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7
회귀자 사용설명서 287화
반쪽짜리 혁명(2)
-뜻을 함께 해주시는 친애하는 동지 여러분. 이렇게는 처음 인사드리는 것 같습니다. 저를 만나신 분들도 계시고 간접적으로 저를 알고 계시는 분들도 계실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정식으로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제 이름은 오스칼. 신성한 민주주의의 저자이자 부족하지만 시민혁명단의 수장직에 앉아 있는, 여러분들과 같은, 평범한 제국민 중에 한 사람입니다.
* * *
“저… 샤를롯트 님.”
“저도 보고 있습니다. 제가 지금 눈으로 보고 있는 게….”
“명, 명예주교 측에서 준비한 것 같습니다.”
“환상 마법인가요?”
“아마 아닐 겁니다, 황녀님. 이런 대규모의 환상 마법을 보인다는 건 설사 대마법사라고 해도 불가능합니다. 어느 정도 준비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이건 대체….”
“…….”
“…….”
“영상. 영상이에요.”
“네?”
“마력으로 이루어진 영상이란 겁니다. 언젠가 이방인들이 사는 도시에 저런 게 있다는 걸 들었습니다. 네. 틀림없어요. 분명히 그럴 겁니다.”
“그건… 도대체….”
“자세한 설명을 드리기에는 시간이 없습니다. 분명 저걸 어디에선가 내보내고 있는 발신지가 있을 겁니다.”
“발신지 말씀이십니까?”
“네. 그대는 마법사가 아닙니까, 백작. 어딘가에서 마력의 흐름이 느껴지지는 않습니까?”
“죄, 죄송합니다. 수도 내에 있는 마력의 파장을 누군가 꼬아 놓은 것 같아 제 능력으로는 어떻게….”
“멈춰야 합니다. 저걸 내보내서는 안 돼요. 절대로. 절대로! 많은 피가 흐를 겁니다. 백작! 빨리 저걸 멈춰야 해요. 멈춰야 합니다. 아아… 이걸 어떻게….”
“이미… 느, 늦었습니다. 어떻게 수습 할 수가….”
* * *
-놀라지도 당황하지도 않으셔도 됩니다. 친애하는 시민 여러분, 여러분이 지금 보는 것은 환상 마법이 아닙니다. 모든 인류를 평등하게 바라보시는 베니고어 여신님이 저희를 위해 내려주신 선물이며 친애하는 동지 여러분들을 하나로 묶어 일으킬 수단입니다.
저희가 볼 수 없는 것들을 비쳐주시는 베니고어 여신님의 거울이며 축복입니다.
* * *
“이기영 명예주교…. 이기영 명예주교는 어디… 어디 있느냐.”
“오, 오늘 린델로 들어갔다고 들었습니다, 폐하. 잠깐 밀린 일을 하고 돌아오신다고….”
“저… 저건 도대체… 지금 이 현상에 대해 설명할 수 있는 이가 있으면 당장 불러오라. 아무나 좋다. 아무나….”
“오스칼입니다, 폐하. 지금 저 위에 보이는 이가 바로 오스칼입니다.”
“그건 나도 알고 있다. 어째서 저자의 얼굴이 하늘에 떠 있는지에 대한 것을 물어본 것이다. 이 아둔한 것아! 궁정 마법사들은 뭘 하는 게냐. 누구라도 저걸 멈추게 하라. 지금 당장!”
“폐하. 고, 고정하시옵소서. 지금 궁정 마법사들이 방도를 찾고 있습니다.”
“신이시여… 신이시여….”
* * *
-친애하는 동지 여러분. 여러분들이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판단해 주십시오. 그리고 직접 움직이셔야 합니다. 지금까지의 신성제국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저희를 미천한 핏줄이라며 무시하고 자신들을 고귀하다 부르짖는 귀족들의 진짜 모습이 어떠한지. 이들이 얼마나 지독한지! 여러분이 직접 확인하고 판단하셔야 합니다. 지금부터 저 오스칼이 여러분들께 보여드릴 장면은 다소 충격적이고 잔인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며 저희들의 삶 그 자체입니다. 부디 눈을 돌리지 말고 똑바로 바라봐 주셨으면 합니다. 저희가 지금까지 어떤 곳에서 살고 있었는지 부디 제대로 직시해 주셨으면 합니다.
* * *
“아주 좋아.”
담담히 입을 여는 아리스 시녀의 모습이 보였다.
잘해줄 거라고 생각했지만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침착하게 분위기를 이끌어 주고 있다.
갑작스럽게 등장한 마력 홀로그램에 당황한 이들을 진정시키고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이방인은 막스와 정하얀이 선보인 새로운 기술에 무척이나 놀란 기색이었다.
아리스 시녀가 신의 선물이라고 입을 연 것이 유효했는지 제국민들 역시 빠른 시간 내에 평정을 되찾고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화면 안에 선 오스칼은 굳이 다른 주석을 붙이지는 않았다.
