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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272화 (271/1,590)

# 272

회귀자 사용설명서 272화

그 아버지에 그 딸(4)

샤를롯트에 대한 네거티브한 소문은 은밀하고 아주 느릿느릿하게 또, 악의적으로 진행됐다.

황궁 안부터 소문이 도는 것을 원하지는 않았다.

외곽에서부터 중앙으로 소문이 돌아오도록 설계했고, 규모가 크지 않은 쪽부터 큰 쪽으로 흘러가도록 진행했다.

일은 어렵지는 않았다.

검은백조와 카스가노 유노의 요조라 길드가 이쪽을 도와주고 있었으니까.

애초에 대규모 정보 길드라고 분류할 수 있는 검은백조는 이런 쪽의 일에 특화되어 있었고, 이토 소우타의 길드를 흡수한 요조라 역시 만만치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물론 대놓고 언론사를 움직이지는 않았다.

아직 그 정도의 타이밍이 오지는 않았다고 생각했으니까.

물론 파란과 붉은용병 역시 가만히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움직임이 제한되어 있는 나를 대신해 김현성과 차희라는 다완의 8좌인 천관위와 위란에게 함께 움직여 줄 것을 설득하는 중.

사실 걔네들이야 제2황녀 쪽으로 붙어도 상관은 없지만 결국에는 같은 플레이어의 입장에 있는 우리와 함께할 거라고 생각했다.

혹시나 그들이 제국민이었다면 다른 선택을 했겠지만, 같은 린델과 실리아를 등질 수 없다는 것 정도는 이해하고 있을 것이다.

당연하지만 어렵지 않다는 뜻은 단순히 정보를 푸는 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날조된 정보를 만드는 일 역시 굉장히 쉽게 쉽게 진행됐다.

이런 종류의 정보를 만들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있는 사실을 베이스로 만들었는가.

아무 근거 없이 날조된 정보보다는 적어도 의심해 볼 수 있는 구석을 첨가하는 게 효과적이다.

샤를롯트야 공격할 거리가 없는 것은 아닌가라고 생각할지도 몰라도 사실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그녀가 제국민들을 무척 아낀다는 사실이 제대로 유효타로 들어간 것이다.

“지혜 누나, 오늘 제2황녀 스케줄이 어떻게 되지?”

“뭐, 오늘도 평소랑 같죠. 시민대표와 회담도 나누시고….”

“아아. 별거 없네. 평소대로 진행해도 될 것 같아.”

“그 천한 핏줄들과 방탕한 놀이 어쩌고 그거 말하는 거 맞죠?”

시민 대표들과 함께 제국에 대해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는 그녀의 시민회담은 천한 핏줄과 방탕한 놀이를 즐기는 시간으로 탈바꿈되었고.

“아 식사는 시녀들이랑 함께 간단히 드셨대요.”

“음… 그것도 같이 뿌리자고. 천한 핏줄 그거.”

“안 그래도 넣으려고 했어요. 기왕 시작한 일인데 제대로 밀어야죠. 한쪽은 천한 핏줄이고 한쪽은 고귀한 핏줄. 누가 봐도 행동은 반쪽짜리 쪽이 낫네요. 이거 진짜 재미있는데요?”

스스로를 낮추기 위해 시녀단과 함께하는 식사는 역시나 천한 피가 몸속에 흐르고 있다는 개소리로 둔갑했다.

‘얘도 참 신기하단 말야.’

어머니의 영향인지는 모르겠지만 제국민을 지극히 아끼는 성정에 발목을 붙잡히게 된 것이다.

애초에 이쪽이 붙잡지 않았다면 잡힐 리도 없었겠지만 이미 그녀가 이쪽의 눈에 띄었다는 게 중요했다.

사실 그녀에 대해 알아 가면 알아갈수록 그녀가 이상적인 황제라는 걸 실감하게 되기는 한다.

아마 이지혜 역시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저야 뭐, 아무 상관없긴 하지만 보면 볼수록 이게 잘하는 짓인가 싶네요.”

“…….”

“장담하건대 만약에 샤를롯트가 황제가 된다면 역사에 길이길이 남을 성군이 될걸요? 중간에 오빠 같은 사람들이 분탕질만 안 치면요.”

“안 그래도 나도 그 생각하고 있어, 누나.”

