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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239화 (238/1,590)

# 239

회귀자 사용설명서 239화

율리에나 각성(2)

‘좋아.’

“좋아!”

듣기만 해도 소름끼치는 목소리가 들려오기는 했지만 기뻐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에 수습하는 게 조금 힘들어지기야 하겠지만 일단은 눈앞에 있는 과제부터 해결해야 되는 게 옳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수습은 나중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문장 중 하나다.

“나의 율리에나! 드디어 일어났구려! 얼마나 당신을 기다렸는지 모르오.”

-게드릭! 나의 게드릭 저 역시 오랜 시간 동안 당신과 함께 하는 것을 그려왔습니다.

“율리에나!”

-게드릭!

내 주위를 둥둥 떠다니며 괴상한 소리를 내는 검을 바라보는 것은 조금은 무섭다.

‘넌 게드릭이 아니야’라고 말하면서 내 목을 꿰뚫어 버리지는 않을까 걱정이 됐던 탓이다.

그렇지만….

‘괜찮아.’

아직까지 그런 징조는 없다.

율리에나는 아직도 나를 게드릭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나를 보호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

‘끼고 있길 잘했어.’

[게드릭의 청혼 반지-영웅 등급]

[율리에나의 저주에 저항할 수 있습니다.]

저주받은 신단에서 발견한 게드릭의 청혼 반지.

별 다른 기능도 없는 이 반지를 습관처럼 새끼손가락에 끼고 있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 것은 당연지사.

다가올 위협에 항상 대처하는 건 소시민의 옳은 생활 방식 중의 하나다.

입꼬리가 절로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율리에나! 나의 율리에나! 이럴 시간이 없소. 율리에나!”

-게드릭… 아아아! 내 사랑 게드릭! 입을 맞춰 주세요. 이 몸이 바스러지도록 저를 안아 주세요!

‘너 검이잖아….’

“율리에나! 그대의 힘이 필요하오. 고대의 신을 억지로 붙잡아 두고 있는 간악한 균열 수호자들의 봉인을 풀어야 하오.”

-아아! 내 사랑 게드릭! 조금 더 사랑을 속삭여 주세요. 게드릭! 나의 등불! 나의 빛!

‘정신 나간 년!’

애초에 통제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그녀가 내 예상보다 제정신이 아니라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게드릭이라는 자식은 이 여자의 어디가 좋아서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그녀를 찾아다녔는지는 모르겠지만 장담컨대 스톡홀름 증후군의 한 종류일 수도 있다.

어쩌면 납치당한 것일 수도 있다. 왠지 모르게 자꾸만 그런 생각이 머리 한편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

“나를 도와주시오! 율리에나! 그대의 사랑이 필요하오.”

-게드릭! 나의 게드릭!

“율리에나! 세상이 위험에 처해 있소!”

-아아아….

‘제기랄!’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는 것은 당연.

여기서 율리에나와 입씨름을 하다간 파티원이 전멸한 이후에나 그녀가 움직여 줄 것이다.

일단은 율리에나를 붙잡고 달려 갈 수밖에 없다는 거다.

검을 어떻게 사용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무조건 마력을 집어넣고 달려드니 확실히 뭔가 달라진 것이 있기는 있다.

-게드릭! 당신의 따뜻한 마력이 흘러들어오고 있습니다! 당신의 마력이 제 몸속으로 흘러들어오고 있습니다! 아아아! 나의 사랑 게드릭! 아아아!

‘제발 닥쳐!’

제발 그 입을 다물어 줬으면 싶었다. 그렇지만 효과는 상상하는 것 이상.

‘어어어?’

-조금 더! 조금 더! 주세요! 게드릭! 당신의 사랑을 조금 더!

‘미… 미친년!’

[저주를 내리는 검 율리에나의 잠들어 있던 기능 중 하나가 해금됩니다.]

[에이에스의 촉수]

‘좋아!’

지금까지 율리에나가 가지고 있는 기능은 저주를 내리는 것이 전부였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그녀는 충분히 가치가 있다. 상처를 입힌 것만으로 상대방에게 저주를 내리고 마력을 대량 소모한다면 광역 저주를 거는 것까지 가능하다.

앞서 말한 기능만 나열해도 충분히 전설급 아이템으로서 부족함이 없다.

심지어는 스스로 나를 지켜주기까지 하니 고개를 끄덕일 만한 아이템 중의 하나이기는 하다.

그렇지만 율리에나가 가지고 있는 기능은 그것뿐만이 아니다.

