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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245화 (244/1,590)

# 245

회귀자 사용설명서 245화

박물관 관리인 막스(1)

“일어나세요, 오빠.”

“끄응….”

“조금 있으면 출발할 시간이래요.”

“으응….”

천천히 눈을 뜨자 천장보다 먼저 정하얀의 얼굴이 시야에 비쳤다.

숨결이 닿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였기 때문에 놀라기는 했지만 크게 동요하지는 않았다.

‘익숙해졌어.’

이런 것도 이제는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커다란 눈을 깜빡거리며 이쪽을 찬찬히 살펴보는 모습은 매번 봐오던 장면이다.

슬쩍 몸을 일으키니 거리를 잠깐 벌려준다.

눈을 살짝 비비자 어느 정도 정신이 돌아왔다.

‘이상하게 피곤하네….’

꽤 숙면을 취했음에도 불구하고 피로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온몸이 뻐근한 것 같고 기를 빨린 것 같은 느낌도 여전했다.

물론 마냥 피곤하지만은 않았다. 탈진 직전이었던 마력도 어느 정도 채워진 느낌.

쌩쌩해 보이는 것을 넘어서 얼굴이 반질반질해진 정하얀을 보니 아무래도 마력 스탯이 높으면 마력 회복력도 올라가는 모양이다.

고개를 들어 올리니 시야에 비치는 것은 몇 발자국 뒤에서 나를 관찰하고 있는 정하얀.

작게 입을 열자 곧바로 대답이 들려왔다.

“내가 몇 시간 정도 잔 거야?”

“3시간 40분 정도예요.”

“조금 더 빨리 깨우지 그랬어.”

“너, 너무 곤히 잠드신 것 같아서요. 저도 모르게… 죄송해요.”

“아냐. 사과할 일은 아니야.”

“씻, 씻겨 드릴까요?”

“아… 응. 부탁해.”

당연하지만 정말로 정하얀이 나를 직접 씻겨주는 것은 아니다.

정하얀이 슬쩍 주문을 외우니 뭔가 얼굴이 촉촉해지는 느낌이 들기 시작.

실생활에서도 마법은 굉장히 편리하다.

물론 본인이 직접 씻는 것 같은 기분이 들지는 않아 조금 찝찝하기는 했지만 던전 안에서는 이 정도도 감지덕지라고 할 수 있으리라.

대충 짐을 챙기자 이미 캠프를 정리하기 시작하는 원정대원들이 눈에 들어왔다.

굳이 뭔가를 지시할 필요도 없다.

이미 모두가 자신이 뭘 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

그 와중에 짬 좀 되는 원정대원은 비교적 느릿하게 움직인다.

‘빡세기는 빡세네….’

이곳에 있는 검은백조의 길드원들은 대부분 베테랑이다.

굳이 예를 들자면 이미 서로 친해질 대로 친해진 병장들끼리 원정을 나온 셈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몇몇은 꽤 빠릿빠릿한 모습을 보이는 것을 보니 검은백조에 들어간 지 얼마 안 된 이들의 모습이 어떨지 눈에 선하다.

‘지옥이겠네.’

여자들끼리 함께 있는데도 불구하고 저런 모습을 보여준다는 게 재미있다.

물론 지구에서도 간호사들의 위계질서가 빡세다는 말을 생각해 보면 굳이 이상한 모습은 아니었지만….

‘이쪽은 더할 수도 있겠지.’

실수하면 목숨이 날아가는 곳이다.

아마 지구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면 않았으리라.

머릿속으로 조금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는 와중에 옆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기영 씨, 일어나셨군요.”

사랑스러운 김현성이였다.

“아… 네. 제가 조금 늦었군요.”

“아닙니다. 휴식 시간은 네 시간 이었으니까요. 사실은 출발하기 직전에 깨워드리려고 했는데 하얀 씨가 텐트 안에 계신 것 같아서…. 몸은 좀 괜찮으십니까?”

‘이 새끼 기특하네.’

묘하게 나를 생각해 주는 게 기특했다.

아마 내 몸이 성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실상 입은 대미지는 박연주나 김현성이 더 많았지만 몸이 약하다 보니 마력이 빨린 것만으로도 극심한 피로감을 느끼게 된 것.

“잠깐 손 좀 잡아도 되겠습니까?”

“아… 네. 물론입니다.”

녀석의 말이 끝나자마자 뭔가 묘하게 시선이 집중된 것 같은 느낌.

뒷정리를 하던 검은백조의 단원들이 일순간 하던 일을 멈추고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쟤들 무슨 생각하는지 알 것 같은데….’

뭔가 저번에도 비슷한 일이 한 번 있었다.

왠지 모르게 여기저기서 침을 꿀 꺽 삼키거나 훈훈한 미소를 보내오는 것이 보인다.