“솔직히 제국이야 어찌됐든 간에 우리가 상관할 게 아니지만 기왕 한배를 탄 거, 우리 배가 크고 안전한 게 좋잖아요? 저도 이야기만 들었을 때는 몰랐는데 하얀 씨가 물어온 정보들을 보면 얘는 진짜 난 년이에요. 리더십도 있고 카리스마도 있고 강단도 있죠.”

“…….”

“약자한테 약하고 강자한테는 강하면서도 적당히 완급 조절을 하는 정치수완도 일품이고……. 애초에 오빠를 길들이겠다는 생각도 꽤 대담하자나요? 평민을 어머니로 둔 황녀가 본인의 힘만으로 이 자리에 섰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닌데 말이죠. 그리고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은 또 얼마나 지극한지… 그 외모에 그 재능에 그 지성에 그 인품, 1황녀가 질투하면서 미쳐 날뛰는 것도 무리도 아니죠.”

“내 생각도 그래. 내가 여기 정치에 왈가왈부하는 것도 웃기지만… 모르긴 몰라도 머릿속으로 생각하고 있는 게 꽤 많겠지. 그런데 어쩌겠어.”

‘김현성이 안 된다고 하는데.’

세상에 완벽한 인간은 없다.

그녀 역시 크고 작은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는 거다.

“그게 그렇게 기분 나빴어요? 생각보다 속이 좁네요. 나는 그편이 더 좋긴 한데….”

“그 때문이 아니라 했잖아. 솔직히 2황녀도 나쁘지 않다고는 봐. 어떻게 생각해도 1황녀보다는 훨씬 낫고… 그래도 그것뿐이야. 샤를롯트가 제국민을 위할지는 몰라도 우리들을 위하지는 않을걸. 차라리 이쪽 입맛대로 바꿀 수 있는 샤를리아가 더 나아. 조금 힘이 들기야 하겠지만 제국의 비선실세가 될 수 있는 기회를 그렇게 쉽게 놓치는 건 말이 안 되지.”

“그건 오빠 말이 맞아요. 저도 그냥 해본 소리였고요. 아무튼 저는 계속 작업할게요. 타이틀은 정해졌으니까. 오늘은 어느 쪽부터 어떻게 뿌려야 좋을지 봐야 하거든요.”

“뭐 움직임이 있기는 있어?”

“없는 게 이상한 거 아니에요? 왕성까지 소문이 닿으려면 시간이야 걸리긴 하겠지만, 이 황녀가 세간에 떠돌아다니는 이야기에 여간 민감한 게 아니라서요. 어느 쪽에서 악의적으로 흘린 소문은 아닌지 뒤를 캐고 있을걸요. 이거 걸리면 오빠랑 저랑 둘 다 모가지예요.”

“어차피 꼬리야 잘라내면 돼. 우리가 안 했다고 시치미 떼면 그만이고.”

“1황녀랑 요즘 찰싹 붙어 다니시던데, 시치미 떼는 게 쉽게 될지 몰라……. 아직 공식적인 행동이 없었을 뿐이지 오빠가 그쪽 라인 타려고 한다는 건 지나가던 개도 알걸요? 샤를롯트야 당연히 알고 있을 거고요.”

“안 그래도 느끼고 있어.”

마침 나와의 약속에 나갈 수 없을 것 같다는 귀족이 늘고 있는 타이밍이다.

샤를롯트 캠프가 이기영을 정적이라 판단해 여럿 귀족들에게 더 이상 나와 만나는 것을 자제하라는 압박을 주고 있는 것이다.

카트린 공작부인이나 엘리제 백작, 마를린 영애 같은 이들은 아직까지 이쪽에 든든한 힘이 되어주고 있었고, 사실 그런 의사를 표현한 것은 친하지 않거나 쓸모없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놀라웠던 것은 샤를롯트가 보여준 반응 속도.

나와 샤를리아와의 관계가 수면 위로 떠오르기 전에 먼저 선수를 친 것이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왕성에서 묘한 주장들이 튀어나오고 있다는 것도 확실히 이상한 부분이다.

그 묘한 이야기의 방향 역시 너무나도 노골적이었다.

‘제국 8좌가 제국의 정치에 관여하는 것이 옳은가.’

라는 타이틀의 주장들.

사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이 주장이 얼마나 터무니없는지 알 수 있다.

애초에 이방인들을 제국 8좌로 임명한 것은 황제의 독단적인 행동이었고 이 행동에 반한다는 것은 황제를 거스른다는 것과 다름이 없다.

