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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250화 (249/1,590)

# 250

회귀자 사용설명서 250화

박물관 관리인 막스(6)

눈을 떴을 때 가장 처음 본 광경은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해냈어.”

“성공했어요!”

모든 게 낯선 것처럼 기억한다.

커다란 방 안을 가득 메운 사람들.

귀가 뾰족한 사람도 있었고 키가 작은 사람도 있었다.

다른 사람들에 비해 키가 큰 사람도 있었고 녹색의 피부를 가지고 있는 사람도 눈에 띄었다.

주위를 두리번거리자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커다랗게 웃어줬던, 귀가 뾰족한 금발 머리 얼굴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네 이름은 막스야.”

-막스?

“응. 막스.”

-막스!

“그리고 내 이름은 메텔이란다.”

-메텔?

“응. 메텔.”

-메텔!

“이곳은 균열 박물관이라는 곳이야. 너는 우리 수호자들이 힘을 합쳐 만든 마력의 응집체고… 여러 가지 설명을 하기 전에 일단은 걸어볼까? 걸을 수 있겠어?”

-아… 응.

당시에는 모든 것이 신기한 것 투성이었다.

여기저기에서 인사를 건네는 사람도,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사람도, 주변에 너부러져 있는 물건도.

모든 게 새로웠던 걸로 기억한다.

발이 바닥에 닿을 때 느낀 차가운 감각. 피부에 닿는 마력의 감촉.

‘다행이다.’

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태어나서 다행이다.’

이 모든 것을 알게 돼 진심으로 다행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게 당연했다. 눈앞에 있는 것 모두가 자신을 축복해 주는 것 같았으니까.

시간은 흘렀다.

당연하지만 그날 이후로 많은 것을 알게 됐다. 자신이 어떻게 만들어졌고 어째서 탄생했는지에 대해서도 배웠고 균열 박물관이 존재하는지 그 의의와 관리실이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해서도 알게 됐다.

공부하는 시간은 즐거웠다.

수호자님들과 같이 있을 수 있는 시간이었고 열심히 하면 칭찬도 받을 수 있었으니까.

“이해되니?”

-네. 제이미 님. 이해할 수 있어요. 박물관에 있는 관리품 목록도 모두 외웠어요!

“그래? 우리 막스 똑똑하네.”

-감사합니다.

많은 지식을 습득했고.

“너는 박물관을 관리하기 위해서 태어난 거야, 막스. 우리 수호자들의 의무를 네가 이어받기 위해서. 네게는 미안하지만 우리를 이해해 줬으면 좋겠구나.”

-미안해하실 필요 없어요. 올리버 님. 태어나서 정말로 행복한걸요. 정말로 기뻐요.

책임감이 뭔지 배웠다.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이지만 네 몸은 박물관 밖으로 나가면 흩어진다는 거 알고 있지? 이 박물관에 있는 마력이 네 몸을 유지시켜 주고 있는 거니까. 조심해야 한다.”

-네. 스네프 님!

하면 안 되는 일이 뭔지도 알게 됐다.

“네가 열심히 해줘서 기뻐. 음. 너는 나랑 조금 닮은 것 같은데….”

-그런 말씀해 주셔서 영광이에요, 아이작 님. 오늘 떠나신다고 들었는데….

“응. 나는 여기 사람이 아니니까. 언젠가 또 볼 수 있을 거야. 잘 있어, 막스.”

-아… 네.

물론 시간이 지나도 익숙해지지 않은 것도 있었지만 실제로 수호자님들과 함께한 시간들은 무척이나 즐거웠다.

박물관을 둘러보며 점검하는 것도 그랬고 수호자님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도 그랬다.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수호자님들.’

하루에 몇 번씩이나 비슷한 생각을 할 정도였다. 대하기 조금 어려운 수호자님도 계셨지만 그 반대도 있었다.

-메텔 수호자님!

“막스! 오늘도 어땠어?”

-네. 오늘은 관리실을 점검하고 봉인된 균열을 직접 보고 왔습니다. 스네프 님과 함께요.

“어머. 혹시 그가 뭐라고 하지는 않았니? 잘 대해준 거야?”

