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4
회귀자 사용설명서 294화
반쪽짜리 혁명(9)
뒷정리는 내 생각보다 더 빠르게 진행됐다.
민중들은 제국의 신 기득권으로 자리 잡은 우리들에게 열렬히 환호했고 시민혁명단은 오늘의 승리를 기리며 고함을 내질렀다.
오스칼의 말대로 민중의 승리였고 제국민의 승리였다.
내 생각은 조금 다르기는 했지만 그들의 생각에 초를 치는 선택지는 없었던 것이 당연.
대다수의 민중이 이 혁명을 자신들이 이루어냈다고 생각하는 것이야 말로 내가 지향하는 바였다.
‘그게 좋지. 그게 좋아.’
어떻게 생각해도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상황.
곧바로 단두대를 가지고 와 여신의 반역자들의 목을 치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는 있었지만 혁명단의 간부나 귀족, 특히나 샤를롯트는 그런 야만스러운 일처리를 원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의 처리는 어디까지나 합법적으로 이루어졌어야 했고 또한 인도적으로, 민주적으로 이루어져야 했다.
표면적으로는 정당한 재판을 받아야 한다는 거다.
물론 이 재판은 신 기득권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겠지만 이번 정권은 무언가 다를 거라는 희망을 심어주는 게 중요했다.
당장 단두대에 목이 날아가든 며칠 후에 목이 날아가든지 간에 어차피 결과는 같다.
중요한 것은 ‘어떤 이가 처형을 당하고 어떤 이가 축배를 드느냐’ 였다.
‘승자의 편에 선다는 건 달콤하지.’
샤를리아나 황제는 어쩔 수 없었지만 줄을 잘못 탄 대다수의 귀족 역시 목이 댕겅 날아가게 생겼다.
사실 이번 혁명에서 그나마 긍정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부분이다.
샤를리아를 중심으로 한 능력 없는 쓰레기들을 한 번에 정리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샤를롯트 역시 이 의견에는 반박하지 못하리라 확신할 수 있었다.
피가 흐르기야 했지만 제국민을 착취하고 수탈하던 귀족들이 완전히 사라졌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아직 혁명이 완전히 마무리 되지 않은 도시들이 있지만 늦어도 오늘 새벽, 아니면 내일 아침 즈음에 점을 찍을 수 있을 것이다.
제국의 암 덩어리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을 한꺼번에 도려냈으니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제국민들 좋고, 나도 좋고, 모두가 윈윈 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었다.
싸구려 술을 들이켜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점점 더 즐거워진다.
슬그머니 옆자리를 차지한 이지혜도 입꼬리가 사정없이 올라가 있는 걸 보니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모양이다.
“기분 좋아 보이시네요.”
“나쁘지는 않아.”
“오빠.”
“응?”
“한참 즐거운 시간에 미안하긴 한데, 잠깐 일 이야기 좀 해도 괜찮죠? 지금 당장 처리해야 되는 일이 몇몇 있어서요.”
“물론이지, 누나.”
“음…. 일단 황성에 보관해 놓은 곡식이나 재화 문제예요.”
“중요한 건 따로 체크해서 보관하고 나머지는 알아서 해도 될 것 같아. 품목별로 분류해서 정말로 이쪽의 도움이 될 것 같은 물건들은 미리 보관해 두고….”
“으음… 그럼 오빠 말대로 재화들이랑 황성의 창고에 보관되어 있는 것들은 일단 킵하고 곡식들은 전부 개방하는 게 좋겠네요. 당장은 승리에 취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으니까. 그래도 조금 남을 것 같은데….”
“그럼 귀족들이나 조금 챙겨줘. 서부나 남부 귀족들도 잔뜩 쌓아두고 있을 테니 당장 모자라지는 않겠지, 뭐. 그보다 밖은 어때? 처리는 잘 됐어?”
“안 그래도 시체 옮기느라 바빠요. 서둘러 마무리했다고 생각했는데 예상했던 것보다 조금 더 죽었네요.”
“별 수 없지. 황성이 보유하고 있는 기사나 마법사도 호구가 아니니까. 그나마 희라 누나가 빅터하르트 영감을 붙들고 있어줘서 다행이었지. 그게 아니었다면 상황이 조금 더 힘들어졌을걸. 그 할아버지가 전선에 나선다고 해도 제국민을 베는 그림이 잘 그려지지는 않지만… 그래도 그 영감은 제국의 상징 중 한 사람이니까.”
“그렇긴 하죠.”
“아. 그리고 사망자들은 전원 국립묘지에 안치해 줘, 누나. 황성 쪽 불필요한 공간 싹 밀어버리고 구석 쪽에 민주투사 국립묘지 하나 만들어 놓는 것도 좋겠네. 추가로 우리 민주투사 아르기모랑 바크더쿠 무덤도 잊지 말고. 조금 중요한 인물들은 비석이라도 좀 큰 거 세워주고.”
