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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268화 (267/1,590)

# 268

회귀자 사용설명서 268화

제1황녀 샤를리아(5)

황가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백금발의 머리카락이 길게 늘어져 있고 높게 솟은 코와 긴 속눈썹은 확실히 미인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한 핏줄이라 그런지 전체적으로 샤를롯트와 닮은 곳이 보이기는 하지만 얼굴 곳곳에 차이점이 묻어 나온다.

당연하지만 인상 자체가 그리 좋아 보이는 인상은 아니다.

얼굴은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는 대변해 주는 도화지다.

계속해서 입꼬리를 올리고는 있었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그 표독스러운 얼굴이 어디로 가는 것은 아니라는 거다.

사실 그녀의 얼굴보다 더 눈에 띄는 것은 그녀가 몸에 걸치고 있는 것들.

‘저게 다 얼마야.’

누가 봐도 화려하다고 생각이 드는 종류의 온갖 보석으로 치장하고 있는 것을 보니 내 눈이 다 휘둥그레 질 정도였다.

손가락에는 큼지막한 보석이 달린 반지와 정교한 조각으로 새겨진 무늬들이 있는 반지들이 끼워져 있었고 귀에 걸려 있는 작은 귀걸이는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에 반사되어 반짝이고 있었다.

혹시나 목이 뻐근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화려한 목걸이는 훤히 드러낸 가슴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다.

애초에 입고 있는 드레스 역시 평범한 옷이 아니다.

이쪽이 알고 있는 브랜드는 아니었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가치가 있다.

아마 왕국 안에 있는 유명 디자이너를 통해 만들어진 드레스가 틀림없으리라.

조금 특이했던 것은 상체 쪽의 노출이 상당했다는 점이었지만 야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전체적으로 과한 듯한 느낌은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그녀와 잘 어우러지는 듯한 느낌.

그녀를 살펴보다 인사가 늦었다는 걸 깨달은 나는 조용히 고개를 숙이며 입을 열었다.

속으로는 그녀의 몸에 걸치고 있는 것들 중 하나만 팔아도 굶주린 백성들 수만 명이 배부르게 먹을 수 있겠다 같은 생각을 하기는 했지만 티를 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이기영이라고 합니다.”

“물론 알고 있습니다. 이기영 명예주교님. 간단히 차를 먹을 생각인데 혹시…….”

“간단한 것이라면 어떤 것이라도 괜찮습니다.”

“이야기는 들었겠지?”

“네, 네. 황녀 전하.”

들었냐는 듯 샤를리아가 시녀를 쳐다보자 그녀가 목소리를 떨며 답하곤 나갔다.

이 자리에서 빠져 나와 다행이라는 얼굴을 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는데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자신의 머리만 매만지고 있는 샤를리아와는 꽤 대조적이었다.

‘그나저나 얘도 철면피네….’

초면에 누가 봐도 망나니 같은 모습을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정상인인 척하는 모양새가 우습다.

최소한 뭐가 옳고 그런지를 판단할 수 있다는 셈이니 나쁘게 보이지는 않았지만 시녀들의 입장에서는 기가 찰 것이다.

조금 기다려야 할 것 같았던 내 생각과는 다르게 시녀가 튀어 나가자마자 여러 종류의 다과와 함께 잔 두 개가 내어졌다.

‘엄청 빠른데.’

기존에도 테이블에 세팅 되어 있는 것들이 있었지만 몇 명의 시녀들이 달라붙어 테이블을 마크하고 있었다.

불안해하는 표정과는 다르게 몸은 잘 훈련된 병사처럼 한 치의 오차도 없었다.

당황스러웠던 점은 간단하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뭐가 많다는 것.

이미 테이블에 놓인 다과의 종류가 10가지가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튀어나오고 있었다.

빈 잔에 천천히 차를 따르는 이쪽의 시녀는 제발 이 차 맛이 입맛에 맞기를 기도하는 표정이었다.

1황녀 쪽의 잔을 따르고 있는 시녀는 실수하지 않기를 기도하고 있는 것 같았다.

평소대로 자연스럽게 잔을 들어 올리니 이곳에 있는 시녀들의 얼굴이 나에게로 집중된다.

‘부담스러워.’

어째서인지는 뻔하다.

아마 차가 입맛에 맞는지를 궁금해할 것이 분명.

여기서 부정적인 소리라도 쏟아냈다가는 저 시녀들의 손목이 날아가 버릴 수도 있으리라.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자 예상대로 가슴을 쓸어내리는 두 명의 모습이 시야에 비쳤다.

“맛이 좋군요. 물론 향도 마찬가지입니다.”

“입맛에 맞으신다니 다행입니다. 후훗. 혹여나 맞지 않으실까 걱정했는데.”

“확실히 생소하기는 하지만 좋군요. 심적으로 안정되어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고… 뭔가 나른해진 느낌입니다. 몸이 따뜻해진 느낌도 있고요.”

“저 멀리 있는 엘프의 왕국에서 공수해 온 차입니다.”

“아아. 그렇습니까.”

‘엘프 왕국은 개뿔.’

