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 사용설명서-285화 (284/1,590)

# 285

회귀자 사용설명서 285화

아리스의 편지(1)

[왕성에서 아리스 올림.]

[평안하신지요, 어머니. 아리스입니다. 조금씩 날이 추워지고 있는데 멀리 떨어져 계시는 어머니가 어떻게 지내시고 계시는지 궁금하기만 합니다. 동생들은 학교에 잘 다니고 있는지 할머님 건강은 괜찮으신지 집에 들어간 지 오래 되어서 걱정됩니다.]

[아마 어머니도 부족한 딸이 어떻게 지내시고 있을지 걱정하실 거라 생각합니다. 제 걱정은 하지 마세요. 저는 잘 지내고 있고 제1황녀님께서는 여전히 저를 무척이나 예뻐해 주시니까요. 항상 일 잘하는 시녀라고 칭찬해 주시고 가끔 머리도 쓰다듬어 주신답니다.]

[지난번에는 중요한 손님을 모시는 데 커다란 일을 해내서 황녀님께서 직접 포상을 내리실 정도였어요. 물론 저 혼자만의 힘이 아닌 다른 시녀단 여러분 모두가 힘써주신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죠. 아, 사실 오랜만에 편지를 보낸 것은 어머님께 말씀드릴 일이 있어서예요.]

[사실은… 이 일을 그만둬야 하는 사정이 생긴 것 같아요. 물론 함부로 그만둘 수 있는 일은 아니지만 전에 말씀드렸던 그분께서 힘을 써주신 덕분에 나갈 수 있게 됐습니다. 아는 것 없고 배운 게 없기는 하지만 그분이 열렬히 저를 원하신다는 것을 알게 돼서…. 마음 약한 저는 어쩔 수 없이 그분을 따르기로 했답니다.]

[써놓고 보니 조금 오해가 있을 수도 있겠네요. 그분이 저를 첩으로 들이신다는 이야기가 아니에요! 물론 그렇게 된다면 소원이 없겠지만… 지금 당장은 그분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하고 있습니다. 아아! 그리고 앞으로의 생활금도 계속 보낼 테니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아무튼… 무언가 중요한 일이 시작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요. 제 인생이 바뀔 것 같다는 느낌도 들고요. 아직은 뭐가 뭔지 잘 모르겠지만… 아. 이제 나갈 시간이네요. 자세한 이야기는 이후에 시간이 날 때 하겠습니다! 나중에 또 편지할게요, 어머니. 건강하셔야 해요!]

* * *

[린델에서 아리스 올림.]

[린델로 왔어요. 어머니! 이방인이 사는 자유 도시라 그런지 뭔가 신기한 것 투성이네요. 저번에 말씀드렸던 분께서 저를 직접 이쪽으로 직접 보내주셨답니다. 난생 처음 그리폰이라는 걸 타봤는데 얼마나 떨리는지…. 무사히 도착해서 다행이었죠. 같이 계신 분들도 모두 착하고 좋은 분들이세요.]

[다들 능력 있는 마법사나 검사 같은 분들이시니 제가 이분들과 함께 있다는 사실이 믿겨지지가 않아요. 그리고 소문이 자자한 드래곤님도 직접 눈으로 보게 되었답니다! 정말 어마어마하게 커다랗고 위용 있는 모습에 그만 그 자리에서 다리가 풀려버렸지 뭐예요.]

[사실 조금 무섭기는 해요. 드래곤님이 아니라 그냥 현재 제가 처한 상황이 그래요. 갑자기 환경이 변하게 된다는 건 저 같은 사람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일이니까요. 마을의 자랑이라고 했던 긴 금색 머리도 짧은 단발로 잘랐고 난생 처음 어울리지도 않은 검도 차보게 됐답니다.]

[거울을 보니 다른 사람이 서 있는 것처럼 느껴지지 뭐예요? 물론 그분께서 잘 어울린다고 말씀하셔서 안심했지만 그래도 여자다운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을 것 같아 가슴이 아파요. 기대에 부응할 수 없을 것 같아서 불안하기도 하고요. 제가 도대체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 궁금하기만 하답니다.]