-네. 여러 가지 설명을 들었어요. 지금은 균열이 완전히 막혀 있지만 언제 다시 열릴지 모르는 만큼 저희가 끝까지 지켜봐 줘야 한다는 것 까지요. 그리고 이 박물관에 있는 물품들도….

“매번 하는 이야기인데 이제는 지겹겠구나….”

-아니에요, 메텔 님. 제가 태어난 이유인 걸요. 저는 수호자님들의 뒤를 이어 박물관의 유지를 이어 받기 위해서 만들어졌으니까요! 열심히 해야죠!

“…….”

-메텔 수호자님?

“너무 그렇게 짓눌려 있지 않아도 괜찮단다.”

-네?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내일 하루는 수업에 나가지 말고 같이 놀까?”

-그래도 되나요?

“물론. 하루 정도는 쉬어도 돼.”

특히나 메텔 수호자님과 함께 있는 시간은 굉장히 즐거웠다.

다른 분들도 분명히 친절하고 잘 대해주시기는 했지만 메텔 수호자님은 다른 수호자님과는 다른 방식으로 대해주었기 때문이다.

-메텔 수호자님, 부모님이 뭔가요?

“그건 아버지와 어머니를 말하는 거야. 나 같은 엘프나 제이미 같은 인간들은 막스가 태어난 방식과는 다르게 태어나거든. 여자와 남자가 사랑을 나누면 여자의 배 안에 아이가 생기고 시간이 지나면 세상 밖으로 나오게 돼. 이걸 낳아주신 부모님이라고 부르지. 물론. 키워주는 개념도…. 아! 그보다 갑자기 부모님은 왜?”

-스네프 님이 메텔 수호자님이 제 부모님 같다고 해서요.

“그럼! 방식은 조금 다르지만 나는 막스의 부모님이나 다름이 없는 걸. 막스를 세상 밖으로 나오게 하는 데 가장 커다란 공을 세운 게 바로 나니까. 후훗. 스네프가 눈치가 좋네. 사실 나도 막스를 내 자식처럼 생각하고 있었거든. 어때? 엄마라고 불러볼래?”

-아, 아니요.

“왜?”

-그냥… 부끄러워요.

“빨리 불러보라니까!”

-나, 나중에요. 너무 부끄러워요.

정말로 태어나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에 와서 떠올려 보면 이때가 가장 행복한 때였던 걸로 기억한다.

아무 걱정도 없었고 매일 웃고 가끔은 뛰어다니고 메텔 수호자님에게 어리광도 부렸으니까.

그렇게 시간은 계속해서 흘러갔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흘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제이미 님의 머리가 푸른색에서 하얀색으로 변할 정도의 시간이었고 올리버 님과 스네프 님 얼굴에 주름이 생길 정도의 시간이었다.

매일 화를 내던 스네프 님은 조용히 독서를 하거나 먼 곳을 바라보는 시간이 많아졌고 몸도 눈에 띄게 약해졌다.

올리버 님은 음식을 제대로 씹지 못하셨고 매번 머리를 쓰다듬으며 입을 열고는 했다.

“미안하다.”

-아니에요, 올리버 님. 저야말로 죄송한 걸요. 제가 해드릴 수 있는게 없어서….

“너에게 큰 짐을 지게 했구나.”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 없어요, 올리버 님!

“하하…. 그렇게 생각해 주니 고맙구나. 그래… 고맙구나.”

-올리버 님? 메텔 수호자님! 올리버 님이 이상해요! 메텔 수호자님!

그리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타인의 죽음을 겪었다.

아마 이 즈음이었을 것이다.

-인간은 죽는구나.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을 실감하게 된 것이 딱 이 즈음이었을 것이다.

“우리 귀염둥이….”

그 다음은 제이미 님이 돌아가시고….

“매번 모질게 대해 미안하구나. 그래도 널 싫어하지는 않았다는 것 만 알아줬으면 좋겠다. 막스, 박물관을 잘 부탁한다.”

그 다음에는 스네프 님이 사라지셨다.

메텔 수호자님은 다른 수호자님들이 한 분씩 눈을 감으실 때마다 조용히 눈물을 흘리셨고 식사를 하지 않으시는 날도 잦아졌다.