갑작스럽게 몸에 찾아온 이상 신호에 조용히 손에 들려있는 차를 바라보자 차에 들어간 첨가물이 눈에 비치기 시작했다.

[라플레시아의 꽃잎-일반 등급]

‘미약.’

어처구니가 없어 실소가 나올 지경.

‘이 또라이가.’

사과와 감사를 위해 나를 부른 것치고는 설계하는 모양새가 우습다.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극소량을 사용하기는 했지만 목적이 어떤 건지는 뻔히 보였다.

심장박동수가 조금씩 빨라지고 눈앞에 있는 여자가 더 매력적으로 보이는 느낌이 든다.

계속해서 마음의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자 미약 성분이 들어가 있는 것은 차뿐만이 아니라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샤를리아의 몸에서도 풍기는 향에서도 섞여서 나오고 있다.

설명하자면 이 커다란 방을 조금 씩 조금씩 메우고 있는 셈이다.

서로를 탐구하는 시간을 가져보자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 정도로 양이라면 여자로서의 호감을 느끼게 하고 싶다는 의도가 더 큰 것 같다.

‘영향을 받고 있나.’

모든 미친년이 고유 기벽의 영향을 받는 것은 아닌 것 같았지만 이 황녀는 내게 꽤 커다란 호감을 가지고 있는 모양.

기벽 이전에 내가 황제 앞에서 자신을 변호해 줬다는 소리라도 들은 것이리라.

‘이용할 수 있겠네….’

그렇지만 이런 방식은 조금 불편하다.

약에 대해서는 면역력이 꽤 강했기 때문에 커다란 영향을 받고 있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몸이 신호를 보내오는 게 짜증 난다.

그녀의 몸에서 풍겨져 오는 향기가 자꾸만 나를 간질이고 있었다.

외관은 충분히 매력적인 여자다.

자꾸만 가슴 쪽으로 시선이 가고 저 표독스러운 얼굴에 입을 맞추고 싶은 욕구도 생긴다.

그렇지만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

솔직히 그녀와 일 이외의 일로 엮이고 싶은 마음은 없다.

갑작스럽게 튀어나와 허공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는 아네모네의 눈도 굉장히 신경 쓰인다.

‘뭐 이렇게 신경 쓸 게 많아.’

계속해서 불평불만을 쏟아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거다.

여러 가지로 복잡한 생각을 하는 나와는 반대로 샤를리아는 일이 잘되고 있다고 느끼는지 살짝 고개를 숙이며 말을 이었다.

“일단은 이 말씀부터 먼저 드렸어야 했는데…. 제가 일전에 저지른 무례에 대해서 정식으로 사과를 드리고 싶습니다. 물론 그 이후에 저를 도와주신 것에 대한 감사의 말씀도 함께….”

기품 있는 황족처럼 인사하는 걸 보니 이런 교육을 받기는 받은 모양이다.

이쪽에서도 적당히 받아넘길 수밖에 없었다.

그녀 입장에서 그 날의 일은 지우고 싶은 치욕스러운 사건일 테니까.

그렇지만 앞으로 조금씩 대화를 위해서라면 서로 조금 더 솔직해지는 게 유리하리라.

“괜찮습니다. 사과를 받을 일도 아니고 그런 말씀을 들을 정도로 대단한 도움을 드린 것도 아니니까요. 누구든 실수를 하게 마련이고… 무언가 힘드신 일이 있으신 거겠죠. 아니, 그전에 저는 어째서 황녀님께서 화를 참지 못하셨는지도 이해가 갑니다.”

역시나 당황스러워하는 얼굴이 눈에 보였다.

그렇지만 내 말에 선뜻 공감한다고 말하기 힘든 모양인지 일단은 변명부터 해야 된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당연하지만 내가 원하는 반응은 저런 반응이 아니다.

“아. 화를 참지 못한 게 아니라… 제, 제가 너무….”

“아니요. 중요한 파티를 위해 입고 온 드레스가 엉망이 되었으니까요. 그것도 한낱 시녀의 실수로 말입니다. 당연히 이해가 됩니다. 네.”

“아닙니다. 제가 당시 조금 힘든 일이 있어서… 정확히 말씀드리자면 자제를 못 한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내숭 떠는 모습.

아직도 핀트를 잡지 못하는 것 같았기 때문에 조금 더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다.

대놓고 말을 해야 알아들을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황녀님, 저 그렇게 좋은 사람 아닙니다.”

“무슨 말씀이신지 잘….”

“말 그대로의 의미입니다. 까놓고 이야기하자면 저는 아주 나쁜 사람입니다. 그 날 그 장소에서 황녀님의 시녀의 목을 잘랐다고 하더라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을 거라는 겁니다. 저는 이기적인 사람이고… 저와 제 주변인만 괜찮다면 누가 어떻게 되든 별로 상관하지 않습니다.”

“…….”

“아! 저 역시 샤를리아 님과 같습니다.”

“같다고 말씀하신 게 무슨 뜻인지….”

“저 역시 저에게 피해를 끼친 이에게 어떤 식으로라도 불이익을 줘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라는 겁니다. 장담컨대 파티에서 저에게 같은 일이 벌어졌다면 겉으로는 웃을지는 모르겠지만 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을 겁니다.”