심지어 작게 탄성을 내지르거나 비명을 지르는 인원들도 있었지만 김현성에게는 저런 모습이 보이지 않은 것 같았다.

‘이 새끼….’

조용히 눈을 감고 이쪽의 마력 상태를 점검하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는 모습.

멀리서 보면 제법 애틋해 보이는 모습으로 보일 수도 있으리라.

“괜찮으신 것 같군요.”

“네. 완전히 회복된 건 아니지만 배려해 주신 덕분에 푹 쉴 수 있었습니다.”

“다행입니다, 기영 씨.”

‘그렇게 웃지마, 이 자식아.’

박연주에게도 보여주지 않은 미소를 보내오고 있는 모습.

저들의 오해에 힘을 실어주는 것 같아 불안해졌다.

그러고 보니 연금술사와 천재 검사가 사랑하는 법도 왠지 모르게 의심스러워지기 시작.

별것 아닌 소설처럼 생각했었지만 지금 탄성을 내는 이들이 대부분 그 책을 보고 있었다는 걸 떠올려 보니 가랑비처럼 내리던 의심이 홍수처럼 불어나기 시작했다.

‘슈바….’

린델로 돌아가면 꼭 한번 읽어봐 정황을 파악해야만 했다.

뭐 아무튼 간에.

약간의 헤프닝이 있었지만 정리해보자면 원정 준비는 원활하게 진행되고 있었다는 거다.

검은백조의 원정대원이 행동이 더욱더 빨라지기 시작한 것.

걸그룹의 위문 공연을 본 군인을 보는 것 같다고 하는 게 맞으리라.

조금 늦어질 것 같다고 예상한 내 생각과는 다르게 너무나도 순식간에 정리되고 있는 모습은 기가 찰 정도.

박연주도 고개를 갸웃거릴 정도였다.

묘하게 기합이 들어가 있다.

역시 남자가 있으니 달라진 것 같다. 박연주가 이런 소리를 하기는 했지만 아마 그녀가 생각하는 이유가 아닐 거라 확신할 수 있었다.

“출발하겠습니다. 브리핑 한 대로 목적지는 관리실입니다. 고대신의 파편의 촉수를 따라가 이동하도록 하겠습니다. 빠뜨린 거 없는지 마지막으로 체크하시고 행군 중에 촉수에 닿지 않게 조심하세요. 뭔가 사고가 터질 수도 있으니 마법사 분들은 로테이션으로 방어 마법 캐스팅해 주세요.”

“네.”

“충분히 몸을 회복한 만큼 최대한 빠르게 이동하겠습니다. 선두에는 현성 씨가 서신다고 하셨으니 최대한 빠르게 따라와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네, 길드 마스터.”

간단한 브리핑 이후에는 곧바로 몸을 일으켜 걷기 시작했다.

아까와 달라진 점이 있다면 김현성이 무척이나 빠른 속도로 치고 들어갔다는 것.

보통 이런 종류의 행군에서 선두에 서는 것은 궁수 직군을 가진 이들이다.

그들 중에서도 정찰과 함정 해체 같은 것에 특화된 레인저들에게 맡기는 것이 상식.

파란에서는 추적자 김예리가 이 직군에 포함되어 있었고 당연하지만 이 원정대에 함께 한 레인저들의 숫자도 세 명이 넘는다.

굳이 녀석이 총대를 맨다는 건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레인저들보다 본인이 더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현이리라.

강자라면 모든 게 가능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비슷한 직군이라고 해도 엄연히 하는 일이 정해져 있다는 거다.

이를 테면 차희라 같은 경우에는 절대로 레인저들의 일을 대신할 수 없다.

우연히 발견한 함정을 때려 부수는 게 고작이리라.

처음에는 조금 탐탁지 않게 김현성을 바라보던 레인저들도 막상 행군이 시작되니 입을 떡 벌리고 녀석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걸 보면 답이 나온다.

‘1회 차에 레인저였나.’

1회 차에서도 무조건 검사를 했을 거라고 생각한 것이 당연하다.

어쩌면 레인저 종류의 직업을 선택했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김예리 같은 성장 루트를 탄 건가?’

아니라면 수많은 경험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리라.

개인적으로는 처음부터 검사였다는 추측에 조금 더 힘을 실어주고 있기는 하지만 1회 차에 녀석이 검사든 아니든 그게 무슨 상관이라 말인가.

계속해서 달리며 원정대의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는 김현성을 보니 너무 편안한 리딩에 바지가 축축해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될 정도.

“함정은 없는 것 같습니다. 조금 더 속도를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네. 확인했습니다.”

“전방에 다수의 골렘 확인. 처리했습니다.”

“네. 확인했습니다.”

“영웅 등급 이상의 몬스터 확인. 시스템의 영향에서 벗어난 것으로 보입니다.”

“전투 준비.”

“처리했습니다.”

정찰과 동시에 처리가 이루어진다는 게 가장 아름다운 부분이다.