“그것까지는 너무 힘든데…. 일 너무 떠맡기는 거 아니에요? 안 그래도 바쁜데….”
“나도 나름대로 해야 할 일이 있다니까.”
“글쎄요. 그렇게 보이지는 않은데… 한가하게 술이나 마시고 있는 사람이 할 말은 아니잖아요.”
“이게 다 사회 생활이라니까. 아마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본격적으로 바빠지게 될 거야. 원래 이런 건 시작하는 것보다 뒷처리 하는 게 더 어려우니까.”
그 말 그대로.
사실 신경 쓸 것이 한두 개가 아니다. 재산피해를 최대한 줄이려고 하기는 했지만 제국 전역에서 민중들이 들고 일어선 만큼 그 피해 액수가 어마어마할 것이다.
당장은 내가 가지고 있는 개인 재산과 황성에서 쌓아두고 있던 재화 그리고 교황청의 성금 등으로 버틸 수는 있었지만 생산시설 자체가 망가져 버린 도시의 경우에는 문제가 조금 더 심각했다.
쓸 만한 기사들이 죽었다는 것 역시 문제라고 할 수 있는 부분.
기사 하나를 만들기 위해 들어가는 재화를 생각해 보면 그 피해가 막중한 셈이다.
첫 등장 빼고는 안전한 후방에서 편안한 생활을 즐긴 만큼 실제로 일어나는 전투현장을 자세히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전투가 끝난 이후의 제국의 모습은 확실히 처참했다.
단칼에 썰려나간 제국민들도 많이 보였고 미처 마법으로 보호하지 못한 이들이 완전히 타버린 모습도 종종 보였다.
사실 그들보다 더 처참했던 것은 여신에게 반기를 든 황제의 병사들.
마지막 열차에도 탑승하지 못한 이들은 보는 내가 구역질이 나올 정도로 끔찍하게 죽어 있었다.
그만큼 민중의 분노가 컸다는 것을 보여주는 지표이리라.
물론 이방인 중에서도 사망자가 나오기는 했다.
이름난 기사나 마법사들을 상대하기 위해서였으니 어쩔 수 없는 희생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기는 했지만, 제국 8좌나 린델의 갈오식, 임리단 같은 네임드들은 목숨을 잃지는 않았다.
만약 황제가 도망가는 모습이 실시간으로 방영되지 않았더라면 전투가 조금 더 길어져 더 큰 전력 피해가 생겼을 수도 있을 것이리라.
사실 이런 내부의 문제 같은 경우에는 시간이 지나기만 한다면 어떻게든 수습할 수 있다.
이런 걱정 아닌 걱정은 이런 내부의 문제로 일어날 외부에 문제에 있다.
‘공화국, 왕국 연합, 이종족 왕국.’
외세세력이 혁명에 숟가락을 올리거나 혼란을 틈타 공격해 들어오는 것은 방지하기는 했지만 현재의 신성제국은 전력이 깎였다면 깎였다고 말할 수 있는 상황에 처해 있다.
왕국 연합 쪽에서 이 혁명을 어떻게 생각할지, 공화국은 갑자기 바뀐 정권에 어떻게 반응해 올지, 이종족들은 그들의 사절단을 보내올 것인지가 초유의 관심사였다.
대륙에 떨어진 묵직한 한 방.
모르긴 몰라도 지루했던 대륙의 정세를 뒤흔들기에 충분하리라.
긍정적인 방향인지, 부정적인 방향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알 수 없지만 말이다.
나도 모르게 슬그머니 시선을 돌리자 이지혜가 슬그머니 자리를 피하는 것이 보였다.
어차피 그녀 나름대로 정리할 일이 있었겠지만 갑작스러운 손님의 등장에 잠깐 동안 자리를 피해준 것이다.
“무슨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샤를롯트 님.”
묘하게 달아오른 얼굴.
한 손에는 술잔을 들고 있는 걸 보니 조금 취기가 올라온 것 같았다.
“자리를 옮겼으면 합니다. 조금 조용한 곳으로요.”
대놓고 취한 것 같은 목소리에 왠지 모르게 불안해지는 건 사실이었지만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내 쪽은 정하얀이 보고 있을 테고 박덕구 역시 나를 신경 쓰고 있을 테니 안전은 보장된다.
‘이 여자가 갑자기 칼침을 날려 올 리도 없고.’
뒤통수를 거하게 맞기는 했지만 생각이 있다면 그런 짓은 해오지 않을 것이라 확신할 수 있었다.