물론 내가 알고 있는 샤를롯트는 황제의 결정을 정면으로 부정할 정도로 멍청하지 않다.

그럼에도 이런 주장을 은근슬쩍 흘린다는 것은 어떻게든 제국 8좌가 가지고 있는 권한과 행동 반경을 줄이고 싶다는 의사의 표현이리라.

백 골드짜리 물건을 흥정할 때 처음부터 터무니없이 낮은 가격을 불러 본래의 가격을 후려치려는 심보라는 거다.

물건에 조금 하자가 있다는 걸 핑계 삼아 가격을 깎고, 흠집이 났다는 걸 핑계 삼아 한 번 더 가격을 내리고, 가장 낮은 값을 제시한 이후에 이쪽을 데리고 오려는 것이 틀림없다.

‘생각은 이해가 돼.’

애초에 제국 8좌라는 건 샤를롯트가 그리고 있는 그림에는 없었을 수도 있을 테니까.

말하자면 원하지 않았던 손님이요, 불청객이다.

1회 차에서는 이방인들이 적극적으로 그녀를 추대했을 수도 있겠지만 상황이 반대인 지금은 제국 8좌가 골칫덩이로 느껴졌을 것이다.

정리해 보자면 그날 이후, 서로 얼굴도 마주치지 않은 상태로 가벼운 펀치를 한 번씩 주고받은 셈.

눈치가 있는 귀족이라면 현재 황실의 분위기가 묘하다는 것 정도는 알아차리고 있을 것이다.

“내 생각보다 조금 더 빠르다는 게 문제지만…….”

“생각하고 있었던 게 조금 더 빨리 왔을 뿐이에요. 애초에 이런 흐름으로 가는 게 당연한 거고 2황녀 캠프가 유능하든 본인이 유능하든 둘 중에 하나라고 봐야죠. 개인적으로는 후자의 손을 들어주고 싶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겠어요. 일단 저희 쪽도 무난하게 진행되고 있으니까 소문이 왕성에 자리 잡을 때까지 기다려보는 게 좋을 거예요. 그나저나 슬슬 1황녀가 찾을 시간 아니에요?”

“응. 봐줘야지.”

“책상에 스케줄 잡아놨어요. 검토해 보시고 그대로 진행하면 될 거예요.”

“고마워.”

“뭘요. 다 저 좋자고 하는 짓인데. 미래의 남편이 신성제국의 비선실세가 될 수 있는 기횐데… 이런 기회를 놓치겠어요? 도박은 싫어하지만 여기서 밀어주는 게 내조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답니다.”

“잘 받을게.”

“잘해요. 잘. 아, 그리고 몇몇 개는 수위조절 같은 거 안 할게요. 아무래도 정말로 자극적인 거 몇 개 정도는 있어야 될 것 같아서요.”

“적당히만 하면 돼. 아예 재기하지 못하도록 밟자는 취지로 하고 있는 게 아니니까.”

“알겠어요. 적당히 할게요. 적당히.”

이지혜가 말하는 적당이라는 기준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한 번 정도는 검토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슬쩍 손을 흔드는 모습을 보며 방을 빠져나가 내 방으로 향하던 도중, 내 방을 서성이고 있는 시녀 한 명이 시야에 비쳤다.

1황녀 시녀단 중 하나다.

이름은 잘 모르겠지만 자주 본 얼굴이라 그런지 기억에는 남는다.

내가 처음 그녀를 만나러 간 날 엎드려 손바닥을 비비고 있던 이가 틀림없으리라.

어째서 내 방 앞을 서성이는지는 뻔했다.

“이기영 명예주교님.”

“아아아.”

슬그머니 마음의 눈으로 그녀의 이름을 확인한 이후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리스 시녀님.”

“말을 내려 주시옵소서. 누, 누군가 들을까 겁이 납니다.”

“하하. 존대가 습관이 되어서 그렇습니다. 그보다 여기에는 어쩐 일로… 아니, 아니. 제가 괜한 질문을 했나 보군요. 안 그래도 슬슬 황녀 전하를 찾아뵈려고 했었습니다. 그러니까… 예정되어 있는 일이….”

“제국 기사단을 독려하고 지금까지의 노고를 치하하신다고 하셨습니다.”

너무 사소한 일이라 잊어버리고 있었다. 제국 기사단을 독려하러 기사단을 방문한다는 것 자체가 보여주기 식이다.

