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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237화 (236/1,590)

# 237

회귀자 사용설명서 237화

신화적 존재 (4)

“주… 주작이다!”

단순히 운이 좋지 않았을 수도 있다.

우연치 않게 김현성이 내가 돌린 돌림판이 똥이라는 건 조금 수상한 부분이 있기는 했지만 확률상 아예 말이 안 되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단순히 운이 없었을 수도 있었겠지만 어떤 개소리를 해서라도 신화 등급의 존재가 튀어나오는 걸 막아야 했다.

‘말도 안 돼.’

자꾸만 드르륵 거리는 소리를 내며 고대신의 파편이라는 자식이 튀어나오려고 하는 중.

봉인이 풀리는 데 시간이 더 걸리는지 아니면 뭔가 호소력 높은 내 목소리에 막스 자식이 잠깐 시간을 늦춘 건지는 모르겠지만 저딴 놈이 튀어나오는 순간 이 파티는 10분도 채 버티지 못하고 전멸할 거라고 생각했다.

“확률이 조작된 겁니다!”

나도 내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

지금까지 느껴보지 않았던 정체모를 공포감에 괜스레 턱이 덜덜 떨려왔으니까.

하지만 관리인 막스는 이쪽이 하는 개소리에 관심이 있는 모양.

당연히 반응을 보일 것이다.

그가 균열 수호자들을 존경하는 것이 맞다면 이 박물관이 모욕 받는 것은 그다지 내키지 않는 일이었을 테니까.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잘 알겠군요. 확률은 조작된 것이 없습니다. 모두가 오백 분의 일의 확률을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 입장에서는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 믿을 수 있는 방법이 없지. 그렇지 않습니까?”

입을 연 것은 안기모였다.

‘나이스 안기모.’

이런 상황이 올 때마다 꽤 요긴하게 쓰일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이렇게 금방 합을 맞춰올 줄이야 상상도 하지 못했다.

‘좋아. 이 새끼야.’

녀석이 잠깐 동안 드잡이를 하는 사이에 이쪽이 해야 할 일은 간단.

‘빠져나갈 구멍이 있는지 생각해 봐야 돼.’

신화 등급의 몬스터와 싸운다는 선택지는 아예 없다.

그런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체급 차이가 너무 커 싸운다는 가정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의 존재다. 굳이 예를 든다면 새총을 가지고 탱크를 향해 들이대는 격.

지금 이 파티가 녀석에게 도전하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 치는 것이 맞다.

김현성이 몇 수 숨기고 있다는 걸 가정해 봐도 그것 외에는 따로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일단 합은 맞춰줘야지.’

연기 톤의 대사를 마친 뒤에 안기모가 이쪽을 슬쩍 바라보는 것이 시야에 비쳤다.

당연히 입을 열 수밖에 없으리라.

“안기모 씨의 맞습니다. 확률 조작이 없다고 했지만 당신의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증거가 어디에 있습니까.”

-제가 당신들의 의문에 답해줘야 할 이유가 있습니까?

“당연히 있습니다. 당신은 이 장소를 던전이라 칭하지 않고 박물관이라고 칭했으며 우리를 공략자가 아닌 탐험가라고 칭했습니다. 이 박물관이 던전이라면 당신이 저희를 납득시켜야 할 이유가 없지만 이 박물관이 일반 던전이 아닌 균열 수호자들이 만든 안배가 맞다면 설명은 선택이 아닌 의무입니다.”

-선택이 아닌 의무… 재미있는 말씀을 하시는군요.

“관리자의 입장에서는 재미있으시겠지만 탐험가들의 입장에서는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저희는 던전을 공략하러 온 것이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박물관을 체험하고 탐험하기 위해 이곳에 와 있는 겁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여러분?”

“네. 그렇습니다. 그렇고말고요.”

대답한 것은 안기모 하나다.

그렇지만 이미 슬금슬금 여론이 움직일 준비가 되어 있다고 느껴졌다.

