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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265화 (264/1,590)

# 265

회귀자 사용설명서 265화

제1황녀 샤를리아(2)

“황녀님, 조금만 화를….”

“어서 빨리 내 검을 가져오라고 말하였다!”

“황, 황녀님!”

“지금 당장! 내 말이 들리지 않는 게냐! 거기 아무도 없느냐!”

흥분한 황녀는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확실히 취해 있다.

만약 1황녀 샤를리아의 성정이 어떤지 알고 있었다면 아주 최적의 타이밍에 일을 벌인 셈이다.

별것 아닌 해프닝으로 치부하기에는 여러 가지 정황이 보인다.

지금 당장은 1황녀 샤를리아가 정신병자처럼 보이겠지만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

‘제대로 설계당한 거네.’

안 그래도 맛탱이가 간 것 같은 여자가 제정신을 못 차리는 상태에서 일을 벌였으니 아마 속으로는 쾌재를 부르고 있으리라.

범인이 정말 샤를롯트라거나, 아니면 그녀의 휘하에 있는 귀족이 벌인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원인제공자가 원하는 대로 사태는 더 이상 수습이 불가능 할 정도로 막장으로 치닫고 있는 중.

비틀거리며 여기저기의 테이블에 부딪쳤다.

우당탕 하는 소리와 함께 테이블에 위에 있는 음식과 병들이 바닥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마음 약하신 귀부인들은 깨진 유리 조각을 피해 꺄악! 소리를 내고 있었고 귀족 남성들도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았다.

그 와중에도 상황파악 하지 못하고 있는 샤를리아는 고래고래 검을 가져오라고 소리를 지르고 있었고, 완벽한 피해자의 포지션에 서 있는 시녀는 우리 길드의 안기모 뺨치는 연기를 선보이고 있는 있었다.

‘막장이네…. 진짜 막장이다.’

제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연회장이 순식간에 시정잡배들이 싸구려 럼주를 들이키는 공간으로 변해버렸다.

갑작스럽게 분위기가 싸해지는 것 역시 무리가 아니라는 거다.

이 와중에 미친 여자의 아비이자 황제라는 놈은 더 이상 저 꼴이 보기 싫다는 듯 고개를 돌리고 혀만 차고 있으니, 어째서 1황녀가 저 모양 저 꼴이 됐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똘똘이 사건으로 인해 깨달은 가정교육의 소중함을 다시금 떠올려보게 됐을 정도였으니까.

물론 술에게 먹히신 분은 지금도 연회장이 떠나가라는 듯이 소리를 지르는 중이다.

“감히! 네년들이 나를 무시해? 네년들도 나를 무시하는 것이냐!”

“그, 그런 것이 아니옵니다. 황녀님.”

“아니라면 어째서 내 명을 듣고도 움직이지 않는… 우욱….”

“황, 황녀님.”

“놔라. 당장 놓으라고 하지 않았느냐.”

“조금 취하신 것 같사옵니다….”

“취하지 않았다.”

“고, 고정하여 주시옵소서.”

옆에 있는 나보트 남작을 바라보니 녀석 역시 참담하다는 표정이다.

슬쩍 운을 띄운 것은 당연지사.

제1황녀에 관한 정보가 적은 만큼 조금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보트 남작님, 저분은….”

“네. 제국의… 제1황녀 샤를리아 님입니다.”

입을 꾸욱 다물고 있는 걸 보니 대놓고 황녀의 험담을 볼 만큼 간이 크지는 않은 모양.

그렇지만 녀석의 일그러진 표정 만 봐도 저 여자가 얼마나 막장인지 예상할 수 있다.

이런 사건이 오늘이 처음일 리가 없다.

형태는 달랐겠지만 아마 여러 가지 사건이 있었을 터.

굳이 샤를롯트나 그녀 휘하에 있는 귀족들이 나서서 설계하지 않아도 저 여자 혼자 사고를 치고 다녔을 거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한 번 나서서 상황을 정리해 볼까 하는 생각을 해보긴 했지만 이 이벤트를 마무리 하는 주인공은 내가 아니다.

예상했던 대로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한쪽에서 여성으로 이루어진 기사 단원들이 나타났고 샤를롯트는 파티에 참석해 있는 인원들을 진정시키는 한편 기사단을 향해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녀의 말 한마디에 혼돈스러웠던 장내가 정리되기 시작한 것이다.

“많이 피곤하신 것 같은 모양이니 제1황녀님을 잘 뫼셔라.”

“예.”

“황녀님, 침실로 모시겠습니다.”

“놔라! 이것 놓으라고 하였다!”

