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 사용설명서-290화 (289/1,590)

# 290

회귀자 사용설명서 290화

반쪽짜리 혁명(5)

사방이 불길로 둘러싸여 있었다.

여러 비명이 터져 나왔고 입술을 꽉 깨물며 흘러내리는 투구를 고쳐 잡을 수밖에 없었다.

자꾸만 시야를 가리니 불편하다.

숨소리가 더욱더 거칠어지는 것은 물론 입에서는 괜스레 욕지기가 튀어나왔다.

“제기랄. 제기랄….”

“발사! 발사하라! 저들은 제국민이 아니라 마녀에게 홀린 반역자들이다! 화살을 멈추지 마라! 절대 황성으로 들어오게 하지 마라! 손에 인정을 두지 마! 저들을 이곳으로 오지 못하게 하라!”

‘반역자. 반역자야.’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쉽사리 활시위가 당겨지지가 않는다.

아마 비슷한 기분을 느끼고 있는 것은 자신뿐만이 아닐 것이다.

바로 옆에 있는 동료 역시 화살을 당기지 못하고 있었다.

제발 맞지 말라고 기도를 드리며 하늘로 쏘아 보내는 게 고작이다.

‘제기랄! 제길! 씨발!’

“하늘을 바라보지 마라! 악마의 속삭임이다. 베니고어 여신의 축복이라는 것은 거짓된 이야기다! 저건 여신의 거울이 아니야! 오스칼의 말은 전부가 거짓말이다! 그들의 말에 현혹되어서는 안 된다. 아무것도 믿지 마! 오직 황제 폐하만이 옳다! 당황하지 마라! 당황하지 마!”

거침없이 소리를 내지르지만 백인장 역시 얼굴에 불안함이 감돌았다.

당황하지 말라고 연신 입을 열고 있는 것을 보니 어쩌면 본인에게 전하는 메시지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아마 자신 역시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끼고 있을 것이다.

‘악마의 속삭임은 무슨!’

정말로 황성에서 말한 것처럼 저 것이 악마의 속삭임이라면 지금쯤 교황청의 이단심문관들이 저들을 막으러 나왔어야 했다.

심지어 일부 사제들 역시 제국민들과 함께하는 상황.

이방인 사제뿐만이 아니라 실제 교황청에서 기도를 드리는 사제들 역시 함께하고 있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공식적인 발표는 없었지만 교황청에서도 저들이 틀리지 않았다고 판단한 것이 틀림없으리라.

만약에 교황이나 다른 추기경들 역시 눈앞에 있는 여신의 거울을 확인했다면 어떤 이가 선이고 어떤 이가 악인지 제대로 인지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거짓말이 아니야.’

저것은 절대 거짓이 아니다.

실제로 부쉬 백작이 다스리는 영지에서 나고 자란 자신은 그곳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굶주린 제국민과 자신의 배를 채우기 바쁜 귀족.

오늘 하루도 제발 잘 지나가기를 걱정하며 살아야 했고 매일 밤 다른 사건이 생기지 않기를 베니고어 여신께 기도 드려야 했다.

어째서 우리의 삶은 이토록 비참한가.

정말로 베니고어 여신님이 계시다면 어째서 우리들을 돌보아 주지 않으신가에 대해 매번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저들이 맞는 거야.’

신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다. 문제가 있는 것은 여신을 반역한 귀족과 황족들이다.

‘여신의 아래 만인은 평등하다.’

베니고어 여신님께서 처음부터 귀한 자와 귀하지 않은 자를 구분하셨을 리가 없다.

여신의 거울은 여신이 민중에게 내린 깨달음의 성서이며 무기이다.

깨어 있지 않은 모든 민중을 계몽시키기 위해 내리신 장치다. 자꾸만 그런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고 있었다.

민중을 인간으로 여기지 않고 개돼지로 여기는 것은 물론 수탈해야만 대상으로만 보고 있는 귀족.

제국민의 세금으로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는 황족.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된다고? 무슨… 미친 소리를 하고 자빠진 거야.’

‘그게 무슨 미친 소리야!’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냐고….”

아직도 북부나 서부의 외곽에 있는 도시에는 빵은커녕 풀죽도 먹지 못하는 민중이 수천, 수만이다.

수도로 오기 전에는 케이크 같은 것은 동화 속에서나 나오는 것인 줄로만 알았다.

지금 자신이 받고 있는 봉급으로도 사려면 각오를 해야 하는 종류의 사치품이다.