‘태어나서 불행한 건지도 몰라….’

가끔 이런 생각을 하곤 했다.

수호자님들이 돌아가실 때나 메텔 수호자님이 방 안에 틀어박혀 있으실 때는 항상 저런 생각을 하곤 했다.

시간이 지나고 지나 이제는 커다란 박물관에 둘밖에 남지 않았을 때에도 같은 생각을 했다.

물론 마냥 불행하지는 않았다.

메텔 수호자님은 늙지 않으셨고 웃을 수 있는 일도 많았으니까.

함께 책을 읽기도 했고 박물관을 뛰어다니기도 했으니까.

여러 가지 대화를 나눴고 수업도 멈추지 않았으니까.

슬퍼하는 시간보다 웃는 시간이 더 많아졌으니까.

함께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것은 조금 아쉬웠지만 분명히 즐거웠다.

모든 게 영원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메텔 수호자님 역시 무한하지 않았다. 제이미 님과 다른 분들처럼 예전과는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때 즈음 메텔 수호자님은 방 밖으로 잘 나오지 않게 됐다.

“연구를… 시작할 거야, 막스. 조금 바빠지겠지?”

-네. 수호자님.

“나오지 못할 일도 많을 것 같아. 딱 그 동안만… 박물관을 부탁해.”

-네. 수호자님.

정확히 어떤 걸 연구하시는지는 알지 못했지만 수호자님의 말처럼 얼굴을 뵙기가 힘들어졌다.

-태어나서 불행한 거야.

그렇게 생각하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메텔 수호자님은 계속해서 어떤 연구에 몰두하셨고 그만큼 급속도로 쇠약해지기 시작했다.

가끔 바깥으로 나오셨을 때도 기침을 하는 일이 잦아졌고 가슴을 부여잡고 헐떡거리는 일도 많아졌다.

무서웠지만 웃을 수밖에 없었고 박물관 관리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할 일을 해야만 했으니까.

메텔 수호자님은 가끔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씀하셨다. 내 몸에 이것저것 새로운 주문을 걸어주시고는 매번 같은 말씀을 하셨다.

“사랑해.”

거짓말.

움직이기 어려워지셨을 때도 똑같이 말씀하셨다.

“사랑한단다.”

거짓말.

몸 안에 있는 마력이 전부 다 사라졌을 때도 웃으며 말씀하셨다.

“사랑한단다, 막스.”

거짓말.

마력을 전부 쏟아부어 나를 박물관 밖으로 데려갔을 때도 똑같이 말씀하셨다.

‘연구가 성공이야’라고 중얼거리면서도, 몸이 부서지면서도 같은 말씀을 하셨다.

“사랑한단다…. 사랑… 한단다, 막스.”

전부다 거짓말이라고 생각했다.

-거짓말….

“…….”

-사랑한다면… 그게 정말이라면 저를 만들지 않으셨어야 했어요. 끄으윽….

“…….”

-정말이라면 이렇게 혼자 남겨두지 않으셨어야 했어요. 제이미 님도, 올리버 님도, 스네프 님도 저를 좋아한다고 하셨다면 이렇게 혼자…. 끄으윽…. 남겨두지 않으셨어야 했어요. 메텔 님은 거짓말쟁이야. 끄으윽…. 영원히 같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으면서…. 거짓말쟁이야…. 이럴 거면 태어나지 않는 편이 더 좋을 뻔했어요. 만들어지지 않는 게 더 좋을 뻔했다고요.

“…….”

-저는 밖으로 나가고 싶다고 말한 적 없어요. 박물관 안에서 계속 살아도 된다고 했어요. 이런 거 부탁한 적도 없어요. 저를 사랑한다고 말씀하셨으면… 저와 함께 있으셔야 했어요. 저한테 이러지 않으셨어야 했어요.

“…….”

-…….

“…….”

-저도… 저도 사랑해요! 저도 사랑해요. 그러니까 가지 마세요.

“…….”

-사실은 거짓말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었어요. 사랑한다는 게 진짜 라는 것도 알아요. 그러니까. 일어나세요. 제발 일어나 주세요.

