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9
회귀자 사용설명서 259화
공식발표(1)
똘똘이의 문제는 일단락 지어졌다.
단기간에 극적으로 똘똘이가 바뀌었으면 좋겠다는 기대는 있었지만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극적으로 바뀐 것은 어디까지나 녀석의 겉모습 뿐이었다. 물론 아예 달라진 게 없는 것은 아니다.
디아루기아는 조금씩 조금씩이지만 집 안에서의 위치를 되찾아가고 있었고 똘똘이 역시 어머니의 자리를 인정해 주는 듯했다.
여전히 그녀가 나와 붙어 있을 때면 관심을 자신에게로 돌리기 위해 점프를 한다든가 하는 돌발 행동을 하기는 했지만 말 그대로 귀여운 수준.
눈에 확 보이지는 않지만 녀석은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물론 이 변화가 똘똘이가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디아루기아는 매일 매일 행복한 비명을 내지르는 중이다.
별것 아닌 똘똘이의 호의에 크게 감동하거나 이전과는 달라진 녀석의 행동을 곱씹고는 했다.
당연히 디아루기아는 받은 만큼 똘똘이에게 더 열과 성을 다하고 있었는데, 옆에서 보기에 그다지 좋은 장면은 아니었다.
녀석이 엄마 품에서도 떨어져 봐야 한다는 게 내 개인적인 판단.
결과적으로 똘똘이는 막스와 함께 학교를 다니게 되었다.
디아루기아는 드래곤인 똘똘이가 인간의 교육을 받는다는 게 내키지 않은 듯했지만 다른 사람과 어울리는 게 인격 형성에 도움이 된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인지 결국에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올바른 판단이었다.
물론 이런 결정은 강현욱 박사의 추천이기도 했는데 특이하게도 이번 솔루션은 똘똘이 때문이 아닌 디아루기아를 위한 솔루션이었다.
디아루기아에게 개인적인 시간, 즉 자신만을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아이가 생기고 난 이후에 점차 자신을 잃어버리는 어머니들이 많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육아 우울증?’
디아루기아가 강현욱 박사가 지구에서 사용하던 테스트에서 무척이나 높은 점수를 기록한 것.
모든 수치가 천장을 뚫을 것처럼 되어 있었으니 걱정되는 것이 당연했다.
물론 디아루기아는 그럴 리가 없다며 웃어넘기기는 했지만 수치로만 봤을 때는 웃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언제 터져도 이상하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의 판단.
표현하는 게 서투른 용이 가슴 한편에 스트레스를 쌓아왔던 것이다.
똘똘이가 학교에 간 사이에 할 수 있는 취미를 찾아보는 한편, 전력으로 그녀를 서포트하게 된 것은 당연지사.
디아루기아는 갑작스럽게 늘어난 자유 시간에 뭘 해야 할지 갈피를 못 찾았지만 표정만은 나날이 좋아졌다.
‘나는 아니지만….’
물론 나는 그녀와는 완전히 반대의 포지션에 서 있었다.
‘너무 바빠….’
짧은 시간이었지만 정말로 몸을 쉴 새 없이 놀리기 시작한 것.
미뤄져 있는 일을 한 번 더 미룬 셈이니 이쪽으로 일이 쏟아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덕분에 한숨 돌릴 여유도 없다는 표현이 어떤 건지 몸소 깨우치게 됐다.
굳이 정리해 보자면 전체적으로 벌인 일은 세 가지였다.
1. 교황청 인맥 관리.
그 동안 만나지 않았던 바젤 추기경과 다시 한번 만나 해후를 풀었고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눴다.
현 신성제국의 교황이 나이가 너무 들어 곧 신의 품으로 돌아간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소리라도 지르고 싶을 정도.
당연히 세 명의 추기경 중에 한 명이 교황으로 선출된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그중에서도 바젤 추기경이 가장 가능성이 높다는 소리를 본인에게 직접 전해 들었다.
만약에 바젤 추기경이 교황이 된다면 바젤 쪽에 줄을 댄 이쪽의 위상도 함께 올라가는 것이 당연지사.
어쩌면 명예주교에서 조금 더 높은 신분을 받을지도 모르는 만큼 정신없이 바젤 추기경의 기분을 맞춰주기 위해 손바닥을 비벼댔다.
바젤 추기경뿐만이 아니었다.
이번에 대주교로 올라선 제시카 대주교와 헬레나 이단 심문관과도 서로의 끈끈한 우정을 확인하는 기도회를 가졌다.
그 밖에도 교황청내에 관련된 인사들과 회식이니 봉사니 여러 가지 활동에 참여한 것은 당연했다.
주교급 라인은 굳이 내가 계속해서 관리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에 이번 교황청 방문에는 선희영을 대동했다.
‘분위기 좋았지.’
그야말로 모범적인 사제의 모습을 하고 있는 선희영이 주교들과 친해진 것은 당연한 수순.
