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3
회귀자 사용설명서 253화
세상에 나쁜 용은 없다(1)
‘이건 또 뭐야.’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순간적으로 행동이 멈춰버린 것은 당연지사.
일말의 양심은 남아 있었는지 머리에 달려 있는 뿔로 공격하지는 않았지만 막스의 얼굴은 확실히 고통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독기를 품은 똘똘이의 얼굴과 눈을 꽉 감고 있는 막 사원의 얼굴이 시야에 들어왔다.
우당탕거리는 소리와 함께 막 사원이 뒤로 넘어가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
“끄에에에에에에에에엑!”
어딜 넘 보냐는 듯 콧김을 뿜고 난 이후 위풍당당한 자세를 유지하는 꼴이 가관이다.
덩치가 커 보여야 위협적으로 보인다는 건 용들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인지 두 발로 몸을 일으켜 굳건한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키엑! 헥헥!”
물론 이후에는 꼬리를 흔들어 온다.
이걸 쓰다듬어줘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는 것 자체가 웃긴 일.
뭐라고 한 마디 쏘아 붙이려고 했을 때 먼저 들어온 것은 디아루기아의 고함이었다.
“디! 아! 루리아!”
디아루기아의 똘돌이 사랑을 생각해 보면 혹시나 ‘왜 우리 애 기를 죽이고 그래요’를 시전할까 걱정되기는 했지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눈에 들어가 있는 것은 황당함과 분노.
지금까지도 돌발 행동을 많이 보여준 녀석이었지만 이런 공격성을 내 보인 것은 처음인 만큼 확실히 교정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리라.
잠깐 디아루기아에게 똘똘이를 맡긴 채 곧바로 막스의 상태를 확인하러 달려가기 시작.
고통이 익숙하지 않다는 듯 가슴팍을 부여잡고 있는 녀석은 자신의 몸을 더듬은 이후 황당하다는 얼굴로 몸을 내 쪽으로 밀착시켰다.
“막 사원, 괜찮아?”
“이, 이 대표님….”
본능적으로 이쪽과 함께 있는 게 안전하다는 걸 인지한 것이다.
“끄에에에에엑!”
물론 그 모습을 보고 똘똘이가 비명을 지른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
“디아루리아! 지금 뭘 한 거니?”
“키엑!”
“지금 그 태도는 뭐야. 네가 잘했다는 거니?”
“끄에에엑!”
“어째서 너는 항상….”
“끄에에에에엑!”
“그런 식으로 하면 안 된다고 이전에도 말하지 않았니? 어디서 그런 눈을 하고 엄마를 쳐다봐!”
“키엑!”
“엄마도 참을 만큼 참았어!”
“끄엑!”
“엄마도 드래곤이야! 드래곤!”
그 와중에 엄마에게 영 미적지근한 태도를 보이는 꼴은 가관.
아직도 흥분이 가시지 않았는지 계속해서 콧김을 뿜어대고 있었다.
‘얘는 교육이 필요해.’
확실한 교육이 필요하다.
이런 행동은 초기에 잡아줘야 하는 게 맞다.
지금이야 희귀 등급과 영웅 등급 사이라고 분류할 수 있겠지만 이후 전설급으로 성장한다는 걸 가정하면 평범한 몸통 박치기가 몸통 박치기가 아니게 될 수 있다.
애초에 방금 그것 역시 마찬가지.
막스가 평범한 꼬맹이였다면 크게 다쳤을 것이다.
이미 첫 단추를 잘못 끼운 느낌은 분명히 존재했지만 지금부터라도 행동을 교정해야 했다.
결국에는 이쪽도 제법 진지한 포지션을 취할 수밖에 없었다는 거다.
조용히 입을 열어오자 똘똘이가 곧바로 고개를 휙 돌리기 시작.
디아루리아의 무심한 태도가 못내 속상한지 표정이 안 좋은 디아루기아 역시 고개를 돌렸다.
“디아루리아.”
“헥헥.”
“지금 네가 한 행동이 잘못된 행동이라는 건 알고 있지?”
“헥….”