아마 모두가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내가 저들보다 더 똑똑하기 때문에 먼저 입을 연 것이 아니다. 나는 단순히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의심했을 뿐이다.

아마 모두들 슬그머니 가슴 한편에 씨앗이 자라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여러분의 입장도 이해했습니다. 제 눈에는 단지 탐험을 더 이상 진행시키지 않기 위한 행위로 보이기는 하지만… 오랜만에 온 반가운 손님들이니 설명이 필요하기는 하겠군요. 어떻게 설명을 드려야 될지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박물관에 방문한 탐험가 분들의 결과를 수치화하면 납득하시겠습니까?

생각보다 더 눈치가 빠르다.

조금은 기분이 나쁘다는 표정.

저런 표정을 짓는 게 이상하지는 않다.

녀석이 사랑해 마지않는 균열 박물관이 한 순간에 주작이 판치는 더러운 곳으로 도박장으로 변할 위기에 처해 있으니 뭔가 수습을 하고 싶긴 할 것이다.

말은 ‘ㅏ’ 다르고 ‘ㅓ’ 다를 수밖에 없다.

우리는 이곳을 던전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녀석은 이곳을 던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녀석에게 이곳은 균열 수호자들이 대륙의 인간들을 위해 만든 선물과 안배이며 지금까지 있었던 수많은 역사들을 기록하고 보관한 장소다.

“수치화한 데이터 역시 당신이 조작하지 않았다는 증거가 있는지도 궁금하군요. 애초에 당신의 본체는 어디 있습니까. 안내를 하는 것은 더미이지 당신 본인이 아닙니다. 당신이 이 박물관의 주인이 아닌 관리인이 맞다면….”

‘이런 식으로는 안 돼.’

말을 하면서도 이런 식으로는 안 된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시간 끌기밖에 안 될 거야.’

녀석이 던전 마스터가 아니라는 건 이미 확정된 이야기다.

균열 박물관이라는 걸 구성하고 있는 시스템이 말해주는 공략은 박물관의 탐험이지 관리인 막스의 죽음이 아니다.

녀석이 죽는다고 해서 던전이 공략되는 게 아니라는 거다. 평범한 인간의 힘으로 이 시스템의 힘에 저항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만약 저항하는 것이 가능했다면 플레이어들은 대부분의 던전을 외부에서 때려 부순 이후에 공략을 시작했으리라.

율리에나를 만났던 저주받은 신단도 그냥 외부에서 마법을 폭격한 이후에 안정화시키면 된다.

이 방법이 안으로 들어가는 것 보다는 훨씬 안정감 있다.

정리하자면 던전을 공략할 수 있는 방법은 한 가지밖에 없다는 거다.

‘룰을 따른다.’

시스템에 저항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그것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제길.’

이딴 곳에서 죽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든 것은 당연지사.

그사이 관리인 막스는 수치화된 결과물이 아니라며 증거를 내보이고 있었지만 이미 녀석의 목소리는 내게 들려오지 않았다.

대답할 여유도 없다.

오히려 나보다 흥분한 것은 박덕구였다. 씨익 씨익 콧김을 뿜으며 커다란 목소리로 외치는 모습은 가관이다.

물론 안기모 녀석은 자진모리장단으로 녀석을 보좌하는 중.

“형님 말대로 이게 정말이라는 증거가 어디 있소! 애초에 조금 이상했다니까! 처음에 보자마자 우리 형님이랑 형씨를 전시하겠다는 둥 뭐 이상한 소리를 하지 않나. 조금 목적이 이상한 게 아니요?”

“그렇습니다!”

“처음부터 그런 소리를 하지 않았으면 잘 모르겠는데! 뭐 인과율이 일그러지니 마나의 축복을 받았느니 나는 그런 건 모르겠지만 멀쩡한 사람을 박물관에 전시하겠다는 소리나 하는 던전 관리인을 믿는 게 말이 되냐 이 말이오!”