[그리고… 이유는 모르겠지만 여기 계신 어떤 마법사님께 미움 받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작은 드래곤님도 저를 미워하고 있고요. 심지어 사제님 역시 차갑게 대하시니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제가 뭘 잘못한 걸까요? 미움 받는 건 익숙하지만 이분들과 사이좋게 지내고 싶은데 너무 걱정되네요. 역시 제 미천한 신분이 마음에 들지 않으시는 걸까요?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조금 씁쓸하네요.]

* * *

[캐슬락에서 아리스 올림.]

[캐슬락에 왔어요! 그리고 오랜만에 그분도 뵐 수 있었답니다. 사실 많은 이야기를 들었어요. 여러 가지를 배우기도 했고요. 그분이 하신 말씀을 전부 이해할 순 없었지만 틀린 것 같진 않았어요. 범상치 않은 분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분께서 그토록 커다란 생각을 하시고 계시고 있을지는 누가 알았을까요. 베니고어 여신님께서 저희를 위해 보내주신 사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답니다.]

[둘째 날에는 캐슬락 백작님도 뵙게 됐어요. 그분께서 제게 아무 말 하지 말라고 하셔서 조용히 있었지만 따로 방 안으로 들어가신 백작님과 그분께서 큰 목소리로 토론하시는 걸 들을 수 있었답니다.]

[조금 불안하기는 했지만 캐슬락 백작님께서도 그분의 말씀에 동감하고 계신 것 같았어요. 최근에 마를린 영애가 큰 화를 당한 적이 있었거든요. 무언가 약속이 오간 것 같기는 하지만 제가 신경 쓸 이야기는 아니겠죠. 결국에는 일이 잘 풀린 것 같아 다행이에요.]

[이야기를 들으니 카트린 공작부인과 엘리제 백작 같으신 분들도 캐슬락으로 향하시고 계신다고 하네요.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한 일이었는데 제가 생각한 것보다 일이 점점 커지는 것 같아 불안해요. 내일 중요한 연설을 앞두고 있어서 더욱더요.]

[열심히 할 생각입니다. 제국을 위해 힘써주시는 분들이 이렇게 많은 만큼 저 역시 최선을 다해야겠지요. 다음 편지는 다른 곳에서 올리게 될 것 같아요. 건강하게 지내셔야 해요. 오늘은 조금 큰돈을 붙이게 됐어요. 깜짝 놀라시지 마시고 아무에게도 말씀하시면 안 돼요. 나쁜 돈은 아니니 안심하셔도 되고요. 이만 줄일게요.]

* * *

[장소를 알 수 없는 곳에서 아리스 올림.]

[제가 첫 연설이 무사히 끝났다고 말씀을 드렸었나요? 정신이 없으니 써놓은 편지를 보냈는지 헷갈려요. 잘해낼 수 있을까 하는 우려와는 달리 벌써 4번째 연설을 했답니다. 무척 떨리고 걱정되기는 했지만 열렬히 환호해 주시는 분들 덕분에 용기를 낼 수 있었어요. 지금은 조금 적응이 된 것 같기도 하고요.]

[사실 지금까지는 그저 그분께서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된다는 생각이었는데…. 최근 들어 제 생각도 조금씩 바뀌기 시작한 것 같아요. 네. 저도 그분의 영향을 받은 거겠죠. 저를 둘러싼 배경뿐만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넓어진 것 같다는 생각도 하게 됐답니다. 사실 캐슬락 이후로 그분을 뵌 적은 없어요. 그렇지만 그분이 제게 선물하신 책을 보면 항상 그분과 함께 있다는 느낌을 받기도 한답니다.]

[이것도 전부 베니고어 여신님의 뜻이겠지요? 달라진 것은 저뿐만이 아니에요.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시간이 지날 때마다 사람들의 환호성이 조금씩 커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네. 모두가 변하고 있는 거겠죠.]