“지금 당장 둥지로 돌아가. 오늘부터 외출 금지야. 노는 것도 전부 금지고 스스로 반성할 때까지는 놀아주지도 않을 거야. 이번에 원정 다녀오면 같이 지내자고 한 것도 전부다 취소고 같이 나들이 나가자고 한 것도 취소야. 간식도 금지니까 알아서 해.”
“키엑?”
당황스럽다는 얼굴.
눈길도 주지 않자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하고 떨어졌다.
“끼이이이잉… 키에에에엑….”
누가 봐도 나라라도 잃은 것 같은 표정이다.
용의 얼굴로 저런 불쌍한 얼굴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신기하게 느껴질 지경.
커다란 눈망울에서 연신 눈물이 떨어지는 모습은 언뜻 보면 귀엽게 느껴지기는 했지만 저 귀여움에 낚여서는 안 된다는 사실 정도는 이미 알고 있다.
자꾸만 시선이 가긴 하지만 최대한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했다.
“키에에에엑! 끼이이잉. 끼이잉… 끼이이이잉….”
굳이 해석해 보자면 ‘잘못했습니다’, ‘앞으로는 안 그럴게요’라고 외치고 있는 것 같지만 이 정도로는 택도 없다.
‘행동에는 책임이 따른다.’
그걸 교육해야 하는 것이다.
원정대원들은 한 번 더 막스가 괜찮은지 살피곤 길드 하우스로 돌아가는 중이다.
조금 재미있었던 것은 정하얀의 표정 역시 덩달아 심각해졌다는 것이었다.
‘얘도 느끼고 있는 건가….’
자칫 잘못하면 자신도 똘똘이와 같은 길을 걸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방금 장면이 어디선가 많이 본 것 같을 테니까.
자신 역시 실수를 저지르면 똘똘이처럼 다른 곳으로 유배될지도 모른다고 느끼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다행인가.’
안 그래도 저주받은 신단에서 주입한 약발이 슬슬 떨어지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정하얀 역시 다시 한번 조치를 취해야겠다고 생각을 했었는데 마침 좋은 기회가 찾아온 것 같은 느낌. 곧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할 정도로 상황이 찾아오는 만큼….
‘일일이 케어해 줄 시간 없어….’
사람 한 명, 한 명 일일이 케어해줄 시간이 없다.
물론 마력이 98이 되어 최상위권의 마법사가 된 정하얀 같은 경우에는 주의가 필요하기야 하겠지만 일단은 당장 눈앞에 펼쳐져 있는 사업이 가장 중요하다는 거다.
‘당장은 안 터질 것 같으니까.’
정하얀도 새로 얻은 힘을 스스로 정리하는 시간을 가져야 하는 만큼 당분간은 얌전하게 있어 줄 것이다.
방금 일어난 해프닝을 보고 있다면 더욱더 말이다.
“끼잉… 끼이이잉….”
-저 이 대표님. 왠지….
“신경 쓰지 마, 막 사원. 저런 행동은 고쳐야 되는 거니까.”
-그렇지만 너무 서럽게 우시는 것 같아서….
“원래 저 나이 때 애들은 영악해. 적어도 며칠은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 곱씹어 봐야 돼.”
-아… 네.
“끄에에에에엥….”
뒤에서는 계속해서 똘똘이의 울음소리만 울려 퍼지고 있었다.
‘안 그래도 할 일 많은데….’
계속해서 내팽개치고 있었던 자식 교육인 만큼 이번에는 한 번 짚고 넘어가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아무튼 간에 눈물을 흩뿌리는 똘똘이를 뒤로 하고 길드 하우스로 들어가자 오랜만에 보는 신입들의 얼굴도 시야에 비쳤다.
아침부터 망치질을 하고 있었는지 유아영은 조금 땀에 젖은 채로 반갑게 인사를 해왔고 이창렬도 고개를 숙이며 ‘수고하셨습니다’라며 우리를 맞이했다.
한소라 역시 최대한 정하얀을 피하며 개미 기어가는 듯한 목소리로 인사를 건네 오기 시작.
