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6
회귀자 사용설명서 246화
박물관 관리인 막스(2)
누가 봐도 불안해하는 표정이었다.
얼굴을 보니 어떤 오해를 하고 있는지 눈에 보인다. 눈썹은 파르르 떨리고 있었고 온갖 불길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제어장치를 소중한 것인 양 필사적으로 막고 있는 것을 보니 내가 저걸 부수기라고 할 줄 아는 모양.
제법 옳은 판단이기는 하다.
지금 당장은 나도 저 봉인이 유지되는 걸 바라고 있기는 하지만 수틀리면 망치지 못할 것도 없다.
뭐가 됐든 지킬 것이 생긴 사람은 약해진다.
물론 녀석을 사람이라고 불러도 될지는 고민해 봐야겠지만 적어도 녀석이 불안해하고 있다는 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신기하네.’
녀석뿐만이 아니다.
이 방을 구성하고 있는 것 모두 신기한 것 투성이.
사실 이 방에 들어온 그 순간부터 관리인 막스에 대한 관심은 현저히 내려갔다.
‘이건 보물이야.’
마력으로 이루어진 것 같은 홀로그램이 그중 가장 압권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영상매체는 물론 녹음기도 없는 세상에서 저런 종류의 기술이 있다는 게 신기하게 느껴지는 것이 당연.
여기저기에서 빛나고 있는 마법진을 바라보자 저게 어떤 원리로 돌아가는지 대충 깨달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똑같은 걸 만들라고 하면 만들 수 없을 것 같지만….’
최소한 원래 있는 걸 활용할 수는 있다.
‘권한이 필요하려나.’
슬쩍 마음의 눈으로 확인하니 다시 한번 정보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균열 박물관 제어장치-전설 등급]
[관리자 권한을 필요로 함.]
‘역시….’
조금 아쉽기는 했지만 그것 외에도 신기한 아티팩트들이 눈에 띈다.
이 박물관을 통제할 수 있는 기술의 집약체가 여기에 몽땅 들어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두리번거리게 되는 것은 당연지사.
그게 또 관리인 막스에게는 위협적으로 다가왔던 모양이다.
-절대로… 절대로 너희들의 생각대로 되게 하진 않을 거다.
‘쟤는….’
아직도 뭔가 착각하고 있는 모습은 귀엽게 느껴질 지경이다.
실제로 외관은 귀엽다.
균열 수호자들의 취향이 뭔지 아주 잘 알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
툭 하면 부러질 것 같은 금발 미소년이라는 건 저런 걸 두고 하는 말이리라.
사실 녀석에게 느껴지는 힘도 그다지 크지 않다. 원정대원들은 전투준비를 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함이다.
솔직히 이렇게 경계할 필요도 없다. 혹시나 위협이 될 만한 요소가 있다고 생각한 원정대원들과는 다르게 내 눈에 보이는 위험 요소는 전무하다.
관리인 실을 지키는 것은 바깥에 있는 골렘 정도가 전부였고 막스 역시 끽해야 영웅 등급의 몬스터 정도로 분류해도 될 것 같았다.
정리하자면 슬그머니 나서 봐도 될 만한 상황이라는 거다.
더미를 봤을 때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지만 녀석의 본체를 보니 호구를 감지하는 센서가 계속해서 불을 올리고 있었다.
기묘한 대치를 이어가고 있는 원정대원들의 품을 뚫고 나와 입을 연 것은 당연지사.
물론 입가에는 한가득 미소를 담은 채였다.
“아이고… 이게 누구십니까. 박물관 관리인, 균열 박물관을 수호하고 계승한 막스님 아니십니까.”
-너… 너!
“그렇게 화내시면 섭섭합니다. 관리인님. 역시 서로 얼굴을 마주보고 대화하니 느낌이 좀 다른 것 같습니다. 실제로도 작은 꼬마의 모습을 하고 계셨군요. 어떻게? 잠깐 시간 되시면 대화라도 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이… 이 쓰레기 같은 놈! 이 쓰레기 같은 놈! 네놈이!
“왜 이렇게 화를 내시는지 모르겠습니다.”
-더러운 고대신의 하수인아! 네, 네놈 뜻대로는 되지 않을 것이다!
“어째서 저희를 고대신의 하수인이라고 생각하시는지는 모르겠지만… 큼. 저희가 일을 조금 복잡하게 만든 것에 대해서는 사과드리겠습니다. 그야 어쩔 수 없었지 않았습니까. 먼저 주작한 쪽은 그쪽이기도 했고 박물관 탐험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저희도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다지 선택지가 많지 않았으니까요.”
-그, 그 더러운 입 다물어라! 확률을 주작한 적 따위는 없….
“몇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더러운 인간 놈들! 너희 같은 놈들을 손님으로 받는 것이 아니었다.
“아니, 대화 좀 하자는데 왜 이렇게 게거품을 물고 달려드십니까. 박물관 관리인님.”
-당, 당장 나가라! 당장! 경, 경비용 골렘은 어, 어디에….