이런 종류의 유틸적인 부분 말고도 이 무구는 다른 종류의 힘 역시 가지고 있다.

그 기능은 이미 그녀와 김현성이 검을 부딪쳤을 때 확인한 바가 있다.

“나이스!”

물론 에이에스의 검은색 마력은 이전에도 사용한 적이 있지만 지금 검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마력은 이전과는 차원이 다르다.

예전에 사용했던 것이 클로즈 베타 버전이었다면 지금 내 눈에 보이고 있는 모습은 몇 번의 업그레이드를 거친 느낌.

이전에 율리에나가 사용했던 검은색 마력의 촉수들이 그녀의 검을 중심으로 피어나오기 시작.

조금 불안했던 건 이 촉수들이 계속해서 나를 옭아매고 있다는 것이었지만 그녀가 해를 끼칠 의도가 없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심지어 바닥에서도 피어난 검은색 마력의 촉수들이 자꾸만 내 옷 속으로 들어오려는 느낌은 왠지 모르게 소름이 끼쳐올 지경.

다행인지 불행인지 촉수들은 내 행동을 제한하고 있지는 않지만 언제 나를 옭아매 올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외관만 본다면 위협적인 것은 눈앞의 촉수겠지만 이 촉수는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문제가 되는 건….

-더… 더! 아아아! 게드릭 그대의 사랑을! 그대의 사랑을 조금 더!

‘그만 좀 빨아먹어!’

미친 듯이 내 마력을 빨아먹고 있는 율리에나.

마력 스탯이 낮은 나로서는 당연히 부담으로 느낄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는 생명력마저 빨아들이고 있는 느낌에 소름이 끼쳐올 지경.

그렇지만 보여주는 결과는 상상 이상이었다.

‘조금 더 먹어!!’

검 안에 든 기운이 내가 낼 수 있는 출력이 아니라는 건 굳이 측정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물론 내게 저 기운을 컨트롤할 여력은 없다.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검정색의 촉수들은 이미 내 통제를 벗어난 지 오래.

하지만 어차피 통제할 생각도 능력도 없다. 나야 이 넘치는 기운을 쇠사슬에 때려 박기만 하면 그만이라는 거다.

“덕구야!”

“아… 알겠소!”

내 모습을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는 박덕구가 이쪽을 향해 손을 뻗었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이해한 것을 보니 왠지 모르게 장하다는 감정이 피어오르기 시작.

촉수가 내 몸을 휘감고 있다고 해도 저런 폭발의 여파 속으로 몸을 던지는 것은 나로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조금 미안하기는 했지만 박덕구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니가 대신 아파줘야겠다.’

아니나 다를까.

내 몸에 투명하고 희미한 방패가 생겨났다. 남이 받은 데미지를 본인이 대신 받아갈 수 있는 박덕구의 특성이었다.

파칙 파칙거리는 손으로 땅을 짚자 곧바로 용의 꼬리가 바닥에서 튀어나오며 나를 쇠사슬이 있는 곳으로 올린다.

조금 무섭기는 했지만 어차피 떨어져도 대미지를 입는 것은 박덕구. 지금은 검을 휘두르는 게 최우선이다.

깨질듯 말듯 깨질듯 말듯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던 봉인이 보인다.

당연하지만 폭발의 여파로 인한 대미지는 없다. 뜨겁지도 않고 피부가 벗겨지지도 않았다.

‘조금만 참아라, 덕구야!’

“기영 씨?”

여파를 뚫고 들어온 내가 신기했는지 ‘형이 왜 거기서 나와?’라는 말투의 김현성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무시.

애초에 대답할 여력도 없고 계속해서 들려오는 폭발음 때문에 목소리를 잡아내기도 쉽지가 않다.

“부셔져라! 슈바!”

검 안에 가득 들어있는 기운으로 그나마 약해 보이는 부분을 후드려 깐 것은 당연.

내 몸을 휘감고 있었던 마력의 촉수들과 여기저기에서 뻗대고 있었던 촉수들은 순식간에 쇠사슬을 향해 떨어져 내렸고 그나마 남아 있던 마력 역시 순식간에 빠져나갔다.

-게드릭! 게드릭! 게드리익! 아아! 아!

“깨져라! 깨져!”

한 번으로 안 되면 두 번, 두 번으로 안 되면 세 번.

검술은 아무것도 모르는 초보가 휘두르기는 하지만 틀림없이 차도가 있다.