자기소개를 하고 담담히 함께해 줄 것을 청한 뒤, 이후에 나오는 장면을 봐주길 종용하고 있었다.
옳은 판단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이런 영상에 불필요한 코멘트가 필요할 리가 없다.
앞으로 눈앞에 보일 있는 장면은 그 자체로도 충분히 파괴적이고 위력적일 것이다.
오스칼의 얼굴이 사라진 이후 그 자리를 대신한 것은 부패한 귀족들의 단면.
팝콘이 필요할 정도로 상황이 재미있어지고 있었다.
소도시 바인에 절대 권력으로 군림하고 있는 하이안 남작.
제법 이미지가 좋다고 할 수 있는 대도시 바티칸에 카리브 공작.
높은 세율로 인해 이미 많은 원성을 사고 있는 부쉬 백작.
그 외 많은 이들이 블랙마켓의 VIP들이다.
“푸흐하하하핫.”
언젠가는 써먹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명단.
이런 상황에서 터뜨리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건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으리라.
처음에는 두려움.
그 다음에는 호기심.
그 이후에는 분노.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분노하고 있는 이들이 상상된다.
당장 우리와 함께 있는 이들도 손발을 부들부들 떨고 있는 상황.
저런 장면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데 화가 나지 않는 것이 이상하리라.
-꺄아아아아악!! 아아아악!!!
-아아아아아악! 제발… 제발!
캐슬락 지하에 있는 블랙마켓은 문을 닫게 되겠지만 어차피 돈을 벌어들일 수 있는 곳은 많다.
이번 일이 끝나면 제국 내에 있는 대부분의 인간이 청소될 테니 수요도 줄어들 것이다.
타국을 상대로 새로 장사를 시작하는 게 좋을 것 같은 느낌.
사실 모든 귀족이 저런 것은 아니고, 영상으로 비춰지고 있는 모습 역시 약간의 편집과 과장을 거치기는 했지만 대중에게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어차피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눈으로 본 것만 믿게 마련이다.
차마 영상을 보지 못하겠는지 눈을 돌리는 있는 동지들의 모습도 눈에 띈다.
-하하하…. 이거 스트레스가 풀리는 것 같습니다, 공작님.
-이곳에서는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백작.
-아. 죄송합니다. 제가 그만…
-하하. 괜찮습니다. 괜찮아요. 농한 번 던져 본 것뿐이니 그렇게 고개 숙일 필요도 없습니다. 제가 조금 예민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 백작 말이 맞습니다. 정말로 스트레스가 풀리는 기분입니다. 제국을 위해 중요한 일을 하는 만큼 가끔 이렇게 머리를 깨끗하게 하는 것도 중요하지요. 이곳도 사실 옛날 같지는 않긴 하지만 그래도 이런 곳이 있다는 게 위안이 됩니다.
-사실 저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공작님. 확실히 요즘은 밋밋하긴 하지요. 해서 제 영지에는 따로 공간을 만들어 두었습니다. 공작님께서도… 아니, 제국민에게 존경받는 공작님께서는 힘드시겠군요.
-인간 같지도 않은 이들의 존경을 받는 게 뭐가 그리 대수라고… 쯧. 이게 다 우리 아들 녀석 때문입니다. 저도 마음 같아선 부쉬 백작 같이… 아! 이건 궁금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부쉬 백작의 영지가 세율이….
-네 높지요. 높습니다. 그렇지만 뭐, 다른 방법이 있겠습니까. 다른 영지에서는 너도나도 이방인들을 들이고 있는데. 사실 제 입장에서는 그들을 도저히 영지 내로 들이기 싫어서 말입니다. 힘만 센 놈들이지 그들 역시 천한 피를 타고난 자들이 아닙니까. 영 마음에 드는 곳이 없습니다. 황제폐하께서도 좀 그렇지요. 그들에게 작위를 내린다 만다 하는 것부터가 이미 저희들에겐 굴욕이 아닙니까. 별 수 있겠습니까. 다른 영지에 뒤처지기 싫으면 영주민들을 쥐어짜내는 수밖에 없지요. 하하하하. 그러고 보니 공작님께서도?
-저희 영지는 조만간 개방하게 될 것 같습니다. 백작, 시대의 흐름이 이런데 어떻게 거부하겠습니까. 다른 이들에게 뒤쳐질 수는 없지요. 사실 저도 그들이 전부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지만 종종 괜찮은 이들이 있기는 있습니다. 그 -------말입니다. 다른 이방인들답지 않게 제법 좋은 구석이 있더군요. 아주 사람이 된 사람이에요.
-아아아아… -------들어봤습니다. 확실히 그런 소문이 있더군요. 저는 애초에 그들과 담을 쌓고 사는 터라… 공작님이 그렇게 까지 말씀하시니 언젠가 한번 일정을 잡아 봐야겠습니다.