다행히 파란의 새싹들에게 별다른 문제는 없어보였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사랑스러운 회귀자가 원정의 끝을 알리는 말을 내뱉었고 파티원들은 모두 저 마다의 방법으로 휴식을 취하기 시작했다.
물론 이 시간은 우리에게는 휴식시간이기는 했지만 길드 직원들의 휴식 시간은 아니다.
사실상 저들은 지금부터 일이 생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김미영 팀장 역시 길드 직원들을 불러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모습.
당연하지만 길드 직원들을 총괄하는 입장에 있는 나 역시 마음 놓고 쉴 수가 없었다.
로비에 있는 의자에 엉덩이를 내리기가 무섭게 할 일들이 계속해서 떠오른다.
‘공식적으로 제국8좌 발표도 한다고 했는데….’
이미 충분히 미룬 상황이라 더 이상 미룰 수도 없는 일이다.
‘캐슬락 블랙마켓 쪽도 한번 들려야 하고….’
제대로 일이 돌아가고 있는지 확인해 봐야 한다.
‘사업 들어가기 전에 분쟁도시 쪽 시장 조사도….’
공화국 쪽으로도 제품이 들어갈 수 있는지도 생각해 봐야 되는 문제.
‘병아리들도 케어해 줘야 돼…. 흑마법 연구도 예정되어 있는 일이고….’
그것뿐만이 아니다.
교황청과 연결고리가 끊기는 건 절대로 안 될 일이니 바젤 추기경과도 시간을 보내야 하고 마찬가지로 귀족부인들과도 다과회를 빙자한 뒷담화 타임을 가져야 한다.
그 와중에 박물관 제어장치의 연구와 여러 가지 사업들을 함께 진행시켜야 한다는 걸 생각해 보면 편안하게 앉아서 쉴 여유가 없다는 거다.
‘하나씩 차근히 끝내자.’
능력 있는 직원들에게 맡기기야 하겠지만 아예 맡길 수 없는 일도 존재한다.
길드 하우스로 돌아온 건 기쁘기도 하지만… 하나가 끝났다는 건 곧 새로운 하나의 시작.
이러다 단명하는 건 아닌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볼 정도였으니 다른 말은 필요 없으리라.
이쪽은 머리가 아파 뒈질 것 같은 상황.
그렇지만 모든 짐에서 해방된 박덕구는 벌써부터 떠들썩했다.
“거, 형님. 남자들끼리 오랜만에 오붓하게 뜨끈한 물에 푸욱 몸이라도 담구는 게 어떻겠소? 기모 형씨도 갈 거고 형씨도 함께 들어간다고 했는데… 아, 창렬이도 함께 들어갈 거요! 막스도 같이 간다니까!”
“개인 욕실도 있는데 뭐 하러….”
“그거랑 이거는 다르지! 원래 이런 친목도모는 필요하다니까. 거, 공용욕실이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거지! 다른 곳에 쓰라고 있는 거겠소? 이런 게 팀워크를 다지는 거요. 팀워크를!”
“끄응…. 나는 조금 있다 들어갈 테니까 먼저 들어가 있든지 해.”
“거, 꼭 와야 된다니까!”
“알았다, 덕구야.”
도대체 어디서 삘을 받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단체 목욕에 단단히 꽂힌 모양.
그건 여성 팀도 마찬가진지 모두들 목욕할 준비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마 주범은 황정연과 박덕구이리라.
“하얀 씨, 빨리 준비해요.”
“아… 저, 저는… 괜찮….”
“그러지 말고요.”
심지어 정하얀도 끌려가고 있다.
뭔가 도와달라는 듯이 이쪽을 바라보고는 있었지만 내가 도와줄 수 있을 리가 없다.
심지어 정말로 도와달라는 눈빛은 정하얀보다는 한소라 쪽.
아직 정하얀의 얼굴만 봐도 부들부들 떠는 상황이었다.
서로의 알몸을 보고 함께 목욕을 해야 한다는 건 그녀에게는 지옥 같은 일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나도 들어가긴 해야 하나.’