“…….”

“화를 참기가 힘들죠. 그런 상황은… 짜증이 치솟으면 바로 되갚아줘야 하고요. 내 화를 돋우는 사람이 무릎을 꿇고 있는 모습을 보면 확실히 기분이 나아지고….”

이 정도까지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내숭을 떨고 있는 것 같은 모습이 가관이다.

그야 당연하긴 할 것이다.

어떤 의도로 내가 이런 말을 하는지에 대해 의심하는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소량이라고 하기는 하지만 미약을 쓴 것을 보면 이쪽에 어느 정도 호감을 품고 있을 터.

그런 사람에게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미친년이고 화를 참지 못한다.

제국에서 알아주는 망나니에 쓰레기 같은 여자다.

분노 조절 장애도 있고 아랫것들을 개돼지만도 못하게 바라보고 있는 황녀다.

그렇게 누가 말할 수 있을까.

아직까지 얼굴에 가면을 쓰고 있는 것을 보니 어째서 그전에는 저 가면을 그렇게나 쉽게 벗었는지 의심스러울 지경.

자물쇠로 굳게 잠긴 가면을 풀기 위한 방법으로 이런 대화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았다.

“농담입니다.”

“아… 그, 들었던 대로 유, 유머 감각이 뛰어나시군요.”

억지 웃음을 짓고 있는 모습.

나는 마시고 있던 차를 조용히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무례한 것 같지만… 이만 일어나겠습니다.”

“네?”

“사과의 말씀도 감사의 말씀도 제대로 받았고… 황제 폐화와의 약속이 있어서 말입니다.”

“이, 이렇게 빨리….”

“먹다 보니 마시고 있는 차도 입맛에 맞지 않는 것 같고… 내일 즈음에 다시 시간을 만들어 보겠습니다.”

“아!”

곧장 몸을 일으키자 당황하는 얼굴이 보였다.

순간적으로 얼굴이 일그러진 것을 보니 아무래도 화를 참기가 힘이 드는 모양.

아마 당연할 것이다.

지금 내가 보여준 행동은 황가에게 보여준다는 게 말이 되지 않을 정도로 무례한 행동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면을 벗지 않는 것을 보면 내 무례보다는 다른 포인트에서 짜증을 느끼고 있는 모양이다.

오늘의 만남을 망쳐 버린 사람에게 원망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지만 내 알 바 아니다.

몸을 적당히 일으키고 예를 표한 이후에 등을 돌리자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시녀들이 황급히 나를 지나치며 안쪽으로 들어가기 시작.

황녀의 방문이 굳게 닫혔고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시녀들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망했다고 생각하고 있겠지.’

방음 마법은 확실히 되어 있는지 안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지만,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마 죽일 놈이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을 것이 분명.

만약 화를 낼 대상이 내가 아니라면 자신의 화를 다른 곳으로 쏟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속으로 딱 10초를 세고 뒤를 돌아 이미 닫힌 그 방으로 다시금 향하니 아까보다 더 당황하고 있는 시녀들의 얼굴이 보였다.

“샤를리아 황, 황녀 전하!! 이기영 님께서!”

미리 외우고 있던 간단한 마법을 캐스팅.

“사일런스.”

“읍읍!”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지 목을 매만지고 있는 시녀의 모습이 보였다.

“지금 무, 무슨 무례를… 이기영 명예주교님. 다시 황녀님을 방문하실 거라면 제, 제가 먼저 황녀님께 의사를 전하겠습니다.”

파직! 파지직!

바닥에서 튀어나온 용의 꼬리가 말을 내뱉으려고 하는 시녀의 입을 막았다.

내 손으로 직접 황녀의 방문을 열어 재끼자 확실히 내가 예상했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가장 처음 들려왔던 것은 역시나 황녀의 목소리.

한 번 들어본 적이 있는 짜악! 하는 찰진 소리와 함께 겁에 질린 시녀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손님을… 손님을 모시는 데 있어서 분명히 한 치의 실수도 없게 하라 일렀다. 내가 몇 번이고 그렇게 이야기를 했거늘! 내가! 내가! 중요한 분이라! 그렇게 말하지 않았느냐!”

“죽, 죽여주시옵소서. 죽여주시옵소서. 황녀 전하.”

“오냐! 그게 소원이라면… 아.”

내가 밖으로 나간 지 1분도 되지 않은 시간동안 벌어진 화려한 이벤트의 모습은 가관.

들어간 시녀 중에 한 명은 이미 뺨이 붉게 물들어 있었고 엎드려 빌고 있는 시녀 하나는 손바닥을 싹싹 비비고 있었다.

그런 그녀들과 나를 번갈아 바라보며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는 황녀의 모습에는 당혹감이 서려 있었다.

잠깐 동안 장내에 들어선 침묵에 나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제 예상이 맞았군요. 아무리 생각해도 황녀님과 저는 동류인 모양입니다.”

물론 저 미친 여자와 나는 같은 종류의 쓰레기는 아니다.

‘동류는 아니지. 그렇고말고. 내가 저 정도는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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