이기영 명예주교라는 이름 정도는 음성 처리해 주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백작. 그렇게 세율을 높이면 말입니다. 제국민들이….
-하하하. 당연히 재고해 달라는 청원이 올라오지요. 뭐, 그런 것 따위는 가볍게 무시하면 그만입니다. 공작님, 어차피 그 미천한 놈들은 개 돼지들입니다. 가볍게 무시하거나 잘근잘근 밟아주면 알아서 조용해집니다.
어디서엔가 들어본 대사를 치는 꼴은 가관.
대본을 줘도 저것보다 잘해내지는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일부 부패한 귀족들이 평소에 이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는 잘 보여주는 그림이라 할 수 있으리라.
-반발이….
-그럼 더욱더 세게 밟아주면 되지요. 공작님, 이놈들은 말입니다. 마치 잡초와도 같아서 뿌리까지 뽑아내지 않으면 계속 계속 자라납니다. 한 번 밟을 때 제대로 밟아 줘야지요. 애초에 신분 자체가 다르다는 걸 계속해서 인식시켜 줘야 하고 가축 다루듯 다루면 알아서 조용해집니다. 하하하. 어떠십니까 ,공작님 흥미가 있으시면 언제 한번….
-시간이 된다면 한번 들려보도록 하지요.
-만약 방문하신다면 최선을 다해서 모시겠습니다. 하하하.
현재 집결해 있는 모든 동지가 저 걸 보면서 분노할 거라고 장담할 수 있었다.
영상이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시야에 비치는 모습들은 가관.
애초에 저것 하나만 준비된 것이 아니다.
한 번 터뜨릴 때 제대로 터뜨려야겠다는 생각을 한 만큼 이 제국에 있는 이들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줘야 한다.
배가 산처럼 나온 귀족들이 온갖 산해진미를 쌓아두고 먹는 모습은 기본으로 깔려 있다.
굶주린 제국민들을 대비해서 보여주는 연출은 마치 비극적인 독립영화 같다.
아녀자를 희롱하는 귀족.
-제… 제발 그만해 주세요. 제발 부탁드립니다.
아무 죄 없는 이들을 잔인하게 처형하는 귀족.
-살려주십시오. 살려주십시오. 제발….
손녀 뻘 되는 이들에게 더러운 짓거리를 일삼는 쓰레기.
가난한 제국민, 차별받고 억압받는 지식인.
몬스터 사냥에 동원된 소년병과 그 최후.
각계각층을 위한 배려도 빼놓지 않는다.
이방인들을 무시하는 발언을 일삼는 이들이나 교황청에 대해 불만과 폭언을 퍼붓는 이들까지.
애초에 이방인이나 바젤 추기경은 분노가 아닌 필요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겠지만 동기야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파노라마처럼 튀어나오는 마력 홀로그램이 저들의 혼을 빼앗기에 충분한 것은 당연지사.
수도 전체가 순식간에 조용해진다.
놀라울 정도로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다.
살짝 다가온 이지혜가 조용히 입을 열어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오빠, 이거 제국 전체에 송출되고 있는 거 맞죠?”
“응. 정확히 말하면 각 본부에서. 다른 지역에 있는 우리 동지들은 이곳의 상황도 같이 지켜보고 있고… 신호탄은 오스칼 님이 쏘아주실 테니 동시다발적으로 움직여야지.”
“오빠 말이 맞았어요.”
“뭐가.”
“지금 분위기 보이죠? 샤를롯트가 이걸 진정시킬 수 있다면 저는 그녀를 신이라고 부를 거예요. 진심으로요. 무혈혁명은 이미 물 건너갔어요. 만약 샤를롯트가 이걸 보고 있으면 틀림없이 표정을 구기고 있을 거예요.”
대화를 나누는 와중에 영상은 절정을 향해 달려갔다.
영상에서 비치는 얼굴은 다름 아닌 제1황녀 샤를리아의 얼굴이다.
미친 광녀의 활약상은 마치 1,000만 관객 영화의 주연배우처럼 스크린을 가득 채우기 시작.
대단한 장면이 너무 많아 편집하는 데도 상당히 애를 먹었다.
시녀의 뺨을 후리는 것은 물론 그들을 모욕하고 사치품으로 몸을 치장한 모습은 누가 봐도 악녀다.
이쯤에서 내가 좋아하는 장면과 대사가 나온다.
기대감에 가득 찬 얼굴로 다시 고개를 들자 꽤나 비위 상하는 표정으로 명대사를 내뱉은 그녀의 얼굴이 시야에 비쳤다.
-제국민들이 먹을 빵이 없어? 하핫.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잖아? 뭐 그런 걸 고민을 해?
이지혜 역시 기가 차는지 다시 한번 이쪽에 질문을 던져온다.
“진짜 저딴 소리도 했었어요?”
“당연히 주작이지. 누나.”
그렇기 때문에 효과가 있다.
저 주작은 역사가 인정한 주작 중의 주작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