하긴 하더라도 일단 눈앞에 있는 일은 처리하는 것이 맞다.
“김미영 팀장.”
“네. 부길드 마스터.”
‘그나마 얘라도 없었으면 진짜 큰일 났을 거야.’
장담컨대 김미영 팀장이 없었다면 이미 과로사했을 것이다.
“혹시 자리 비운 사이에 편지 온 거라도 있었나요?”
“아. 그렇지 않아도 말씀 드리려고 했었습니다. 바젤 추기경님으로부터 서신이 5개 정도 와 있었고 제시카 주교와 헬레나 이단심문관에게도 각 각 3개씩, 카트린 공작부인은 파티에 참여해 줄 수 있는지에 대한 여부를 답장해 달라고 하셨습니다. 마를린 영애로부터는 정확히 144개의 편지가 도착해 있습니다. 그밖에도 타 길드는 물론 발신자를 알 수 없는 편지도….”
‘마를린 영애 144개는 또 뭐야.’
“발신자를 확인할 수 없는 편지요?”
“네. 발신자 표시에는 약속 지키라고만 적혀 있었습니다.”
‘공화국 미친년인가.’
그동안 잊고 있었던 이름이었다.
“많네요….”
“네. 실리아에서 온 행사 초청장들도 많고 다완에서도 정식으로 초청장이…. 일일이 말씀드리기에는 너무 많은 양이라. 아! 차희라 님께서도 린델에 도착하는 즉시 연락 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끄응… 정말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만 추려서 스케줄 정리해 주세요. 당연하지만 현성 씨 것도 같이요. 기왕이면 행선지 겹치지 않게 조정해 주시고요.”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아. 그리고 김미영 팀장 자녀분들이 지금 나이가….”
“이제 막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물, 물론 길드 내 교육 프로그램에도 충분히 만족하고는 있지만 아무래도 다른 사람들과 부대끼며 지내는 게 더 좋다고 생각이 들어서….”
“아아아. 그렇겠군요. 차라리 잘됐네요. 방금 같이 들어온 금발 꼬맹이도 그쪽에 들어갈 수 있는지… 아니 아니, 그냥 제 양자라고 말씀하시고 바로 진학 준비해 주세요.”
“네.”
“그리고… 검은백조랑 말 맞춰서 이번 원정에 대한 홍보도 부탁드리고요. 대륙 수호자라는 칭호를 얻었다는 게 중요하니 그 부분은 꼭 기입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네. 부길드 마스터.”
“김미영 팀장이 있어서 그나마 좀 살 만한 것 같습니다. 항상 말씀드리지만 정말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오히려 제가 더 감사를 드려도….”
“혹시 필요한 게 있으시면 언제든지 말씀하세요.”
“아뇨. 지금도 충분히 만족스럽습니다. 부길드 마스터.”
“그럼 저는 들어가 보겠습니다.”
“네. 즐거운 시간되시길.”
막말로 쟤가 퇴사한다고 하기라도 했다간 이쪽의 입장에서는 대형사고다.
기회를 봐서 연봉이라도 한 번 더 올려줘야 될 것 같았다.
‘조금은 홀가분해졌어.’
아직 일은 시작도 안했지만 그래도 조금 홀가분해진 기분이었다.
무거운 장비와 질척해진 짐을 내려놓았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기분은 나쁘지 않다.
박덕구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욕실에 들어온 이후에는 나머지 장비들도 차곡차곡 벗어 놓기 시작.
아마 목욕이 끝난 이후에 길드 직원들이 수거해 가리라.
‘여기 와서 공중목욕탕은 처음인가….’
사실 파란에 여러 가지 편의시설은 많지만 이용하는 건 처음인 것 같은 느낌.
대충 옷을 벗어 던지고 수증기로 가득 찬 욕실로 들어간 순간 박덕구의 목소리가 나를 반겼다.
“크으….”
“왜?”
“키야….”
“뭐?”
“역시 형님은 형님이요!”
이자식이 무슨 개소리를 하는지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왠지 모르게 수건이 허리춤으로 옮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