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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258화 (257/1,590)

# 258

회귀자 사용설명서 258화

세상에 나쁜 용은 없다(6)

‘이게 뭐야.’

무척 당황스러운 상황이었다.

아직도 씩씩대고 있는 똘똘이의 외관은 누가 봐도 디아루기아의 딸.

머리에는 아직 덜 자란 뿔이 있었고 작은 키에 커다란 눈망울은 전성기 때 녀석의 모습을 보는 것만 같았다.

귀여움이 최고조였던 작은 똘똘이 시절.

덩치가 순식간에 커지고 나서는 볼 수 없었던 귀여움이다.

머리카락은 딱 허리까지 내려와 있었고 피부 역시 어머니처럼 새하얗다.

처음에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았다. 물론 시간이 조금 지난 지금은 착실하게 옷을 입고 있다.

디아루기아가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똘똘이가 입고 있는 옷 역시 자신이 입고 있는 것과 굉장히 유사했다.

심지어는 의자에 앉아 있는 자세에서도 어머니를 찾을 수 있을 지경.

둘이 인지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앉아 있는 포즈가 매우 흡사하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영향을 받기는 받는 모양인 것 같다.

입을 앙다물고 있는 표정도, 뿔 주위에 있는 머리를 매만지는 습관도, 한쪽 다리도 땅을 딱딱 치는 행동도 비슷하다.

‘진짜 닮았는데….’

디아루리아가 나이를 먹는다면 외관 역시 무난하게 어머니를 따라갈 것 같은 느낌.

‘차이점이 있기는 한데….’

그래봤자 붕어빵이라는 거다.

물론 내 팔을 꽉 껴안은 채로 어머니에게는 눈길 한 번 주지 않는 꼴을 보니 아무래도 본인에게는 이런 행동들이 보이지 않는 것 같다.

잠깐의 침묵이 흐른 사이에 디아루기아가 조금 흥분한 것 같은 모습으로 입을 열어왔다.

물론 똘똘이를 향해서였다.

“디아루리아… 이게 어떻게 된 거니? 이렇게 갑자기….”

어처구니없었던 것은 사태가 수습된 이후의 디아루기아의 표정이 조금은 기뻐보였다는 것.

정확한 설명을 듣지는 않았지만 지금 이 시기에 인간형으로 변할 수 있다는 건 확실히 이례적인 일인 것 같다.

조금 더 기다려야 한다는 예상과는 다르게 디아루리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혼자 인간형으로 변신해 버렸으니 어쩌면 속으로 우리 딸은 역시 영특하다는 생각 따위를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걸 비난하는 건 아니다.

당연히 할 수 있는 생각이기도 했고 기뻐할 만한 사건이기도 했다.

조금 불만이었던 것은 꼭 이렇게 티를 내야 했냐는 것에 있다는 거다.

‘잘 되고 있었는데….’

혼란스럽기는 했지만 사태가 새로운 국면으로 흘러갔다는 건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

긍정적인 부분도 있고 부정적인 부분도 있지만 똘똘이를 컨트롤할 수 있는 측면에서 생각해 보면 긍정적인 부분에 점수를 더 많이 주고 싶었다.

그전에도 말은 알아들을 수 있었지만 그래도 직접적으로 말이 통하게 된다는 건 똘똘이를 제대로 달랠 수 있다는 것과 일맥상통하니까.

‘꼭 그런 것만은 아니지만….’

“…….”

디아루기아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은 채로 아직까지 이쪽만 바라보는 모습은 가관.

디아루기아가 잠깐 동안 섭섭하다는 기색을 내비쳤기 때문에 다시 한 번 입을 열었다.

“디아루리아, 엄마 말에 집중해야지.”

저 꼬마를 혼내는 건 굉장히 어색하다. 한마디 내뱉자 실수했다는 듯이 눈치를 본다.

내가 없을 때 디아루기아를 어떻게 대했는지 눈에 보일 정도.

용이 였던 상태였을 때도 아마 이런 태도로 하루하루를 보냈으리라.

‘얘는 진짜 보살이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똘똘이에게 과도할 정도로 애정을 쏟아내는 어머니가 잘 이해되지 않았지만 모성애라는 건 원래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디아루리아, 기분은 조금 어때? 거, 걸을 수는 있겠니? 마력도 괜찮고… 대단하구나. 엄마는 100살이 넘어서야 디아루리아처럼 할 수 있었는데….”

‘그런 말 해주는 거 아니야. 이 여편네야.’

장담컨대 띄워주면 띄워줄수록 디아루기아를 우습게 볼 것이다.

