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 사용설명서-298화 (297/1,590)

# 298

회귀자 사용설명서 298화

마력 능력치 99(1)

“오, 오빠! 해, 해냈어요!”

“아… 응….”

“드, 드디어 해냈어요!!”

잔뜩 흥분한 것 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소리만 그런 것이 아니다.

얼굴 역시 벌겋게 상기되어 있었다. 우다다 달려오더니 안아 달라는 듯 꽉 팔을 벌리는 모습은 가관.

이렇게 대놓고 달려온 적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조금은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살짝 팔을 벌려 등을 다독여 주자 킁킁거리며 더욱더 안쪽으로 파고들려고 하는 모습이 눈에 띈다.

‘평소대로네.’

평소대로다. 여전히 달라진 게 없긴 하지만 몸 안에서 요동치는 마력이 무척이나 신경 쓰인다.

‘마력 능력치 구십구….’

나도 모르게 되새김질하게 되는 그 이름. 어처구니없지만 내 눈으로 보고 있는 건 조작된 내용이 아니었다.

당황스러워 헛기침이 나올 정도, 물론 그녀가 성장할 거라는 건 예상을 했지만… 이토록 빠르게 올라올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애초에 특정 스탯이 90대로 들어서면 눈에 띄게 성장이 느려진다.

성장한계치가 영웅 등급 이상이라면 위로 올라가는 게 거의 불가능했고 전설 등급 이상이라고 하더라도 스탯 하나하나 올리는 것이 쉽지가 않다.

정하얀 같은 경우에는 90의 마력 능력치에서 전설 등급의 아이템과 주인의식에 성공해 능력치를 뻥튀기한 케이스.

순간적으로 마력이 올라가기는 했지만 당연히 비정상적인 성장 루트였고 부작용을 떠안을 수밖에 없었다.

빠르게 강해지고 싶다는 열망 때문에 스펙업을 선택하기는 했지만 자신이 점핑했던 길을 복습해야 하는 시간을 가져야 하는 상황이었다는 거다.

우여곡절 끝에 98의 마력 능력치를 손에 넣었지만 마력 능력치 1을 올리기 위한 시간은 약 3년에서 4년 정도를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 사실.

실제로 김현성 역시 정하얀이 가지고 있는 것들을 소화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릴 거라 판단했고 전설 아이템인 아네모네에서 숙지한 마법을 배우는 것에만 1년 정도의 시간을 쏟을 것이라 예상했다.

‘그걸 뒤집었어.’

그걸 완벽하게 뒤집었다.

정하얀의 현재 마력 능력치가 99라는 소리는 피로 물든 보석 아네모네에서 흡수한 마법능력을 전부 소화했다는 뜻이나 다름이 없다.

그걸로도 모자라 한계돌파를 감행한 셈.

최근에는 마법을 붙잡고 있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이렇게 갑자기 성장할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이거였구나.’

그동안 조용하던 이유가 이거였다. 모르긴 몰라도 자기 자신에게 무슨 제약이라도 걸어놨던 모양.

자세한 내용은 내 알 바 아니지만 목표를 달성할 때까지 자제하기 같은 자신과의 약속이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기뻐하며 박수를 보내야 하는 게 당연했지만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이 명실상부 초인의 반열에 올라갔다고 생각하니 왠지 모르게 표정이 잘 펴지지 않았다.

‘어디까지 올라온 거지.’

전투력 측정이 잘 되지 않는다.

‘X발… 김현성보다 센 건 아니겠지.’

그건 아니다.

정하얀의 성장 밸런스는 지나치게 마력과 지능에 특화되어 있었고 애초에 마법사의 대인전은 검사나 전사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조차 없다.

그렇지만 적어도 화력 면에서는 밀리지 않을 것이라는 게 개인적인 판단. 전투력 측정기 박덕구를 활용해 보고 싶지만 아무리 박덕구라도 지금의 정하얀의 마법을 맞으면 순식간에 통구이가 되어버릴 것이다.

단순 화력만 생각해 본다면 린델, 아니, 교국 내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들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낮은 전투 숙련도와 지나치게 빠른 성장으로 인해 얻은 여러 가지 부작용을 감안해도 마력 능력치 99의 무게감은 줄어들지 않는다.

기쁜 마음과 불안한 마음이 공존한 것이 당연. 그렇지만 일단은 성장을 축하해 주는 것이 먼저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일인데?”

“아! 마, 마력 능력치가 올랐어요. 이제는 구십구예요! 그동안 사용할 수 없었던 마법도 사용할 수 있고 생각만 하고 있던 것들도 시, 실험해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

“네!”

