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0
회귀자 사용설명서 260화
공식발표(2)
남자 두 명에 여자 한 명.
누가 봐도 카스가노 유노 바로 뒤에 들어온 이는 일본에서 함께 온 일원 중에 하나다.
정신없이 마음의 눈으로 들어온 이들을 확인해 본 것은 당연지사.
‘스즈미야 이부키.’
직업명은 황혼의 암살자.
고인이 되어 버린 이토 소우타의 뒤를 이어 실리아를 책임지고 있는 강자다.
저쪽은 이전에 카스가노 유노에게 들어본 적이 있다.
들어온 지는 이제 삼 년차로 인재라면 인재라고 할 수 있는 인물 중 하나였다.
전체적으로 고른 스탯이 눈에 들어왔지만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역시나 민첩.
가지고 있는 직업과 특성도 전설 등급인 것을 고려해 보면 충분히 8좌 중 하나로 추대될 만하다고 생각했다.
‘강하겠네.’
이토 소우타가 살아 있었다고 추정되는 1회 차에서도 빛을 냈는지 김현성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전 회 차에서도 이름을 날리긴 날렸던 모양.
성향도 나쁘지는 않고 고유 기벽 역시 정상인의 그것이다. 조금 소심한 것 같기는 하지만 실력은 확실해 보였다.
그 다음에 들어온 것이 남자 하나와 여자 하나.
‘대만 애들….’
자유 도시 다완을 대표하는 거대 길드를 맡고 있는 길드 마스터들이었다.
‘천관위.’
키가 크고 지팡이를 들고 있는 걸 보니 어떤 직업을 가졌는지는 굳이 말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마법사?’
정확한 직업은 전설 등급에 랭크되어 있는 안개 소환사.
설명을 읽어보니 대충 어떤 마법을 구사하는지 알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전설 아이템 보유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96의 마력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니 얼마나 마법에 시간을 투자했는지 알 수 있을 정도.
대륙 내에 제대로 된 마법사들이 흔치 않다는 걸 고려해 보면 저 남자의 성취는 무척 대단한 셈이다.
그래봤자.
‘하얀이보다는 낮네….’
물론 무시할 만한 정도는 아니었다.
경험이나 숙련도, 사용할 수 있는 마법 수 같은 것을 생각해 보면 우열을 가리기 힘들 것 같다는 것이 내 판단이다.
물론 정하얀이 지금까지 보여준 괴물 같은 모습을 생각해 보니 그녀가 밀리는 그림은 상상되지 않았지만… 저놈도 숨겨둔 몇 수 정도는 있을 거다.
그 다음으로 들어온 것은 긴 머리를 한 쪽으로 묶고 있는 여자.
‘위란.’
위란 쪽은 전형적인 궁수.
딱 기분에 충실한 강자라는 느낌이 강했는데.
직업명은 영웅 등급으로 원거리 저격수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었다.
스탯도 준수하기는 했지만 눈에 띄는 것은 전설 등급의 특성 백발백중.
굳이 설명을 읽어보지 않아도 어떤 특성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재미있었던 것은 눈앞에 있는 여자의 장비나 액세서리들이 꽤나 고가로 분류할 수 있는 종류였다는 것.
같은 브랜드를 착용하고 있기 때문에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얘네 조합 좋은데.’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강자이기는 했지만 둘의 시너지 역시 무시할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이다.
안개 소환사가 시야를 가리고 원거리 저격수가 화살로 머리통을 날리는 그림이 절로 그려진다.
만약 내가 이들을 전장에서 사용한다면 저 둘은 무조건 세트로 붙여놓을 것이다.
아마 저 둘도 자신들의 조합이 좋다는 걸 이해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두 길드가 정상에 오를 수 있었던 거겠지.’
다행이라면 다행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김현성의 반응도 그리 나쁘지 만은 않다.
이번에도 웃으며 인사를 건네는 것을 보면 지금 이 자리에 모인 이들 중에는 사이코패스 살인마 정진호나 악마 숭배자 이토 소우타 같은 놈들은 없는 모양.
‘괜찮네.’
어떤 기준으로 8좌를 선정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여기에 있는 이들 중 자격이 부족한 이들은 없다.
굳이 하나를 꼽아보자면….
‘내가 제일 트롤인가.’
아무튼 간에 카스가노 유노는 슬그머니 이쪽으로 고개를 숙여왔고 나 역시 고개를 숙여 그녀의 인사에 답했다.
모두가 있는 자리에서는 평범하게 행동해야 한다는 것 정도는 인지하고 있는 모양.
두 눈을 감고 있는 것도 여전하고 단정한 복장도 그대로다.
슬그머니 자신의 자리를 찾은 뒤로도 계속 내 쪽으로 고개를 고정시킨 모습이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내 표정을 읽었는지 곧바로 고개를 돌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스즈미야 이부키라고 합니다.”
“이야기 많이 전해 들었습니다.”
“천관위.”
“아. 이기영이라고 합니다.”
“위란. 다완에서 왔어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그 뒤로 이어진 것은 어색한 자기소개 타임.
