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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248화 (247/1,590)

# 248

회귀자 사용설명서 248화

박물관 관리인 막스(4)

퀘스트를 받은 것은 나뿐만이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대륙을 수호한 원정대원에게만 내리는 칭호라고 했으니 지금쯤 뒤에서 이쪽을 기다리고 있는 이들에게도 소식이 닿았으리라.

아니나 다를까.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원정대원들이 관리실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박연주와 김현성을 필두로 정하얀과 박덕구가 들어왔고 선희영과 안기모 역시 다른 검은백조의 인원들과 섞여 관리실 안 쪽에 자리를 잡았다.

익숙하지 않은 얼굴이 몇몇 보이는 것을 보니 고립된 이들의 구출도 확실히 마무리가 된 모양.

‘생각보다 상태가 좋네.’

조금은 예상했던 일이었다.

애초에 막 사원은 이곳의 네임드 몬스터가 아니라 던전 안내인으로 분류할 수 있는 마력 응집체다.

단순히 관리자에 불과한 막 사원이 저들을 핍박할 이유는 그 어디에도 없다.

‘성격도 호구에 가깝고….’

아무튼 간에 관리실로 들어온 이들의 표정이 황당함으로 물들고 있는 게 보였다.

대부분 보여주는 반응은 ‘형 거기서 뭐해?’라는 듯한 표정.

나도 지금 내가 보여주는 모습이 황당하니 저들이 그렇게 느끼는 것도 무리는 아니리라.

생전 처음 보는 장치들을 무척 능숙하게 만지고 있는 것은 물론, 정말로 커피를 탄 막 사원에게서 커피를 받아들고 있으니 아까 전 모습과는 너무나도 상반되는 그림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설명이 필요할 거라고 생각한 것은 당연지사.

참지 못하고 먼저 입을 열어온 건 박연주였다.

“이건… 어떻게 된 건가요?”

“거래를 했습니다. 고대신의 봉인을 수습해 준다고 말입니다.”

“그, 그렇군요. 장치들은 어떻게….”

“저도 잘은 모르겠습니다만 생각보다 이해하기 쉬운 시스템입니다. 사실 처음 보자마자 어떻게 작동하는지 대충 알 것 같아서 거래를 제안한 겁니다. 눈에 띄는 오류가 몇 개 있어서 말입니다. 제가 기계에는 조금 강한 편이라….”

“기계에 강하다는 말로 설명이 되는 수준이 아니지 않나요?”

아직도 목소리에는 의문이 가득 들어가 있었지만 마음의 눈 때문에 조작법의 숙지가 가능해졌다는 말을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사랑스러운 회귀자 역시 놀라움을 표현하기는 했지만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얼굴에는 뿌듯함이 들어섰다.

다시 한번 보물을 바라보는 듯한 표정을 내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녀석은 겉으로 티를 내지 않았지만 박덕구는 다시 한번 큰소리를 치며 입을 열어오는 중.

“거, 우리 형님 천재 맞다니까! 키야! 우리 형님 쥑이네!”

“그런 거 아니야.”

“뭐, 어떻게 작동하는지도 모르겠는데 처음 보고 딱! 거, 그렇게 했다는 거 아니요!”

“…….”

정확히 말하면 머리가 좋은 게 아니라 눈이 좋은 게 된다.

어떻게 가도 목적지에 도착하면 상관없다는 말도 있으니 결과만 생각해보면 그렇게 비칠 수도 있겠지만 눈이 없었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었으리라.

슬그머니 원정대원들을 선동하기 시작하는 박덕구의 말 때문인지 검은백조의 인원들의 머릿속에도 이쪽이 두뇌파라는 인식이 강하게 틀어박힌 모양.

원정을 떠나기 전에 했던 편성도 완벽했다는 걸 떠올리는 건지 하나둘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대원들이 보였다.

박덕구와 김현성은 한 번 더 의기양양해졌고 묘한 시선을 보내는 검은백조의 일원들 때문인지 정하얀은 한 번 더 주변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마음 같아선 이들과 함께 떠들썩한 시간을 보내고 싶었지만 그렇게 할 여유가 없다.

‘바빠.’

녀석의 봉인을 유지하고 있는 예비 프로그램은 마력을 채워 넣는다고 끝난 것이 아니다.