[오늘은 오랜만에 그분이 다시 저를 찾아와 주실 것 같아요. 듣기로는 바젤 추기경님과 함께 오신다고 들었는데… 아마 또 중요한 이야기를 하실 것 같아요. 제가 이런 자리에 있어도 되는지. 항상 그런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그분의 말씀대로라면 제가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겠죠. 편지 줄일게요, 어머니.]

* * *

[실리아에서 아리스 올림.]

[제국 8좌 분들과 회담을 가졌어요. 한 분은 자리에 안 계셨으니 7좌 분들이라고 하는 게 맞겠네요. 헤헤. 처음에 아무것도 알아들을 수 없었던 것과는 다르게 이제는 그분들이 어떤 말씀을 하시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답니다. 공부를 하고 있던 것이 성과가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필사적으로 움직여야한다고 생각했거든요.]

[매일 매일 연설을 하는 만큼 부족한 것이 있으면 안 되니까요. 물론 오늘도 연설을 할 것 같아요. 오늘은 이방인 분들을 대상으로요. 그분들께서 저를 받아들여 주실지 걱정되기는 하지만 제국 7좌 분들도 웃으며 저를 맞이해 주셨으니 이방인 분들도 틀림없이 좋아해 주시겠죠?]

[용병여왕님도 그렇고 무녀님도 그렇고 환영한다며 두 팔을 벌려주셨거든요. 특히 무녀님께서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고 가셨는데 그게 무슨 의미인지는 아직 궁금하답니다. 소문으로는 그분께서 미래를 볼 수 있다고 하셨는데 혹시 제 미래에 좋은 일이 생기는 걸까요? 어쩌면 그 분의 첩으로 들어가게 될지도! 그렇게 될 수도 있겠네요!]

[이 이야기를 하다가 생각난 건데 사실 그분께서 지금 황녀님과 혼담이 진행 중이라는 걸 들었어요. 네. 그 샤를리아 님이요. 샤를리아 님이 그분을 사모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런 식으로 움직일 줄은 전혀 몰랐어요. 다행히 그분은 샤를리아 님께 별 관심이 없는 것 같았지만요. 그 개### 죽# 버## 좋# 텐## 그렇죠? 잉크가 엎질러졌네요. 헤헤. 별 내용은 아니니까 신경 쓰지 않으셔도 돼요.]

[아! 그리고 제가 저번 편지에 바젤 추기경과 만남이 있었다고 말씀드렸었나요? 네. 다행히도 바젤 추기경님과 이야기가 좋게 된 것 같아요. 애초에 그분께서는 바젤 추기경님과 워낙 긴밀한 관계라 걱정하지 않은 것 같았는데…. 예상대로 바젤 추기경님께서도 크게 고개를 끄덕여 주셨네요. 저에게 악수를 청하며 잘 부탁한다고 말씀해 주셨고요. 이건 그분께서 말씀해 주신 건데요. 사실 이번 일이 잘 끝나면 바젤 추기경님께서 교황의 자리에 오르실 수도 있대요! 물론 이건 비밀이랍니다! 어머니! 꼭이요!]

* * *

[어딘가의 지하에서 아리스 올림.]

[어머니. 정말로 오랜만에 편지를 드리네요. 짧은 시간이기는 했지만 그동안 너무 정신없이 움직였거든요. 일이 조금 꼬이기도 했고요. 편지를 보낼 시간이 없었어요. 생활금을 저번에 크게 붙인 적이 있으니 경제적인 어려움을 없을 거라고 생각해요. 혹시나 전부 써버리지는 않으셨겠죠? 어머니 성격이라면 그럴 리가 없죠.]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지만 시간이 없어 줄여야겠어요, 어머니. 제가 무사히 지낸다는 사실만 알아주셨으면 했어요. 혹시나 해서 오늘도 생활금을 따로 붙여드립니다. 그분께서 주신 돈이니 너무 놀라지 마세요. 그리고 제가 지금까지 보낸 편지는 전부 불에 태워주세요. 그 누구에게도 말씀하지 말고요. 부탁드려요. 꼭이요. 전부 불에 태워주셔야 해요. 전부 다요.]

