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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282화 (281/1,590)

# 282

회귀자 사용설명서 282화

부디 혁명하라(1)

“이건 무조건 먹힐 거예요, 오빠. 장담하는데 무조건 먹혀요. 진짜 잔머리 하나는 잘 돌아간다니까? 어떻게 종교랑 이걸 엮을 생각을 했어요?”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생각이야. 기회가 없었던 것뿐이지. 애초에 이방인 중에 베니고어 여신 교리 외우고 있는 사람이 사제들 빼면 나밖에 없잖아. 혁명 정도는 누나도 생각하고 있는 선택지였고 대단한 건 아니지, 뭐.”

“그렇기는 하지만… 저 같은 경우에는 아직 제국민의 시민 의식이 이런 걸 받아들일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었거든요.”

“아냐 아냐. 제국민도 의식수준이 꽤 높아. 그 누구보다 제국민을 사랑하시는 황실의 2황녀님께서 몇 년 전부터 꾸준히 의식수준을 높이고 계셨거든. 상황 자체는 언제든지 터질 수 있었던 상황이었어. 단지 계기가 없을 뿐이었지.”

“그렇게 판단하고 있었어요? 제국민을 꽤 높게 쳐주네요. 개인적인 견해로는 이번 일의 일등공신은 베니고어 여신 교리라고 보는데. 실제로 반응을 보면 생각보다 더 뜨거워요. 운이 좋으면 교황청까지 끌어들일 수 있으니 그것보다 더 하고요.”

“나도 개인적인 생각을 이야기하는 거야. 애초에 시민혁명이라는 게 그래. 이런 종류의 혁명은 대부분….”

“부르주아 혁명이라는 걸 이야기 하고 싶은 거죠? 경제권은 가지고 있지만 지배권을 가지고 있지 않은 자본가들이 주도한다는 거.”

“응. 맞아.”

눈앞에 있는 이지혜가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이 보였다.

입꼬리가 올라가 있는 것을 보니 그녀도 나만큼 재미있어 하는 것 같았다.

‘재미없을 리가 없지.’

애초에 이지혜는 이런 상황을 좋아한다.

민중이나 일반인이 이쪽이 짜놓은 판대로 움직이는 것.

그런 것에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있으니 그녀가 권력에 심취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리라.

얼굴을 치켜 올리니 계속해서 말해보라는 듯 나를 바라보는 이지혜가 보였기 때문에 이쪽 역시 입꼬리를 올리며 입을 열었다.

“물론 지구에서 일어난 일과 역사를 여기에 대입해 봐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조금 생각해야 될 문제야. 하지만 부족한 것만 채워지면 꼭 그렇게 못 하리라는 보장도 없잖아.”

“부족한 게 뭔데요?”

“무력.”

“아아아아. 무슨 말인지 알겠네요.”

“지구와의 차이점은 역시 무력이지. 경제권만 가지고 있어도 되는 지구에서의 부르주아들과는 다르게 이쪽은 한 가지 조건이 더 붙으니까 그만큼 더디게 느껴졌을 뿐이야.”

“이곳에서의 부르주아 계급은 경제력에 무력까지 플러스해야 된다는 거네요. 혁명 같은 게 안 일어 날 법도 해요.”

“내 생각도 그래. 애초에 이곳의 권력자들이 권력을 가질 수 있는 이유는 무력 때문이었다고 봐. 이곳의 기사들만 봐도 민간인 수십을 상대할 수 있다고 봐도 되는데…. 그런 상황에서 권력자에게 반항이나 해볼 수 있겠어? 사실 혁명을 위한 준비는 거의 다 되어 있었어.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을 뿐이었지.”

“어떤 걸 보고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가난, 굶주림, 불평등, 권력층과 소외계층의 격차, 자라나고 있는 시민의식. 그리고….”

“언론도 있네요.”

“맞아. 언론이 결정적이지. 또 다른 이유로는 신 부르주아 계급의 등장을 예로 들 수도 있겠네. 경제권과 무력은 가지고 있지만 지배권은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들.”

“이방인들.”

“응.”

“그 외에도 몇몇이 더 있어요. 사설 용병대라든지, 아니면 마탑에 처박혀 있는 마법사들이라든지. 오빠 말대로 혁명의 계단에 오르는 조건들은 이미 조금씩 충족되고 있었던 거네요. 모든 게 연결되지 않았을 뿐이라는 거죠?”

“내 생각이 맞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생각해. 문제는 이걸 어떻게 터뜨리는가지.”

그 외에도 다른 문제가 존재하기는 했다.

일단 급진적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조건이 가장 커다란 문제.

자연스럽지 않은 혁명이나 개혁은 아무리 잘 치러져도 부작용을 가지게 마련이다.

운이 좋아 이 일이 성공적으로 치러진다고 하더라도 이 제국은 틀림없이 어떤 부작용을 떠안으리라고 생각했다.

물론 난 정치학자가 아니니 그런 건 예상할 수도 없고 쥐뿔도 관심 없다.

다가올 문제들을 예상하는 것은 내 능력 밖.

지금 당장은 이 일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는 거다.