메인 보호 장치 같은 경우에는 균열 수호자들이 걸어놓은 안배가 저절로 움직이는 시스템이라면 예비 같은 경우에는 이쪽이 수동으로 움직여 녀석을 붙잡아야 하는 시스템.

어째서 막스가 아무 것도 못하고 이쪽을 붙들고 있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계속 묶어 둬야 돼.’

더러운 고대신의 파편은 아직 완벽하게 봉인된 것이 아니다.

계속해서 꿈틀거리고 있는 것은 물론 어떻게든 예비 프로그램을 깎아 내리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있다.

당장 영상에 비치고 있는 모습은 단순히 푸른색 마력이 녀석을 옭아매고 있는 것 뿐이지만 이 일은 생각보다 조금 더 복잡하다.

뚫리고 있는 구멍에 계속해서 마력을 주입해야 한다. 녀석이 힘을 주는 쪽에 이쪽 역시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거다.

마치 게임이라도 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

디펜스 게임을 하는 것 같기도 했지만 조금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총알 피하기 게임을 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이 경우에는 내가 가지고 있는 비행기를 총알에 전부 박아 넣어야 된다고 하면 되는 건가….’

물론 조작법은 1차원적인 게임에 비유하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난이도가 올라가는 거고….’

정리하자면 다른 일을 하면서도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거다.

심각한 표정과 다급하게 움직이는 손 때문인지 떠들썩한 분위기가 점점 조용해진 것은 순식간.

시간이 조금 지나자 들리는 소리는 마법진들이 가동되는 소리밖에 없었고 막 사원 역시 발을 동동 구르며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다.

누가 봐도 일이 잘 풀리지 않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실제로도 손이 조금 모자란 것 같은 느낌. 김현성이 입을 열어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제가 뭐 도와드릴 게 있겠습니까?”

‘형 마음 아는 건 너밖에 없다.’

“으음… 네. 그러면 일이 더 수월해질 것 같습니다.”

안 그래도 작업원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막 사원, 이것 잠깐 맡고 있어. 쓸데없는 곳에 마력 주입하지 말고… 얼마 걸리지 않을 거니까 최대한 현상 유지해.”

-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자 황급히 내가 앉아있던 자리로 가 마법진을 두드리고 있는 녀석의 모습이 보였다.

고개를 돌리자 이번에는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원정대원들의 모습이 시야에 비친다.

마력 홀로그램을 하나 띄운 이후 상황을 브리핑하기 시작.

“잠깐만 상황을 설명하겠습니다. 최대한 간결하고 빠르게요.”

“네.”

다시금 입을 열려고 하던 찰나 박연주가 질문을 던졌다.

물론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은 아니었다. 디아루기아와 함께 했던 거짓말 중에 일어난 설정 구멍은 대충 덮으면 되는 거 였으니까.

“저기요. 실례지만 잠깐 질문 좀 드려도 될까요? 기영 씨?”

“네. 말씀하시죠.”

“그전에는… 저 고대신의 파편이 휴식기에 들어갔다고 하지 않았었나요?”

“네. 확실히 휴식기에 들어갔었습니다. 디아루기아는 그렇게 판단하고 있었고 이야기를 들어보니 관리인 막스 역시 마찬가지라고 하더군요.”

물론 거짓말이다.

“박물관에서 휴식기에 들어간 녀석을 재봉인하려고 했지만 고대신의 파편이 예비 프로그램의 활동을 눈치채고 저항하기 시작한 게 현 상황이라고 설명을 드리면 괜찮을 것 같습니다. 조금 더 자세하게 설명해 드리고는 싶지만 그다지 여유가 없어서….”

“아, 죄송합니다.”

“괜찮습니다. 당연히 의문을 느끼실 테니까요. 본론으로 들어가면 보시는 것처럼 현재는 거의 모든 부분을 봉인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보시는 것처럼 봉인에 균열들이 생겨나기 시작한 상태입니다. 지금 막 사원이 하고 있는 작업은 구멍이 난 예비 프로그램의 마력으로 덮어주고 작업이고요.”

“으음….”