마치 몽둥이로 때리는 듯한 모양새이기는 했지만 봉인도 이미 한계였으니까.

봉인의 쇠사슬에 금이 가는 것이 눈에 보인다.

아주 미세하지만 분명히 쇠사슬은 부서지고 있다.

‘좋아!’

어디에선가 튀어나온 김현성이 연기를 뚫고 튀어나와 내가 두드린 부분을 향해 검을 휘두른 것은 바로 그때였다.

깜짝 놀라기는 했지만 다행이라고 생각이 절로 든다.

‘한계였어.’

율리에나에게 마력을 너무 많이 빼앗겼다.

더 이상 칠 여력도 없을 때 튀어나오니 감사한 마음이 드는 게 당연하다.

확실히 대충 휘두른 검과는 차이가 있는 것 같은 느낌.

그렇게 사랑스러운 회귀자의 검이 금이 가는 쇠사슬에 맞닿은 순간 푸른색의 사슬이 깨지며 빛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나이스!”

김현성의 손이 내 허리를 붙잡는 것이 느껴진다. 내 몸이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쇠사슬과 멀어지기 시작했고 그렇게 고대신의 파편의 모습이 다시 한번 눈에 들어왔다.

‘잘한 짓… 맞겠지.’

우리가 부순 것은 녀석을 칭칭 감고 있는 쇠사슬 중 단 하나다.

그렇지만 신화적 존재를 꽁꽁 옭아매고 있었던 봉인의 균형이 깨지니 순식간에 다른 쪽들도 터져나가는 게 시야에 비쳤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녀석이 쇠사슬을 잡아 뜯어내고 있었다.

이쪽이 그렇게 힘을 들여 부숴버린 쇠사슬을 알 수 없는 기관으로 잡아 뜯는 녀석의 위용은 가히 장관.

‘엄청 세 보이는데….’

세상에 뭘 풀어놨는지 그제야 실감이 오기 시작했다.

턱이 덜덜 떨려오고 몸 역시 부들부들 떨려온다.

걷기 힘든 상태이기는 하지만 그 정도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고대신의 파편이 봉인에서 풀려납니다.]

[경고]

[균열 박물관의 보호 프로그램을 작동합니다.]

[경고]

[프로그램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경고]

[예비 프로그램을 작동합니다.]

[경고]

[고대신의 파편이 완전히 깨어납니다.]

“그어어어어어어어어!!!!!!!!!!!!!!!”

-아아아… 아아아아… 안 돼!!!!

관리인 막스의 비명소리와 고대신의 파편이 우는 소리가 동시에 들려왔다.

‘예비 프로그램?’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다행히 균열 박물관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났을 때의 수습할 프로그램이 있기는 있는 모양.

물론 그 예비 프로그램이라는 게 정말로 이걸 수습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미 화살은 내 손을 떠났다.

‘열심히 수습해 봐라.’

이제는 책임이 관리인 막스에게 가 있다는 거다.

역시 엿이라는 건 먹는 것보다 먹이는 게 더욱더 달콤하다.

물론 기분 좋게 웃을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녀석의 봉인을 푸는 것에 성공했다고 한들 우리가 위험하다는 사실은 여전했으니까.

세상의 위협 이전에 이쪽의 목숨이 달아나게 생겼다.

저 파편이라는 것은 사고 능력이 없는 것 같았으니 고대 신을 떠받들며 만세삼창을 하는 계획도 선택지에는 없다.

그렇지만….

“고, 고대신님! 만세!”

“…….”

“고대신님이 깨어나셨다! 고대신의 파편님을 위하여!”

일단은 외쳐볼 수밖에 없는 게 소시민의 사고방식이다.

만세가 닿았는지 닿지 않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녀석의 발버둥은 커다란 결과물을 만들어내기 시작.

절대로 부서지지 않을 것 같은 박물관의 외벽이 무너지고 있었고 굳건했던 전시관들 역시 형편없이 깨져나가고 있었다.

‘예상이 맞았어.’

녀석은 시스템에 저항할 수 있다.

“그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

커다란 메인 촉수가 휘둘러지자 형편없이 깨져나가기 시작하는 박물관.

-안… 안 돼에에에에!!!!!!!!

비명을 지르는 관리인 막스.

그 가운데 나는 원정대원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일단… 부서진 곳으로 가서 아이템 좀 챙깁시다. 고대신의 영향을 받은 전시관이 몇 개 정도는 있을 겁니다.”

*후기

이기영: 수습은 니가 해. 챙길 건 챙겨야지… 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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