“정말 대단하네. 현성 씨도 몇 년이 걸릴 거라고 했었잖아.”

“그, 그래도 열심히 했어요. 오빠 생각하면서 열, 열심히요. 그동안 오빠한테 여러 가지로 신경 써드리지 못한 것도 그, 그런 이유였고요.”

신경을 안 쓴 것치고는 제법 많은 시간을 함께했다.

“이제는 조금 더 오래 같이 있을 수 있어요. 헤헤.”

“그거 잘됐네. 나는 또 하얀이가 혼자 있고 싶어 하는 줄 알고 있었거든.”

“아니요! 절대 아니에요! 절대로! 아무래도 오빠랑 항상 같이 있으면 자꾸만 다른 생각이 들어서….”

“아… 응….”

그 다른 생각이 어떤 생각인지는 대충 상상이 가기는 했지만 무슨 생각이 드는지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캐묻지 않았다.

“어떻게 조금 피곤하지? 잠도 못 잔 것 같은데….”

“네. 사실은… 조금 그래요.”

“역시 라이오스는 나 혼자 다녀오는 게 좋겠지?”

“아니요! 머, 멀쩡해요! 하나도 안 피곤해요! 가, 같이 자요. 아니, 같이 가요. 오빠. 짐 정리도 거의 다 끝나가니까!”

어차피 떼놓고 갈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도 않았다. 슬쩍 방을 바라보자 마치 폐허라도 된 것 같은 안이 시야에 비친다.

이쪽의 짐을 챙겨놓는 것은 고사하고 자신의 짐도 챙기지 않은 것이 확실하리라.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와 그녀를 떼고 가고 싶긴 했지만 이 상태의 정하얀을 혼자 내버려 두는 것도 여간 신경 쓰인다.

약간의 내적 갈등이 있었지만 데리고 가는 것이 올바른 선택. 혹여나 내가 다른 말을 해올까 허겁지겁 방 안으로 들어가 짐을 챙기는 모습이 시야에 비쳤다.

입꼬리는 한 것 올라가 있었고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는 걸 보면 기분이 좋아도 이렇게 좋을 수가 없는 모양.

뭔가 자신감도 엄청나게 올라간 것 같은 느낌이다.

필요한 짐은 라이오스에서 전부 사려는 모양인지 간단하게 옷과 화장품을 챙기는 것이 보였다.

이쪽 역시 방 안으로 들어가 대충 짐을 챙긴 것은 당연한 일이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정하얀과 함께 1층으로 내려갈 수 있었고 그곳에서 미리 이쪽을 기다리고 있는 박덕구와 한소라를 볼 수 있었다.

한소라는 정하얀이 내려오자 살짝 흠칫하기는 했지만 일단은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는 모습, 싱글벙글 기분 좋은 웃음을 입가에 올리고 있는 정하얀의 상태가 좋다는 걸 깨닫고 무척 안심하고 있는 것 같았다.

“길드 마스터 형씨한테는 인사 안 드리고 갈 거요?”

“어제 드렸다. 오늘은 현성 씨도 할 일이 있어서 마중 나오지 못할 거라고 했고… 빨리 출발하자 늦겠네.”

“거, 형님이랑 누님이 늦게 나와서 이리 늦은 거 아니요. 그래도 빨리 움직이면 시간 안에는 도착할 거요. 정 안 되면 내가 세 명 다 들고 뛰면 되고.”

“그건 사양하고 싶은데… 일단 움직이자. 조금은 늦어도 상관없을 거야.”

“알겠소.”

이쪽을 마중 나온 이들과는 다시 한번 인사를 마치고 등을 돌린다.

그 와중에 나오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이야기했었던 김현성도 모습을 비쳤다. 반가운 마음이 들기는 했지만 굳이 미사여구를 붙인 인사는 하지 않았다.

최근 항상 불안해 보였던 녀석의 표정에 나는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었고 녀석 역시 내 손을 붙잡으며 입가에 미소를 만들었다.

“다녀오겠습니다.”

“예. 혹시 무슨 일이 있으면 연락드리겠습니다.”

“네. 현성 씨.”

오래 떨어지지 않을 계획인 만큼 작별인사는 이것으로 끝.

붉은용병을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는 실례를 범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최대한 빠르게 발을 놀린다.

정하얀은 내 팔을 꽉 붙잡고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박덕구는 혹시라도 시간에 늦을까 초조한 표정, 한소라는 정하얀과의 안전거리를 착실히 유지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정하얀은 그동안 떨어진 걸 보상이라도 받으려는 양. 점점 더 안쪽으로 파고들고 있었다.