이런 일에도 이쪽을 찾는 것을 보면 이쪽을 꽤나 신뢰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야 그럴 수밖에 없겠지.’

캠프에서 제안한 스케줄을 따르고 홍보 효과를 제대로 누린 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자신에 대한 평가가 달라졌다.

눈 먼 장님도 캠프의 힘이 대단하다는 것 정도는 눈치채고 있으리라.

‘너무 의존적인 게 탈이지만.’

“꼭 나쁜 것도 아니고….”

“네?”

“아무것도 아닙니다. 황녀님께서는 아직 출발하지 않으셨습니까?”

“네. 어떤 드레스를 입고 가실지 고민 중이시라….”

“아아아. 그러고 보니 제가 아직 말씀을 안 드렸었군요.”

“네?”

“드레스가 아니라 가벼운 무장을 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경갑이지만 조금 고급스러운 느낌으로요. 기사단을 방문하는데 굳이 드레스를 입고 갈 필요가 없지요. 장담컨대 이쪽이 더 효과가 좋을 겁니다. 제가 무슨 말씀을 하는지 알아들으실 거라고 믿습니다.”

“아! 네!”

사소한 복장이라도 이런 디테일이 중요하다.

“머리는 잘 묶어서 위로 올리고 액세서리는 최소화, 제국 기사단 인장이 딱이겠군요.”

“네. 네.”

“먼저 가서 세팅해 주시면 빠르게 뒤따라가겠습니다.”

“네!”

후다닥 열심히 달려가고 있는 것이 보인다.

이쪽은 잠깐 방에 들어가 다시 한번 잡아놨던 스케줄을 정리.

제국 기사단을 방문한 이후로는 궁정 마법사단을 방문 예정이다.

‘1황녀 코스프레 하는 날이네.’

이런 식으로 스케줄과 복장, 심지어는 연설 내용마저 대필해 주니 마치 연예인 매니저라도 된 듯한 기분이었다.

다시 한번 최종 점검을 한 이후에 밖으로 나서 항상 만나던 응접실로 향하자, 때 마침 준비가 끝난 샤를리아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딱 내가 주문한 대로 되어 있다.

기사라고 하기에는 부족했지만 가벼운 경갑과 훈련할 때 불필요한 액세서리는 없다.

“명예주교님!”

“샤를리아 님, 이거…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마침 저도 방금 막 도착해서….”

“하하하. 확실히 드레스만 잘 어울리시는 게 아니시군요. 이런 모습도 무척 아름다우시니 복장이 황녀님 덕을 보는 것 같습니다.”

“그 정도는….”

입꼬리가 올라가고 있는 황녀보다는 사실 시녀들이 더 대단해 보인다.

지옥에서 빡세게 구른 이들이라 그런지 확실히 저마다 가지고 있는 능력이 많다.

짧은 시간이었을 텐데도 이쪽의 의도를 파악해 가벼운 메이크업까지 완벽하게 처리되어 있는 모습은 놀라울 지경이다.

대충 주문한 머리도 퀄리티가 꽤 높다.

‘얘네 장난 아니네.’

뒤쪽에 병풍처럼 서 있는 시녀단은 내가 샤를롯트를 칭찬하는 모습을 보고서는 해냈다는 표정을 지었다.

시녀들을 눈으로 확인해 보고 싶었지만 시간이 없는 관계로 시선을 다시 샤를리아 쪽으로 돌릴 수밖에 없었다.

샤를리아의 미모를 다시 한번 칭찬한 이후에는 숙지사항과 주의사항을 다시 한번 브리핑했다.

어떤 동선으로 움직일지에 대한 설명을 한 이후 연설 내용이 적힌 쪽지를 건네자 찬찬히 읽고 검토하는 모습도 보인다.

‘이런 모습은 좋아.’

능력이 없어도 의지가 있다는 게 중요하다.

본인 역시 자신감이 생겼는지 발걸음이 사뭇 당당하다.

그렇지만 그런 그녀의 얼굴이 찌푸려지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제국 기사단의 연무장 앞에 보이는 또다른 사람.

‘얘 봐라….’

한발 앞서 제국 기사단을 방문한 샤를롯트를 확인한 이후에는 나 역시 혀를 끌끌 찰 수밖에 없었다.

‘이건 노렸다고 보는 게 맞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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