“…….”

-끄으으윽…. 제발…. 제발요.

“…….”

* * *

“그게 끝이야?”

-네…. 이후에는 설명 드린 대로 입니다. 밖으로 나가지 않고… 박물관에 들어가서 수호자님들이 해주신 의무와 책무를 다하게 됐죠. 갑자기 박물관이 던전화되었을 때는 깜짝 놀랐습니다.

생각보다 감동적인 이야기였다.

담담하게 이야기를 끝마친 막스를 향해 악어의 눈물이라도 흘려야 되는 것은 아닌지 진지한 고민을 해볼 정도.

그렇지만 뜨거운 눈물을 흘리진 않았다.

내게는 조금 현실성 없는 이야기이기도 하고 감상에 젖기에는 밖에서 들리는 소란스러운 목소리들이 신경 쓰였기 때문이다.

아마 관리실을 향해 다가오고 있는 원정대원들이 틀림없으리라.

[막스의 보호자.]

[수호자 메텔의 간곡한 부탁으로 만들어진 칭호입니다. 막스의 성장 여부에 따라 박물관 관리 등급이 올라갑니다. -죄송합니다. 부디 진심으로 대해주세요.]

‘어우….’

나쁘지는 않다.

디아루기아 때처럼 목숨을 저당 잡힌 것도 아니었고 녀석을 어떻게 할지에 대한 여부도 이쪽에 달려 있었으니까.

그렇지만 자꾸만 찝찝해지기 시작.

심지어 이 메텔이라는 여자는 마지막 봉인을 책임진 이후, 그 사념체조차 무지개다리를 건너가 버렸다.

어처구니가 없어 실소가 나오는 상황이라는 거다.

“그럼 잠깐 보였던 그건….”

-아마 메텔 님이 남기신 잔존 사념이실 것 같아요. 아마 끝까지 제가 못미더우셨던 거겠죠.

“그건 아니지. 아마도 네가 밖으로 나가는 걸 고려해서 남긴거라고 생각하는 게 정황상 맞아.”

-아….

“아무튼 그래서… 지금 그 균열 수호자는 내가 너를 돌봐주기를 원한다는 거네. 아니 애초에 왜 그 날 밖으로 나가지 않은 거야?”

-누, 누군가는 책임져야 되니까요. 저는 관리인이니까…. 죄, 죄송합니다.

“죄송할 것 없어, 막 사원. 어차피 이쪽이 손해 보는 이야기는 아니니까. 다만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되는지가 문제지.”

뭐가 그리 초조한지 정하얀인 양 손톱을 깨물고 있는 모습. 이놈을 어떻게 처리해야 될지 한번 생각해 봐야겠다.

‘나쁜 이야기는 아니야.’

당연하지만 나쁜 이야기는 아니다.

박물관 관리 등급이 올라가는 것 만으로도 이미 커다란 이득이라고 할 수 있는 상황.

지금 당장 얻은 것이 너무 많아 정리하기 힘들었지만 어떻게 생각해도 이번 원정에 가장 커다란 대박은 이 박물관이다.

‘어차피 관리해 줄 사람은 필요하고….’

물론 보호자가 됐으니 이전처럼 여기에 사는 방식이 아닌 조금 다른 방식이 되겠지만 녀석의 존재는 필수불가결하다.

이 장치들을 다룰 수 있는 건 나 외에 녀석이 유일하니까.

그 밖에도 이 장치들을 베이스로 양산형을 뽑는 데 걸리는 시간 역시 단축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이봐, 막 사원.”

-네?

“혹시나 해서 하는 이야긴데… 여기 있는 장치들의 내부 설계는….”

-저… 대충은 알고 있습니다. 물론 코어장치들은 제가 어떻게 건드릴 수 없지만….

“이건? 이건 어때?”

-아… 그 정도라면….

“호오… 또 다른 할 수 있는 일은 있나?”

-아… 저것도 만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대표님.

“호오?”

-이 대표님?

답은 이미 정해져 있다. 사실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이대표는 무슨… 아버지라고 불러도 돼. 아들.”

-네?

“푸흐흐흣.”

행복한 노후를 책임질 아들이 생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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