“하는 거 없는 돌덩이라면 이미 처리했습니다. 그러지 말고 대화를….”
-이이익!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대화가 통할 상황이 아니었다는 것.
마음 같아서는 저 관리인을 히든 보스로 탈바꿈시킨 뒤 막스 레이드를 시작하고 싶었지만 싸우는 것보다 싸우지 않는 것이 얻을 게 더 많다.
‘싸우면 안 되지… 그러면 안 돼.’
당연하지만 눈 앞에 있는 보물들이 똥 덩어리가 되는 걸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박물관 제어 장치에 포함되어 있는 여러 장치들의 가치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천문학적이다.
사용하기에 따라서 김현성이 얻게 될 신화 등급의 검보다 더한 가치를 지니게 될 수도 있다.
아니, 지니게 될 수도 있다가 아니다. 저 박물관 제어장치는 확실하게 듀렌달의 가치를 넘어선다.
아직까지 정신없는 원정대원들은 거기까지 생각이 닿은 거 같지 않았지만 마음의 눈으로 눈앞에 있는 걸 제대로 마주한다면 모두가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최소한 나한테는 저게 보물이야.’
대륙에 들어온 이후 뭔가를 이렇게 격렬하게 원했던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였다.
결국에는 조용히 김현성과 박연주를 향해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저, 여러분 죄송하지만 박물관 관리인과 협상을 하고 싶은데… 괜찮으시다면 맡겨 주시겠습니까?”
입을 열자 막스가 뭐라 발광하는 소리가 들려오기는 했지만 계속 무시하고 말을 이어나갔다.
“아무래도 여럿이서 함께 있는 것 보다는 둘이 있는 게 효과적일 것 같아서… 부탁드립니다.”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아! 디아루기아가 함께 있어 준다면 괜찮을 것 같습니다.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요. 파란에게도 그렇고 검은백조에게도 그럴 겁니다. 검은백조에서 허락해 주신다면….”
“저는 상관없습니다.”
김현성이야 원래부터 이렇게 말할 거라고 예상했었지만 문제는 박연주.
‘얘도 눈치 깐 것 같기는 한데….’
“고립된 이들의 소재 파악은 10분 내로 전달해 드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지금쯤 맹렬하게 머리가 돌아가고 있을 것이다.
어떤 결론을 내렸는지는 모르겠지만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니 나에게 맡겨보기로 한 모양.
자신에게는 뾰족한 수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내린 결론일 수도 있겠지만 평소에 신뢰를 쌓아 놓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네. 그렇다면 부탁해요.”
‘이래서 사람은 평소 행실이 중요해.’
나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소리였지만 대외적으로는 이기영이라는 인간의 브랜드 이미지가 제법 괜찮게 구축되어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모두가 천천히 관리실의 밖을 빠져나가기 시작하고 디아루기아만 조금 찝찝한 표정으로 이쪽의 옆에 자리 잡는 중.
비로소 마음 편히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대화의 장이 마련됐다.
-협상? 협상? 네놈들과 그런 걸 할 것 같아? 당, 당장 사라지지 못해?
막스야 원래 저렇게 날뛸 거라고 예상했었지만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았다.
잠깐 숨을 들이마신 뒤에 입을 열자 확실하게 불안해 보이는 얼굴이 시야에 비친 것.
갑작스럽게 태세전환한 태도 변화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봐요.”
-어?
“지금 사태 파악 안 돼?”
-뭐….
“잘나신 우리 균열 수호자들이 책임감은 낭낭하게 심어주셨는데 눈치는 심어주지 않으셨나 보네.”
-무슨 소리를 하는 지 모르겠지만….
“입 다물고 제 말이나 들으세요, 관리인님. 뭐, 대륙을 지켜야 된다느니 어째야 된다느니 떠드시던데… 저기 있는 봉인이 풀리길 바라고 있는 건 아니잖아.”
-어?
“아. 이상한 오해는 마력으로 만들어져 있는 뇌 한 쪽 구석으로 밀어 넣으시고…. 생각하시는 것처럼 나는 고대신의 하수인도 머시기도 아니니까. 봉인을 풀어버린 건 살아남기 위한 어쩔 수 없었을 뿐 다른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닙니다. 물론 상황이 어떻게 잘 풀리니까 기분은 확실히 좋네요.”
-이상한 말 하지 말고… 당장!
소리를 지르려고 하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다시 한번 빽빽 대는 말을 듣기 싫은 것은 당연지사.
“저거 풀려나면… 대륙이 허물어진다며?”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는 녀석이 시야에 비쳤다.
“우리 여편네한테 들었지. 그렇지 디아루기아? 앞으로 저건 천천히 대륙의 생명력을 빨아들이며 강해질 거라고… 그 기간이 아마… 3만 년이라고 했나?”
-실제로는 조금 더 짧….
“당신은 이 대륙에 꽤나 책임감을 느끼고 있는 것 같지만 아쉽게도 나는 아니거든. 솔직히 3만 년 이후에 대륙이 망하든 온전하든 나랑은 뭐 상관없는 이야기라 이거야. 미래는 원래 후손들이 만들어가는 거고… 수습은 그쪽에서 알아서 해주겠지 뭐.”