‘잘하고 있다, 돼지야.’

은근슬쩍 생각했던 거지만 확실히 녀석은 선동가의 자질이 있다. 목소리의 톤 자체가 왠지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그게 룰입니다. 관리인으로서 희귀한 개체에 대한 욕심이 아예 없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확률 조작은 없었습니다.

“이미 욕심을 가지고 있다는 거에서 끝난 거 아니요? 당신이 정말로 관리인의 자질이 있었다면! 애초에 그런 말을 하면 안 되는 거요! 균열 수호자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대륙을 수호해 왔다는 양반들이 만들었다는 관리인이 대륙에 사는 사람들을 전시하겠다는 건 정말로 이상하게 들린다니까!”

-그것이야말로 인간적인 사고방식입니다. 대륙을 구성하고 있는 건 당신들이 아닙니다. 오히려 인간은 이 대륙에 암에 가깝지요.

무슨 소리를 하는지 이해는 간다.

지구에서도 저런 말이 들어본 적이 있었으니까.

아마 균열 수호자들이 지키는 것은 인간뿐만이 아닌 모양. 그들이 걱정하고 수호해 왔던 것은 아마 대륙 그 자체였을 것이다.

“그게 균열 수호자들의 사고방식이요? 그렇다면 대관절 왜 인간을 상대로 시험을 하고 왜 인간이 사용하는 무구들을 보상으로 주는 거요! 인간이 암이라는 건 균열 수호자의 생각이 아니라 당신 생각 아니요?”

-그건 수호자님들의 뜻이지….

“애초에 이 박물관은 누가 보라고 만들어 놓은 건가? 내가 보기에는 당신은 관리인 박탈이라니까. 자기 농장에서 무슨 과일이 나오는지도 모르는 양반을 관리인으로 앉혀 놓았으니 아마 균열 수호자라는 사람들도 땅을 치고 후회하겠지! 저런 놈이 주작을 하지 않으라는 법 있소?”

‘잘한다.’

예시로 든 말이 뭔가 구수한 냄새를 풍기지만 확실히 지금 상황과 들어맞는다.

애초에 덕구 녀석이 흥분하면 이상한 부분에서 논리적으로 변하게 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내 생각보다 훨씬 잘해주고 있다.

다른 사람들 역시 공감하고 있는지 서서히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주로 박덕구의 하렘에 포함되어 있는 여성진이었다.

“맞아요! 어떻게 생각해 봐도 이상하다고요. 희귀 아이템은 10가지 밖에 없는데 그게 뽑힌 것도 그렇고 또 신화 등급의 몬스터는 뭐람? 처음부터 전설 등급이 뜬 것도 지금 생각해 보니 확실히 이상하네요.”

“맞아. 덕구 씨, 말 잘했어요!”

목소리를 높이는 건 안기모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가 믿지 못하는 것은 균열 박물관이 아닌 관리인인 당신입니다!”

“아암 그렇지! 그렇고말고! 안기모 씨! 역시 배운 양반은 뭔가 달라! 저 막스라는 놈은 누가 봐도 사기꾼처럼 생겨가지고… 뭔 관리도 제대로 못하고! 우리 형님이 박물관 관리인 하면 더 잘할 수도 있을 것 같다니까! 형님을 박물관 관리인으로!”

끝에 가서는 결론이 이상해지기는 했지만 충분히 시간을 벌고 있다.

김현성 그리고 박연주와 함께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이득이다.

“어떡하면 좋을 것 같나요? 기영 씨.”

“싸우는 선택지는 없습니다. 무조건 피해야 합니다. 다른 방법을 생각해 봐야 되요. 지금으로서는 박물관 관리인과 거래를 하는 게 가장 유효하겠지만 막스라는 관리인에게 주어진 권한이 이 시스템을 막을 수 있을 정도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 처음 말을 꺼낸 건 시간을 끌기 위해서였군요.”