* * *

[이제는 제게 주어진 일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아요. 어머니. 정신없이 그분의 뒤를 쫓는다는 게 벌써 여기까지 왔네요. 사실 아직도 어안이 벙벙해요. 그분의 말씀을 전부 이해하는 것도 힘들고 지금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도 잘 모르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이런 작은 힘이라도 도움을 줘야 한다는 사명감이 생겨요. 그분께서도 제가 변한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헤헤. 물론 여전히 ‘아리스 님은 아리스 님이십니다’라는 말씀도 해주셔서 안심할 수 있었죠.]

[당연하지만 그분과도 조금 더 친밀해졌고요. 이런 말씀을 드리기는 부끄럽지만 그분과 작은 입맞춤을 할 수 있었답니다. 그분이 제게 마음이 있는 건지는 잘 모르겠어요. 사실 제 쪽에서 용기를 냈거든요. 아직도 그분의 깜짝 놀란 표정이 잊혀지지 않네요. 그동안의 일이 저를 강하게 만든 것 같아요.]

[평소였다면 절대로 그렇게 움직일 수 없었을 텐데…. 헤헤. 아무튼 그분께서도 그렇게 기분 나빠 보이진 않았어요. 어깨를 톡톡 두드려 주셨거든요. 그 이후에는 마법사님께 미움 받은 것 같기는 했지만 저도 더 이상 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어요.]

[사실 처음에는 조금 마음에 드는 정도였어요. 그분의 첩으로 들어가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전부였었죠. 그분은 능력도 있고 수려하시니까요. 그렇지만 함께 시간을 보내고 같은 목표를 향해 정진하는 동안 제 마음이 점점 커져 감당할 수가 없게 되어 버렸어요.]

[아. 물론 커진 것은 그분에 대한 마음뿐만이 아니랍니다. 제국을 위하는 제 마음도 마찬가지예요. 제가 사명감을 가지게 됐다는 말을 했었나요? 네. 그때는 지금보다 더 사명감을 가지게 됐어요. 저는 미천한 신분으로 태어나 미천하게 자랐지만 세상에 미천한 삶이란 건 없었어요. 그분께서 직접 말씀해 주셨어요.]

[제 동생들도 저도 그리고 어머니와 할머님도 모두가 같다고. 황녀님과 저도 똑같은 인간이라고. 아주 예전부터 그분은 이걸 알고 계셨던 거겠죠. 그래서 제게 존대해 주셨던 거예요. 샤를리아와는 다르게 말이에요.]

[어머니.]

[어쩌면 위험해질 수도 있는 일을 해야 할 것 같아요. 저뿐만이 아닌 저와 뜻을 함께하는 제 동지들 모두가 위험해질 거예요. 그렇지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제 목숨을 던져서라도 어머님과 동생들이 살기 좋은 제국을 만들 테니까요. 피를 흘려야 할 때는 어쩔 수 없이 흘려야 한다고 그분께서 말씀해 주셨어요. 네. 처음에는 저도 무서웠지만 이제는 무섭지 않아요.]

[그분이 희생될 제국민을 위해 흘리신 눈물만큼이나 저도 제 모든 걸 던질 준비가 되어 있어요. 더 이상 그분의 눈에서 눈물이 나오게 하지는 않을 거예요. 절대로.]

[네. 절대로. 제 모든 걸 바쳐서라도.]

[저는 모든 걸 던질 준비가 되어 있어요. 제가 죽더라도 제가 제국을 위해 흘린 피는 미래를 위한 자양분이 되어 있을 겁니다.]

[어머니.]

[저는 투쟁할 겁니다. 그 동안의 잘못된 상식을 바로잡고 그렇게, 민주주의를 위해. 대의를 위해. 신성한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할 겁니다.]

[삼 일 후에는 절대로 바깥에 나오지 마세요.]

[아무것도 하지 마시고 집에 계세요. 아마 그쪽으로 제 사람들이 갈지도 몰라요. 그들이 어머님과 동생들을 보호해 줄 겁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릴게요.]

[삼 일 후에는 절대로 바깥으로 나오지 마세요. 절대로요.]

[제국의 수도에서 오스칼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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