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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302화 (301/1,590)

# 302

회귀자 사용설명서 302화

중립국 라이오스(3)

날카롭게 치고 들어오는 공격은 불안했지만 라이오스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평화롭고 살기 좋은 곳이었다.

사절단 방문을 축하하는 연회가 벌어지는 내내 그런 생각을 했다.

이국적인 풍경 때문인지, 특유의 국민성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째서 많은 이들이 라이오스를 찾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들은 다툼을 싫어하고 조화나 융화를 중요시한다.

대부분의 국민들이 자신을 다스리고 절제하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삼고 있었고, 그중에서도 특이한 몇몇이의 행동은 지구의 불교를 생각나게 했다.

실제로 교국과는 다르게 라이오스에서 눈에 띄는 직업은 수도사와 고행자.

사제 직군으로 분류할 수 있는 이들은 교국이 보유하고 있는 신성기사단과는 그 본질부터가 다르다.

성기사가 추구하는 것이 신에 대한 믿음이라면 이들이 추구하는 것은 정신의 수양.

어떻게 보면 종교 문제로 마찰이 일어날 수도 있을 것 같았지만 딱히 그렇지도 않다.

라이오스 국민들이 베니고어 여신의 우방이라 분류할 수 있는 마하마라 여신을 믿고 있기 때문이리라.

마하마라 여신의 교리는 자신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 신도들의 수양과 행복.

이들이 이런 국민성을 가지게 된 배경에는 그들이 모시고 있는 신의 교리가 바탕에 깔려 있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좋은 곳이야.’

그렇다 보니 전체적으로 나라 자체가 소박하고 사치가 없다.

하지만 교국의 손님들을 함부로 대할 수 있을 리가 만무.

이들의 입장에서는 제법 성대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성대한 연회를 선물로 받았다는 것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으리라.

혹시나 사절단에게 실수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교국은 엄연히 대국이다.

시민혁명을 겪은 이후에도 여전히 교국은 대륙 정세의 중심에 서 있다.

교국을 대표하는 우리 사절단에게 실수하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게 뻔하다는 거다.

그 동안 많은 자리에 불려나가기는 했지만 이토록 편하게 접대를 받는 것은 처음.

무희의 춤은 아름다웠고 그들의 문화와 음악 역시 보고 듣기에 좋다.

정말로 오랜만에 휴식다운 휴식을 취한 느낌이었으니 끝나 갈 때 즈음에는 거나하게 술에 취한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으리라.

“연회는 어떠셨습니까.”

“즐겁고 과분한 시간이었습니다. 분에 넘치는 환대를 해주시니 어떻게 감사를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만족스러우셨다니 다행이군요. 음식과 술이 입에 맞으실까 걱정했었는데… 조금 안심이 됩니다. 머무시는 동안에는 사용하실 수 있는 별채를 마련해 놓았습니다. 붉은용병 분들과 파란 분들이 따로 사용하실 수 있게 했으니 함께 오신 사절단 분들과 묵으시면서 내일부터라도 천천히 라이오스를 둘러보셨으면 합니다.”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프리스티나 님.”

‘대우가 좋긴 좋네.’

아까부터 느끼기야 했지만 어떻게 해야 이쪽이 기분 좋을 수 있을지 알고 있는 듯하다.

그렇다고 마냥 비굴하게 굽실거리는 것도 아니다.

이미 프리스티나는 이쪽과 함께하자는 제안에 완곡한 거절의 뜻을 밝혔으니 이 연회는 사과의 표현도 겸하고 있는 것이리라.

이미 날이 많이 어두워진 상황이라 이만 잠을 청해야 하는 것은 당연지사.

살짝 몸을 일으키자 몰려있던 취기가 한꺼번에 몰려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생각보다 술이 독하나.’

달콤한 술이라고 생각해 무작정 들이키다 보니 이런 상황이 펼쳐진 것이리라.

안 그래도 오랜 여행 때문에 몸이 피곤한 상황.

이쪽이 힘들어 하고 있다는 걸 대충 눈치챘는지 아무 말 없이 다가온 박덕구가 슬그머니 중심을 잡아줬다.

정하얀 역시 혹시나 뻇길까 싶어 이쪽의 팔을 잡았고 그 사이에 차희라가 이쪽의 바톤을 넘겨받았다.

직접 꼬맹이를 상대하기 시작한 것이다.

슬그머니 손을 휙휙 젓는 것을 보니 빨리 들어가 보라는 뜻.

박덕구는 고개를 끄덕였고 이쪽은 대충 인사를 한 뒤에 연회장을 나올 수 있었다.

‘엄청 피곤한데….’

박덕구와 정하얀은 비교적 괜찮아 보인다.

아무래도 스탯 차이가 있다 보니 이쪽이 조금 더 빨리 취하는 것 같았다.