“다행히 다른 곳에서 예비 마력을 끌어와 별 무리 없이 지금의 상태를 유지하고는 있지만 계속해서 움직이기 시작하는 녀석을 붙잡아둘 다른 수단이 필요하다는 게 제 판단입니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처해야 할 작업원이 필요하기도 하고요.”

“그렇군요.”

“한 가지 확실하게 말씀드리면 이 일이 위험하다면 여러분들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았을 거라는 겁니다. 물론 위험 부담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목숨을 잃을 정도는 아니라는 거군요.”

“아니요. 여러분이 위험해지는 건 제가 사전에 막을 겁니다. 이곳에 있는 예비 프로그램으로요.”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건지… 알 것 같네요.”

“일이 잘 풀리지 않다고 판단된다면 퇴로를 여는 것은 물론, 여러분들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겠습니다.”

“그러다 봉인이 깨진다면….”

“애초에 봉인을 부순 것 역시 이쪽입니다. 어떻게든 수습할 방법이 있겠죠.”

수습할 방법 따위는 없다.

그러다 봉인이 무너진다면 3만 년 이후에 대륙이 무너지는 걸 기다려야 한다.

솔직히 대륙의 존폐는 개뿔, 아무 상관도 없지만 이쪽도 이번에는 잃을 게 생겼다는 게 가슴 아픈 부분.

‘내 박물관….’

이 제어 장치들을 다시 사용할 수 없는 것은 물론, 활용할 수조차 없게 될 것이다.

박물관은 예비 프로그램을 잡아먹으며 관리실에 들어올 것이고 이 장소에 있는 모든 기능도 정지해 버리며 똥 덩어리로 변하게 되리라.

‘기왕이면 봉인은 막는 게 좋겠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한번 말을 이었다.

이번에는 조금 묵직한 목소리로.

“원정대원들의 생환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움직이겠습니다.”

“네. 알겠어요.”

“형님이 그런 소리를 하니까 거, 묘하게 안심된다니까.”

“알겠습니다.”

“큼. 그리고 조금 어울리지 않는 소리를 하자면….”

“말씀하시죠.”

“모두 퀘스트를 받으셨을 겁니다.”

분명히 모두가 받았을 거다.

[전설 등급의 퀘스트를 확인합니다.]

[전설 등급 퀘스트-대륙 구원(0/1)]

실제로도 모두 상태창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사실 저는 대륙의 존폐보다는 여러분들이 생환하는 게 더 소중한 소시민입니다. 실제로도 앞서 일을 꼬이게 만든 것 역시 그런 부분 때문 이었고요. 갑자기 이런 식으로 퀘스트를 받으니 기분이 조금 묘해지더군요.”

사실 그다지 묘하지는 않다.

“누군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이 묘한 기분을 굳이 말로 표현하자면 뭔가 책임감이라는 게 생겼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아, 물론 보상으로 내려올 칭호에 붙은 스탯이 탐이 나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하하.”

작게 웃자 모두들 쿡쿡거리는 게 시야에 비쳤다.

물론 책임감 따위는 없고 보상은 탐이 난다.

마력 스탯 1이 소중한 상황이니까.

“생각해 보면 저희가 저지른 일을 수습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되겠지만… 자꾸만 이 퀘스트가 무사히 완료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한 명의 사망자도 없이요.”

박물관을 위해서!

“앞으로 린델에 살아갈 저희의 후손들을 위해서 말입니다.”

내 본성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는 조혜진 그리고 방금 전까지 쓰레기 짓에 동참했던 디아루기아는 이놈이 무슨 개소리를 지껄이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지만 대부분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특히나 선희영과 안기모는 내 연설 아닌 연설이 마음에 든 모양.

묘한 고양감과 책임감이 가미된 원정대는 강할 것이다.

사기라는 건 아무렇지도 않아 보여도 이런 일을 해결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요소 중 하나니까.

“출발합시다.”

“출발하겠습니다.”

김현성이 입을 열었고 원정대원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발걸음을 옮겼다.

마지막까지 기가 차다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디아루기아의 표정에 양심이 찔려오기는 했지만 지금 우리는 선택받은 대륙의 구원자가 맞다.

‘인류의 힘을 보여주마! 더러운 고대신의 파편아!’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됐다.

녀석의 입장에서는 꽤 억울한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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