조금은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 그렇지만 지금 당장은 원하는 걸 하게 해주는 게 좋을 거라고 생각했다.

굳이 기분을 나쁘게 해서 좋을 건 없었으니까.

‘빠르게 강해지면 내가 좋아할 거라고 생각한 건가.’

그런 이유도 있기야 하겠지만 아마 조금 더 다른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떠올려 보면 정하얀이 처음 힘에 집착하기 시작한 것은 진짜 강자를 자신의 눈으로 확인한 이후였다.

그 뒤로도 계속해서 힘이 필요했던 상황을 겪었었고 그 기억은 정하얀을 이끌어 주는 원동력이 돼 그녀의 성장을 촉진시켰다.

내 예상이 맞다면 조금 머리가 아플 수도 있는 상황을 겪을 수도 있으리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 보니 약속 장소 앞에 이쪽을 기다리고 있는 몇몇 이가 시야에 비친다.

마치 처음 만났을 때처럼 몸매가 훤히 드러나는 옷을 입고 있는 이의 모습은 확실히 매력적. 붉은색 머리를 휘날리고 있는 여자, 붉은 용병의 길드 마스터이자 교국의 의원 중 하나.

명실상부 린델의 넘버원이라고 할 수 있는 용병여왕 차희라였다.

다짜고짜 이쪽으로 달려 들어와 어깨에 팔을 걸친 채로 입을 열어오는 모습은 여전했다.

정하얀은 잠깐 흠칫하기는 했지만 차희라를 빤히 바라보는 것 말고는 다른 행동을 취하지는 않았다.

“조금 늦었네. 자기?”

“아. 일이 조금 늦게 끝나서….”

“씨알도 안 먹힐 거짓말은… 뭐 보나마나 길드 하우스에서 꾸물거리다 늦었겠지. 아무튼 간에 출발하자. 아. 세컨드는 오랜만이네?”

“네….”

“어때 그동안 잘 지냈어?”

“나름….”

그렇지만 정하얀의 표정이 제법 묘해 보인다. 대놓고는 아니었지만 마치 차희라를 재보고 있다는 느낌.

적의가 든 표정은 아니었지만 뭔가 천천히 시동을 걸려고 하는 듯한 얼굴이었다.

‘슈바… 쟤 왜 저래.’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천천히 차희라를 위아래로 살펴보는 정하얀은 손가락을 계속해서 까닥거리고 있었다.

나에게 어깨동무를 한 채로 마차 안으로 데리고 가던 차희라 역시 움직임을 우뚝 멈춘 것은 당연한 일.

고개를 돌려 자신을 바라보는 정하얀의 눈을 똑바로 마주치는 것이 시야에 비쳤다.

그 어떤 대화도 나누지 않았지만 왠지 모르게 내가 작아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정하얀 위험측정기 한소라는 발을 절뚝거리며 전투력 측정기 박덕구의 뒤로 자리를 옮겼고 박덕구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버렸다.

뭔가 폭탄이 터질 것 같은 느낌. 굳이 내가 뭐하고 나서기도 애매한 타이밍이라고 생각했다.

둘은 서로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고 정하얀 역시 딱히 차희라에게 무례한 짓을 하고 있는 건 아니었으니까.

“왜. 뭐 할 말이라도 있어?”

“딱, 딱히… 그렇지는….”

“그런데 사람을 그렇게 쳐다봐? 응?”

“제… 제가 어떻게 봤는데요?”

‘너네 X발 이러지 마….’

갑작스럽게 주변이 조용해진다. 라이오스로 함께 가기 위해 모인 이들도 물론이고 주변에서 들려오던 목소리들도 어느덧 들려오지 않는다.

베니고어 여신님께 기도라도 드리고 싶은 상황.

불행인지 다행인지 정하얀이 슬쩍 고개를 숙이자 차희라는 한 번 입꼬리를 올리고서는 다시 한번 나에게 말을 건네기 시작했다.

물론 어깨 위에 올린 팔과 묘하게 밀착시킨 가슴의 포지션도 여전했다.

“들어가자. 자기.”

정하얀이 조그맣게 입을 연 것은 바로 그때.

“그 팔… 치우는 게 좋을 것 같은데….”

혼자 소곤소곤 이야기하고 있지만 대놓고 들으라는 듯한 목소리였다.

“오, 오, 오빠가 불편해하는 것 같은데….”

“…….”

“…….”

“뭐?”

‘너네 X발 진짜 이러지 마….’

살짝 입꼬리를 올리고 있는 정하얀. 뭐라고 말로 형용하기 힘든 차희라의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