심지어는 한소라도 나처럼 피곤해 보이지는 않은 것 같아 괜스레 낮은 체력이 서러워졌다.

“허이구. 거, 너무 달린 거 아니요? 이렇게까지 취한 건 본 적 없는 것 같은데.”

“글쎄다. 오늘따라 유난히 피곤하네.”

“형님 마음도 조금은 이해가 되긴 되오. 오랜만에 기분 좋은 자리였으니까. 사람들도 전부 다 좋아 보이고 말이요.”

“뭐 그렇지.”

“아무튼 간에 오늘은 푹 쉬고 내일부터 누님이랑 같이 여기저기 좀 돌아다녀 보쇼. 거 듣자하니 여기저기에 신기하고 볼거리가 많은 모양이오.”

“그래?”

“뭐, 진실의 동굴이라는 것도 있다는데 몇백 년 전에 발견된 여신의 유산이라고 말이 많았다니까. 나는 뭐가 뭔지 잘 모르겠지만 대륙법으로 지정된 문화유산이나 보호물들이 여기저기에 몰려 있는 모양이오. 라이오스에서는 멸종위기에 놓인 몬스터들을 사냥 금지하는 법도 있다고 하니 이런 것들이 잘 보존되어 있지 않겠소?”

“엄밀히 말하면 교국도 베니고어 여신에 관련되어 있는 것들은 엄중히 관리하기는 해.”

“아 교국도 그런 게 있소?”

“응.”

“아무튼 간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좋은 장소 같다니까.”

“응.”

‘피곤해 뒈지겠네.’

옆에서 자꾸만 정하얀이 건네는 술을 받아든 부작용이리라.

정하얀은 이쪽이 걱정되는지 팔을 붙잡고 영차영차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지만 사실상 둘 다 박덕구에게 끌려가는 것이나 다름없다.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시야에 비친 것은 커다란 별채.

여기저기에 이국적인 양식이 드러나 있는 것은 여전했지만 별채의 안쪽은 교국의 그것과 유사했다.

아마 교국의 사절단이 올 때마다 사용했던 장소가 틀림없으리라.

“여, 여기서부터는 제가 할게요.”

“어엉?”

“제가 침실까지 부축해 드릴 수 있어요.”

“그러면 그렇게 하면 되겠네!”

“네. 그, 그럼 그렇게 해요.”

박덕구는 잘 됐다는 듯 이쪽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기는 했지만 아쉽게도 뭔가를 할 여력이 없다.

당장에라도 졸음이 쏟아질 것 같았으니까.

벌써부터 비몽사몽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에 사실 정상적인 사고를 하기도 힘들다.

‘씻을 필요는 없어서 다행이다.’

마법은 이럴 때 상당히 유효하다.

넓은 방으로 들어온 이후에는 그대로 침대로 널부러진 것은 당연지사.

정하얀이 ‘씻, 씻겨드릴까요?’라고 말해 개미만 한 목소리로 긍정의 신호를 보냈다.

물론 조금씩, 조금씩 수마로 빠져드는 와중에도 라이오스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다.

아직까지는 그렇게 급한 상황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현재 교국은 믿을 수 있는 동맹국이 필요하다.

매일 으르렁거리는 공화국은 애초에 논외.

왕국연합 같은 경우에는 이쪽을 경계하다 못해 칼을 들이밀 준비를 하고 있었으니 비빌 수 있는 구석이 있는 곳은 라이오스나 이종족들이 끝이다.

계속해서 중립을 외치고 있는 이들에게 어떻게 접근해야 좋을지에 대해서 생각하기 시작했지만 마땅히 답을 찾을 수 없는 것이 문제다.

꼬투리를 잡아서 질질 끌거나 공화국과의 관계를 악화시키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지만….

‘너무 급하게 다가가는 건 안 좋아. 시간을 조금 두고 보자.’

겉으로는 잘 대해주고 있지만 이들은 이미 우리를 충분히 경계하고 있다.

모르긴 몰라도 공화국의 인사들과도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하고 있으리라.

‘머리 아파….’

편안하게 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을 보면 확실히 일중독이 맞다.

국왕 꼬맹이의 말대로 내일이라도 아무 생각 없이 푹 쉬었으면 좋을 것 같은 느낌.

그 생각을 끝으로 나는 눈을 감았고 햇빛이 얼굴을 비추는 감각과 동시에 침대에서 벌떡 일어날 수 있었다.

벌써 아침이 찾아온 것이다.

“아으…. 머리야.”

“오빠, 일어나셨어요?”

“아, 하얀아. 지금 몇 시지?”

목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문 쪽에서 커다란 그릇을 든 채로 서성거리는 정하얀이 시야에 비친다.

“지금 세 시예요.”

“세 시?”

“네. 지, 지금쯤 일어나실 것 같아서 따뜻한 스튜를 조금 가져왔어요. 제가 직접 만든 거요! 마침 딱 맞게 일어나셨네요.”