-그, 그게 할 소리야?
“이건 마력으로 이루어진 홀로그램인가. 지금 비치고 있는 걸 보면 위대하고 존엄하신 고대신의 파편님께서 응? 풉! 예비 프로그램인가 뭔가를 격렬하게 뿌리치려고 노력하고 계신 것 같은데…. 응? 내 눈이 옹이구멍이 아니라면 힘의 균형이 제법 팽팽해 보인단 말이지….”
-어….
“자아. 이거 본 적 있지? 이 물약이 여기서 꽝 하고 터진다면 어떻게 될까? 저기 있는 제어 장치 중에 하나가 콰과광 망가지면서 예비 프로그램에 전달되고 있는 마력이 끊기면 어떻게 될까?”
-그, 그런 짓을 하도록 내버려 둘 것….
“엇. 흥분하시지 마시고요, 막스님. 디아루기아, 제압 좀 부탁드립니다.”
당황했는지 이쪽을 향해 손을 뻗으며 달려오는 녀석이 시야에 비쳤다.
하지만 녀석이 디아루기아의 손에 잡힌 것은 뻔할 뻔자.
그녀에게 몸이 제압된 채 발버둥 치는 녀석이 시야에 비쳤다.
-이… 이이이익! 이거 놔! 이거 놓으라고!
“죄, 죄송합니다….”
-다른 인간들은 몰라도 당신은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 대륙의 균형을 지켜는 존재가 이런 일에 가담하면 안 되는 거잖아! 당신! 드래곤이잖아! 지금 당신들이 무슨 짓을 하려고 하는지 알고 있는 거야?!
“죄… 송합니다.”
-대륙을 지켜야 한다고! 긍지 높은 드래곤 일족이라면 지금 당장 저 쓰레기를! 그게 대륙을 위한 길이야!
“미안해요….”
-말, 말도 안 돼…. 이럴 수는 없어! 이럴 수는 없다고!
디아루기아의 얼굴에는 지독할 정도의 죄책감이 들어서 있었다.
왠지 모르게 너무 자신을 자책하는 것 같은 느낌.
물론 나도 정말로 녀석이 풀려나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다.
앞서 말했던 대로 풀려나든 활동하든 굳이 상관없기는 했지만 저런 녀석이 풀려나는 것보다는 얌전히 있어 주는 게 덜 찝찝하다.
물론 지금 당장은 이런 태도를 고수해야 하는 게 옳다.
‘좋지.’
대륙을 미끼로 쓸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지만 녀석의 반응이 너무 좋으니 솔직히 좀 흥이 오른다.
“아주 볼만하겠네. 아주 볼만하겠어! 균열 수호자님들이 무덤에서 벌떡 일어나시겠네! 자아. 폭탄 들어갑니다.”
-하지 마! 하, 하지 마!
“생각보다 튼튼한 것 같아서 한 병으로는 안 될 수도 있겠는데…. 이 물약에 마력 들어가면 2초 후에 콰과광! 대륙이 멸망한답니다!”
-하지 마! 하지 마!
“어허! 어른한테는 존댓말 써야지!”
-하지 말아주세요!
“아니야. 역시 폭탄으로 해치우는 것보다는 손맛이 필요해. 적당한 막대기 어디 없나.”
-끄으으으윽….
주변에 있는 적당한 막대기를 집어 들며 헛스윙을 하기 시작하자 녀석의 얼굴이 점점 불안감에 휩싸이는 것이 보였다.
솔직히 저 제어장치를 이 막대기로 부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지만 그래도 이런 무력시위보다 녀석을 더 불안하게 할 수 있는 건 없다.
제어장치를 향해 배트를 휘두르는 모션을 취할 때마다 동공이 흔들리는 모양새가 우습다.
조금 더 극적인 상황을 위해 막대기를 허공 높이 들어 올린 것은 당연지사.
“자아. 이제 5초 후에 대륙이 멸망합니다. 쿵짝짝 쿵짝짝!”
-안… 안 돼!
“오!”
-제발 이러지 말아주세요!
“사!”
이쯤 되니 디아루기아도 불안한 모양인지 다급하게 말을 걸어오는 모습이 시야에 비쳤다.
“당신 정말로 할 생각인가요? 당신!”
-긍지 높은 용이여! 빨리!!
“삼!”
-안… 안 돼!
“이!”
-끄으으윽!
“갑니다!”
-원, 원하는 게 뭐야!
제어장치에 몽둥이 찜질을 시작하려고 했을 때 막스가 다급하게 입을 열어오는 게 시야에 비쳤다.
방금 전에 내가 한 협상이라는 단어가 떠오른 모양.
다행히 답을 찾는 것이다.
입꼬리가 히죽 올라간 것은 당연지사. 조용히 입을 열자 녀석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것이 보인다.
“박물관.”
내가 들어도 단호하게 들려오는 목소리였다.
-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