“네. 그렇게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이런 파티에서 숙녀를 에스코트 하는 건 신사의 기분이다.
살짝 손을 내밀자 꺼림칙한 표정으로 이쪽의 손을 잡는 모습이 시야에 비쳤다.
지난 번 악수와 마찬가지로 감정이 실려 있는 모양인지 그녀에게 내민 손이 아프다.
발걸음을 옮겨 거대한 창문을 열자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눌 만한 발코니가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한쪽에 자리를 잡았고 나 역시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여기서 밀어버리지는 않겠지.’
내가 한 짓이 있으니 자꾸만 무서운 생각이 든다.
하지만 조용히 말을 꺼내는 것을 보니 나를 죽이기 위해 이곳으로 부른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어째서 저를 살리신 겁니까.”
야밤에 대담이라도 하자고 부른 것 같은 느낌.
마침 심심하던 차였으니 어울려주는 것도 나쁘지는 않으리라.
물론 저 질문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에 대한 답은 서지 않았지만 적당히 대답하는 것 정도는 어떻게든 할 수 있다.
‘김현성이 너 살리래’라는 대답은 정답이 아니다.
“샤를롯트 님이 제게 했던 말과 비슷한 이유일 겁니다. 당시 제국에는 대중의 눈치를 보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하하. 딱 그런 이유입니다. 굳이 척을 질 이유도 없고요. 아. 그게 정답이라면 정답이라고 할 수 있겠군요. 대답을 바꾸겠습니다. 제가 당신과 굳이 척을 질 이유가 없었다는 게 이유입니다.”
“굳이 척을 질 이유가 없다니….”
“함께 혁명을 향해 달려온 동료가 아닙니까. 물론 당신과 제 방식에는 조금 차이가 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둘 모두에게 이상하는 결과가 만들어 졌습니다. 제국민은 승리했고 기존 기득권과 적폐세력은 힘을 잃었지요.”
“그리고 새로운 기득권과 적폐세력들이 그 자리를 차지했죠. 당신, 그리고 당신과 함께한 사람들이 말입니다.”
“원망하는 말투지만 그냥 웃으며 넘기겠습니다. 샤를롯트 님, 만약 이 혁명이 무혈혁명으로 완성되었다고 하더라고 새로운 기득권들과 새로운 적폐세력이 자리잡는 것은 피할 수 없었을 겁니다. 당신 휘하에 있는 귀족들이 당신과 같은 꿈을 가져 당신 곁에 있는 게 아니니까요. 물론 정말로 당신과 같은 이상을 실현시키기 위한 이들이 한두 명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나 당신 캠프에 있던 대다수의 귀족이 권력을 놓는 걸 선택하진 않을 겁니다.”
이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녀 역시 내 말에 공감하고 있는지 조용히 나를 바라보고 있는 얼굴이 시야에 비쳤다.
“이건 마약이나 다름없어요. 누군가의 위에서, 민중을 움직일 수 있는 권력은 마약이나 다름없습니다. 샤를롯트 님 같은 숭고한 이상가들은 잘 모르시겠지만 대부분의 귀족들은 제 말에 공감할 겁니다.”
“그래서 민중을 죽였군요. 당신이 마약이라고 부르는 그 권력 때문에 수많은 제국민과 죄없는 병사들이 죽어야 했던 거예요.”
“민중들은 제가 죽인 것이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그들이 원하는 가치를 위해서 싸운 것이지요. 민주투사들의 숭고한 희생을 의미 없다고 표현하시면 제국민들이 퍽이나 좋아하겠습니다.”
“그들은 그들이 원하는 가치를 위해서 죽은 것이 아닙니다. 당신은 제국민들을 세뇌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날조된 정보를 풀고 그들을 선동하며 벼랑 끝까지 몰아붙인 겁니다.”
“제가 몰아붙인 것이 아니라 이 나라의 귀족과 황족들이 저지른 짓입니다. 날조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여신의 거울이 비추고 있었던 것은 어디까지나 사실에 근거한 내용입니다, 샤를롯트 님.”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이렇게 까지 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발코니에 있는 테이블을 쾅하고 내려치자 금이 가는 것이 눈에 보였다.
상당 수준의 검술 실력을 가지고 있는 줄은 알았지만 실제로 저런 모습을 보니 조금은 무섭다.
그렇지만 이쪽도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샤를롯트가 정말로 원하는 그림이 뭔지는 알고 있었지만 내 욕심 이전에 반박하려고 한다면 얼마든지 반박할 수 없는 내용이다.
“그래서 당신이 원하는 대로, 정말로 명예혁명이 일어났었다면… 지금과는 많은 게 달라졌을 거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장담컨대 상황이 나빠졌으면 나빠졌지 좋아지지는 않았을 겁니다.”