박연주가 이제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부딪치는 선택지는….”

대답한 것은 김현성이었다.

“불가능합니다. 전설 등급의 몬스터를 잡은 것과는 완전히 별개일 겁니다. 물론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는다면 그것도 고려해 봐야겠지만… 추천하고 싶지는 않군요. 아마 연주 씨도….”

“네. 애초에 싸움이 안 될 거라는 건 알고 있어요. 그렇지만 다른 선택지가 보이지 않아서….”

모두가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 이외의 선택지를 찾는 것밖에 할 수 없다는 걸 인지하고 있는 것이다.

‘관리인과 거래를 하는 게 가장 이상적이긴 하지만….’

-여러분들이 무슨 뜻으로 어떤 말씀을 하시던 간에 저는 이 박물관의 관리자가 맞습니다. 하는 일 역시 유지하고 관리시키는 것밖에는 없고요. 애초에 확률 조작이라는 것은 제 권한 밖입니다. 아쉽게도 이미 나온 선택지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아요. 잠깐 동안 신화 등급의 존재가 나오는 걸 미루고 있기는 했지만… 아마 그 존재는 곧 이곳에 모습을 드러내겠지요.

‘역시나.’

-봉인이 풀리는 시간은 딱 한 시간입니다. 그 이상 파편을 풀어놓는 다면 수호자님들의 봉인이 풀릴 수도 있으니까요. 해서 이번 시험은 싸우는 것이 아닌 버티는 것이 되겠군요.

“저거 저 사기꾼 같은 놈! 에잇!”

-사기꾼이 아니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좋은 분들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막되 먹은 손님이셨군요. 여러분들이 어째서 이렇게 운이 나쁘고 결국에는 신화 등급의 존재를 뽑았는지도 이해가 갑니다. 균열 수호자님들은 당신 같은 사람들이 이곳의 유물을 얻어가는 걸 바라지 않았던 겁니다!

“거, 개소리 한 번 낭낭하네!

그동안 관리인 막스가 꽤나 마음이 상했는지 부들거리고 있는 것이 시야에 비쳤다.

30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한꺼번에 들고 일어서며 비난 여론을 확산시키자 제법 기분이 나빠진 모양.

‘거래는….’

애초에 불가능했다.

예상했던 대로 녀석도 기본적인 시스템에 벗어나는 행동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조작도 아니야.’

단순히 운이 더럽게 나쁜 거였다.

절로 손톱이 입가로 다가간다. 어떻게든 해야겠다고 생각이 나기는 했지만 눈앞에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존재를 보니 말 그대로 숨이 턱 막힌다.

‘제기랄.’

뭐라고 설명하기 힘든 외관을 지니고 있는 존재를 묶고 있는 쇠사슬, 그리고 우리를 노려보는 것만 같은 고대신의 파편.

격이 다른 존재를 봤을 때 느끼는 감정을 표현하기가 어렵다.

정하얀도 입술을 꽉 깨물고 있었고 김현성 역시 검을 손에서 놓지 않고 있었다.

디아루기아 역시 긴장한 모습.

‘한 시간? 버틸 수도 없어.’

아마 모두가 느끼고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뭐라도 반항해야겠다고 생각해 검이나 방패를 들어 올릴 뿐이었다.

잠깐 동안 어이없는 생각이 스쳐지나간 것은 바로 그때.

어차피 이러나 죽으나 저러나 죽으나 죽는 건 마찬가지.

[고대신의 파편을 속박하고 있던 봉인의 일부가 벗겨집니다.]

메시지가 들려오는 순간 자그맣게 입을 열었다.

아마 모두가 내 목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전투 준비.”

-행운을 빕니다.

“봉인을 완전히 풀어 버릴 겁니다. 전원 파편을 가두고 있는 푸른색의 쇠사슬을 공격합니다.”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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