‘순식간에 끝내야 해.’

또 다른 불안요소는 바로 공화국의 존재다.

단순한 상상일 뿐이지만 만약 상황이 터진다면 제국 내에서 치러지는 혁명에 숟가락을 얹으려고 할 가능성이 높다.

한꺼번에 터뜨리고 한꺼번에 몰려 들어가 해결해야 한다.

기존 권력자들과 제국민들이 아옹다옹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외부의 압력을 받게 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다.

카트린 공작부인, 엘리제 백작, 마를린 영애 같은 이들을 놓칠 수 있다는 것도 걱정하고 있는 문제들 중 하나였지만 이들 같은 경우에는 보호해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제국민에게 존경받는 귀족들은 새로운 계급으로 자리 잡게 될 것이다.

다소 억지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이들은 강제적으로라도 혁명에 참가 시키는 것이 맞다.

‘그렇게 해야 돼.’

물론 그중에서도 가장 걱정되는 것은 제2황녀의 존재.

이쪽의 움직임을 눈치채고 먼저 선수를 쳐올 가능성이 있는 만큼 조심, 또 조심하여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순식간에 망해버릴 수도 있어.’

반역죄로 몰린다면 제국 8좌고 용의 배우자고 명예주교고 나발이고 끝장이다.

샤를리아와 함께 황제를 만나거나 쉴 새 없이 캠프를 돌리며 정치싸움을 거는 것이 바로 그 이유.

당장은 시선을 돌릴 수 있겠지만 한계가 찾아올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아, 누나. 그러고 보니까 2황녀 쪽은 어때? 반응이 좀 있어?”

“아뇨. 꽤 조용해요. 샤를리아 쪽 적폐 늙은이들이 들고 일어선 걸 해결하느라 바쁜 건지 아직 관심을 가지고 있지는 않은 것 같았는데…. 생각해 보니 이상할 정도로 조용하네요. 아무리 외곽부터 조용히 작업하고 있었다고 한들, 자기 욕하는 것도 귀신같이 캐치하던 여자가 조용히 있는 것도….”

“그렇지? 당장에라도 숨통을 끊으려고 달려들 것처럼 말한 것치고는 이쪽에 대한 압박이 줄어든 것 같은 느낌이야. 사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숨도 못 쉴 것 같았는데… 교황청의 눈치를 보고 있는 건가?”

“그럴 수도 있고요. 아니면….”

“응?”

“그냥 단순한 제 생각인데… 그… 갑자기 떠오르기도 했고. 제국의 2황녀가 제국민들을 그렇게 아낀다고 하지 않았나요?”

이지혜가 뭘 말하고 싶어 하는지 알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럴 리가 없는데….”

“그럴 가능성도 열어두는 게 좋을 거예요.”

“그건 너무 억측 아니야?”

“저도 그냥 멋대로 상상해 본 거예요. 어차피 물증도 없고 소설 써보자면 이런 상황을 원하고 있었을 수도 있다는 거죠. 오빠가 말한 것처럼 제2황녀 역시 이방인들이 신 부르주아 계급이라는 걸 인지하고 계획을 짰을 수도 있어요. 적어도 관심이 있었다면 여러 가지 정황을 캐치하고 있었을 거예요. 엄청나게 커진 언론만 봐도 충분히 생각해 봄 직 하잖아요?”

“그건 그렇지만….”

“오빠가 언론을 키우지 않았다면 할 수 없었던 생각이었겠지만… 이미 이 신성제국에는 여러 언론이 자리 잡았죠. 이방인뿐만 아니라 제국민도 제국 신문을 만들어서 팔고 있는데 누가 봐도 전조라고 부를 수 있는 일 아닌가? 제2황녀가 바보가 아니라면 제국신문이 출간됐을 때부터 냄새 정도는 맡고 있었을 거예요. 심지어 이제는 마력 영상 홀로그램도 나오고 있는데. 만약에. 아주 만약에 제2황녀가 마력 홀로그램… 그것까지 캐치하고 있었다면 정말로 그녀가 이런 상황을 주도하고 싶어 했다고 생각해도 돼요.”

“그러니까 누나 말은 2황녀가 신 부르주아 계급에 중심에 서 있는 나를 일부로 도발한 거다. 그 말이야? 억지로 조이고 위협해서 내가 이렇게 움직이기를 원했다고? 이방인들을 움직이려고?”

“소설이라고 했잖아요. 근데… 이게 또 끼워 맞추니 말은 되네요. 애초에 제국민들과 시간을 많이 보내는 것도 그렇고…. 솔직히 오빠를 길들이려고 한 것도 조금 작위적으로 느껴지기도 해요. 당장 칼을 휘두를 것처럼 위협했지만 실상 오빠의 팔다리가 완전히 잘려나간 건 아니었잖아요? 물론 아예 안 잘랐다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확고 세력은 건들지도 않았어요. 저는 그게 그쪽에서 오빠를 다시 끌어들일 생각을 하는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거든요.”

“애초에 그녀가 원했다면 나한테 직접 말을 했겠지.”