내 생각보다 훨씬 더 친밀한 것 같았기 때문에 바젤 추기경 이외의 일들은 전부 인계해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2. 귀족들과의 인맥 관리.
교황청만큼 황제파를 관리하는 것도 중요했다.
물론 직접적인 끈이 교황청에 있는 만큼 사교계에는 그만큼 비중을 두지 않았지만 그래도 이토 소우타 사건 때 큰 힘이 되어준 카트린 공작부인을 포함한 귀족부인 군단을 챙기는 일은 제법 중요한 일이었다.
바젤 추기경과의 해후가 끝난 이후에는 곧바로 귀족들의 사교회에 초대되어 여기저기에 불려다녔다.
이 시기는 정말로 정신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안 그래도 파란과 검은백조의 모험일지가 공개되어 박물관의 일로 여기저기가 떠들썩한 상황.
제국 8좌로 내정되면서 제법 관심을 받고 있었던 나에게 이런 후광까지 더해지니 그야말로 인지도가 하늘을 뚫을 것처럼 치솟기 시작한 것이다.
나와 함께한 귀족 부인들의 콧대도 덩달아 올라가기 시작했고 그만큼 다양한 정보도 접할 수 있었다.
바쁜 와중에 즐거웠던 뒷담화 타임에서는 제국의 황녀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는데 그동안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었던 인물이었기 때문에 제법 신선했다.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것도 당연한 일.
3. 캐슬락의 블랙 마켓.
사교파티에서의 일이 끝난 이후에는 곧바로 마를린 영애의 고향인 캐슬락으로 향했다.
대외적인 이유는 마를린 영애의 초대였지만 실질적으로는 캐슬락에 지어진 블랙 마켓을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노예 투기장 같은 장사는 조혜진의 강력한 반대로 시도조차 못 했지만 그래도 이 블랙 마켓은 제법 괜찮은 수익을 내며 돌아가고 있었다.
직접 확인해 본 감상은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 정도.
‘나쁘지 않아.’
딱 이정도의 감상이었다.
조금 더 불법적인 일에 손을 대도 상관없을 거라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내가 직접 관리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보니 여러 가지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돈 때문에 시작한 일도 아니었다.
이 블랙 마켓의 존재 이유는 이런 곳을 이용하는 고객의 명단을 확인하기 위함,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나중에 요긴하게 쓰일 데가 있겠지.’
고객 명단과 장부를 가지고 있다는 건 커다란 힘이 된다.
물론 철저히 비밀에 숨겨준다는 걸 필두로 광고를 하기는 했지만 세상에 영원한 비밀이 어디 있겠는가.
쌓아놓은 서류와 장부, 위치를 추적한다면 가면 쓴 연놈들의 신상을 파악하는 것은 일도 아니다.
물론 마를린 영애가 이쪽에 찰싹 달라 붙어왔기 때문에 너무 자세하게는 둘러보지 못했지만 대충 봐도 블랙 마켓은 5점 만점에 3.5점 정도.
최악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후우….”
어디까지나 대표적인 일이 이 정도였을 뿐, 앞서 나열한 것이 내가 한 일의 전부는 아니다.
대외적인 일만큼 내부적으로 정리할 일도 많았다.
조금 난항을 겪고 있는 막스, 정하얀과의 마력 홀로그램 장치의 연구에 합류하는 한편, 이지혜와는 사업 준비에 들어왔고 본격적으로 박물관 단장을 시작됐다.
새로 들어온 병아리들을 지원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한소라와의 토론으로 흑마법사가 어떤 매커니즘으로 돌아가는지에 대해 알 수 있었고 유아영에게는 빠르게 대장 기술을 올리기 위한 본격적인 지원을 쏟아부었다.
새로운 포션에 대한 연구도 멈추지 않았고 박덕구가 사용하지 않은 혈청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런 와중에 정하얀의 멘탈 케어와 똘똘이와 함께하는 시간을 가지다 보니 몸이 다섯 개라고 남아나지 않는 것은 당연지사.
이제 조금 숨을 돌리려고 치면 여기서 사건이 터지고 저기를 해결하려고 하면 멀리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온다.
마치 예전에 김현성이 나에게 일을 쏟아줬을 때와 비슷한 것 같은 느낌.
그때와의 차이점은 김현성도 함께 갈리고 있다는 사실 하나뿐이었다.
물론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 역시 존재했다.
‘시간이 없었으니까.’
말 그대로였다.
제국 내에서 더 이상 제국 8좌를 공식적으로 발표하는 이벤트를 늦추고 싶어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시간을 만들어야 했고 그렇기 때문에 무리하게 스케줄을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앞전에 했던 모든 고생이 그나마 지금 여유 있게 움직일 수 있는 이유.
그렇지만 모두의 얼굴에는 조금의 짜증이 묻어나 있었다.
나와 김현성과 마찬가지로 그동안 바쁜 시간을 보냈던 붉은 용병의 길드 마스터 역시 그건 예외가 아니리라.