“시간이 벌써 그렇게 됐어?”

“네.”

“몇 시간밖에 안 잔 거 같은데… 왜 이렇게 몸이 피곤하지?”

“어, 어어… 어제 무리하셨으니까요.”

그 말이 맞다.

슬그머니 정하얀을 바라보자 함박웃음을 짓다 못해 입꼬리가 올라간 게 눈에 보인다.

아무래도 오늘은 기분이 좋은 모양.

어제 무희가 등장할 때부터 볼을 부풀리고 있어 걱정했었는데 다행히 하룻밤 새 짜증이 풀린 것 같았다.

잠도 푹 잤는지 생기가 들어가 있는 것 같은 모습.

‘피부도 엄청 탱탱하네.’

술자리를 같이 했다고는 믿겨지지가 않을 정도였다.

마법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피부에 윤기가 흐르는 게 마치 오일이라도 발라놓은 것 같이 보였고 전체적으로 기분이 좋아졌다는 느낌이 강했다.

그 모습에 나 역시 조금은 안심할 수 있었다.

안 그래도 여러 가지 일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상황.

그나마 저런 모습을 보여주니 기쁘지 않을 수가 없다.

“어떻게… 피곤하실 테니 이거 드시고 조금 더 주무시는 게….”

“아냐. 여기까지 와서 잠만 자기에는 조금 아까우니까. 포션 한 병 따고 적당히 움직이면 돼. 희라 누나는? 아니지. 덕구도 아직 안에 있어?”

“아. 두 분이랑 소라 씨는 밖으로 나갔어요. 붉은용병 단원 분들도 전부다요. 오늘 하루는 라이오스를 둘러보실 생각인가 봐요. 오빠가 일어나면 연락해 달라고 하셨어요.”

“그래?”

“네.”

“시간은 많으니까 천천히 움직이자. 아……. 잠깐, 하얀아.”

“네… 네?”

“내가 요즘 조금 무심했지?”

“아, 아니요…. 오빠는 바쁘시니까. 하, 하실 일도 많고 이해할 수 있어요.”

“이해해 줘서 고마워.”

살짝 이마에 뽀뽀를 해주니 고개를 푹 숙인 게 보인다.

귀까지 붉어진 모습이 조금은 귀엽게 느껴진다.

아무튼 간에 이곳에 가만히 앉아 있을 수는 없는 노릇.

정하얀이 가져온 밍밍하고 이상한 스튜를 들이켠 뒤에는 곧바로 나갈 준비를 시작했다.

‘아리스 시녀가 있으면 좋았을 텐데.’

교국의 지도자를 시녀로 부리는 그림은 내가 봐도 이해가 되지 않지만 몸이 피곤하다 보니 별 생각이 다 든다.

평소에는 확실히 부담스럽기는 했지만 이럴 때 없으니 괜스레 아쉬워 진다.

정하얀이 아무리 이쪽을 챙겨주려고 노력한다고 한들, 프로와 아마추어의 사이에는 메울 수 없는 갭이 존재한다.

마음은 고맙지만 나를 챙겨준다고 헐레벌떡 뛰어다니는 정하얀의 행동은 오히려 이쪽의 준비를 늦추고 있었다.

“슬슬 나가자.”

“네!”

“오랜만에 데이트 같네. 그렇지?”

“아! 네! 그, 그렇네요!”

‘그래. 오늘 하루는 서비스해 준다.’

어차피 이후에는 차희라와 합류해야 하겠지만 짧은 시간이라도 같이 있을 수 있다는 게 정하얀에게는 중요하리라.

안 그래도 기분 좋아 보이는 타이밍이니 여기에서 정점으로 올리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당분간 조용해질 수도 있고 차희라와의 관계도 조금씩 개선시키는 것도 가능해질 것이다.

‘걱정 하나는 덜 수도 있겠는데….’

정하얀 덕분에 이쪽까지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은 느낌.

그렇지만.

모든 게 잘 풀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왠지 모르게 꼬일 것 같다고 직감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누나가 왜 거기서 나와?’

이제는 기억도 흐려지고 이름도 잘 기억나지 않는 사람이기는 했지만 눈앞에 보이는 여자는 굉장히 익숙하다.

처음 마주친 것은 블랙마켓에서 였고 두 번째는 차희라의 폭주 때문에 도움을 받았을 때였다.

내가 알고 있는 유일한 공화국 인맥, 공화국에서 자랑하는 오호대장군의 일원으로 전설 등급의 무기, 여신을 벌한 채찍, 울드의 소유자.

내가 본 기벽 중 가장 개떡 같은 기벽을 가지고 있는 인간 중 하나였다.

‘샤오린?’

황급하게 발걸음을 뒤로 돌릴 수밖에 없었다.

‘슈바….’

찔리는 게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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