급이 낮은 영웅 등급의 네임드 몬스터는 곧바로 처리.

전설 등급의 몬스터는 운이 좋아 보이진 않았지만 김현성이 피해간 건지 아니면 정말로 우연히 마주치지 않은 건지는 알 재간이 없다.

실제로 김현성의 뒤를 따라가다 보면 깔끔하게 잘린 몬스터의 단면밖에는 보이는 게 없다.

제법 덩치가 커다래 보이는 녀석들도 목이 날아간 것을 보면 신화 등급의 검을 얻은 것이 도움이 되긴 된 모양.

덕분에 레인저들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자괴감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았지만 굳이 이쪽에서 저쪽의 자괴감까지 신경 쓸 이유는 없을 것 같았다.

‘빨라!’

원정대가 진군하는 속도는 상상 이상.

던전 탐사가 아닌 평범한 달리기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다른 표현이 필요가 없다.

풍경은 계속해서 뒤바뀌고 눈에 보이는 오브젝트들도 달라진 것이 눈에 보인다.

커다란 방, 깨진 전시관이나 부서진 아이템들 대신 좁은 길이나 골렘 따위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바닥에 박히거나 기둥을 휘감고 있는 촉수들의 점점 얇아지고 있었다.

끝에 다다르고 있는 것이다.

점점 더 관리실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 것이 당연.

얼마 지나지 않아 촉수의 끝이 보이기 시작했고 김현성은 멈추지 않은 채로 곧바로 검으로 벽을 가르며 나아갔다.

길은 끊겼지만 마력의 유동이 느껴지는 장소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 것이다.

박물관의 크기나 규모, 그리고 위험 요소 같은 자잘한 것들을 고려해 잡은 도착 시간은 길게 잡아 만 하루.

여섯 시간도 되지 않아 이곳에 도착했다는 건 커다란 영상을 보며 허둥지둥 움직이고 있는 눈앞의 막스 역시 예상할 수 없었을 것이다.

-안… 안 돼!

[오류]

[메인 프로그램이 작동하지 않습니다.]

-어, 어째서 메인 프로그램이 작동되지 않는 거지? 벌써 침식당하고 있는 건가. 안, 안 돼… 이럴 수는 없어.

[오류]

[메인 프로그램이 작동하지 않습니다.]

-예비 프로그램이라도 보강해야 해. 이게 뚫리면 끝이야. 메인 프로그램에 들어갈 예비 마력도 모두 돌려야겠어. 그렇게 하는 게 맞아. 박물관은 망가지겠지만… 대륙을, 대륙을 지켜야 해. 균열 수호자님이 맡기신 일이야. 이렇게 포기할 수는 없어. 끄으으으윽….

[마력을 예비 프로그램에 주입합니다.]

전투 준비를 하며 꽤나 비장하게 입장했건만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모습은 가관.

금발 머리를 한 꼬맹이가 허둥지둥 움직이며 마법진으로 이루어진 장치를 조절하고 있었다.

심지어 이쪽이 들어온 지도 눈치채지 못했다.

‘그만큼 여유가 없었던 건가….’

여유가 없을 만하다.

마력으로 이루어진 커다란 홀로그램에서 보이고 있는 고대신의 파편은 푸른색 마력에게 붙잡혀 있는 것 같았지만 누가 봐도 저걸 뛰쳐나가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였으니까.

예상했던 대로 예비 프로그램과 고대신의 파편이 힘 싸움을 하고 있었다는 거다.

영상으로 봐도 여전히 끔찍해 보이는 모습. 저곳이 아니라 이곳으로 왔다는 게 천만 다행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무슨 희생을 치르더라도 다시 봉인해야 돼.

뭔가 말을 걸기도 힘든 분위기. 한 발자국 더 몸을 옮기자 그제야 원정대원들이 들이닥쳤다는 걸 눈치챘는지 고개를 돌려 이쪽을 바라보는 얼굴이 시야에 비쳤다.

-너희… 들이 어떻게….

기계 같은 녀석이라 생각했는데 확실히 본체는 감정을 가지고 있는 모양.

‘어째서?’라는 표정이 제일 먼저 보였고 그 다음이 경악.

그 다음은 공포였다.

당황스럽게도 마지막으로 얼굴에 들어선 감정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책임감.

마법진으로 이루어진 장치를 꽉 껴안은 채로 소리를 빼액 지르는 모습이 보였다.

-안, 안 돼! 이… 이… 쓰레기들! 더러운 고대신의 앞잡이들아! 너희가 대륙을 파괴하도록 내버려 둘 것 같아?!

‘우리 악당 아니야, 이 새끼야.’

뭔가 상황이 완전히 뒤바뀌어 버린 것 같은 기분은 내 착각이 아니리라.

후기

막스: 대륙을 구해야 돼! 대륙을… 대륙을 구해야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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