“말했으면 오빠가 그걸 들어줬을 거라고 생각해요? 내가 생각해도 절대로 안 그랬을 것 같은데? 애초에 그걸로 2황녀 뒤통수나 칠 생각이나 했겠죠. 오빠 같은 쓰… 아니, 그… 뭐라고 표현해야 되지? 아! 멋있는 간신 같은 사람들한테는 봉건제나 절대군주제가 더 유리하잖아요. 오빠랑 저랑 잘 맞는 것 같아서 말하지만 이번에도 수 안 틀렸으면 혁명이고 나발이고 안 했을 거예요. 그냥 그 상태로 꿀이나 빨고 있었겠지.”

솔직히 부정할 수 없었다.

만약에 제2황녀가 담담히 혁명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면 나는 그걸 무기로 황녀의 뒤통수를 후려 갈겨버렸을 것이다.

뭔가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자꾸만 이지혜가 써놓은 소설 쪽으로 마음이 가기 시작.

특히나 2황녀와 함께 나눈 대화들이 갑작스레 떠오르기 시작했다.

제국 기사단 연무장에서 나눈 대화.

당시에는 별것 아닌 대화처럼 느껴졌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의심이 가는 점이 많다.

‘실례가 될 수도 있지만 명예주교님에 대해서는 약간의 사전 조사를 마쳤습니다. 용에게 선택받은 자, 신성제국의 명예주교 같은 모두가 알고 있는 타이틀보다는 조금 다른 쪽에 관심이 가더군요. 언론이라는 매체를 린델에 뿌리내리고 여러 가지 변혁을 가져온 것이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변혁.

‘자유 도시는 기본적으로 제국과 분리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분리되어 있는 만큼 간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린델에 언론이 뿌리내리고 시작한 이후,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제국 내에서도 비슷한 기관이 생긴 것만 봐도 그러합니다. 당신은 기본적으로 이기적인 인간이지만 최소한의 양심 정도는 가지고 있다는 사실 역시 잘 알고 있습니다. 이유야 어찌됐든 간에 당신이 벌인 일들이 다수에게는 좋은 결과를 가지고 왔으니까요.’

다수에게 유리한 결과.

‘아마 제가 생각하기에… 당신이 그런 결과물을 만들 수 있는 이유는 타인의 눈치를 보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뇨. 확신할 수 있습니다. 당신은 틀림없이 대중의 눈치를 보고 있는 사람입니다. 강자에게는 자신이 가진 것을 양보하지 않아도 대중들에게는 자신이 가진 것을 양보하는 사람입니다.’

대중을 위한 양보.

‘칭찬이 맞으니 고민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명예주교님, 제국에는 당신과 같은 인재가 필요합니다. 대중의 눈치를 보는 인재가, 다수의 눈치를 보는 정치를 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어쩌면 이지혜의 말이 사실일지도 모른다.

점점 더 그녀의 말이 맞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조금 원망스러운 회귀자가 어째서 그런 여자가 황제가 되면 안 된다고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히 어떤 쓰레기 같은 놈이 중간에서 그녀를 미치게 했음이 틀림없으리라.

1회 차에서는 이런 종류의 운동이 없었던 걸 예상해 보면 아직은 속단을 내릴 타이밍이 아니긴 했지만.

언론의 빠른 등장으로 인해 상황이 바뀌었다고 생각해 보면 그리 이상한 상황도 아니다.

여러 가지 정황이 보이는 상황, 그렇지만 정확한 물증이 없으니 조심스럽게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 와중에도 그녀를 향한 심증은 계속해서 그 싹을 틔어내고 있었다.

마지막에 나에게 해준 말조차 이제는 의심스럽게 들려온다.

‘저는 적에게 칼을 들이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 성격입니다, 명예주교님. 당신이 제국에 있어 중요한 사람이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정말로 제게서 등을 돌린다면 저도 칼을 빼들 수밖에 없습니다. 현명한 선택을 하셔야 할 겁니다.’

정말로 자신에게서 등을 돌린다는 게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 궁금한 것이 당연.

그녀가 말하는 현명한 선택이 무엇이었는지 그녀가 적이라고 규정하는 이는 어떤 사람인지, 그 어떤 것도 명확하지 않았다.

어쩌면 이렇게 해석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만약 그녀가 정말로 원하는 게 이것이라고 가정한 뒤라면 이렇게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군주제에 칼을 들이미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하나 그대는 앞으로의 제국에 필요하다. 그대는 제국에 변혁을 불러일으켜 올 것이니 제국의 중요한 이라 해도 부족함이 없다. 만약 그대가 정말로 내 기대에, 대중에게 등을 돌린다면 칼을 빼들 것이다. 그러니… 부디….’

“혁명하라.”

“네? 뭐라고요? 갑자기 뭔 소리예요. 이미 하고 있잖아요.”

“씨발….”

“뭐? 왜요?”

“누나 말이 맞는 것 같아.”

정확히 말하면 나와 이지혜 같은 경우에는 어쩔 수 없이 합류한 쪽이었지만….

제2황녀.

샤를롯트 역시 우리와 같은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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