기사가 등장했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발버둥치는 꼴은 가관.

이제 저런 걸 황녀라고 불러야 하는지 민망할 지경이다.

장담컨대 만약 저 꼴을 하고 있는 게 일반 귀족이었다면 진즉에 제압되어 땅바닥을 구르고 있었으리라.

계속해서 발버둥 치는 것은 물론 기사들의 손을 뿌리치고 있으니 기사의 입장에서도 상대하기가 만만치 않다.

혹시라도 다치지나 않을까 조심스럽게 다루려고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했지만 어떻게 보면 최대한 시간을 끄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조금 더 이 장면을 보여주고 싶은 건가….’

만약 내가 샤를롯트였다면 최대한 제압의 시기를 늦췄을 것이다.

그래야 여기 있는 관중들이 제1황녀가 얼마나 쓰레기 같은 인간인지 알게 될 테니까.

겉으로 표현하고 있지는 않지만 속으로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뻔히 보인다.

‘저런 게 황녀라니….’

‘제국의 미래가 어둡구나….’

순화해서 표현한 게 이 정도.

그녀를 둘러싸고 있는 상황이 조금 바뀌게 된 것은 바로 그때였다.

“어어어어어엇!”

“꺄악!”

비틀거리며 기사들의 손을 뿌리치려고 한 황녀의 몸이 갑작스레 기울어진 것.

당황스럽게도 그녀가 넘어지는 방향은 이쪽이다.

의리 없는 나보트 남작은 괴상한 비명을 지르며 슬그머니 자리를 피했지만 나 역시 자리를 피할 수는 없었다.

‘이걸 받어, 말어….’

순간적으로 여러 가지 생각이 스치고 지나간다.

여기에 개입하는 게 옳은지 아닌지에 대한 고민이다.

이미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는 제1황녀와 연관되어 좋을 게 없다는 것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뻔하다.

한 발 물러서 지켜보는 게 더 아름다운 그림이라는 거다.

‘아무리 그래도….’

여기선 받는 게 맞다.

보는 눈도 많고 귀족 영애와 귀족 부인들도 많으니 철푸덕 넘어지며 개구리가 되는 꼴을 면하게 해주는 것도 나쁘진 않으리라.

아무런 도움의 손길을 뻗지 않은 것보다는 매너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옳다.

나중에 일이 생길 수도 있으니 신체 접촉은 일단 논외.

빠르게 손가락을 튕기니 파칙 파칙 거리는 소리와 함께 땅바닥에서 용의 손바닥이 튀어나와 그녀가 떨어지는 것을 받아낸다.

“이, 이것 놔라!”

여기사가 자신을 잡았다고 생각했는지 소리를 지르는 꼴은 추하다 못해 가슴 아파질 지경이다.

귀족들은 눈이 휘둥그레지며 나와 그녀를 보고 있었고 용의 손에 기댄 채 발버둥 치던 샤를리아는 한참을 발악한 이후에야 잠잠해지기 시작했다.

체력이 다한 것이다.

‘뻗었나.’

슬그머니 그녀에게 발걸음을 옮기자 고개를 슬그머니 들어 올린 얼굴이 보였다.

그 와중에 나를 올려다보는 걸 보니 아직 뻗지는 않은 모양.

“너….”

“괜찮으십니까? 황녀 전하.”

“제법 괜찮구나. 이름이 무어냐.”

“무슨 말씀이신지….”

“생긴 것이 제법 괜찮다 이 말이다.”

어처구니가 없어 실소가 튀어나왔다.

‘아주 바닥으로 기어들어가는구나.’

마치 남창을 다루는 듯한 말투.

“취하신 것 같사옵니다, 황녀 전하. 제가 편히 모실 테니 안심하시고 주무시옵소서.”

“그래. 그래… 한번 모셔 보거라. 내 만족한다면 너에게 두둑한 금화를… 내릴….”

고개를 끄덕이며 졸기 시작하는 걸 보니 이미 체력적으로 한계였던 것 같다.

뭘 만족시켜야 두둑한 금화를 내린다는 건지 대충 예상이 가긴 했지만 일단은 입꼬리를 올릴 수밖에 없는 상황.

혀를 차던 황제가 이쪽에 진심으로 미안하다는 표정을 보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직접 말을 걸어오는 것을 보니 이런 꼴을 보인 게 부끄럽기는 한 것 같았다.

“큼… 못 볼 꼴을 보게 했군.”

“여의치 마시옵소서, 황제 폐하. 누구든 실수는 할 수 있습니다.”