물론 내 기우였으면 좋겠지만 이 나이대의 아이들은 대부분 단순하고 1차원적이다.

“똑똑하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또래 애들보다 마력도 높고….”

‘띄워주지마.’

“말도 곧바로 할 줄은 몰랐는데… 정말 대단하구나. 어떤 기분이 들었는지 엄마한테 이야기해 줄 수 있겠니?”

‘띄워주지 말라니까.’

도대체 어제의 조언을 듣기는 했는지 궁금할 지경이다.

진짜 팔불출이라는 건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이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결국에는 개입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 당연.

곧바로 입을 열자 나를 바라보는 똘똘이의 얼굴을 바라볼 수 있었다.

그다지 권위적인 성격은 아니지만 권위적인 가장이 되어야 한다.

“루리아.”

“으응! 아빠!”

“엄마 질문에 성실히 대답해야지.”

“아, 으응….”

“그리고 자세도 똑바로. 그 동안은 아무 말 안 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네 엄마는 아빠가 사랑하는 사람이야. 지금 와서 하는 말이지만 저번에 했던 네 행동을 용서하는 것도 아니고… 엄마가 용서해 달라고 말하지 않았으면 지금도 여기에 있지 않았을 거야. 네가 성장해 성과를 이룬 건 물론 기쁘지만 이런 태도를 보이는 건 좋지 않아. 혹시 전부터 계속 엄마를 이런 태도로 대한 건지….”

“그, 그건 아니예요….”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조심해 줬으면 좋겠구나.”

‘잘 말했어.’

특히나 사랑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말한 건 최선의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일단 엄마한테도 ‘잘못했습니다’ 해야지.”

“잘… 못했습니다.”

“괜, 괜찮단다. 디아루리아…. 우리 디아루리아가 사과를 다하고… 엄마는 괜히 눈물이 나네….”

“가서 한 번 껴안아 드리고.”

“응.”

고개를 꾸벅 숙이고 우다다 달려 들어가 푹 안기는 똘똘이의 모습에 어머니는 감격했는지 슬쩍 손을 눈가로 가져갔지만 솔직히 사태가 나아졌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아직 내 눈치를 보고 있을 뿐이고 왠지 모르게 연적을 보는 것 같은 눈빛도 여전했다.

지금 당장은 참지만 내가 자리를 비우면 언제든지 태세전환을 할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이런….’

인터넷에서나 보던 일이 현실로 그것도 더 심각하게 일어날지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변한 디아루리아의 모습을 보니 먼발치에 있었던 게 눈앞까지 치고 들어온 것 같은 느낌.

그만큼 용의 외관을 한 것과 인간의 외관을 한 것은 차이가 있다.

물론 돌봐야 할 대상이라고 생각하고는 있었지만 디아루리아는 어디까지나 애완동물 같은 느낌이 더 강했다.

좋은 건지 나쁜 건지는 모르겠지만 인간형으로 변한 모습을 보니 없던 책임감도 생긴다.

‘이런 건 질색인데….’

막연히 아빠가 됐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조금 더 자각하게 됐다는 거다.

‘이제 어쩌지….’

괜한 생각에 빠졌을 때 들려온 것은 디아루리아의 목소리.

“저 아빠. 그런데요.”

“응?”

“저도 이제 아빠랑 매일 같이 있을 수 있어요?”

‘이래서였는데….’

커다란 부담감이 괜스레 나를 짓누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당연하지만 이쪽이 똘똘이의 진짜 관심사인 모양.

사실 디아루기아를 질투하는 마음도 마음이지만 역시나 떨어져 지내기 싫은 게 가장 큰 모양이다.

어째서 대륙에 와서 자리 잡은 플레이어들의 출산률이 떨어지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물론 거짓말을 할 생각은 없다.

디아루기아는 똘똘이의 한마디에 또 가슴이 찡해졌는지 괜스레 가슴 아파하는 표정을 짓고 있는 중.

이런 답을 주기는 싫지만 고개를 양옆으로 저으며 천천히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거짓말을 하는 것보다는 솔직하게 말해주는 게 훨씬 낫다.

“지금 당장은 불가능해. 여러 가지 해야 할 일이 있거든. 당장 다음 주 부터도 할 일이 많아져서… 아빠가 바쁜 건 이해하고 있지?”

“네….”

“그렇지만 할 일이 조금 줄어들면 매일 있을 수 있을 거야. 물론 다음주부터라도 일이 끝나면 잠깐이라도 들릴 수 있도록 노력해 보마.”

“정말요?”

“물론. 자, 약속하자. 그 대신 루리아도 약속해 줘야 한다.”

