌리치지 못한 모양.

디아루기아의 마음도 이해가 가기는 하지만… 이곳에서 인사를 하는 게 더 안 좋을 거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그럼 어제 한 작별 인사는 뭐였는데….’

그녀의 마음이 어떻든 간에 출발을 기다리고 있던 원정대는 이미 분주해지고 있었다.

“아… 도착했군요. 인사들 나누시고 출발하면 될 것 같습니다.”

“네.”

“끼이이잉…. 키에에에엑….”

“다들 출발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네. 길드 마스터.”

“지혜는 보급품 다 챙겨놨지?”

“네, 언니.”

“길드를 잘 부탁한다.”

“걱정하지 마시고 잘 다녀오게요.”

이지혜와 인사를 나누고 있는 검은백조의 길드 마스터 박연주.

“끼이이이잉…. 끼에에에엑!”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정연 씨. 남은 이들을 잘 부탁드립니다. 신입들의 훈련도….”

“네. 맡겨 주세요, 현성 씨.”

“예. 다시 한번 잘 부탁드립니다.”

“네.”

“금방 돌아올게, 예리야. 혜진 씨, 출발 준비를….”

“네, 길드 마스터.”

김현성과 내가 없는 동안 길드를 책임져 줄 황정연과 인사를 나누고 있는 것은 물론 김예리를 달래주고 있는 김현성.

그가 조혜진과 함께 문을 나가는 것이 보였다.

사방을 경계하던 정하얀도 떠날 때가 되니 남아 있는 인원들과 인사를 나누는 것에 한참이다.

“끼이이잉…. 끼이이이잉…. 끼에에에에엑!”

그렇지만 이쪽은 저 집단의 카테고리 안에 들어갈 수 없다. 똘똘이와 함께 성대한 이별식을 맞이해야 했기 때문이다.

“끼이이잉… 끼이이잉….”

“얌전히 있어야 한다, 디아루리아. 엄마는… 엄마는….”

“끼에에에엑….”

“얼마 걸리지 않을 거예요. 그 동안 친구 분들이 함께해 주실 거야. 둥지가 아니라 조금 불편하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이것저것 놀 게 많으니까 심심하지 않을 거란다.”

“끼이잉….”

“이렇게 두고 가서 너무 미안하다. 아가….”

“끄에에에에엑!”

“똘똘아, 아빠랑 엄마는 잠깐 중요한 일이 있어서 나가봐야 해요. 잘 참을 수 있지?”

“끼이이잉… 끄에에에에에엑! 끄에에에에에엑!”

커다란 눈망울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는 걸 보니 나도 가슴이 아프다.

물론이지만 디아루기아의 마음은 그야말로 찢어질 것처럼 아플 것이라고 생각했다.

“디아루리아, 울면 엄마가 가기 힘들어지잖니….”

“끼이잉….”

“디아루기아, 이만 출발해야 할 것 같습니다. 다들 기다리고 있어서….”

“잠깐만… 마지막으로 한 번만 안아보자, 아가….”

모녀가 함께 슬퍼하고 있는 모습은 조금은 아름답게 보이긴 한다.

그렇지만 이미 원정대는 출발 준비를 마친 상황.

여기서 계속 시간을 끌기에도 뭔가 민망해진다. 마지막 포옹 한 번으로 이 시간을 마무리 하는 것이 최선이다.

활짝 팔을 벌린 디아루기아.

“디아루리아….”

똘똘이가 팔을 벌리던 디아루기아를 지나친 것은 바로 그때였다.

“키에에에엑 끼이이잉! 헥헥! 끼이이잉!”

그녀를 지나쳐 이쪽으로 달려온 똘똘이가 낑낑대며 눈물을 쏟아대며 내게 달라붙어 오는 것은 순식간.

“디아… 루리아?”

“끄에에에에엑! 끼이이잉…. 헥…. 끼이이이잉!”

얼굴을 계속해서 가슴에 파묻은 채로 낑낑대는 게 조금은 불쌍하게 보일 지경.

“끼이이이잉…. 키엑. 키에에에엑!”

심지어는 출발을 기다리고 있는 원정대원을 바라보며 괴성을 내지르고 있었다.

“끄에에에엑! 끄에에에엑에에엑!”

“얌전히 있을 수 있지 똘똘아?”

“끼잉…. 끼이이잉….”

“이번 일만 끝나면 일주일 내내 같이 놀아 줄게요. 그때까지 잘 참아야 한다.”

“끼이이잉… 키엑….”

디아루기아가 나라라도 잃은 것 같은 얼굴로 내 얼굴을 핥고 있는 똘똘이를 바라보는 게 시야에 비쳤다.

“디… 아… 루리아?”

누가 봐도 배신당했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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