이미 서로가 서로를 알고 있는 기존 강자들과는 다르게 이곳의 신입이라고 할 수 있는 나와 김현성은 세 차례의 악수가 끝나고 나서야 비로소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굳이 긴장한 것은 아니었지만 공기가 꽤 무겁다.
‘당연한 건가.’
이미 예전부터 이곳에 들어와 자리를 잡고 저 마다의 방법과 저마다의 방식으로 명성과 힘을 얻은 이들이 한 자리에 있다.
묘한 분위기가 형성되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다.
침묵이 들어온 장내에서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대만의 마법사, 안개소환사 천관위였다.
들어올 때부터 조금 뚱한 표정이 눈에 띄었지만 아무래도 인선에 불만을 가지고 있는 모양이다.
공격적으로 말하지는 않았지만 은근슬쩍 자신의 의견을 어필하고 있었다.
“네 명, 두 명, 두 명….”
“왜. 불만이라도 있어?”
“아닙니다. 차희라 님. 굳이 불만이라기보다는 인선이 조금… 한쪽으로 편향되어 있지는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말입니다.”
“불만 맞네, 뭐.”
“물론 린델에서 오신 신입 분들의 능력이 특출한 것은 인정하지만… 뭐, 아쉬워서 해본 소리니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우리 다완에도 인재는 많은데….”
“신경 쓰라고 말한 것 같은데?”
“정말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렇게 말하면 어떻게 신경을 안 써? 불만 있는 거 아니야?”
“정말로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차희라 님.”
“야… 이거 눈 봐라. 그러다가 한 대 치겠네. 너 웃긴다. 눈도 못 마주치던 게 엊그제 같은데.”
“언제 적 이야기를….”
“왜. 살려달라고, 너 그때 막 무릎 꿇고 그랬을 때는 안 그랬잖아.”
“차희라 님….”
처음에 슬슬 물타기를 하며 분위기를 잡아보려고 했던 것 같았지만 나쁜 놈처럼은 보이지 않는다.
내가 모르는 과거가 있는 모양.
차희라와 예전에 마찰이 있었다는 걸 쉽게 추측해 볼 수 있었다.
자신의 부끄러운 과거가 신입들의 앞에서 까발려지는 것이 당황스러웠는지 황급하게 수습하려고 하기는 했지만 녀석이 차희라를 통제할 수 있을 리가 만무.
당황스러워하는 녀석의 얼굴을 보고 차희라는 다시 한번 웃으며 입을 열었다.
“관위야, 기분 나빠 하지 말고 들어. 제국 입장에서 배려해 준 건 우리가 아니라 너희야. 린델에서 적어도 한 석은 더 가져갈 수 있었는데… 너희 기분 나쁘지 말라고 배려해 준 거라고. 내 말 알아들어?”
“아무리 그래도….”
“왜? 내 말이 거짓말 같아?”
차희라가 슬그머니 정하얀 쪽을 바라보자 천관위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어째서 지금까지 깨닫지 못했지’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
같은 마법사라면 아마 알아볼 거라고 생각했다.
“우리 세컨드도… 들어온 지 1년 조금 넘었지 아마?”
“말도… 안….”
“말이 왜 안 돼. 이 자리에 있는 우리 자기랑 우리 자기네 길드 마스터 김현성. 그리고 저기 있는 정하얀은 튜토리얼 던전 최단 시간으로 클리어한 플레이어야. 싹수가 보인다는 건 진즉에 알아봤지만 솔직히 나도 이 정도로 해줄지는 몰랐지. 뭐… 운도 좋았고 실력도 있고… 아무튼 그래.”
“허….”
“한 명 더 있기는 한데… 걔는 여기 끼기에는 조금 부족하고… 그래도 쓸 만하기는 한 것 같더라.”
“불공평하군요.”
“나도 가끔 그렇게 느껴. 어때? 제국 내에서 가장 유명한 마법사가 보기에는….”
“노코멘트하겠습니다.”
정하얀은 지금 흘러가는 상황을 자신과 상관없다는 식으로 바라보고 있었지만 차희라의 말 한마디에 다른 이들의 시선까지 모두 그녀에게 집중되기 시작했다.
특히나 궁수 포지션에 있는 위란은 조금 더 노골적이었다.
“린델에는 정말 인재가 많네요. 대륙 8좌에 들어온 지 1년밖에 되지 않은 신입이 둘이나 있고. 저 사람이 놀랄 만한 마법사도 보유하고 있을지는 몰랐는데… 사실 저도 직접 눈으로 확인하기 전까지는 혹시 린델에 너무 과한 특혜를 주는 게 아닐까 생각했어요. 실제로 보니까 다르긴 다르군요.”
“과찬입니다.”
“아니요. 단순히 있는 그대로를 말씀 드린 거예요, 파란 길드 마스터. 당신이 강하다는 건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알 것 같고… 남은 한 쪽은 비전투 직군이라 뭐라고 판단하기는 애매하지만 드래곤을 보유하고 있다는 거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거겠죠.”
‘바로 맞췄다.’