언제나 항상 민중을, 제국민을 생각한다고 말하지만 정작 황족들은 자신들이 어떤 생활을 하는지 관심조차 없었다.

귀족들이, 황족들이, 이 제국의 기득권이라고 할 수 있는 자들이 어떤 생활을 하고 있는지 그 단면을 본다면 이상한 일도 아닐 것이다.

청렴하고 사치를 하지 않기로 유명한 제2황녀 샤를롯트 님 역시 평민의 기준으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금액을 품위 유지비로 사용한다.

단언컨대 황족이 가지고 있는 금고를 해방한다면 수만 명의 제국민이 굶주리지 않고 살 수 있으리라.

“일어나야 합니다! 함께 일어납시다! 이 제국은 황족의 것이 아닙니다. 베니고어 여신님의 것이며 모든 제국민의 것입니다!”

“오스칼 님을 따르자!”

“신성한 민주주의를 위하여!”

깃발을 든 채 민중을 이끄는 오스칼의 모습은 매번 듣던 모습과는 다르다.

그녀의 인상은 마치 자유의 여신처럼 강렬했다.

사제들이 내보내는 축복과 신성력 속에서 빛을 받고 있는 황금색 머리카락을 가진 여인.

그 모습은 숭고하기까지 하다.

저도 모르게 하늘 위를 바라보자 여신의 거울에 새로운 이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

시야에 비친 것은 아직 어린 소녀였다.

커다란 깃발을 제대로 들지도 못하는 소녀.

조금 일찍 결혼해 아이를 낳았다면 아마 딱 저 정도의 딸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착잡한 마음에 다시금 고개를 들었을 때 보인 것은 자신과 같은 갑옷을 걸치고 있는 제국의 병사.

비열하게 입꼬리를 올리며 여신의 이름을 부르짖는 소녀를 향해 시위를 당기고 있는 모습에 저도 모르게 입에서는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안, 안 돼!”

‘어린 아이까지 쏘는 건가…!’

자신 역시 제국의 병사라는 입장에 있다.

하지만 저런 소녀를 향해 시위를 당길 이유가 무어 있단 말인가.

입술을 깨문 입에는 힘이 들어가고 손은 부들부들 떨려온다.

불행인지 다행인지는 모르겠지만 소녀의 앞을 가로막은 한 남자 때문에 소녀가 목숨을 건지는 모습이 보였다.

그렇지만 화살에 맞은 남자는 비틀거리며 땅바닥에 쓰러지기 시작.

천천히 눈을 감는 모습을 바라보니 괜스레 가슴이 먹먹해진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신성한 민주주의여… 만세.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가.

‘제길.’

지금 나는 이곳에서 무엇을 하고 있나.

모든 민중이 싸우고 있다.

심지어는 이전 기득권이라고 할 수 있는 귀족들 역시 시민혁명지지선언문을 낭독하고 있고 제국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이방인들 역시 여신의 뜻에 하나가 되어 성스러운 검을 들고 있다.

어째서 저들의 편에서 함께 검을 들지 못하고 저들을 향해 화살을 쏘아야 하는지.

어째서 우리들을 괴롭히고 억압한 이들을 지켜야 하는지.

그 어떤 것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다른 생각은 하지 마.”

“선배님.”

“마이크, 널 위해서 하는 말이야. 다른 생각은 하지 마. 우리는 운이 없었던 거야. 어쩌다가 저들의 반대편에 서게 됐을 뿐이야. 지금 우리가 이대로 등을 돌린다면 제국민이 아니라 뒤에 있는 기사의 검에 맞아 죽을 거다. 너뿐만이 아니야. 지금 당장 이 자리를 뛰쳐나가고 싶어 하는 이들이 적어도 몇 천은 넘을 거다.”

“그렇다면 어째서….”

“그게 우리 같은 놈들의 삶이다, 마이크. 바람이 불고 파도가 치는 대로 이리저리 끌려 다니는 거…. 그게 우리 삶이야. 나라고 좋아서 활시위를 당기고 있는 것이 아니야.”

“여신님이 천벌을 내릴 것입니다, 선배님. 죽어서도 편해지지 못할 거예요.”

“아니. 여신님도 용서해 주실 거다. 그래… 분명히 용서해 주실 거야.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그렇게 등을 두드려 주실 거다.”

“그렇지만….”

“…….”

“…….”

콰드드드득!

콰아아아아아앙!

“멈추지 마라! 손을 멈추지 마!”