“어떤….”

“첫 번째는 엄마 말을 존중해 주고 잘 대해 줄 것. 두 번째는 그저께 봤던 동생에게 사과하고 앞으로도 잘 지낼 것. 아… 한 가지만 더. 인간 세상에서도 사람들과 잘 섞이며 얌전히 지낼 것. 세 가지만 잘 지켜주면 아빠도 루리아가 너무 좋아질 것 같은데….”

“지킬 수 있어요! 지킬 수 있어!”

“정말?”

“으응! 지킬 수 있어!”

‘아빠도 루리아가 너무 좋아질 것 같은데…’라는 대사가 결정적이었던 모양이다.

천천히 손가락을 걸고 약속까지 하니 기분이 좋은지 이쪽에 꽉 안기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너무 좋아!”

가슴에 얼굴을 제대로 묻은 것 같은 느낌.

용이었을 때의 습성이 남아 있는지 꼬리 대신 엉덩이를 흔들고 있는 것만 아니라면 봐줄 만한 모습이었다.

이제는 조금 묵직한 분위기의 아버지로 노선을 변경하고 싶었지만 막상 이런 식으로 앵겨오니 무거운 모습을 유지하기가 어렵다.

‘밀어내기 어렵네.’

지금 이 타이밍에 밀어내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다.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

디아루기아와도 어느 정도 성과가 있었던 만큼 지금 당장은 쓰다듬어주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등을 톡톡 두드려주니 발라당 누워 배를 만져달라는 듯 애교를 부리고 있다.

외관만 사람이지 하는 행동은 영락없이 똘똘이 그 자체.

“그릉… 그릉….”

턱 아래를 슬슬 쓰다듬어주자 그릉 거리는 소리를 내기 시작하는 꼴은 가관.

헥헥 대지 않는 게 다행이라고 생각할 정도였으니 다른 말은 필요 없으리라.

만약 혓바닥이 길었다면 예전처럼 볼이라도 핥을 것 같은 기세였다.

“잘한다! 잘한다! 잘한다!”

“키엑! 키엑! 키엑!”

방방 뛰며 특유의 울음 소리를 인간의 목소리로 내고 있는 모습은 깨물어 주고 싶을 정도.

‘이래서 딸 바보가 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물론 일반적인 행동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똘똘이였을 때의 한 행동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아 위화감이 없었다.

이렇게 보니 용의 모습이 언뜻 언뜻 보인다.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 디아루기아를 발견한 것은 똘똘이 축제가 중 후반부에 들어서고 있었던 그때.

몇 발자국 뒤에서 이 광경을 바라보는 것이 보였다.

이쪽으로 오라는 뜻을 담아 손짓하자 슬그머니 발걸음을 옮기는 것을 보니 어지간히 참가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똘똘이는 옆에 있는 엄마를 굉장히 경계하는 눈치였지만 그래도 막상 함께 있으니 기분이 나쁘지는 않은 것 같았다.

아니면 나와 했던 약속이 떠올랐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솔직히 이야기하면 현재 똘똘이보다 더 즐거워하는 것 같은 사람은 디아루기아.

매번 먼 발치에서 이루어졌던 똘똘이와 나만의 작은 축제에 한 일원으로 참가하는 게 상상한 것보다 더 기분 좋은 모양인지 방방 뛰고 있는 똘똘이를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가끔은 엄마한테 달려들어 아까처럼 어색한 포옹을 하기도 했는데 그럴 때면 격해지는 감정을 참을 수 없는지 붉어진 눈시울로 고개를 돌리고는 했다.

강현욱 박사의 솔루션이 효과가 있었는지 없었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녀석이 반응을 보였다는 것만으로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을 본 것 같은 느낌.

‘이게 가족이다. 가족.’

아직 콩가루이기는 하지만… 불과 며칠 전이라면 절대로 할 수 없는 말이었을 것이다.

그나마 괜찮은 그림 하나는 만든 것 같은 기분. 딱 이정도로 표현하는 것이 맞다.

물론.

“아빠 너무 좋아!”

눈에 비치는 기이한 열망은 아직까지 불안하지만 저 정도는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리고 굳게 믿을 수밖에 없었다.

[전설 등급의 네임드 몬스터 흑암룡 디아루리아의 고유 기벽을 확인합니다.]

[어둠 속의 비틀리고 위험한 애정]

[#왜 똘똘이라고 안 불러주지?] [# 잘 모르겠지만 아빠는 내 거.] [#엄마한테도 안 줄 거야.] [#사랑은 변하는 거야.]

분명히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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