“적어도 수많은 피가 흘러내리지는 않았을 겁니다. 아니, 그것 이전에 이런 여러 가지 상황에 직면하지는 않았을 거예요. 기존에 있던 생산 시설도 지킬 수 있었을 것이고 병력을 그대로 유지하며 타국의 개입에 저항할 수 있었을 겁니다. 왕국 연합에게 위화감을 심어주지도 않았을 거고 많은 제국민이 가족을 잃지 않아도 됐을 겁니다.”
“눈앞에 보이는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으리라는 의견에는 공감할 수 있지만, 부작용이 없지는 않았을 겁니다. 이건 의미 없는 죽음이 아닙니다, 샤를롯트 님. 절대로 의미 없는 죽음이 아니에요. 제국민이 피를 흘리고 제국민들이 직접 들고 일어났다는 게 중요한 겁니다. 만약 당신이 개입했다면 이 나라의 제국민들은 평생을 수동적으로 살았을 겁니다. 다음에 또 이런 상황에 직면했을 때 다시 한번 당신 같은 사람이 도와줄 거라고 생각해 움직이지 않을 거예요.”
“그건 비약입니다.”
“비약이 아닙니다, 샤를롯트 님. 당신은 알 수 없겠지만 이는 이방인들의 역사가 증명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학습하지 않으면 깨닫지 못하는 족속입니다. 지배자도 그렇고 피지배자도 마찬가지입니다. 피지배자들은 지배자를 자신의 손으로 한 번 끌어내려 봐야 해요. 당신 같은 이들의 도움 없이. 자신들의 왕을 죽여 봐야 합니다. 그게 역사적 학습입니다, 샤를롯트 님.”
“인간은 그렇게 멍청하지 않습니다. 당신이 인간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뇨. 인간은 멍청합니다. 모두가 당신 같이 이상을 바라보고 사는 게 아닙니다. 스스로 깨닫지 못하고 학습해야 알아듣는 인간들은 분명 존재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건 도움이 될 겁니다. 많은 피가 흘리기는 했지만 이건 틀림없이 큰 교훈이 되었을 겁니다. 이후 지배자들은 피지배자들을 두려워할 거고 피지배자들 역시 자신들이 지배자를 끌어 내려 그들의 목을 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할 겁니다. 샤를롯트, 당신은 이전에 대중의 눈치를 보는 정치를 할 줄 아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셨죠. 장담컨대 지금부터 총대를 멘 이들은 대중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가 없을 겁니다. 반쪽짜리 이기는 하지만 저는 제가 만든 결과물이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다 생각합니다. 저는 양심적인 사람이고 제국민을 수탈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이 승리는 제 승리가 아닌 제국민의 승리로 기억될 거고 이 역사는 영원히 제국민들의 가슴속에 남아 있을 겁니다.”
내 말을 듣고 다시 한번 입을 열어오려고 하는 샤를롯트가 시야에 비쳤다.
틀림없이 반박하고 싶을 것이고 반박할 말도 많을 것이다.
그렇지만 대화를 더 나눈다면 밑천이 털린 것 같은 느낌.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서자 입을 다물고 조심스럽게 말을 걸어오는 것이 시야에 비쳤다.
더 이상의 썰전이 의미 없다고 판단한 것은 나뿐만이 아니다.
“마! 마지막으로 질문 하나만… 더 드리겠습니다.”
“네.”
“당신이… 이방인들의 나라는….”
“네. 확실히 표면적으로는 국민에게 주권이 있는 나라가 맞습니다.”
“그곳은… 그곳은….”
“아아아. 무슨 질문을 하실지 알 것 같군요. 뭐… 제가 드릴 수 있는 말씀은 이것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
“여기든 거기든 어차피 기득권이라는 놈들이 하는 짓은 똑같습니다.”
산타클로스가 있을 거라고 믿는 소녀의 꿈을 부수기는 싫었지만 현실은 잔인한 법이다.
푸욱 고개를 숙인 샤를롯트의 뒤로하고 적당히 발걸음을 옮기자 나를 맞이하러 온 정하얀과 카스가노 유노를 볼 수 있었다.
모두들 각자의 방식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 같다.
괜스레 생각이 많아지기는 했지만 언제나 그렇듯 시간이 모든 걸 잊게 해줄 것이다.
각자의 방식과 각자의 방법으로 누구는 기쁨을 나누고, 누구는 후회를 곱씹을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 기득권들은 그 자리에 있을 거고 언제나 그렇듯 민중들 역시 그 자리에 있을 것이다.
평소와 다름없이.
늘 그랬던 것처럼.
그렇게 조금의 시간이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