“여러분들도 제국민입니다! 함께 일어나 싸웁시다! 그대들의 검이 향해야 할 곳은 같은 제국민이 아닙니다! 황실의 병사, 기사들이여. 같이 일어납시다. 같이 싸웁시다!”

“아아아악! 방어 마법을 준비해!”

“적들의 말에 귀 기울이지 마라! 지금 당장은 폐하를 지키는 것만 생각해야 한다. 폐하를!”

“그대들의 황제는 어디에 있습니까! 무엇을 위해서 싸우고 있는 겁니까! 제국의 병사들이여!”

“마녀다! 오스칼은 마녀야! 차라리 귀를 막아라! 귀를 막아! 제국의 병사들이여! 황제 폐하의 검이 되기로 충성을 맹세한 사실을 잊지 않았다면 화살을 퍼부어라! 악마에게 홀린 이들을 구원하라!”

“사제! 사제를 불러!”

“우리는! 그대들을 향해 검을 드는 것이 아닙니다! 무기를 내리세요! 무기를 내리고 여신의 뜻을 가슴에 품고 싸우세요!”

“황제 폐하를 지켜!”

“제가 여러분들을 지켜드리겠습니다! 제가 함께하겠습니다!”

여러 가지 목소리들이 뒤섞여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사이에 폭음과 비명들이 계속해서 섞여서 들려오고 있다.

백인장의 말 그대로 차라리 귀를 막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래. 어쩔 수 없는 거야.’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황제 폐하를 위해 싸우기로 여신님께 맹세했다.

그 맹세를 저버릴 수는 없다.

선배의 말대로 이곳에서 죽더라도 여신님은 이해해 주실 것이다.

어쩔 수 없었다고 잘했다며 등을 두드려 줄 것이다.

입가가 일그러지고 손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

의외의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황제가 황성을 빠져나간다!”

‘어?’

“황제와 샤를리아 황녀다! 황성을 빠져나가고 있다!”

‘그… 그게 무슨….’

다시 한번 고개를 위로 올리자 여신의 거울이 비추고 있는 그들의 모습이 보였다.

기사들에게 둘러싸인 채 빠르게 황성의 뒷문으로 빠져나가고 있는 모습은 가관.

그들뿐만이 아니다.

황성에 머물러 있던 일부 귀족들 역시 마찬가지.

가장 안전한 장소에서 숨어 있던 것으로 모자라 싸움이 벌어지려고 하는 이곳을 벗어나는 것이다.

“이 나쁜 개새끼들! 이 더러운 놈들아! 네놈들이 그러고도 제국을 다스린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냐!”

저게 바로 자신이 충성을 맹세한 대상이다.

이 커다란 제국의 절대자로 군림하던 이의 모습이다.

눈에 불꽃이 튄 것은 당연지사.

저도 모르게 화살을 조준해 여신의 거울에 비친 황제에게 쏘아 보냈을 때였다.

툭.

하는 소리와 함께 무엇인가에 맞은 화살이 맥없게 바닥으로 떨어진 것.

“어….”

“저게… 뭐야….”

커다란 그림자가 점점 수도에 드리우는 것이 보인다.

방금 전까지 볼 수 있었던 여신의 거울은 무언가 거대한 물체에 가려 보이지도 않는다.

마치 밤이라도 된 것처럼 잠깐 동안 해를 가린 생명체의 모습은 가히 압권.

어떻게 저렇게 거대한 몸을 가진 이가 하늘에 떠 있을 수 있는지 제대로 이해하기 힘들 정도였다.

“아아아… 아아….”

저게 무엇인지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다.

이야기 속으로만 내려오던 존재.

“진짜… 진짜 있었어.”

주변에 있는 다른 병사들 역시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며 중얼거리기 시작.

콰드드드드득! 콰지지지지지직!!

병사들을 그대로 지나친 이후, 거대한 발톱이 황성에 박힌다.

후드득 후드득 황성의 파편들이 바닥으로 떨어지기는 하지만 그 거대한 생명체는 황성의 위를 자신의 둥지인 양 점거하기 시작했다.

그워어어어어어어!

피부가 진동해 올 정도로 거대한 소리가 땅을 울리고 그 하울링에 시끄러웠던 장내가 순식간에 조용해진다.

‘드래곤.’

어째서 저런 생명체가 이곳에 있는지는 뻔할 뻔자.

용에게 선택받은 이방인.

제국 8좌이며 신성제국의 명예주교.

보기만 해도 오금이 저리는 드래곤의 머리 위에 작은 인간이 뿔을 잡은 채로 중얼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어딜 그리 바삐 가십니까, 황제 폐하.”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