“쯧쯧…. 내가 얼굴을 다 들고 다닐 수가 없구나. 이기영 명예주교… 오늘 일은 꼭 보답하겠네.”

“대가를 바라고 한 일이 아닙니다. 하하.”

“크흠… 아닐세.”

“오히려 작은 손이라도 보탤 수 있어 영광입니다, 황제 폐하.”

주동자로 의심되는 제2황녀 역시 나쁘지는 않은 마무리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벌써부터 장내를 정리하고 컨트롤하기에 여념 없다.

결국 이 소동에 패자는 단 한 명밖에 없는 셈.

여기사들에게 몸을 의지해 끌려가고 있는 샤를리아가 유일했다.

제정신이 박혀 있다면 내일 일어나마자 오늘 저지른 실수를 되새김질 할 것이다.

‘쪽팔리다 못해 도망치고 싶어질 거다.’

중요한 사교회에서 술에 잔뜩 취한 채로 행패를 부리다 기사들에게 끌려갔으니 누가 봐도 최악의 인상을 남긴 것이다.

오랜만에 함께 모인 유력 귀족에게도, 제국 8좌에게도, 교황청의 인사들에게도 말이다.

심지어 몇몇 주변 왕국에서 온 사절단도 있었으니 국제적으로 답이 없음을 광고한 셈.

물론 처음부터 짜인 각본이었지만 이런 경우에는 당한 쪽이 바보라고 자신감 있게 말할 수 있다.

오히려 너그럽게 시녀를 용서하는 모습을 보였다면 평소와는 다른 인상을 심어줬을 수도 있었으리라.

와인을 생각 없이 들이켠 게 첫 번째 실수요, 정신을 놔버린 게 두 번째 실수다.

‘쟤는 황제 하면 안 되겠다.’

오히려 샤를롯트에 대한 평가가 올라가기 시작한 것은 당연.

한쪽은 악녀인 주제에 무능하기까지 하고 한 명은 성군의 자질을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치밀하다.

‘안 봐도 뻔한 싸움이네.’

제국의 미래를 위해서라면 누가 후계자로 선정될 지는 뻔할 뻔자.

옆에서 계속해서 말을 걸고 있는 이 멍청한 황제도 이미 제2황녀 샤를롯트를 후계자로 내정해 놓은 듯했다.

“그래도 샤를롯트가 잘해주니 다행이지.”

“하하하. 든든하시겠습니다.”

“아암… 든든하다마다. 내 유일한 걱정거리가 아까 봤던 그 망나니라네. 오늘도 데리고 나오는 것이 아니었어. 쯧….”

“누구에게나 어두운 시기는 있는 법입니다.”

“그래… 이기영 명예주교의 말이 맞네.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네. 그래… 그렇게 생각해야겠지….”

실망했다는 듯이 샤를리아의 흉을 보고 있기는 하지만 같이 욕해달라는 의미가 아니라는 게 전해진다.

눈 밖에 난 자식이라고는 해도 황제의 자식이고 황제의 핏줄이다.

듣고 싶은 말은 걱정을 덜어주는 말일 거라고 생각했고 역시나 그 생각은 유효했다.

‘그래도 2황녀가 더 예쁘겠지.’

가슴 아프지만 1황녀 같은 경우에는 반쯤 포기한 것 같은 느낌이라는 거다.

때마침 2황녀가 천천히 걸어오는 것이 시야에 비친다.

이미 모든 사태를 정리하고 전쟁에서 승리한 개선장군처럼 다가오고 있었다.

와인은 엎지른 시녀 역시 이미 돌려보냈고 바닥도 말끔하게 처리되어 있다.

처음부터 소동이란 게 없었던 것처럼 완벽하게 정리했다.

그녀가 유능한 인간임을 확실히 감지한 이쪽의 마음이 저도 모르게 선덕선덕해지기 시작했다.

‘샤를롯트 황녀 전하 만세!!’

반의 반쪽짜리이기는 했지만 최선을 다해 충심으로 모실 준비가 되어 있다.

첫 단추가 살짝 잘못 끼워진 만큼 시간이야 걸리겠지만 그만큼 뿌듯함도 클 것이다.

막 입을 열려고 했을 때 눈에 들어온 것은 마치 바퀴벌레를 바라보는 듯한 내 님의 표정.

“고생하셨….”

“폐하, 시간이 많이 늦었습니다. 이만 들어가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렇구나. 이기영 명예주교는….”

“제가 대신 감사를 표하겠습니다. 건강이 걱정되니….”

“그렇게 하는 게 좋겠구나.”

이쪽을 완벽하게 무시한 채로 황제 폐하를 데리고 가는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 썩어빠진 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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