“정말 귀찮아 죽겠다니까. 뭐 공식적인 발표는 발푠데 각각 자유도시에 퍼져 있는 8명이 한꺼번에 모여야 할 이유가 있냐고… 그냥 황제가 정식으로 선포하면 되는 거 아니야?”
“그러게….”
“다들 바쁜 거 알고 있는데도 꼭 이딴 식으로 나온다니까. 아마 모르긴 몰라도 대만 애들이나 일본 애들도 짜증 난다고 할걸. 지구나 여기나 허례허식이 문제야. 허례허식이…. 이거 끝나고 또 파티나 뭐다 여러 가지로 사람 귀찮게 할 텐데… 짜증 나 죽겠네. 안 그래? 자기?”
“그래도 황제 입장에서는 자기가 뭔가 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을 테니까. 자세히는 못 들었는데 최근에 입지도 좁아지고 있는 것 같고….”
“그래?”
“응. 찌라시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귀족들 사이에서 은연중에 그런 말이 떠돌아다니더라고. 최근에 교황청 쪽이 강세니까 그럴 만도 하겠지. 뭐, 아마 틀린 말은 아닐 거야. 저런 말이 나온다는 것부터 귀족들이 등을 돌리고 있다는 건데… 이번 기회에 자기가 건재하다는 걸 알리고 싶어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은 이게 쇼라는 걸 눈치챘겠지만 제국민이야 그런 거 관심이나 있겠어? 황제가 그렇다고 하니까 그런 줄 아는 거지.”
“그건 못 들었던 건데… 검은백조 마스터는 알고 있었어?”
“네. 저도 들었던 이야기예요.”
김현성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박연주에게 불똥이 튀자 그녀가 잠깐 고개를 끄덕인 뒤 입을 열었다.
내 앞에 앉아있는 차희라는 조금 심기가 불편하다는 표정.
어째서 저런 표정을 짓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기에 슬그머니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또 우리만 모르고 있었네. 아주 그냥 삼자 동맹하지 말고 둘이 사이좋게 지내지 그래?”
“…….”
“솔직히 박물관 건도 많이 섭섭해. 자기, 자기가 나였어도 섭섭했을 텐데. 그렇지?”
“죄송해요. 차희라 님. 붉은용병에게는 평소에도 너무 많은 도움을 받았던 터라… 마침 다른 던전에 나가신다는 소식을 전해 들어서 말씀드리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았어요.”
“그냥 한 소리니까 크게 신경 쓰지 마. 공략에 참가하지는 못했어도 투자할 수 있게 배려해 준 것만 해도 고마우니까. 그래도 다음부터는 이것저것 재지 말고 이야기해 줬으면 좋겠어. 내가 그렇게 이해득실 따지는 성격도 아니고… 우방이 위기에 처했는데 병력들 보내주는 거야 당연한 일이니까.”
“네.”
차희라가 말을 마치자 박연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차희라가 뭘 말하고 있는지 알 것 같은 느낌.
박연주가 이 동맹을 철저한 이해관계에 얽혀 있다고 생각했다면, 차희라는 거기서 조금 더 벗어난 개념으로 이 동맹을 이해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항상 생각했던 거지만 단원들의 총애를 받고 있는 데는 무력보다는 저 성격의 영향이 더 클 것이다.
‘저렇게 하기가 쉽지가 않지.’
나는 절대로 차희라처럼은 할 수 없을 것이다.
아무튼 계속해서 기다리기도 조금 신경 쓰였기 때문에 슬그머니 주변을 둘러봤다.
그러자 천천히 커다란 방의 모습이 한 눈에 들어왔다.
김현성, 차희라, 박연주가 앉아 있고 뒤에는 각각 부관들이 서 있다.
김현성의 뒤에는 조혜진이, 차희라의 뒤에는 이름 모를 붉은용병의 간부, 박연주의 뒤에는 이지혜가 서 있었다.
본래 파란은 수행원들을 데리고 다니지는 않지만 자리가 자리인 만큼 파티 내에서 착출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 행운의 주인공이 바로 조혜진이었다.
1회 차에서도 김현성과 밀접한 관계였다 보니 아무래도 김현성은 그녀가 이런 자리에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모양.
물론 나 역시 수행원을 데리고 왔다. 자연스럽게 뒤를 돌아보니 싱글 벙글 웃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는 얼굴이 보였다.
“…….”
“…….”
정하얀이었다.
‘사실 얘도 여기 앉아 있어도 될 것 같은데….’
속으로 이런저런 생각을 하자 천천히 문이 열리기 시작.
가장 먼저 방으로 들어온 카스가노 유노의 뒤로 생전 처음 보는 얼굴들이 눈에 들어왔다.
‘제국 8좌.’
다른 세 명과는 분명히 첫 만남이었다. 그렇지만 김현성은 그렇지 않은 모양.
‘1회 차에 만났던 게 당연하겠지….’
들어온 녀석들을 하나하나 둘러보는 우리 현성이의 얼굴이 시야에 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