그렇지만 꽤나 직접적이다.
그녀의 말에 김현성이 조용히 웃으며 입을 열었다.
“실제로 뛰어난 연금술사이기도 합니다.”
“그건 알고 있어요. 다완 쪽으로 들어오고 있는 포션은 잘 사용하고 있으니까요. 덕분에 플레이어들의 생환율도 많이 올라갔고. 가격이 조금 비싸기는 하지만… 감사의 인사를 드리는 게 맞을 것 같네요. 아, 혹시 품에 있는 물건은 파실 생각 없으신가요?”
내가 가지고 있는 용 숨결 물약을 보고 하는 소리인 모양. 궁수인 만큼 눈썰미가 좋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내가 상상한 것 이상이다.
“기회가 된다면 그러고 싶지만 양산할 수 없는 물건입니다. 전설 등급을 받은 포션이다 보니 한 번 제작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도 만만치 않고요.”
“그건 아쉽군요. 뭐, 아무튼 만나서들 반가워요. 다른 분들도 그때 이후로 처음인 것 같고… 붉은용병 길드 마스터도 그렇고 요조라 길드 마스터도 그렇고 그 동안 잘 지내신 것 같아 다행이네요.”
“말 많은 건 여전하네.”
“또 그런 식으로 말씀하신다. 차희라 님도 여전히 입이 험하시네요. 저 사람 때문에 기분 나쁘신 건 이해하지만 저한테까지 불똥이 안 튀었으면 좋겠는데…. 저 사람의 뜻이 다완의 뜻은 아니니까요. 같이 움직이기는 하지만 저는 이 인선에 단 한 번도 불만을 가져본 적이 없어요. 정말로요. 아! 또 이건 다른 말이기는 한데… 새로 들어온 신입은 상당히 안목이 좋네요.”
“뭔 소리야?”
아마 같은 브랜드에서 나온 옷을 입고 있다는 걸 이야기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를 멀뚱이 쳐다보던 차희라도 갑작스레 탄성을 내지르며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니 어째서 저런 말을 했는지 이해한 모양이다.
“이렇게 모인 것도 인연인데… 끝나고 회식 한번 할까요? 어때요? 카스가노 유노님이랑… 아, 그….”
“스즈미야 이부키입니다.”
“아. 이부키 씨는?”
“저는 괜찮습니다. 만약에 그럴 시간이 있다면… 말입니다.”
“아마 저쪽에서 주최하는 파티에 참석하느라 정신없겠지, 뭐.”
“그렇겠네요. 어머. 그러고 보니 드레스 준비 안 해온 것 같은데….”
내가 생각한 것보다는 분위기가 꽤나 화기애애하다.
이토 소우타가 죽은 이후 실리아와 우리 쪽은 사이가 좋으니 별 다른 문제가 생기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었지만 저 멀리 대만에서 오신 분들도 꽤 성격이 유들유들하다.
이전에 차희라에게 한 번 참교육을 당한 효과인 것 같았지만 이유야 어찌되었든 상관없다.
‘한 울타리에 있다는 느낌이 있어서 일 수도 있고….’
분명히 서로의 입장은 다르지만 어찌 됐건 간에 린델과 실리아, 다완은 신성제국이라는 커다란 울타리 내에 있다.
말하자면 운명 공동체인 셈.
이토 소우타 같은 미친놈만 없다면 이런 모습이 다분히 정상이다.
“그나저나 신성제국도 진짜 웃기지 않아요? 그 동안 이런 거 할 생각도 안했으면서 공화국이 오호대장군인가 뭔가 발표하자마자 제국 8좌라니……. 이거 발표하면 뭐, 공화국에서 십존이라도 새로 발표하는 건 아닌가 생각된다니까요.”
“정말 그럴까 봐 무서운데.”
“안 그래도 요즘 분위기도 별로 안 좋은 것 같던데… 이러다 전쟁이라도 터지는 거 아닌지 몰라. 우리 무녀님 눈에는 보이는 게 없으려나.”
“분위기가 안 좋다고?”
“원래 중국애들이랑 우리 애들이야 서로 싫어하긴 하는데 최근에는 조금 노골적인 것 같기도 하고요. 린델은 중앙에 있어서 잘 모르겠지만 공화국이랑 인접하고 있는 다완에서는 은근히 정황들이 눈에 보여요.”
“…….”
“싸움도 몇 번 있었고요.”
“너희는 원래 매일 싸우잖아.”
“말씀대고이긴 하지만… 평소와 다른 느낌을 받은 적은 분명히 있었습니다.”
꽤나 심각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걸 보니 아무래도 그냥 뇌피셜로 나온 이야기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이었다.
‘갑자기 뭔 전쟁이야.’
실제로도 이 시기에 전쟁이 일어났는지 궁금한 것은 당연지사.
일단 김현성의 표정은 침착했지만….
“조금 더 자세히 말씀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여는 것을 보고는 꼭 안전하다는 게 아니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전쟁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현성이 형이 지켜주겠지?’
사랑스러운 회귀자의 품은 이번에도 안전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